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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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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상 가장 유명한 연쇄살인마 테드 번디를 사랑한 여인들 <나는 악마를 사랑했다> 2019.06.03
  • 응원하게 되는 사랑스럽고 위대한 걸음걸음, 영화 <스탠바이, 웬디> 2018.06.13
  • 김지운 감독다운, 김지운만의 김지운식 누와르 <달콤한 인생> 2016.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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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유명한 연쇄살인마 테드 번디를 사랑한 여인들 <나는 악마를 사랑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2019. 6. 3.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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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나는 악마를 사랑했다>

 

<나는 악마를 사랑했다> 포스터. ⓒ넷플릭스



시어도어 로버트 번디는 일명 ‘테드 번디’로 알려진 1970년대 미국의 연쇄살인마이다. 그는 요즘 말로 ‘엄친아’에 해당하는 인물로, 잘생긴 외모와 똑똑한 머리와 화려한 언변과 출중한 매너를 갖췄다. 그야말로 매력이 철철 넘치는 겉모습을 자랑했다.

 

내면은 그러지 못했다. 똑똑한 법대생이었음에도 학업성취도가 그에 맞게 뛰어나지 못했지만, 삐뚤어진 자부심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어야만 했다. 그의 영혼은 매력 있는 외면으로 철저히 감춰야 했던 사악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테드 번디는 6개 주에서 젊은 여성 30명을 넘게 살해했는데, 세 자릿수 이상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들 대부분이 그가 워싱턴대학교에 편입하여 사귄 첫사랑 다이앤과 막연하게 닮았다고 하는데, 그녀와의 실연이 준 상처가 범행 동기로 작용했던 것으로 추측한다.

 

그는 결국 잡혀 사형을 면치 못하게 되는데, 집행 연기를 시도하는 일환으로 뉴스위크지 기자와 만나 자신의 이야기를 독점 출판하려 한다. 이 내용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살인을 말하다: 테드 번디 테이프>로 자세히 볼 수 있다. 이 다큐를 연출한 조 벌링거 감독은 테디 번디를 주제로 한 영화도 연출했는데 넷플릭스에서 제공한 <나는 악마를 사랑했다>이다.

 

살인용의자와 사랑에 빠진 싱글맘

 

싱글맘 엘리자베스 리즈 클로퍼는 우연히 술집에서 만난 테드 번디와 사랑에 빠진다. 테드는 그녀가 싱글맘인 걸 알고 나서도 개의치 않는다. 젠틀하고 사랑스러운 태도로 리즈와 그녀의 아이를 대한다. 리즈는 일말의 의심을 두지 않고 그를 대한다. 그 순간들만큼은, 그들은 서로를 사랑했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테드의 이름과 얼굴과 행각이 신문지상에 오르내리기 시작한다. 납치와 살인 혐의로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 오기 시작해 체포가 되어 재판까지 진행되었던 것이다. 그는 당연히 일체의 혐의를 부정한다.

 

재판이 그에게 불리하게 흘러가자 테드는 탈옥을 시도해 성공하기도 한다. 곧 잡혀서 혐의만 늘어나는 꼴이 되고 말았지만. 테드는 언제나 리즈를 찾는다. 워싱턴주에서 시작된 젊은 여성들의 연쇄살인은 유타주, 콜로라도주, 플로리다주로 나아간다. 그 모든 곳에서의 살인 혐의에 테드가 연관되어 있었던 것이다.

 

다른 모든 이들이 테드에게 연쇄살인 혐의를 입혀도, 리즈는 테드 본인과 함께 테드의 무죄를 믿고 또 주장한다. ‘사랑’은 정녕 위대한 것인가, 어리석은 것인가. 어떤 식으로든 사랑은 아무것도 아닐 수 없는 것인가.

 

왜 테드 번디를 믿고 사랑했는가

 

영화 <나는 악마를 사랑했다>는 ‘테드 번디’라는 특출 난 인물로 사회와 개인을 들여다보는 작업을 진행한 조 벌링거 감독의 작품이다. 그는 주지했던 다큐멘터리 <살인을 말하다>로 1970년대 미국 사회의 단면을 들여다보았고, 이 작품으로 지극한 개인을 들여다보았다.

