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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스무 살'에 성적을 매겨 본다면 <성적표의 김민영> [신작 영화 리뷰] 수능 100일 전 본격적으로 준비를 하고자 김민영과 유정희가 함께 쓰는 기숙사 방에 모여 자못 엄숙히 클럽 해체를 선언하는 비공식 삼행시 클럽의 세 멤버, 김민영과 최수산나 그리고 유정희. "이 선언문을 통해 우리의 삼행시 클럽 해체를 선언합니다. 지금 우리는 수능 백 일을 앞두고 학생과 자식으로서 본분을 다하기 위해 우리의 창작욕을 잠시 재워 두려 합니다." 민영은 대구대학교에 입학해 대구에서 생활하고 있고 수산나는 하버드대학교에 입학해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다. 반면 정희만은 청주에 그대로 남아 대학교에 입학하지 않고 테니스클럽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서로 몸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삼행시 클럽 모임은 온라인으로 계속 가지고자 하는데 여의치 않다. 민영은 삼행시를 대충하는 것도 모자라.. 더보기
한때 뿌리내렸던 그곳이 사라질 때 <봉명주공> [신작 영화 리뷰] 1973년 서울시 서초구 반포동에 대한주택공사(현 한국토지주택공사)가 '반포주공아파트'라는 한국 최초의 주공아파트 대단지를 지은 후 전국적으로 주공아파트가 무수히 지어졌다. 고로 1980년대까지 지어진 주공아파트를 '1세대 주공아파트'라고 명명할 수 있겠는데, 서울을 비롯해 여전히 전국적으로 상당히 남아 있다.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봉명동의 '봉명주공' 1, 2단지도 전국의 수많은 주공아파트 중 하나로, 각각 1983년과 1985년에 지어져 4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2022년 6월 현재 1단지는 철거가 완료되어 '청주 SK뷰 자이'로 재건축될 예정이고 2단지는 재건축 계획만 잡혀 있는 상태다. 사라져 갈 운명의 아파트, 아파트를 터전으로 살아온 이들의 운명은 어디를 향할까. 다.. 더보기
자타공인 2021년 최고의 드라마!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웨이브 오리지널 리뷰] 현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은밀한 사생활이 만천하에 드러나며 현 대통령 임기가 1년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 문체부 장관 자리가 공석이 된다. 급히 수석 비서관 회의를 열어 해결을 도모하는데, 정무수석이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낸다. '1980년대 김연아'로 올림픽 사격 금메달리스트이자 직업군인 출신에 보수야당 국회의원 출신의 이정은을 지목한 것이다. 어쩌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된 이정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정부여당의 주요 공략인 체수처(문화체육예술계 범죄 전담 수사처) 설립을 위해 발벗고 뛰어다니는 것이었다. 여기저기 부탁해 가며 체수처 설립준비단을 위한 자문위원회 출범식을 치르려 하지만, 마음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대변인, 보좌관, 비서, 실장들 손발도 맞지 않는다... 더보기
이 영화가 위대한 발견을 그리는 법 <더 디그> [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1939년 제2차 세계대전 직전 영국의 서퍽 주 입스위치, 젊은 미망인 이디스 프리티는 어린 아들 로버트와 함께 대저택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녀는 사유지에 있는 둔덕 아래에 뭔가 있을 거란 확실한 느낌을 갖고, 고고학자이지만 스스로를 발굴가라고 소개하는 배질 브라운을 고용한다. 그는 비록 정식교육을 받진 못했지만 선대부터 살아온 서퍽을 꿰고 있으며 독학으로 지독하게 쌓아올린 지식과 아주 어렸을 때부터 현장에서 쌓아올린 경험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젊은이들은 전쟁 준비로 모조리 불려가는 와중에, 적은 인력과 비용과 시간 속에서 작업에 뛰어든 배질은 머지않아 큰 발견이 될 전초를 발굴한다. 다름 아닌 배를 발굴해 낸 것, 곧 입스위치 박물관과 대영 박물관에서 달라 붙는다. 박물관 측.. 더보기
