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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반전'에 해당되는 글 1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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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론 소킨이 재창조한 최악의 '시카고 7 재판' 실화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2020.10.26
  • <나비효과> 감독이 보여주는 반전 밀리터리 호러 <고스트 오브 워> 2020.09.11
  • 근래 보기 드문 완벽한 오리지널 미스터리 탐정물 <나이브스 아웃> 2020.01.13
  • 문학적 철학적 신화적 질문들을 던지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SF <나의 마더> 2019.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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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의 말을 빌려 50년의 기행적 소설 쓰기를 해명하다 <모나드의 영역> 2017.01.16
  • 참으로 거대한 이야기, 끝을 잘 맺어야 할 텐데... <하트 오브 더 씨>(2) 2016.02.26
  • 전염병에 대처하는 치명적인 자세 <네메시스> 2015.06.22
  • <결혼식 전날> 감동과 반전,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다(3) 2014.10.18

아론 소킨이 재창조한 최악의 '시카고 7 재판' 실화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0. 10. 2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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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포스터. ⓒ넷플릭스



할리우드에 많고 많은 작가들이 활동하지만, '아론 소킨'만큼 유명한 이를 찾기도 힘들다. 각본가 중에 이름만 대도 전 세계적으로 알 만한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1930년대부터 70년대까지 매카시즘 광풍에 엮여 10개가 넘는 필명으로 활동한 할리우드 전설의 각본가 '달튼 트럼보' 정도가 생각날 뿐이다. 그의 일대기는 영화로도 두 번 만들어져 일반 대중에게 보다 더 잘 알려질 수 있었다. 


한편, 아론 소킨 하면 떠오르는 작품들이 1990년대부터 끊임없이 있다. 그가 손을 댄 것들이 대부분 유명하기에 유명한 것들만 언급해도 리스트가 꽤나 길다. 연극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다가 성공적으로 영화 각본 데뷔를 한 <어 퓨 굿 맨>을 시작으로, <찰리 윌슨의 전쟁> <소셜 네트워크> <머니볼> <스티브 잡스> 등의 영화와 최고의 미드로 손꼽히는<웨스트 윙>과 <뉴스룸> 등의 TV시리즈까지 섭렵했거니와 2017년에는 <몰리스 게임>으로 장편 영화 연출도 시작했다. 


그리고 2020년, 넷플릭스와 손잡고 또 하나의 '아론 소킨 표' 영화 하나를 들고 왔다. 이번에도 지난 <몰리스 게임>처럼 각본은 물론 연출까지 하였다. 1968년 시카고 민주당 전당대회 때 주요 시위자로 기소되어 재판받은 '시카고 7'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이다. 제목 그대로, '시카고 7의 재판'이 시작과 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론 소킨이 영화계로 진출하게 된 계기가 된 작품이 재판을 다룬 영화 <어 퓨 굿 맨>이었다는 걸 상기하게 된다. 


1968년 시카고 민주당 전당대회 후...


1965년 미국은 베트남전쟁에 깊이 관여하게 된다. 미국 전역에서 징집 계획에 의한 추첨으로 젊은이들을 뽑아간다. 대학 캠퍼스에선 저항운동이 일어난다. 1968년 4월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암살 당하고 전국적으로 애도와 시위가 일어난다. 이를 막고자 의회는 '랩 브라운법'을 통과시킨다. 이는 폭력 선동을 목적으로 주 경계 횡단을 금지시키는 법이었다. 같은 해 6월에는 민주당의 유력 대권주자였던 로버트 케네디가 암살된다. 8월에는 시카고에서 민주당 전당대회가 예고되어 있었다. 시카고 시장은 반애국적 조직의 집회 허가를 거절한다. 


그런 와중에도 1968년 8월 시카고에서의 민주당 전당대회에 전국에서 수많은 '선동가'가 몰린다. 그들의 목적은 반전과 종전이었다. 이후 당연한 수순처럼 시위대와 경찰·군대가 충돌하고 혼란에 빠진다. 11월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이 대통령에 선출되고, 이듬해 1969년 3월 8명의 운동가가 랩 브라운법에 따라 기소된다. 그들은 민주사회학생회의 톰 헤이든과 레니 데이비스, 청년국제당 소속의 애비 호프먼과 제리 루빈, 베트남전 종식을 위한 국가동원위원회 설립자 데이비드 델린저, 존 프로인스와 리 와이너 그리고 흑표당 의장 보비 실이었다. 


바뀐 정부에 따라 역시 새롭게 들어선 법무장관 존 미첼이 검사장의 추천을 받아 최고의 실력을 갖춘 검사 리처드 슐츠에게 10년 형을 때려 버리라는 명을 내린 것이다. 그들은 큰 틀에서 반전과 종전이라는 목적만 같을 뿐 서로를 잘 알지 못했다. 비슷해 보이지만 각자 확고한 신념과 방향을 지니고 있어 한 목소리를 내기 힘들었다. 또한, 존 프로인스와 리 와이너는 운동가라고 하기엔 뭣한 이들이었고 보비 실은 흑인 자경단인 흑표당 의장이라는 이유만으로 시카고 민주당 전당대회 시위 당시 4시간만 머물렀을 뿐인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1969년 9월 재판은 단독 판사 줄리어스 호프먼의 주재 하에 진행된다. 그런데 재판이 다름 아닌 호프먼 판사에 의해 말도 안 되는 방향으로 진행되는데...


아론 소킨 표 '시카고 7 재판'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은 미국 역사상 가장 악명 높았던 재판인 '시카고 7의 재판' 실화를 바탕으로 다분히 아론 소킨 스타일로 재탄생된 영화이다. 그가 그동안 선보였던 유명한 명작들의 특성을 고스란히 가져온 바, 물 흘러가듯 군더더기 없이 매끄러운 스토리를 기본으로 장착하곤 개성과 신념을 두루 갖춘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극을 이끈다. 거의 모두를 만족시킬 만한 완벽한 '틀'을 마련해 두고 그때그때 넣는 것 같다. 통속을 예술적으로 승화시켰다고 할까. 그의 작품은 통속이 먼저이지 결코 예술이 먼저인 것 같진 않다. 


아론 소킨의 작품들이 논란과 논쟁을 겉으로 내보이지 않고 안으로 수렴시켜 '뭔가 굉장한 게 있을 것 같아' '뭔가 굉장한 이야기를 보는 것 같아' 하는 느낌을 들게 하는데, 이 영화 또한 다르지 않다. 1960년대 후반 당시 미국 내의 얽히고설킨 복잡다단한 정치적 역학 관계를 안으로 수렴시켜, 꽤나 어렵고 자칫 지루한 듯하지만 '있어 보이고' '굉장한 듯'하게 하는 데 성공했다. 


공화당 아닌 민주당 대통령 치하에서 베트남전쟁에 개입하고 유명 진보 인사들이 암살당하고 반전 시위를 무력화 시키려 한다. 미국 정치판은 공화당과 민주당뿐이어서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진보'의 민주당과 '보수'의 공화당의 설명하기 힘든 관계가 다양한 희생양을 양산 시키는 것이다. 반전과 종전의 신념과 정치적 방향이 설 곳은 당시엔 없지 않았을까. 


와중에 민주당을 지지하는 이들이 오히려 반전과 종전을 외쳤으니 아이러니하다. 영화 속 주요인물인 민주사회학생회의 톰 헤이든과 레니 데이브스처럼 말이다. 혼란과 압박과 모순 속에서 반전과 종전이라는 신념 하나를 붙잡고 나아가야 했으니, 그러면서도 나중을 위해 '이기는 선거'에 걸맞는 이미지를 버릴 수 없었으니, 참으로 대단하다 싶다. 


시대라는 빌런, 사람이라는 빌런


영화는 공개되자마자 몇몇 타 영화와 함께 내년 아카데미 주요 부문 후보작 예상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동안의 모양새를 돌이켜 보면 그 예상이 실제와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 만큼,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은 또 하나의 할리우드적 명작의 반열에 올라갈 게 분명하다. 아니, 올라갔다고 하는 게 맞겠다. 이 영화를 기점으로 아론 소킨의 각본 작품뿐만 아니라 연출 작품도 기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 작품은 10년도 더 전에 스티븐 스필버그가 아론 소킨에게 각본을 의뢰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에 아론 소킨이 각본 초안을 다시 보냈는데, 미국작가조합 파업으로 중단되었다. 이후 오랫동안 잊혔다가 2016년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대선 '사건' 이후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이 시대의 조류가 50여 년 전 시대의 조류와 다름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테다. 


시대도 그 자체로 빌런 역할을 하지만, 이 영화엔 단독으로 재판을 주재해 피고뿐만 아니라 원고의 이야기도 또 법으로 지켜져야 할 사항들에도 전혀 관심이 없고 '내가 곧 법이다'라는 마인드를 가진 줄리어드 호프먼 판사가 빌런으로 나온다. 그는 정치 역학으로도 시대 조류로도 설명할 수 없는, 빙퉁그러진 신념으로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는 사람의 전형이다. 그를 보고 있노라면, 답답과 황당과 분노의 심정들을 느낀다. 