 

사실 테드 번디와 관련된 콘텐츠는 영화, 드라마, 책 할 것 없이 그동안 많이 나왔다. 물론 대부분 테드 번디에 천착한 살인 행각에 초점을 맞췄다. 반면 이 영화는 그를 사랑했던 여인들에 보다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와 동거를 했던 리즈와 그와 결혼하고 딸도 낳았던 캐롤 앤 분이 그들이다.

 

그러 하니 영화는 ‘테드 번디는 왜 젊은 여성을 상대로 연쇄살인을 저질렀는가’가 아닌 ‘리즈와 분은 왜 테드 번디를 믿었는가’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생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인데,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선보인 <하이웨이맨>이 연상된다. 1930년대 미국의 연쇄 살인마 ‘보니와 클라이드’를 잡은 텍사스 레인저스 출신 해머와 골트 이야기.

 

<하이웨이맨>이 해머와 골트를 보니와 클라이드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격상(?)시켜 나름의 의미를 도출해내려 했던 것과는 달리, <나는 악마를 사랑했다>의 리즈와 분은 테드 번디의 아성(?)을 넘기는커녕 근처에도 다다르지 못한다. 그녀들의 입장에서 그려질 뿐 그녀들의 이야기는 아닌 것이다.

 

테드 번디의 여인들 아닌, 테드 번디에 대해서  

 

테드의 무죄를 믿었다가 점차 그 믿음이 사라지지만 그만큼 힘들어 하는 리즈나, 그런 테드와 리즈 사이에 비집고 들어가 테드의 무죄를 굳건히 믿으며 재판을 받는 도중 결혼하고 임신까지 하게 된 분 모두 명백한 피해자이다. 테드 번디에게 인생을 송두리째 지배 당하고 빼앗긴.

 

그런 면모를 보다 부각시켰으면 다채롭고 다층적이었을 텐데, 막상 영화는 살인의 전모를 보여주지 않았을 뿐 테드를 중심에 두었다. 특히, 테드의 성격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재판 과정이 주를 이룬다. 영화의 원작이 다름 아닌 실제 인물 리즈가 쓴 전기임에도 말이다. 아무래도 테드 번디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전해주려 한 조 벌링거 감독의 잘못된 선택이 아니었나 싶다.

 

영화 자체는 괜찮은 편이다. 기름기 하나 없는 닭 가슴살이 연상된다. 여러 가지 이유로 마음에 들지 않을지 모르지만, 해를 끼치진 않을 것이다. 논쟁의 소지도 없다 하겠다. 영화에 어떤 주관적인 해석이나 사실 아닌 진실에의 욕망도 보이지 않는다. 재미가 없겠구나 하고 생각하기 쉽겠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아마도 눈에 익은 스타들이 화면을 채워주기 때문이기도 할 텐데, 그 덕분에 자연스레 다큐멘터리 아닌 극이구나 하는 개념이 설정되어 감정이입에 도움을 준다.


결코 킬링타임용이라고 할 순 없고 소장용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하다. 반드시라고 할 만큼 4부작 다큐멘터리 <살인을 말하다: 테드 번디 테이프>와 세트로 보길 권한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연쇄살인마 중 한 명인 테드 번디에 대해 안팎으로 속속들이 알게 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악마를 사랑했다>는 그 정도에 의미를 두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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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악마를 사랑했다, 믿음, 사랑, 연쇄살인마, 테드 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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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하게 되는 사랑스럽고 위대한 걸음걸음, 영화 <스탠바이, 웬디>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8. 6. 1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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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스탠바이, 웬디>


영화 <스탠바이, 웬디> 포스터. ⓒ판씨네마㈜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베이 에리어 장애인 센터, 그곳을 책임지는 스코티(토니 콜렛 분)는 모든 친구들을 알뜰살뜰 챙긴다. 자폐증세가 심한 웬디(다코타 패딩 분)도 그중 한 명인데, 그녀는 정해진 시간마다 요일마다 장소마다 정확히 해야 할 일만 정해놓고 생활한다. 웬디는 언니 오드리의 집으로 들어가 조카 루비를 보는 꿈과 함께 스타트렉 시나리오 공모전에 입상하는 꿈을 갖고 있다. 


감정조절이 자유롭지 않은 웬디가 과연 아이를 잘 볼 수 있을지, 스코티는 그녀가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오드리는 솔직히 두렵다. 오드리는 세상 누구보다도 웬디를 사랑하고 아끼지만 그녀와 함께 살 순 없는 것이다. 한편 웬디는 스타트렉 광팬으로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평한다. 그녀는 진정한 팬들만 한다는 창작활동도 하고 있다. 