프랑스 코미디 영화의 현재 <세라비, 이것이 인생!> [리뷰] 영화의 시작은 프랑스에서였다. 19세기 말 뤼미에르 형제가 세계 최초의 대중영화를 상영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아니 한참 전부터 전 세계 영화계를 주름잡는 건 단연 미국이다. 마치 영화의 진정한 시작은 프랑스가 아닌 미국이라고 다시금 천명하는 것처럼 말이다. 뤼미에르 형제 이전에 미국의 에디슨과 딕슨이 이미 영화용 카메라와 활동사진 감상 기구를 발명하였고 영화 스튜디오와 영화 제작사를 차렸다. 하지만 시네필이라면 미국 아닌 프랑스를 동경한다. 세상이 자본주의로 획일화되어 영화 또한 그에 흡수되기 전에는 프랑스 영화야말로 '진정한' 영화의 기준이자 척도였기 때문이다.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줄 수 있던 프랑스였다. 프랑스가 그 답을 더 이상 줄 수 없게 된 건 한참 전이다. 프랑스 영.. 더보기
평범한 사람들의, 살아가는 아름다움 <에델과 어니스트> [리뷰] 영화 한 편으로 한 방면이나마 역사를 훑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다. 굉장히 거시적으로 접근하면서도 주요 사건들을 미시적으로 들여다보아야 공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등이 생각난다. 한 시대를 고스란히 살아온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굉장히 평범하거나 굉장히 특출나다. 하지만 접근 방법은 같다. 이들 모두는 우리와 다름 없는 삶을 살았거나 우리와 함께 살았던 것이다. 우린 이 영화들을 사랑했고 이 영화의 주인공들에게 대체로 동질감을 느꼈다. 자전적 애니메이션 는 이 범주에 속하는 영화라 하겠다. 1920~60년대 영국의 지극히 평범한 한 부부의 이야기를 통해, 영국의 20세기 초중반 40년을 훑는 작업 말이다. 우린 이 영화로 평범한 사람으로서의 동질감을 느끼며 동시에 영국의 20세기 초중반.. 더보기
'사람'이 보이는, 60년 전의 놀라운 파격 로맨스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지나간 책 다시읽기] 프랑수아즈 사강의 종종 시대를 뛰어넘는 시대를 앞서가는 작품을 목격한다. 이 시대에 이런 생각이 가능한 것인가? 그래서 우린 그런 작품을 보고는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다'라고 평하곤 한다. 가령, 1960년대 만들어진 영화 는 최소 30년 후에 만들어졌다 해도 하등 이상할 게 없을 만했다. 비쥬얼적 요소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상당한 영화와는 달리 소설은 기시감을 거의 느낄 수 없다. 1960년대가 아닌 16세기 셰익스피어, 세르반테스 등을 아주 친숙하게 읽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전체에 흐르는 감각이나 생각 등에서는 아무래도 어느 정도의 거리감이나 기시감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 거리감이나 기시감은커녕 현재를 사는 우리보다 더 감각적이고 생동하는 소설이 있다.. 더보기
삶이 삶을 지탱하고, 사람이 사람을 지켜주는 게 아닐까 <하와이언 레시피> [오래된 리뷰] 하와이 섬 북쪽 끝의 작은 마을 호노카아, 나이 지긋한 미국계 일본인들이 모여 산다. 세상 어디에도 그런 곳은 없을 듯하다. 느리고 말 없고 태평하다. 딱히 뭘 하고 있는 사람이 없다. 그곳에 젋디 젊은 청년 레오가 찾아온다. 그 또한 느리고 태평한 듯하기에 큰 무리 없이 스며든다. 마을에 하나밖에 없는 영화관에서 일하게 된 레오, 곧 동네사람들과 친해진다. 그들은 하나같이 천하태평하고 무미건조한 삶을 사는 것 같지만, 사실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여유롭고 안정된 삶이다. 여자를 밝히지만 파킨슨병에 걸린 아내만을 바라보며 사는 코이치, 팝콘 기계 옆에 앉아 기계가 돌아가기만 하면 잠을 자는 제임스, 먹는 걸 너무너무 좋아하는 영화관 주인 에델리, 과묵한 레오의 상사 버즈, 딱딱 맞는 말만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