국가와 사회와 시대는 누가 만들고 이끄는가. 그것들은 스스로 작동하지 않을 테다. 다름 아닌 '사람'이 만들고 작동시켜 이끄는 것이다. 하여, 사회와 시대의 이야기를 대하고 보고 느끼는 데에 사람이 없어선 안 된다. 아론 소킨은 그 지점을 정확히 알아채 포착하여 세련되게 드러 낼 줄 안다. 그가 창조·재창조한 캐릭터에 힘이 있는 이유이다. 우리가 그의 작품을 믿고 보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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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전당대회, 반전, 법, 시위, 아론 소킨, 재판, 종전, 캐릭터,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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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효과> 감독이 보여주는 반전 밀리터리 호러 <고스트 오브 워>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20. 9. 1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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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고스트 오브 워>


영화 <고스트 오브 워> 포스터. ⓒTHE픽쳐스



1944년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 나치 독일 점령 하의 프랑스, 크리스와 4명의 미 육군 병사가 전초기지를 향해 간다. 가는 길에 소수의 독일군을 일망타진하고 피난 가는 유대인 모녀에게 온정도 베푼다. 드디어 도착한 전초기지, 으리으리한 대저택으로 나치가 프랑스 귀족에게서 빼앗았다가 미군이 주둔하고 있었다. 전쟁 상황에서 편안해 보이는 그곳, 하지만 기존의 교대 병사들은 이들에게 기지를 넘기고 황급히 가 버린다. 


석연치 않았지만 그러려니 하고 저택을 수색한다. 각기 다른 곳을 둘러 보던 그들, 뭔가 으스스하다. 유령인지 뭔지 모를 형체가 순간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도 한다. 누군가가 알 수 없는 말을 무섭게 전하기도 한다. 설상가상으로 5명에 불과한 그들에게 50명에 달하는 독일군이 올 거라는 소식을 듣는다. 그들은 떠나야 하나 지켜야 하나 고심하다가, 떠나면 군법회의에 회부될 거니와 이곳을 지키는 게 그들의 의무이자 위에서 떨어진 명령이기에 지킬 것을 다짐한다. 


5명이 따로 또 같이 50여 명의 독일군을 방어한다. 그런데 몇몇 독일군이 유령에 의해 처참하게 죽임을 당하는 게 아닌가. 각각 다른 모습을 목격한 대원들, 알고 보니 독일군이 죽어간 모습이 이 저택의 주인인 프랑스 귀족 가족이 독일군에게 죽은 모습과 동일하다는 것이었다. 이 저택엔 진정 유령이 존재하고 있는 것인가. 크리스 일행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떠나야 하는가, 지켜야 하는가, 애도해야 하는가. 


<나비효과> 감독의 영국판 <알 포인트>?


영화 <고스트 오브 워>는 <데스티네이션 2>와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4>의 각본을 쓰고 그 유명한 <나비 효과>로 전 세계를 사로잡았던 에릭 브레스 감독의 실로 오랜만의 복귀작이다. 직전 작업한 작품이 2009년작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4> 각본이니 자그마치 10년이 넘은 것이다. 이 작품이 너무나도 별로였기에, 오랫동안 활동을 하지 못했던 게 아닌가 싶다. 


한편, <고스트 오브 워>는 전쟁이 한창인 때에 저택을 기반으로 한 기지 내에서 일어나는 호러라는 점에서 많은 이에게 기시감을 전한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하고 생각하면 바로 <알 포인트>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공교롭게도 <나비 효과>가 개봉한 2004년에 개봉한 국내 최고의 밀리터리 공포물 말이다. 베트남 전쟁에의 비판과 극강의 공포를 내세운 분위기와 스토리가 어우러져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 영화는 어떨까. 어떤 이야기를 내세우고 어떤 메시지를 함의하며 어떤 분위기를 전할까. 그에 대한 기대감은 분명히 존재한다. 충분히 즐길 만한 구석도 있을 테지만, 단편적인 이야기로만 우리를 끌고 가진 않을 거라는 걸 말이다. 입체적인 이야기와 긴장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분위기 그리고 충격적인 반전을 동반한 메시지로 중무장했을 테다. 다만, 그것들이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 것인지 들여다볼 필요는 있다. 


2000년대 반전 영화의 묘미가 되살아나다


영화는 꽤나 단출하다. 5명의 대원들이 저택에서 일어나는 불가사의하고 일면 믿을 수 없는 현상에 휩싸이며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런데, 보다 보면 공포를 대하는 그들의 행동에서 이상한 모습이 눈에 띈다. 공포에 벌벌 떨어도 이상하지 않은 현상에 마주하고서도 상대적으로 큰 동요를 하지 않는 것이다. 전쟁을 겪으며 그보다 더한 공포와 충격을 경험해 왔기에 신경이 무뎌진 것일까 하는 추측을 해 본다. 


그런가 하면, 중간에 대원 중 한 명의 말마따나 그들은 몇날 며칠 밥을 먹지 않는다. 물론 영화적 설정 상 밥을 먹거나 잠을 자거나 볼일을 보는 등의 행위는 충분히 생략할 수 있는데 그래서 별 의구심 없이 지나가기 마련인데, 굳이 언급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 대반전의 순간이 오면 주마등 스치듯 깨달을 테지만, 그 말을 했을 때는 의구심과 불안이 함께 자리 잡아 묘한 긴장감이 알게 모르게 서려 있다. 


전체적으로 상당한 재미와 흥미를 전한다. 2000년대 반전 영화의 묘미를 한껏 살린 느낌이다. 하여, 어디선가 본 듯한 기시감을 지우기 힘든 것이다. <알 포인트>에의 기시감과 다른, 요즘 느낌이 아닌 옛 것의 느낌에 동반하는 기시감일 테다. 그래서 익숙한 듯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지만, 다 본 후 남는 게 별로 없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영화가 함의하는 메시지의 괜찮은 질에 비해서 말이다. 안타깝다고 해야 할까. 


재미만큼 설득력이 있을까?


제2차 세계대전이 배경이니 만큼 나치 독일과 유대인에 얽히지 않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영화는 당연한 듯 그렇게 흘러간다. 독일군에 처참하게 짓밟히고 죽임을 당한 유대인 그리고 그들을 숨겨줬다가 봉변을 당한 프랑스 귀족 가족, 그들 사이에서 미군이 취해야 할 스탠스는 명백하다. 영화 초반에 나오는 바, 독일군을 죽이고 유대인에게 온정을 베푼다. 


그런데, 그게 전부일까? 전부라면 식상하기 짝이 없는 영화가 될 요량이 다분하다. 절대 그럴리가 없다. 뭔가가 더 있을 테다. 생각이 가 닿기 쉬운 건, <알 포인트>처럼 대원들이 직접적으로 따로 또 같이 사건에 개입되어 있다는 얼개다. 즉, 독일군이 유대인과 프랑스 귀족을 죽이는 데 있어 대원들이 연류되어 있다는 것 말이다. 그들은 그 사실을 은폐하거나 기억에서 지워진 게 아닐까. 분위기상 그럴 것 같진 않다. 


그렇다면, 감독의 대반전을 기다리고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 분명 뭔가가 있는데 명백하게 알기 힘드니 말이다. 끝을 본 입장에서, 충격적이라기보다 탄성이 나오는 쪽이라 말하고 싶다. 어떤 식으로든 일차원적 생각에서 한 발 더 나아갔고 장르조차 파괴하는 신기를 보여 주었다. 확실한 재미를 보장하지만, 얼마만큼 설득력이 있을지는 보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혹시 설득력이 부족하다면, 부디 부족한 설득력이 부족한 재미로 이어지지 않길 바란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설득력도 충분하다면 금상첨화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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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오브 워, 나비 효과, 밀리터리 호러, 반전, 설득력, 알 포인트, 재미, 제2차 세계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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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보기 드문 완벽한 오리지널 미스터리 탐정물 <나이브스 아웃>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20. 1. 1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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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나이브스 아웃>


영화 <나이브스 아웃> 포스터. ⓒ올스타엔터테인먼트



라이언 존슨 감독, 70년대생의 젊은 감독으로 일찌감치 2000년대에 훌륭한 장편 데뷔식을 치렀다. 이후에도 장르에 천착한 작품을 내놓던 그는, 2010년과 2012년 미국 역사상 최고의 드라마로 손꼽히는 <브레이킹 배드> 시즌 3과 5에 참여했다. 그러곤 꽤 오랜 시간이 흐른 2017년에는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로 혹독한 블록버스터 데뷔식을 치렀다. 


그에겐 장르물을 세련되게 직조할 재능이 있었고, 미스터리물로 장편 데뷔를 했던 만큼 관심 또한 많았다. 평소 미스터리 탐정물에 지극히 천착하고 탐닉했다고 하는데, 실로 오랜만에 돌아왔다. 2019년 후반기 북미 개봉작 중 <포드 V 페라리>와 더불어, 평단과 대중 할 것 없이 호평일색임에도 상응하는 폭발적 흥행을 하진 못한 작품 <나이브스 아웃>이다. 상징적인 1억 달러 돌파는 이뤄냈지만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왜 이 영화가 호평일색이었는지 아주 잘 알 것 같은 한편 왜 흥행을 하지 못했는지도 역시 아주 잘 알 것 같다. 기막힌 캐스팅은 차치하고서라도 시종일관 빈 곳 없이 꽉 차고 알찬 스토리가 영화를 접한 모든 이들을 잡아 끌 것이다. 반면, 영화로 이끄는 힘은 부족할 수 있다. 미스터리 탐정물 영화 흥행의 역사가 방증하지 않는가. 물론 근래 보기 드문 완벽한 오리지널 미스터리 탐정물임에는 분명하다. 