와중에 파라마운트사에서 스타트렉 대본 공모전을 실시한다. 이를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웬디는 열심히 대본을 완성하였는데, 그만 제출 날짜를 잊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자폐증세가 그녀를 덮치려는 순간 '대기하라(stand by)'를 되새기며 가라앉히고 생각해본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녀는 파라마운트사가 있는 LA까지 직접 대본을 들고 가기로 결심한다. 아무 도움 없이 반려견 피트와 함께 600km의 대장정에 오른다. 


웬디의 위대한 걸음걸음


영화 <스탠바이, 웬디>의 한 장면. ⓒ판씨네마㈜



<스탠바이, 웬디>는 세상과 담을 쌓고 살 수밖에 없는 웬디의 세상을 향한 걸음걸음에 대한 영화이다. 유일한 혈육인 오드리조차 그녀를 케어할 수 없고, 그녀가 유일하게 믿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인 스코티의 눈조차 마주치기 힘든 그녀다. 그런 그녀가 그 먼 여정을 혼자, 아니 보호가 필요한 피트와 함께 떠났다는 것 자체가 정녕 위대한 일이라고 하겠다. 위대한 내디딤이랄까. 


영화는 <세션: 이 남자가 사랑하는 법>으로 제28회 선댄스 영화제에서 관객상과 심사위원특별상을 타는 등 당대 전 세계 수많은 영화제에서 사랑을 받은 바 있는 벤 르윈 감독의 작품이다. <세션>은 소아마비로 전신을 사용할 수 없는 한 남자의 섹스를 해보고 싶다는 바람을 섹스 테라피스트와 함께 이뤄나가는 특별한 이야기를 담았다. 논란의 여지가 다분하지만, 그 '위대함'은 신선하다 못해 장엄했다. 


이 영화도 비슷한 결을 갖고 있다. 선천적 혹은 후천적으로 정상적이지 못한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이 도무지 할 수 없을 것만 갖은 일을 하게 되는 것 말이다. 그건 성장이라는 테마의 인간 승리를, 또는 허무맹랑한 판타지에 가까운 예쁜 동화 이야기를 우리에게 선사할 수 있다. <스탠바이, 웬디>는 어느 쪽일까. 


웬디와 <스타트렉>


영화 <스탠바이, 웬디>의 한 장면. ⓒ판씨네마㈜



결론부터 말하자면, 후자에 가깝다. 현실에 기반한 허무맹랑 판타지에 가깝다는 말이다. 실상은 웬디처럼 자폐증세를 가진 이들, 나아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정상과는 거리가 있는 이들의 홀로서기가 과연 가능한가? 특히, '관계'에 있어서 최악의 모습을 보이는 자폐증에 있어서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하겠다. 


그래서, 영화는 <스타트렉>이라는 기가 막힌 소재를 가져온다. <스타트렉>이 무엇인가. 단순히 우주 배경의 SF 시리즈인가? 아니, 이 시리즈는 미 개척지 우주 탐험을 배경으로 다양한 인종의 지구인과 외계인의 갈등과 이해를 중점으로 다룬다. 다양한 군상들의 '관계'를 통해 인간 세계를 들여다보는 것이 핵심 포인트인 것이다. 


웬디가 다름 아닌 <스타트렉> 대본 공모전 때문에 절대적으로 지키는 매일매일, 시간시간의 불문율을 스스로 깨고 가본 적도 없거니와 가볼 생각도 못했던 600km의 대장정을 떠나는 건, 그야말로 여러 모로 기가 막힌 대비 설정이다. <스타트렉>을 향한 오마주라고 할 수도 있을 정도이다. 


그런 면에서 철저한 판타지에 가까운 <스탠바이, 웬디>는, <스타트렉>이 갖는 철저한 현실세계 지향성도 갖는다. 결국 말하고자 하는 건 판타지나 공상이 아닌 현실이라는 것이고, 이 영화는 자폐아의 대장정이 아닌 남들과 다름 없는 평범한 삶 즉, 친언니네로 들어가 조카를 보며 함께 사는 삶에의 진짜 목표가 있다. 