대저택에서 사망한 베스트셀러 추리소설가


85세 생일을 맞은 베스트셀러 추리소설가 할런 트롬비는 모든 가족을 불러 대저택에서 파티를 연다. 손자 랜섬과의 다툼이 있었다곤 하지만 별 탈 없이 끝난 파티, 하지만 할런은 다음 날 목의 자상에 따른 과다출혈로 방에서 사망한 채 발견된다. 장례식을 치른 일주일 후 추도식을 위해 모인 가족들에게 경찰과 사립탐정 블랑이 들이닥친다. 자살이 아닌 범죄사건일 수 있다며 가족들 하나하나를 심문한다. 


가족들 모두 뭔가 이상하다. 경찰과 블랑의 심문에, 문제 될 소지가 있지만 중요한 할런과의 대화를 숨기는 게 아닌가. 하나같이 돈에 관련된 것이다. 합리적 의심으로, 가족 중 누군가가 돈 때문에 할런을 살해 또는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겠다 싶지 않은가. 그런데 생각 외로 범인이 금방 밝혀진다. 다름 아닌 할런의 간병인 마르타로, 그녀는 거짓말을 생각만 해도 토를 하는 질환을 앓고 있었다. 


원래는 경찰과 블랑이 거짓말을 못하니 믿음이 가고 가족처럼 지냈지만 가족은 아니니 유산이나 돈을 탐낼 이유도 없는 마르타를 데리고 다니며 저택과 가족을 탐문했는데, 유언장 낭독식에서 가족 중 누구도 아닌 마르타가 모든 유산을 받게 되며 가족들에게 온갖 욕과 시달림을 받아 밖으로 도망친 것이다. 그녀가 도망치게 도운 이가 있으니, 할런의 개망나니 손자 랜섬이다. 그녀는 범죄 사실을 그에게 털어놓고 이상한 동행을 하며, 랜섬이 유언을 그대로 집행하게 도우는 대신 랜섬에게 랜섬 몫의 유산을 주기로 한다. 이 동행은 어떤 결말을 맞게 될까?


스토리, 반전, 분위기까지 완벽에 가깝게 내보이다


영화는 정통 고전 추리물의 형태를 완벽에 가깝게 내보인다. 이런 말을 굳이 왜 하는고 하니, <나이브스 아웃>은 흔치 않게도 원작이나 실화를 모티브로 재탄생시킨 작품이 아니라 라이언 존슨 감독의 오리지널이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단한 원작을 옮긴 영화들도 해내지 못한 걸 이 영화는 해냈다. 이 영화가 대단한 이유, 이 감독이 범상치 않은 이유이다. 


이 영화가 해낸 건, 빈틈 없이 짜맞춘 스토리와 알면서도 당하는 반전과 추리 작품 특유의 음산한 분위기와 자연스럽게 전하는 사회 비판적 메세지까지 거의 모든 것이다. 스토리는 추리 과정과 다름 아니다. 사립탐정 블랑의 위주로 세밀하게 펼쳐지는 추리 이면에는 심문 당하는 이들의 일그러진 욕망이 도사리고 있다. 


추리 하면 으레 생각나는 반전도 깔끔하다. 마지막에 모든 걸 뒤엎는 반전의 시대도, 시종일관 반전에 반전이 이어지는 시대도 갔다. 수준이 한껏 높아진 지금은 자연스러운 스토리텔링의 반석 위에 깨달음과 통찰이 오가는 반전의 시대인데, 이 영화가 보기 좋게 해냈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의심의 시선을 합리적으로 여기저기 향하게 만드는 데 도가 튼 느낌이다. 


분위기야말로 추리 콘텐츠에서 반은 먹고 들어가는데, 설정과 매우 맞닿아 있다. 대저택에서 벌어진 가족의 절대적 가장에게 벌어진 석연치 않은 죽음이라는 설정이 분위기 형성에 큰 역할을 했다 하겠다. 심상치 않은 캐릭터들도 한몫하는데, 여지없이 돈으로 똘똘 뭉친 가족들과 돈에는 관심없는 듯한 개망나니와 모든 가족들의 신뢰 또는 무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는 외부인까지 말이다. 


가족과 욕망과 돈, 그리고 불법체류자의 현실


추리 콘텐츠가 대망의 빛을 발하는 부분은 의외로 메시지에 있다. <나이브스 아웃>은 누구나 느꼈을 만한 가족과 욕망과 돈이라는 명백한 키워드가 있다. 천륜으로 이어진 가족, 각각의 욕망은 다를 테지만, 하나같이 시선이 향하는 건 돈이다. 사실, 영화의 시작과 끝도 이 키워드들 안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거기에 얹혀지는 건, 얹혀져야 하는 건 당대의 현실이다. 


영화는 지금 가장 첨예한 문제 중 하나인 불법체류자의 현실을 다룬다. 할런의 간병인 마르타는 남미 어딘가의 출신으로, 가족 전체가 불법체류 중이다. 영화 중반도 되지 않아 이미 마르타가 범인이라는 걸 알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겠다. 스토리에서는 그녀가 거짓말을 못하는 설정 때문이라고 하지만, 메시지에서는 그녀가 불법체류자이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작중 인물들 중 그녀가 파라과이 출신인지 우루과이 출신인지 에콰도르 출신인지 브라질 출신인지 아는 사람이 없다. 그녀가 라틴계 남미 사람인 것만 알 뿐 나머진 상관 없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가 하면, 할런이 자살 아닌 타살 가능성이 높다고 결정되고 나서도 사실상 그녀를 용의선상에서 제외해버린다. 이는 그녀를 사람 취급하지 않는 행위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하여 그녀가 할런의 모든 유산을 받게 되었을 때 가족들은 황당, 당황, 분노를 금치 못하지만 보는 이는 통쾌하다. 부정(不正)되었던 존재의 합당한 부상(浮上)은 항상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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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나이브스 아웃, 돈, 라이언 존슨, 미스터리 추리, 반전, 분위기, 불법체류자, 스토리,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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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적 철학적 신화적 질문들을 던지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SF <나의 마더>

넷플릭스 오리지널 2019. 6. 2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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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나의 마더>


영화 <나의 마더> 포스터. ⓒ넷플릭스



인류가 완전히 멸망한 다음 날, 인류 재건 시설에서 인간 여자아이 한 명이 태어난다. 시설에는 63,000개의 인간 배아가 있는데, 로봇 하나가 모든 걸 관리한다. 태어난 인간 아이의 양육도 그의 몫, 로봇은 '엄마'가 되고 인간 여자아이는 '딸'이 된다. 시간이 지나 인류가 완전히 멸망하고 13867일이 지났다. 그런데 딸은 10대 중반에 불과한 듯하다. 수십 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엄마와 딸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평화로운 나날을 보낸다. 무엇보다 딸은 엄마의 다방면에 걸친 완벽한 교육으로 모르는 게 없고 못하는 게 없다. 나아가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윤리적인 문제까지 낱낱이 짚고 넘어간다. 이보다 완벽한 인간이 있을 수 없을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딸은 바깥 세상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다. 모든 게 옳다는 엄마의 '바깥 세상은 위험하다'는 말만 있을 뿐이다. 


호기심 발동이 의심과 맞물려 바깥 세상으로 나가려는 찰나 굳게 닫힌 바깥 문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로봇 총에 맞아 생명이 위급하니 시설 내로 들여달라는 부탁이었다. 바깥 세상은 위험하고 또 인간은 없다는 엄마를 향한 의심이 현실로 발현되는 순간이다. 돌이킬 수가 없다. 딸은 엄마 몰래 외부인을 시설 내부로 들인다. 외부인은 로봇인 엄마를 경계하며 인간인 딸과 함께 밖으로 나가고자 한다. 엄마는 위험한 밖으로의 길을 당연히 반대한다. 딸은 엄마와 외부인의 상반된 주장에 갈팡질팡한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어떤 생각과 행동을 취해야 하는가. 


종말 이후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나의 마더>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즉, 인류와 문명 멸망 이후를 그렸다. 종말 이후라고 해두자. 으레 생각하기 쉬운 모습은, 더 이상 발달할 수 없을 만큼 발달한 세상과 정반대의 황폐하기 그지없는 세상일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황폐와 거리가 먼데, 종말 이후 완벽히 보호되는 재건 시설이 주된 배경이기 때문이다. 


하여, 영화는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날것' 대신 종말 이후 하고도 머나먼 미래의 새로운 첨단 '최신식'이 주를 이룬다. 종말로 세상이 후퇴한 게 아니라 전진했다는 느낌을 주는데, 주체가 인간이 아닌 로봇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 영화를 SF 장르라고 생각하는 건 당연할 테다. 반면, 가령 <매드맥스> 시리즈도 종말 이후를 다루지만 SF 장르라고 하긴 힘들다. 


나아가, 영화는 문학적 철학적 신화적 질문을 던진다. 인류를 재건하고 인간 딸을 기르며 시설 안과 밖을 철저히 차단하는 로봇 엄마, 엄마에 의해 철저하게 완벽한 인간으로 교육받지만 다 클 때까지 시설 밖으로 나갈 생각도 행동도 못 하는 인간 딸,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시설 내부로 찾아온 여러모로 미심쩍은 인간 외부인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A부터 Z까지 모든 게 철저히 상징성을 띤다. 


반전에의 복선들


영화는 SF 장르와 미스터리 스릴러의 교묘한 합으로 진행된다. 한정되고 비밀이 많은 공간, 두 명의 인간과 한 개의 로봇, 진실을 두고 얽히고설킨 세 개체. 잔혹한 육체파 스릴러도 치밀하게 직조된 심리 미스터리도 아닌,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는 와중에 곳곳에 암초처럼 흔적을 남긴 반전에의 복선들이 재미 요소가 되겠다. 


요컨대, 인류 멸망 1일차에 인간 여자아이 한 명이 태어나는데 13867일 차에 불과 10대로 보이는 여자아이만 있을 뿐이다. 단순 계산으로도 39살 정도는 되어야 한다. 의문이 드는 와중에, 바깥 세상에는 모든 인간이 멸망했다고 하는데 충분히 39살 정도로 보이는 여자 외부인이 나타난다. 가장 큰 반전의 복선이 사실상 영화 초반에 드러나는 것인데, 영화를 감상하는 데 하등 방해가 되진 않는다. 


여자 외부인이 나타났을 때 우린 그녀의 정체가 아닌 딸의 안위에 시선이 가 있기 때문이다. 미스터리에서 스릴러로 장르가 교묘히 변하는 시점이기도 하다. 똑똑하기 그지없는 딸은 진실이 무엇인지 알게 될까? 그녀는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깨닫게 될까? '로봇' 엄마와 '엄마' 로봇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문학적, 철학적, 신화적 질문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유명한 어구가 등장한다. "새는 투쟁하여 알에서 나온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누가 봐도 명백히 새는 데미안과 다름 아니고 데미안은 영화 속 딸과 다름 아니다. 그녀는 비록 로봇의 손에 키워졌지만 인간에의 본능으로 알을 깨고 나오고자 하는 것이다. 


자연스레 이어지는 스토리는 '오디세우스'이다. 10년 간의 트로이 전쟁을 종식시키고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오디세우스, 다시 10년 동안의 파란만장한 모험을 겪은 끝에 고향으로 돌아온다. 영화에서는, 인간의 파렴치한 욕망을 보다못한 로봇이 인류를 멸망시켜버리고 완전한 신 인류를 재창조해 자기 입맛대로 키운다. 하지만 인간의 본능은 어찌하지 못하기에, 인간 딸은 알을 깨고 나오지만 다시 돌아온다. 이 '돌아오는 이야기'는 딸뿐만 아니라 외부인에게도 해당되는 것일 테다. 


간악한 반전 스포일러가 될 테지만 아니 이미 위에서 내보였지만, 극장용 아닌 누구나 한 달 무료인 넷플릭스용이라는 점을 감안해 말하고자 한다. 결국 승리자는 로봇 엄마가 된다. 인간의 본능 뒤 본능까지 '사려깊게' 캐치하여 빅 픽쳐를 그린 로봇, 딸로 하여금 모든 진실을 알게 해놓고선 돌아올 수밖에 없게 만든다. 그녀는 그곳에서 모든 간악한 진실을 알고선 더욱더 바깥을 나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채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비록 로봇의 통제를 더 이상 직접적으로 받지 않겠지만, 개인으로서가 아닌 인류 전체가 밖으로부터 로봇의 통제를 받게 될 것이다. 


평평한 스토리라인임에 분명하지만, 그래서 자못 지루함을 견디기 힘들지도 모르지만, 그렇기에 반드시 한 번 이상 보게 되는 여운과 궁금증을 남긴다. 열린 결말이라고 하긴 힘들겠으나 결말까지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기에 한 번 더 봐야 하고, 그 해석에의 길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기에 한 번 더 봐야 하며, 쉽진 않겠지만 재미가 없진 않을 게 분명하기에 한 번 더 봐야 한다. 


재미 없으면 그 자리에서 다장 떼려치워버리기도 하지만, 재미 있으면 몇 번이고 돌려볼 수 있는 넷플릭스 콘텐츠에 제격인 듯하다. 한편 <카타카> <엑스 마키나> <컨택트> 등 '생각하는 SF'와 결을 같이 하니 따로 챙겨두어 두고두고 볼 만하다. 필자의 해석보다 훨씬 더 새롭고 다채롭고 들어맞는 해석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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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 '완벽'의 섹슈얼심리 공포스릴러 <퍼펙션>

넷플릭스 오리지널 2019. 6. 1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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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퍼펙션>


영화 <퍼펙션> 포스터. ⓒ넷플릭스



유서깊은 배코프 음악 아카데미 출신의 촉망받던 천재 첼리스트였던 샬럿, 쓰러진 엄마의 병 수발로 10년 동안 떠나 있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배코프로 돌아가고자 한다. 배코프를 운영하는 앤턴과 팔로마 부부에게 소식을 전하고, 배코프 4년 기숙 장학생을 뽑기 위한 대회 최종전이 열리는 상하이로 향한다. 앤턴은 본인이 키운 현역 최고의 신인 첼리스트 엘리자베스 웰스와 함께 샬럿을 심사위원으로 위촉한다. 


샬럿과 웰스는 섹슈얼한 관계로 돌입하고, 웰스의 2주간 휴가에 함께 한다. 숙취 때문에 유난히 고생하는 웰스, 그래도 흔치 않은 장기간 휴가이기에 억지로라도 나가야 한다. 허름한 버스를 타고 상하이에서 통리로 향하는 그들, 웰스의 상태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오히려 나빠질 뿐이다. 급기야 그녀는 수백 마리 구더기를 토한다. 이상 증세를 호소하는 웰스 때문에 산길 한가운데에서 내리는 그녀들. 


버스에 내려서도 죽을 만큼 힘들어 하는 웰스는, 팔 안에서 벌레들이 기어다니더니 피를 뿜으며 팔 밖으로 나오고 벌레를 토하기도 한다. 그녀는 샬럿이 건네는 큰칼로 자신의 오른손을 잘라 버린다. 겨우 살아서 배코프로 돌아온 웰스, 앤턴과 팔로마에게 사실을 고한다. 샬럿이 질투에 눈이 멀어 자신을 음해한 것이라고. 그건 그거고 배코프에서는 더이상 웰스를 받아줄 의무가 없다. 웰스는 쫓겨나면서 샬럿을 향한 복수를 다짐하는데... 이후 샬럿과 웰스 그리고 앤턴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반전 어린 섹슈얼 공포스릴러


영화 <퍼펙션>은 섹슈얼심리 공포스릴러 장르를 표방했다. 2년 전 센세이셔널을 일으켰던 공포영화 <겟아웃>을 연상시키는 건, 심리적 요소가 투철한 공포스릴러 장르라는 공통점뿐만 아니라 주인공 앨리슨 윌리엄스의 존재 덕분이기도 하겠다. <겟아웃>에서 파격적 반전을 몸소 보여준 그녀이기에 자연스럽게 충격적 반전을 기대하게 되었다. 다행히 반전에 있어서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진 않았다. 


감독은 리차드 셰퍼드로 족히 30년 전부터 연출을 해왔는데, 우리나라에 개봉된 이력은 없는 것 같다. 주로 북미용 영화를 연출해온 걸로 보이는데, 함께 한 배우들의 면면은 화려하기 짝이 없다. 최근부터 역순으로 누구나 알 만한 배우들은 주드 로, 리차드 기어, 피어스 브로스넌, 애드리언 브로디, 샘 록웰, 데이비드 보위, 우디 해럴슨 등이다. 


비로서 <퍼펙션>에 이르러 넷플릭스 덕분에 북미 이외 지역도 볼 수 있게 되었으니, 이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들의 면면이 이전 영화들 배우들의 면면과 비교할 수 없이 낮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하다. 다분히 넷플릭스의 힘이라고 하겠으나, 이 영화가 지난 2월 넷플릭스에서 선보인 공포영화 <벨벳 버즈소>와 비슷한 결을 보이는 걸 보니 영화의 힘인 것도 같다. 


완벽과 질투


인간이라면 누구나 최소한의 완벽함은 추구할 것이다. 최고의 완벽함을 추구하는 이를 완벽주의자라고 칭하며 특별한 존재로 생각한다 해도, 거기에 부정적인 면보다 긍정적인 면이 있다는 걸 부정하긴 힘들다. 경외감이랄까. 영화는, 제목처럼 '완벽'을 추구하는 모습을 그려내고자 했다. 그러나 거기에 경외감은 없다. 완벽함을 빙뚱그러지게 추구하는 이가 대상이기 때문에. 


영화는 완벽을 빙뚱그러지게 추구하는 이를 반전의 요소로 기용하는 반면, 그전까지는 '질투'를 스토리의 전반에 내세웠다. 빙퉁그러질 요소가 없는 그 자체로 자못 순수한 개념인 질투, 질투 때문에 사건이 벌어지는 건 식상하지만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 아마도 감독은 관객을 이 영화로 끌어오기 용이하게끔, 질투라는 비교적 알아듣기 쉽고 이해하기 쉬운 날것의 개념을 가져온 게 아닐까. 


그런 면에서, '퍼펙션'이라는 제목은 상당히 위험하다. 영화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인 건 분명하지만, 그 자체로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반전 요소를 내비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물론 이 영화의 제목이 주는 범상치 않은 기운이 분명 존재하지만, 그보다 첼로 관련된 직접적 단어가 어땠을까도 싶다. 한편, 영화 막바지 반전을 접할 때 '아! 그래서 '퍼펙션'이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으며 쾌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넷플릭스용 영화 단점 타파?