사랑스러운 대장정


영화 <스탠바이, 웬디>의 한 장면. ⓒ판씨네마㈜



괜찮은 영화를 꾸준히 만들어내는 장 마크 발레가 연출하고 리즈 위더스푼이 원 톱으로 이끈 영화 <와일드>에서 정말과 좌절의 구렁텅이에 빠진 주인공은 홀로 대장정을 떠나며 무언가를 건져올리려 한다. 그 아무리 험한 장정이라해도 그녀가 겪었던 일보단 덜한 것 같다. 과정에 역점이 있다. 


<스탠바이, 웬디>에서 주인공의 대장정은 절대적인 목표가 수반되어 있다. 과정은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럼에도 세상은 그녀를 가만 놔두지 않는다. 누구는 못살게 굴고 누구는 살게 군다. 물론 대부분이 관심조차 두지 않지만. 그리고 이 세상 누구보다, 아니 이 세상에서 유이하게 그녀에게 무한한 관심을 두는 두 여인이 그녀를 쫓는다. 


스코티와 오드리가 그들이다. 오히려 그들이야말로 이 과정에서 깨닫는 게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기본이 되는 '믿음' '신뢰'를 웬디에게 보내지 않았구나 하는 깨달음. 웬디도 충분히 홀로서기를 할 수 있구나, 누군가를 돌보는 게 충분히 가능하구나 하는 깨달음도 함께. 


길지 않은 러닝타임에, 여느 하이틴 영화 같은 말랑말랑함이 가미된, 단순하기 짝이 없을 것 같은 이 영화는 사실 굉장히 잘 직조된 세밀한 섬유 같은 영화였던 것이다. 반드시 행복한 엔딩을 맞보길 바라면서,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웬디와 피트의 여정과 함께 하길. 그리고 그들을 응원해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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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정, 믿음, 사랑, 스타트렉, 스탠바이 웬디, 신뢰, 위대, 자폐아,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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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운 감독다운, 김지운만의 김지운식 누와르 <달콤한 인생>

오래된 리뷰 2016. 11. 1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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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



'김지운식' 스타일에 정점에 오른 작품이라 할 수 있는 <달콤한 인생>. 주연배우 이병헌도 이 영화로 해외진출에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CJ엔터테인먼트



1998년 <조용한 가족>으로 열렬한 찬사와 지지를 받으며 데뷔한 김지운 감독. 이어서 2000년 <반칙왕>과 2003년 <장화, 홍련>으로 필모 정점을 찍는다. 동시에 '김지운식 영화'가 완성되었다. 장르 영화의 대가. 장르가 가지는 강렬함에 파묻히지 않고, 오히려 자신만의 스타일에 장르를 끼워맞추는 솜씨를 선보인다. 그 완성에 가장 가까이 간 작품은 아마도 2005년 작 <달콤한 인생>일 것이다. 


<달콤한 인생>은 이병헌이 '해외에 나를 알릴 수 있었다'는 이유로 자신의 인생작으로 뽑는 바, 당시 한국영화사상 최고가로 해외(일본)에 팔렸다. 그건 김지운 감독 영화의 특징 아닌 특징이기도 한데, 국내도 국내지만 해외에서 '스타일리스트'로서의 이미지가 좋게 비치는 것 같다. 그렇게 할리우드에 진출하기도 했다. 비록 참패를 면치 못해 더 이상 이어나갈 수 없었지만. 


김지운 감독다운, 김지운식 누와르 


'거기에 누와르가 있었을 뿐, 나는 나의 길을 갈 뿐이다.'로 영화를 또 다르게 요약할 수 있겠다. 장르에 구애받지 않은, '김지운'이라는 장르를 만들어낸 대가의 절정기이다. ⓒCJ엔터테인먼트



영화는 '누와르'라는 장르적 성격이 지극히 강한 장르를 표방하지만, 역시 김지운 감독답게 자신의 스타일을 앞세운다. 한 해 뒤에 개봉하는 유하 감독의 <비열한 거리>가 한국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정통 누와르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영화 중 하나라고 한다면,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은 그저 김지운 감독의 영화다. 이번에 그가 택한 게 '누와르'였을 뿐이다. 그래서인지 누와르에서 흔히 보이는 조직의 본모습, 치열한 뒷공작, 당연한 우정과 배신이 보이지 않는다. 대신 완벽하게 짜여진 미장셴과 기가 막힌 연기와 대사 신공, 숨겨진 상징들이 보인다. 결코 싫어하기 힘들다. 