시종일관 신경을 긁는 첼로 음악 소리, 몇 개의 장으로 구분되어 있는 구성, 중요한 장면의 의도된 누락과 되감기로 플래시백하여 설명하는 방식 등은 일반적이지 않았다. '실험적'이라는 거창한 수식어를 붙이기에는 무리가 따르지만, 적어도 지루하고 재미없는 영화를 만들지 않겠다는 의도와 노력은 엿보였다. 헛된 노력은 아닌 것 같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중 킬링타임용의 공통된 단점으로 거론되는 것이, 초반의 재미와 후반의 지루함이라고 한다. 한 번 보면 중간에서 끊고 나오기가 쉽지 않은 극장용 영화와는 다르게, 언제든 중간에 끊어버릴 수 있는 가정용 영화인 넷플릭스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즉, 초반에 재미가 없으면 그대로 멈춰버리기에 초반에 힘을 쏟은 것이다. 


<퍼펙션>도 사실 넷플릭스용 영화의 흐름을 그대로 답습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후반에도 재미를 유지할 수 있었는데 주지한 일반적이지 않은 소리와 구성과 방식 등 덕분이다. 이 영화의 미덕이라면 다름 아닌 여기에 있다 하겠다. 넷플릭스용 영화에 새로운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넷플릭스용 영화의 단점으로 지적되는 '초반의 재미와 후반의 지루함'을 타파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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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의 전쟁영화는 NO! 하지만 <고지전>은 되새겨야

오래된 리뷰 2017. 2. 15.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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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고지전>


<의형제>의 장훈 감독과 <공동경비구역 JSA>의 박상연 작가가 의기투합했다. 그들의 전 작과 이어지는 감정선이 자못 예사롭지 않다. ⓒ쇼박스




1953년 2월, 6·25전쟁은 여전히 휴전 협정 중에 있다. 하지만 매일 같이 뺏고 뺏기는 고지 때문에 제대로 선을 긋고 휴전을 할 수가 없다. 방첩대 소속 강은표 중위(신하균 분)는 해서는 안 될 불순할 말을 내뱉어 영창에 갈 위기에 처하지만, 상사의 선처로 동부전선에 배치되어 사건 하나를 조사하게 된다. 최전방 애록고지의 악어 중대에서 죽은 중대장 시신에 아군 총알이 발견된 것. 


애록고지에서 은표는 죽은 줄만 알았던 친구 김수혁(고수 분)을 만난다. 이등병이었던 그는 2년 만에 중위가 되어 있었다. 한편 이제 갓 약관의 나이가 된 듯한 청년 신일영(이제훈 분)이 임시중대장으로 대위 계급장을 달고 있는 걸 보고 기시감을 느낀다. 그는 모르핀 중독 상태였다. 이후 은표는 악어 중대의 비밀을 하나 둘씩 알아간다. 


겁쟁이 수혁이가 어떻게 이리도 매섭고 대범하게 변했는가, 약관의 청년은 어떻게 대위 계급장을 달고 있고 또 왜 모르핀 중독 상태가 되었는가, 죽은 중대장 시신에서 아군 총알이 발견된 사유는 무엇인가, 전쟁통에 술은 어떻게 구할 수 있었는가, 그리고 이들이 쉬쉬 하는 그 예전 '포항 철수 작전' 때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가. 


전쟁이 주는 참혹함, 그 이면에 숨겨져 있는 참혹함


이 영화가 진정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기 위해선 이면을 들여다봐야 한다. 단순히 겉으로 보이는 참혹함이 아닌, 진짜 참혹함을. 그들은 '왜' 서로 죽이고 죽였어야 했나? ⓒ쇼박스



영화 <고지전>은 <태극기 휘날리며>와 <웰컴 투 동막골> 이후 오랫동안 맥이 끊겼던 6·25 전쟁 배경의 전쟁영화이다. 이 영화는 내적으로 많은 찬사를 받았지만 외적으로 많은 논란이 일며 흥행에 실패했고, 지금까지도 제대로 된 6·25 전쟁영화는 나오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이전과 이후에  <포화 속으로>와 <인천상륙작전>이라는 영화가 있었지만, 이 영화들이 맥을 잇는 건 어불성설이다. 공교롭게도 감독이 같다. 비극이다. 


지금에 와서 60년도 더 된 전쟁 이야기를 꺼내 무엇하랴 싶을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전쟁을 그저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전쟁을 통해 무엇을 보여주려 한다. 대표적으로 양대 산맥이 있을 텐데, '애국'과 '반전'이 그것이다.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한 방편으로 전쟁을 그린 것, 전쟁을 반대하기 위한 방편으로 전쟁을 그린 것. 


<고지전>은 '반전'에 속한다 하겠다. 그렇지만 그런 영화는 액션이 상대적으로 약하고 감동도 약한 반면 참혹함이 상대적으로 강하고 생각할 거리가 많으며 전쟁의 당사자들에게 일면 상처를 입힐 수 있는 요소들이 많아, 논란이 일기 쉽고 외면 받기 쉽다. 어찌하여 모든 걸 파괴하는 '전쟁'에 액션과 감동이 주가 될 수 있을까마는, 그게 그렇지 않은가 보구나 싶다. 


이 영화는 전쟁이 주는 눈에 보이는 참혹함보다 그 이면에 숨겨져 있는 참혹함을 전하려 한다. 6·25전쟁의 특수성이 기인한 것일 수 있다. 사실 이 전쟁은 1951년에 끝났다. 하지만 이후 2년 6개월 동안 휴전 협정이 계속되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이 되풀이 되는 '고지전쟁'으로 50만 명 이상의 희생자를 낸다. 그들은 전쟁을 해야 하는 이유도 모른 채 동포를 죽이고 자신 또한 죽어갔다. 


'이' 전쟁은 생존의 숙제일 뿐, 애국이 낄 자리는 없다


'이' 전쟁, 6.25는 특수성을 진하게 띠는 전쟁이다. '동포'끼리 '애국'을 걸고 싸우는 모양새. 하지만 이 영화는 '생존'일 뿐이라고 말한다. 단지 내가 죽기 싫어 상대방을 죽이는... ⓒ쇼박스



영화는 사건을 통해서, 캐릭터를 통해서, 대사를 통해서 시종일관 반전 메시지를 드러낸다. 정확히는 '6·25 반전'. 북한군 저격수 '2초'를 잡기 위해 10명의 정예부대를 이끌고 길을 나선 수혁, 17살 막내가 2초에게 당한다. 아무도 그를 구하러 가지 않고 오직 2초를 제거하기 위해 혈안이다. 은표의 분노에 수혁이 날리는 한마디, '네가 전쟁을 알아? 네가 지옥을 알아? 난 아주 잘 알아. 매일 같이 수많은 남상식이 죽어간다고.'


엄청난 수의 중공군이 밀려 오는 상황에서 새로 부임한 대위 유재하 중대장은 상부의 명령에 따라 끝까지 항전할 것을 명한다. 이에 유재하를 쏴죽이고 중대장이 된 수혁은 즉각 퇴각 명령을 내린다. 이 상황을 그냥 넘길 수 없는 은표에게 수혁이 날리는 한마디, '나를 죽이면 네가 중대장이 된다. 그러면 부대를 지휘하게 될 텐데, 네가 우리 부대원들을 살릴 수 있을 것 같아? 자신 있으면 어서 쏴. 시간이 없어.'


허무하고 어처구니 없는 죽음, 그 죽음을 방조하고 실행하는 이들, 그런 그들도 누군가에게 죽고, 그들을 죽인 이들 또한 누군가에게 죽는다. 전쟁에서 죽음은 일상일 테지만 인간이라면 절대 죽음을 일상처럼 받아들일 수 없을 터, 하지만 그들은. 그들은 죽음을 방조하고 죽음을 당연시하고 죽음을 자초한다. 그렇다고 죽음이 친근하지도 죽음을 환영하지도 죽음과 대면하지도 못한다. 죽음의 지옥에서 허우적댈 뿐이다.


문제는 이 전쟁의 근원에 있다. 사실상 끝난 이 전쟁을 '왜' 지속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이다. 전쟁터에 있는 이상 '전쟁 자체'에 대한 의문은 치우고서라도, 다름 아닌 '이 전쟁'에 대한 의문은 풀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다. 그들은 그저 최소한으로 내가 죽기 싫고 내 부대원들을 죽게 만들기 싫어 상대방을 죽인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들에게 이 전쟁은 생존의 숙제일 뿐이다. 거기에 애국은 낄 자리가 없다. 


더 이상의 전쟁영화는 안 된다, 하지만 <고지전>은 되새겨야 한다


수많은 전쟁영화를 봐왔다. 이제 더 이상 전쟁영화는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고 누누이 외친다. 하지만 계속해서 만들어지는 바, 그렇다면 차라리 <고지전> 같은 영화가 만들어져야 한다. ⓒ쇼박스



전쟁영화는 더 이상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 어떤 이유로든 전쟁영화는 그 자체로 '전쟁'에 대한 미화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상업영화라는 틀로 전쟁을 대하는 이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지금은 평화의 시대, 전쟁은 우리와는 먼 얘기, 아무리 팔다리가 잘려나가고 내장이 튀어나와도 그게 바로 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잘 들지 않는다. 내가 그곳에 있다면 상대방이 그렇게 될 거라는 무의식, 애초에 나는 그곳에 없기에 그곳을 향해 갖게 되는 동경, 그리고 무엇보다 전쟁이 갖는 초유의 액션. 


반전을 지향하는 전쟁영화라고 해도 이 정도인데, 애국심을 고취시키고자 하는 전쟁영화는 어떻겠는가. 전쟁 승리를 상정해놓고는, 어떻게 상대방을 몰살시켜 버릴까 고심하는 전쟁영웅, 거기에 여지 없이 중심축을 이루는 극단의 이데올로기. 우리는 여기서 이데올로기에 따른 애국심이 고취됨과 상관 없이, 전쟁 자체에 대한 동경을 전에 없이 끌어올리게 된다. 이 얼마나 멋진가, 이 얼마나 필수불가결한 전쟁인가. 


지난 이야기지만, <고지전>의 흥행 실패가 주는 씁쓸함과 <인천상륙작전>의 흥행 성공이 주는 참혹함은 앞날을 걱정케 한다. 영화의 만듦새와 극단의 이데올로기를 부추기는 요소들의 향연을 뒤로 한채, 전쟁을 미화하는 본새가 그렇다. 앞으로 전쟁영화는 반드시 또 나올 텐데, 모르긴 몰라도 아마 <고지전>이 아닌 <인천상륙작전>류일 가능성이 크다. 정녕 또 한 번 전쟁을 치르고 싶은 것인가?


영화에 많은 논란이 있음에도, 나아가 전쟁영화가 만들어지는 것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고지전>을 되새겨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우린 진실을 똑바로 마주해야 한다. 거기에 지옥이 있을지라도, 아니 아마 지옥이 있을 가능성이 농후할 텐데 그럼에도 우린 바로 그곳을 주시해야 한다. 지금도 어딘가에선 지옥과도 같은 '고지전쟁'이 펼쳐지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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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고지전, 반전, 생존, 애국, 액션, 인천상륙작전, 전쟁영화, 참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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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말을 빌려 50년의 기행적 소설 쓰기를 해명하다 <모나드의 영역>

신작 열전/신작 도서 2017. 1. 1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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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쓰쓰이 아스타카의 <모나드의 영역>


소설 <모나드의 영역> 표지 ⓒ은행나무



독자가 책을 접할 때 출판사의 홍보 마케팅 전략 바깥에 있기는 결코 쉽지 않다. 어떤 상품이 그러지 않겠냐마는 책은 다르다. '책'이라는 단일 상품군 안에 샐 수 없이 많은 상품이 존재하는 것이다. 특별한 상품이자 특별한 사업 생태계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거기엔 정녕 수많은 '최고'들이 존재한다. 


'책', 그 중에서도 '소설'은 최근 위기를 맞고 있다고 한다. 읽을 거리와 각종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정보는 주지 못하고 읽는 데에 방점을 둔 '소설'이 설 자리가 없는 것이다. 그 와중에 우리나라에서 '일본 소설'은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북유럽 소설의 인기가 수직 상승 중이지만 한계가 분명한 반면, 일본 소설은 꾸준히 인기가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 '히가시노 게이고' '미야베 미유키' 등은 그들의 거의 모든 소설이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로 사랑받고 있다. 일본 소설만이 갖는 정서가 작금의 한국 독자에게 잘 들어맞는 것 같다. 일본 SF 거장 '쓰쓰이 야스타카'의 소설도 그 성격에 비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시공간을 넘나드는 SF적 상상력에 기반한 블랙유머와 넌센스는 얼핏 난해하지만, 인간사회에 대한 지극한 관심이 내포되어 있다. 


쓰쓰이 야스타카는 우리나라에서도 매우 유명한 애니메이션 <시간을 달리는 소녀>와 <파프리카>의 원작자로 유명한데, 80세가 훌쩍 넘은 고령임에도 장편소설을 써냈다. 제목도 다분히 쓰쓰이스러운 <모나드의 영역>(은행나무). 마지막 장편소설이라고 하는데, '쓰쓰이 야스타카의 50년 작품 세계의 집대성'이라는 홍보문구가 눈에 띈다. 


쓰쓰이 야스타카만의 진지하지만 기상천외한 상상력


개인적으로 쓰쓰이의 작품을 매우 오랜만에 접하는 바, 이번에도 그 특유의 진지하지만 기상천외한 상상력을 발휘했을지 기대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원숙하게 발휘했다고 할 수 있겠다. 미스터리와 SF의 결합, 그리고 인간 세계를 재조명하는 각종 지식들의 총집합이 자못 흥미롭게 진행된다. 


어느 날 강변 둔치에서 발견된 여성의 한쪽 팔, 수사를 맡은 꽃미남 형사 신이치는 '아주 커다란 어떤 사태의 시작처럼 느껴진다는' 상사의 말에 조심히 수사를 한다. 한편 역 앞 로터리 상가에 위치한 빵집 두 곳 중 하나 '아트베이커리', 미대생 알바를 둔 덕분에 평소 동물 모양의 빵을 팔고 있다. 갑자기 휴가를 신청하는 알바 둘, 자기들보다 실력이 더 좋은 친구를 알아봐뒀다고 호언장담한다. 


실력이 더 좋다는 친구 구리모토, 어딘지 불안한 기색이 역력하지만 과연 실력은 좋았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여성의 한쪽 팔과 똑같은 모양의 빵을 만든 게 아닌가? 자기도 모르게 만들었다는 그, 그 와중에 단골 손님인 미대 유이노 교수가 그 빵을 본다. 그 정교함에 감탄을 금치 못하고는 칼럼에 개재한다. 곧 팔 모양 빵은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하고 방송도 탄다. 


구리모토 때문에 잘리게 된 알바 둘과 망하게 생긴 맞은 편 빵집 주인은 이 상황을 보고, 그 빵 모양이 강변 둔치에서 발견된 여성의 한쪽 팔과 완전히 똑같다고 경찰에 신고를 한다. 신이치는 빵집으로 향하지만, 구리모토는 찾을 수 없고 어딘지 이상한 미대 유이노 교수를 만나게 된다. 곧 유이노 교수는 공원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영문을 알 수 없는 행동을 거듭하는데...


'신'의 말을 빌려 해명하는 쓰쓰이의 50년 기행적 소설 쓰기


소설은 여느 추리소설처럼 흥미롭게 시작된다. 여성의 한쪽 팔에 이어 한쪽 다리까지 발견된 상황, 그런데 그와 똑같이 생긴 빵을 만드는 빵집이 있다? 그 와중에 기이한 행동으로 의심을 받고 또 사람들의 이목도 끄는 미대 학생 구리모토와 미대 교수 유이노까지. 다 갖춰진 느낌이다. 그런데 사건은 상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이 지점에서 쓰쓰이 야스타카만의 상상력이 빛을 발한다. 진지하지만 기상천외한, 즉 일상생활을 파괴하지 않는 한도 안에서, 아니 일상생활은 그대로 둔 채 그를 둘러싸고 최대한의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지극히 마니아적이라고 하겠는데, 그만의 세계가 하나뿐이 아니고 참으로 다채로워 그 층위가 높고 넓다. 


단도직입적으로 소설은 '신의 강림'이라는 소재를 주요 위치에 두었다. 신은 세상의 비밀을 무참히 폭로한다. 그 방법은 다분히 인간적인데, 마지막 장편 소설까지 참 쓰쓰이답다. 상해죄라는 죄목으로 법정에 끌려나온 'GOD', 신은 인간의 말을 빌려 신과 인간세계를 말하고, 그 말들은 조목조목 쓰쓰이가 지난 50년 동안 계속 해온 기행적인(?) 소설 쓰기의 변명 또는 해명처럼 들린다. 그 중심에는 '다중우주'가 있다. 


말인즉슨,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전부는 아니라는 것. 수많은 '가능세계'가 존재하고, 그 각각이 각각의 세계로 존재하며, 신은 이 세계의 근본 원리인 '모나드'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신은 모든 것들을 '사랑'함으로. 신은 쓰쓰이 야스타카의 현현이다. 쓰쓰이가 만든 확고한 세계, 참으로 다양한 그 확고한 세계. 그는 '다중우주' 또는 '다중세계'를 문학 세계 전체에 걸쳐 만들어냈지만, 작품마다 소재로 종종 써 왔다. 그는 '작품의 조물주가 신'이라는 명제를 가장 잘 구현해냈다. 


소설의 '읽는 재미'를 완벽하게 느낄 수 있는 소설


이 소설을 진정 '집대성'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 바로 이 점에 있다. 작가가 신이라는 개체의 목소리를 빌려 자신의 문학 세계를 돌아보고 또 인간 세계를 다시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굳이 '소설'이라는 장르를 빌리지 않고 훨씬 더 잘 표현해낼 수 있었겠지만, 그가 굳이 소설을 이용한 건 그가 다른 누구도 아닌 쓰쓰이 야스타카이기 때문이다. 


초를 치는 것 같지만 말해두지 않을 수 있다. 흥미를 끄는 초반의 사건, 그러곤 갑자기 신이 강림하는 그 연계점이 상당히 부실해 보인다는 점이다. 물론 후반부에서 이를 신다운 명철함으로 훌륭히 봉합하지만, 그때까지 꺼림칙함을 벗어버릴 수 없을 거다. 이 또한 그의 대단함으로 치환할 수 있는 바, 이밖에도 여러 점들이 눈에 띄어 상당히 괴롭히지만 우리는 그가 가리키는 달을 보고 있지 달을 가리키는 손을 보고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다 알면서도 여유작작하게 그것을 해낼 수 있는 작가다. 