선우(이병헌 분)는 강사장(김영철 분)의 신임을 얻어 '호텔 크라운'을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 룰을 어기면 피도 눈물도 없이 처단해버리는 냉혈한이다. 바로 그런 점이 강사장의 선우를 향한 믿음의 결정체일 것이다. 어느 날, 강사장이 상하이로 삼일간 출장을 다녀오게 되었다. 그러며 선우에게 긴히 한 가지 일을 맡긴다. 


어린 애인이 하나 있는데 아무래도 그녀가 바람을 피는 게 아닌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선우에게 삼일 동안 감시하면서 사실로 드러나면 즉시 자신에게 전화를 하거나 알아서 처치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언제나 그랬듯이 선우는 그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불철주야 희수(신민아 분)를 감시한다. 


결국 희수가 바람을 피는 게 사실로 드러나고 선우는 당장 그녀와 그를 잡고 강사장에게 전화를 걸려 한다. 그들은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선우는 짧은 기간 희수에게서 느낀 감정에 흔들린다. 그녀와 눈맞힌 찰나의 순간, 그녀의 귀와 입과 손과 어깨. 그 달콤한 순간들이 그에게 돌이킬 수 없는 최악의 선택을 하게 만든다. 선우는 강사장에게 전화도 하지 않고 그들을 살려준다. 강사장은 한국으로 돌아오고, 선우를 향해 무시무시한 죽음의 칼날을 드리미는데...


'사랑'과 '믿음'이라는 김지운식 콤비


한 사람의 인생을 뒤흔든 이 역정이 고작 그 순간의 '사랑' 때문이었나. (사실 사랑이라고 하기도 그렇다.) '믿음'을 저버렸다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당한 사람 입장에서도 '믿음'이 배신당했다고 느꼈을 테다. ⓒCJ엔터테인먼트



영화의 스토리 자체는 특별할 만한 게 없다. 한 인간의 특별한 인생역정이라고 할 수 있을까. 거기에 달콤한 순간의 '사랑'이 있고, 그 특별할 것 없는 사랑으로 속절없이 깨지는 오랜 기간 숙성된 '믿음'이 있다. 누와르와는 상당히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어둠의 범죄와 폭력을 다룬다는 점에서 누와르 장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영화에서는 '믿음'이라는, 인간 행동의 가장 강력한 동인(動因)이 사랑이라 말하기 모호한 순간의 '달콤함'에 속절없이 배신당하는 게 누와르랑 가장 근접해 보인다. 김지운식 누와르. 


'사랑'과 '믿음'이라는, 누와르에는 맞지 않을지 모르지만 김지운에게는 딱 들어 맞는 신기한 콤비는, 영화의 대미를 장식하는 희대의 대사로 표현할 수 있다. 선우의 '저한테 왜 그랬어요?'라는 물음에, 강사장이 대답한다.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이 얼마나 치졸하고 치명적인 대답인가, 이 얼마나 유머러스한 대답인가. 이 대답 하나가 영화를 전복시켜버릴 만하다. 


영화 뿐이랴? 인간을 전복시킬 수도 있는 말이다. 겨우 그깟 이유로 한 사람의 인생, 나아가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사라지다니. 그러면서도 '그게 바로 인간이지' 하는 생각도 들게 만든다. 뭐 별 거 있겠어 하고 말이다. 그들의 대화가 주는 허무함, 그 허무함으로 말미암은 유머적 감성이 만들어낸 수많은 패러디만으로 이 대사를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거기엔 참으로 많은 것들이, 높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호불호의 연기, 완벽한 미장셴, 그리고 즐기는 영화


감독의 의도가 완벽하게 구현된 화면, 자신을 잊지 않으면서도 그 미장셴에 어울리게 연기하기란 정말 어려울 거다. 이러니 김지운 영화는 즐기기에 정말 최고다. ⓒCJ엔터테인먼트



상상을 초월한 상징도 상징이지만, 연기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병헌의 액션, 김영철의 카리스마, 황정민의 메소드. 누와르 장르답게 보고도 믿지 못할 액션이 아닌 지극히 리얼한 액션을 선보인 이병헌. 액션은커녕 움직임도 별로 없지만 눈빛과 목소리와 분위기로 누구보다 압도적인 면모를 선보인 김영철. 그리고 어디서 양아치를 데려와서 연기 수업을 시킨듯한 느낌을 받게 한 황정민. 감독의 완벽주의적 작업 스타일이 영화 곳곳에서 나타나는 바, 연기에도 그 스타일이 고스란히 반영된 듯하다. 