'이 소설을 보고 쓰쓰이의 전작들에 눈길이 갈까?' 하는 생각을 안 할 수 없는데, 그리 가능성이 높진 않은 것 같다. 적어도 이 소설 자체로만 본다면 말이다. 그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특별하게 다가올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실망으로 다가올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 물론 열광할 부분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우린 이 얇은 소설에서 천재적인 상상력이 선사하는 인류적 반전을 맛볼 수 있을 테고, <시간을 달리는 소녀>가 선사했던 따뜻함의 업그레이드 버젼을 받을 수 있을 테며, 일본 소설의 한 축을 단 번에 흡수하는 황홀감을 얻을 수 있을 테다.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면, 무너져 가는 '소설'의 자존심인 '읽는 재미'를 완벽하게 느낄 수 있을 게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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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다중 우주, 모나드의 영역, 반전, 상상력, 시간을 달리는 소녀, 신, 쓰쓰이 야스타카, 재미, 집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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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거대한 이야기, 끝을 잘 맺어야 할 텐데... <하트 오브 더 씨>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6. 2. 2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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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하트 오브 더 씨>



영화 <하트 오브 더 씨> 포스터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어두운 밤, 젊은 남자가 늙은 남자의 집을 찾는다. 젊은 남자는 전재산을 늙은 남자 앞에 내밀며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라고 부탁한다. 늙은 남자는 한사코 강하게 거절한다. 이에 젊은 남자도 강하게 밀어붙이지만 결국 거절 당한다. 그때 늙은 남자의 아내가 나선다. 그녀도 평생 듣고 싶었지만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다. 아내의 부탁으로 늙은 남자는 입을 연다. 


젊은 남자는 훗날 늙은 남자가 들려준 이야기를 바탕으로 <모비딕>이라는 희대의 걸작을 탄생 시킨다. 젊은 남자는 다름 아닌 '허먼 멜빌'이다. 늙은 남자는 1819년 여름, 미국 낸터킷 섬에서 출항했던 포경선 에식스호에 승선한 21명의 선원 중 한 명이다. 그는 에식스호에서 세상 누구도 겪어보지 못했을 그런 일을 겪었고, 그 이야기를 허먼 멜빌에게 해준다. 늙은 남자는 '토마스 니커슨'이다. 


해양 블록버스터에서 조난으로


영화 <하트 오브 더 씨>는 이처럼 참으로 재미없게 시작한다. 해양 블록버스터에서 조난으로 이어지는 스토리라는 걸 알고 영화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 같은 시작은 그리 반길 만하지 못하다. 중요한 건 얼마나 스펙터클한 장면을 선사할 것인지, 극한 상황에 처한 인간의 생존을 얼마나 처절하게 그려낼 것인지이다. 그럼에도 영화는 현재와 함께 정확히 시간의 순서대로의 회상을 번갈아 이어간다. 


포경선 에식스호에는 본래 오웬 체이스(크리스 헴스워스 분)이 선장으로 약속되어 있었다. 하지만 체이스는 귀족 출신이 아닌 바, 약속은 약속일 뿐이었다. 선주는 체이스를 일등 항해사로 삼고 선장 대신 많은 돈을 주기로 약속한다. 단, 기준 이상의 많은 향유를 가지고 와야 했다. 한편, 선장은 유명한 귀족 가문의 조지 폴라드(벤자민 워커 분)가 되었다. 체이스가 보기에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햇병아리에 불과했다. 마치 온갖 전투에서 잔뼈가 굵은 상사 급이 이제 막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높으신 분의 아들 소위를 상사로 모시고 전투를 치르러 가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떠난 여정, 얼마 가지 못해 고래 사냥을 제대로 하지도 못한 채 강한 풍랑을 만난다.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선장 대신, 일등 항해사 체이스와 이등 항해사 조이가 진두지휘 한다. 자존심에 상한 폴라드 선장은 무리하게 전진한다. 선장으로의 자존심, 어떻게든 향유를 얻어야 한다는 조바심, 자연의 무서움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무지함이 드러난 참사와 같은 결정이었다. 



영화 <하트 오브 더 씨>의 한 장면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거대한 자연이냐, 육지의 왕 인간이냐


계속되는 전진 끝에 에식스호는 소기의 목적을 이룬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상상을 초월하는 크기의 흰고래의 습격으로 배가 한순간에 침몰한다. 선원들은 조그만 한 배에 옮겨 타 여정을 계속한다. 계속 쫓아오는 흰고래의 습격으로 무인도에 조난을 당하기도 한다. 그곳에서 폴라드와 체이스는 대립한다. 흰고래의 습격을 받고도 작살을 던지지 못한 체이스였다. 


체이스는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다. 거대한 자연 앞에서는 먼지보다 못한 존재다"라고 말을 건넨다. 이에 폴라드는 "우리는 육지의 왕이며, 싸울 기회가 생긴다면 남자답게 싸우며 죽겠다 "라고 받아 친다. 누구의 말이 정답인지는 알기 힘들지만, 영화는 체이스의 말이 맞다는 걸 보여주는 듯하다. 


영화는 해양 블록버스터의 느낌을 물씬 풍기며 이야기를 진행한다. 그건 다름 아닌 자연과의 치열한 사투이다. 그 사투를 누구보다 많이 경험한 체이스, 그러하기에 누구보다 잘 이겨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로서도 도무지 상대할 수 없는 거대한 자연의 산물 흰고래가 계속해서 나타났을 때, 그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작살은 쓸모 없거니와, 그저 자연에 순응한다는 생각만 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영화는 해양 블록버스터에서 조난 혹은 재난으로 이어진다. 영화는 적막에 휩싸인다. 



영화 <하트 오브 더 씨>의 한 장면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정녕 실망인 반전, 그래도 '론 하워드'


조난의 여정은 참으로 오래 이어진다. 94일 간 7,200km의 표류. 희망이란 전혀 찾아볼 수 없이 절망 만이 계속되는 망망대해.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기다리는 거였다. 우연에 우연이 겹쳐 자신들을 구조해줄 배를 만나는 거, 또는 육지가 보이는 거. 그렇지만 너무 오래 지속되는 표류의 나날은 그 기다림의 희망도 온 데 간 데 없게 했다. 그렇게 그들은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저지르게 된다. 가장 비극적인. 


문제는 막상 그 비극적인 선택의 전말을 알게 되면, 참으로 허무하기 짝이 없다는 거다. 이미 보지 않았는가? 영화 <파이 이야기>를 통해서 말이다. 이 거대한 여정의 끝에서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행하게 된 그 비극의 전말이 늙은 토마스 니커슨이 평생 숨기며 살았던 사실이며, 그것이 이 서사의 대미를 장식하는 반전이라면 실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정녕 실망이다. 안타깝기 그지 없다. 


개인적으로 생각했을 때 그 반전이 이 영화에서 그리 중요한 건 아니었던 것 같다. 감동의 층위를 깎아내리며, 무엇을 말하고자 했던 건지 알 수 없게 되었다. 고래와 인간을 더 심층적으로, 사실과는 다르더라도 다른 측면으로 그려냈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아예 정통 스타일로, 바다 위에서의 자연과 인간의 사투를 그려냈어도 차라리 좋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영화가 갖는 분위기, '론 하워드' 감독 만의 꼼꼼한 연출, 전혀 엉성함이 보이지 않는 영상 등에선 흠잡을 곳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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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 하워드, 모비딕, 반전, 인간, 자연, 조난, 하트 오브 더 씨, 해양 블록버스터, 흰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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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07 14:03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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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07 14:03

    좋은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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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에 대처하는 치명적인 자세 <네메시스>

신작 열전/신작 도서 2015. 6. 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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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네메시스>



<네메시스> ⓒ문학동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44년 미국 뉴저지의 뉴어크 지역, 폴리오 바이러스가 발병한다. 이 치명적인 전염병은 주로 열여섯 이하의 아이들에게 걸리며, 마비로 인해 기형적인 불구자가 되거나 죽음에 이르게 했다. 백신이 없는 상태였기에 발병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감염된 사람에게 가까이 있기만 해도 옮을 수 있었기에 쉽지 않았다. 동네는 불안에 사로잡혔고 평화는 깨졌다. 아이를 보호하는 최선의 방법은 도시를 벗어나 산이나 시골의 여름 캠프에 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메르스 사태와 흡사한 라인을 가진 이 이야기는 필립 로스의 마지막 소설이라 일컬어지는 <네메시스>의 초반부이다. '네메시스'라 하면 '보복'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로,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보복의 여신이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바이러스와 복수에 얽힌 이야기를 할 것인가? 일단 제목의 뜻풀이와 소설 배경의 조화가 합격점. 문제는 필립 로스가 마지막으로 던지는 메시지는 과연 무엇인가 이다. 


훌륭한 만큼 죄책감에 시달린 청년


소설은 놀이터 감독인 이십삼 세 청년 버키 캔터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버키는 키는 작지만 단단한 몸에 운동선수로서 능력이 출중하고 강인한 의지로 가득 차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전쟁터에 싸우러 나가지 않은 극소수의 청년 중 하나였는데, 치명적으로 시력이 약했기 때문이었다. 버키는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을 두고 하염없이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런 자신을 용납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그가 택한 방법이 놀이터 감독으로서 아이들을 폴리오에게서 방어하는 것이었다. 폴리오 방어를 제2차 세계대전과 버금가는 전쟁으로 생각하고서 말이다. 버키는 자신이 있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한테서 받은 따뜻하고 다감하며 강인하고 건전한 몸과 마음의 균형이 그를 지탱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의 형편없는 시력이 그로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었듯이, 폴리오가 아이들을 위협하는 것도 그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가 관리하는 놀이터에 폴리오가 침투하기 시작한다. 


어떤 일을 수행함에 있어 완벽함을 추구하며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이 완벽하게 일을 수행하지 못했을 때 받게 되는 죄책감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충분히 할 수 있는 건데 하지 못했고, 나 때문에 일을 수행하지 못했다. 나는 정말 못난 사람이고, 가치가 없는 사람이다. 이런 경우 파국으로 치닫기 쉽다. 그렇지만 그는 누가 봐도 강인하고 훌륭한 사람이다. 


계속되는 죄책감 퍼레이드, 그리고 최악의 결과


훌륭한 젊은이 버키도 이와 비슷하다. 그는 그 훌륭함에 버금가는 죄책감을 지니고 있다. 폴리오에게서 아이들을 지켜내지 못했을 때 그가 괴로워하며 죄책감을 느낀 이유는 그가 그만큼 훌륭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그의 죄책감 퍼레이드는 놀이터를 떠나 파라다이스에서도 계속된다. 그는 폭염의 뉴어크를 떠나 약혼녀가 있는 인디언 힐 여름 캠프로 간다. 그곳의 물놀이 감독이 징집 되어 그 자리를 이어받기 위해서 였다. 약혼녀 마샤의 입김이 많이 작용했는데, 그녀는 버키가 폴리오 때문에 위험한 뉴어크를 떠나 안전한 인디언 힐로 왔으면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선택은 최악의 결과를 낳고 만다.


폴리오는 인디언 힐도 덮친 것이다. 문제는 이번에도 버키의 죄책감이었다. 버키는 인디언 힐에 폴리오를 옮긴 사람이 자신이라는 판단을 스스로 해버렸고, 나아가 뉴어크 놀이터에 폴리오를 옮기게 한 사람도 자신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놀이터에 이탈리아인이 찾아왔을 때 제대로 대응을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사실 그는 누구보다도 그들의 행패에 잘 대응했었다. 버키는 그런 사람이었다. 


의무와 죄책감과 의지 그리고 두려움


소설은 뒷부분에 반전을 숨겨두고 있다. 그 반전으로 소설은 훌륭하게 균형을 잡으며 끝을 맺는다. '그런 사람'인 버키는 아마도 쉬운 길을 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남들이 보기엔 이해할 수 없는 생각과 행동을 하며 살아갔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올바른 삶은 산 것일까? 올바르지만 멍청한 삶을 산 것일까? 어떻게 사는 게 맞는 것일까? 


소설은 사망에 이르게 하는 무서운 전염병인 폴리오를 주요 소재로 그리고 있다. 생각만 해도 등골이 서늘해지며 오싹함과 두려움을 감추기 힘들다. 메르스에 공포가 확산일로에 있는 현재, 폴리오에 대한 감정이입이 훨씬 쉽기 때문이다. 죽지는 않을 지라도 평생 불구로 살아가게 될 거라는 무시무시한 전언은 덤이다. 하지만 버키에게 그보다 더 두려웠던 건 다른 데 있었다. 


버키의 심경은 다음과 같이 변해 간다.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 아이들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 신을 향해 포효하며 현실에 대해 분개하는 의지, 자신에게 들이닥칠지 모르는 알 수 없는 병에 대한 두려움. 버키는 자신이 두려워하는 걸 두려워했다. 그런 자신을 용서할 수 없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의무와 죄책감 그리고 분노만 쌓여갔다. 두려워하면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지 못했고 파국으로 치달았다. 


그렇지만 버키가 보여준 일련의 심경은 국민을 지켜야 하는 수장의 그것과 동일하다. 아니, 수장이 버키의 심경과 동일해야 한다. 그 자신을 파국으로 몰고 가라는 게 아니라, 그때까지 심경이 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의무와 죄책감과 분노 그리고 의지를 보여줘야 하는 게 수장이 아닐까. 버키가 뉴어크에서 인디언 힐로 갈 때 놀이터의 관리자가 버키에게 한 치명적인 말을 옮겨 본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응? 당연히 선택할 수 있지. 자네가 지금 하고 있는 걸 바로 선택하는 거라고 해. 자네는 지금 폴리오한테서 도망치는 거야. 일을 하겠다고 계약을 했는데 폴리오가 발생하니까 일 같은 건 난 모르겠다, 약속 같은 건 난 모르겠다, 하고 있는 힘을 다해 미친듯이 달아나는 거야. 자네가 하는 건 그저 달아나는 것일 뿐이라고." (본문 중에서)


네메시스 - 8점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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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전날> 감동과 반전,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다

신작 열전/신작 도서 2014. 10. 18.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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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결혼식 전날>


<결혼식 전날> ⓒ애니북스

개인적으로 '단편 만화'를 접한 적이 없다. 한 컷이나 4 컷 만화를 단편이라 할 수 있다면 얘기는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일정 정도 이상의 스토리와 서사가 존재한다는 전재 하에, 단편 만화는 일단 제작하기가 너무 힘들 것이다. 


글로만 표현하는 단편 소설과 달리, 단편 만화는 독자들로 하여금 단 한 컷 만으로도 전달 받을 수 있는 것들이 엄청 많다. 단편 소설은 독자가 상상을 해야 하는 바가 많기 때문에, 단편 소설의 묘미인 '반전'을 보여주는 데 적합하다. 그래서 단편 만화보다는 짧은 몇 컷의 만화가 더 인기가 많으며 활발히 만들어지는 것 같다. 


'단편 만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다


사실상 이번에 처음 접하게 된 '단편 만화' <결혼식 전날>(애니북스)는 이런 고정관념 아닌 고정관념을 완벽히 상세해주고도 남는 작품이다. 단편 만화 모음집이니 작품들이라 해야 맞겠다. 6편이 실린 이 모음집의 제목은 첫 번째 작품인 '결혼식 전날'에서 따왔다. 


표지는 지극히 평범하다. 표사나 띠지에서는 놀라운 반전과 따뜻한 감동의 이중주를 선전한다. 반전과 감동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던 바, 얼마 만큼의 감동과 어느 정도의 반전이 있기에 전면에 내세웠는지 궁금해졌다. 만약 이 둘을 훌륭히 접목 시킬 수 있다면, 기억에 꽤 오래 남아 있을 만화일 터였다. 


결론적으로 말해, 모든 단편들에서 반전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감동까지도. 감동과 반전의 시너지를 발견할 수 있었냐고 물으신다면, 확실한 대답을 해드릴 수 없겠다. 어떤 만화는 그랬고, 어떤 만화는 그렇지 못했다. 표제작 '결혼식 전날'이 감동과 반전을 제일 잘 접목 시켰다고 보인다. 그리고 이 만화의 뒷 이야기('뒷 이야기'라는 것 자체가 반전의 스포일러이다.)인 6번째 만화 '그후'도 좋았다.


다른 만화 4편은 그리 와 닿지 않았다. 대부분의 독자들에게 제일 좋은 만화로 다가갈 것이 분명한 2번째 만화 '아즈사 2호로 재회'는 개인적으로는 작위적이게 다가왔다. 감동을 극대화 시키기 위해 반전을 억지로 넣은 느낌이다. 그건 5번째 만화도 마찬가지이다. 그 밖의 다른 만화는, 반전을 시도한 것 같은데 어떤 게 반전인지 잘 모르겠고 내용 자체도 그리 감동적이지 않았다. 


감동과 반전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결혼식 전날>의 한 장면. ⓒ애니북스



반면 '결혼식 전날'은 그야말로 잔잔하다 못해 자칫 지루하기까지 할 일상의 단면을 보여주지만, 그것이 너무 예쁘게 다가온다. 억지로 쥐어 짜지 않았는데도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건 아마 우리네 실생활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반전이라는 장치조차 '이게 현실에서는 가능한 일인가?'라는 의구심이 들지 않게 한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을 이 만화는 해냈다. 


감동은 스토리와 그림체, 반전은 주인공의 독백이 거든다. 이 중에서 단연 압권은 '그림체'이다. 무심한 얼굴에서 종종 보이는 옅은 미소, 환한 미소에서 보이는 슬픈 얼굴과 갑작스러운 눈물. 이런 모습들을 완벽히 구사해내는 그림체는 잔잔하지만 강렬하다. 


이 모음집에 수록된 만화들의 공통된 소재이자 주제는 '두 사람'이다. 누나와 동생, 아빠와 딸, 형과 동생, 오빠와 동생 등 누구나의 삶에서 당연한 듯 존재하는 '두 사람'이다. 여기서 공통적인 사항을 발견할 수 있다. '두 사람'이 모두 가족이라는 사실. 그래서 인지 이 만화를 보고 나면, 왠지 모를 애뜻함과 따뜻함이 저 밑에서 올라오는 것 같다. 가을이 가기 전 만화로 가족을 다시 생각하는 기회를 갖는 경험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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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 결혼식 전날, 그림체, 단편 만화, 단편 소설, 두 사람, 반전
  • BlogIcon 노지
    2014.10.18 08:00 신고

    오오, 이런 작품은 정말 멋지지요.
    얼마 전에 읽은 '3일간의 행복'이라는 작품이 떠오릅니다 ㅎ

    • BlogIcon singenv
      2014.10.19 16:42 신고

      오오, 검색해보니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고 있네요!
      한 번 접해봐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ㅋ

  • shin0
    2014.10.22 21:04

    단편인데 정말 좋은 어른을 위한 책이예여....허수아비가 생각나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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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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