하지만 영화의 홍일점 신민아의 연기는 아쉬운 정도를 넘어섰다. 그녀의 아름다움이야 정평이 나 있지만, 적어도 이 영화에서 두 남자가 제대로 된 대답도 못한 채 목숨을 걸고 싸울 만한 여자는 아니다. 내가 보기엔 그렇게 생각한 이유가 다름 아닌 신민아의 연기 때문인 것 같다. 영화 내용상 팜므 파탈의 모습을 선보여야 하지만, 그렇지 못할 바엔 지극히 위험하게 사랑스럽기라도 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했다. 에릭의 출현은 아직도 의문이다. 앞으로도 의문으로 남을 예정이다. 그 앞에 어떤 이유가 붙더라도 말이다. 


미장셴을 빼놓으면 섭하다. 너무나도 유명하지만 간단히라도 집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김지운의 미장셴은 아무래도 멈춰진 화면에 있을 거다. 카메라 워킹이 화려하지 않는 반면, 멈춰진 화면에 완벽하게 짜여진 소품들과 인물의 배치가 인상적이다. 그 프레임 안에서 최대한 역동적인 모습을 선보인다면, 그 모순이 주는 쾌감이 굉장할 것이다. 김지운이 추구하는 미장셴은 그런 게 아닐까. 


한편 <달콤한 인생>에서 선보이는 미장셴은 <장화, 홍련>의 연장선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명암의 확실한 대비에서 오는 또 다른 모순의 쾌감이 그것이다. 영화의 대부분을 어둠이 지배하고 있는 가운데, 하얗과 빨강이 주는 아름다움. 김지운 감독은 그 대비를 만들어 내기 위해 고의적으로 장치를 만드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를 보는 이유가 적지 않을 거다. 교훈, 힐링 등을 '얻기' 위해, 화려한 액션이나 미장셴을 '즐기기' 위해, 시대상이나 영화 자체를 '연구'하기 위해. <달콤한 인생>은 어디에 포함될까. 단연 '즐기기' 위함이 아닐까. 아마 김지운 감독이 추구하는 바일 것이다. 그 안에 다양한 것들, 이를 테면 상징, 연기, 캐릭터, 미장셴, 액션 등을 넣으니, 이 영화는 보고 또 봐도 전혀 질리지 않는다. 김지운 감독은 영화를 참으로 '잘' 만든다. <달콤한 인생>은 참으로 '잘' 만들어진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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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명문 '게이오'에 진학할 수 있을까? <불량소녀, 너를 응원해!>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6. 9. 2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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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불량소녀, 너를 응원해!>


'꼴통의 단기 속성 코스 명문 대학 진학기'라 할 만한 스토리. 하지만 '실화'라는 사실이, 그냥 지나칠 수 없게 한다. 분명 과정이 감동적일 것이므로, 거기엔 괜찮은 메시지가 있을 것이므로. ⓒ글뫼



영화라고 해도 믿기 힘든 실화를 영화로 옮긴 사례는 참으로 많다. 그중에서도 감동적인 건 아마 빠짐 없이 옮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세상만사가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법, 어디서 들어 봤음직한 식상한 소재가 줄을 잇곤 한다. 그럼에도 그런 소재를 택해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내놓다는 건, 소재 자체가 갖는 힘이 남다르거니와 연출에도 자신이 있다는 말일 게다. 그런 영화라면 그냥 지나치기 힘들다. 


<불량소녀, 너를 응원해!>(이상, '불량')는 시놉시스 한 줄만 들어도 전체가 그려지는, 그런 영화다. 가히 식상함에 끝이라고 할 만한 소재인데, 영화를 보고 난 후의 느낌은 '괜찮네'였다. 이처럼 대놓고 식상한 영화가 아니었다면, 'good' 이상의 소감을 들었을 만하다. 고로, <불량>은 상당히 좋은 영화라 할 수 있겠다. 


감독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최고의 영화' 중 하나로 손꼽히는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도이 노부히로'다. 더 이상 어떤 수식어가 필요한가 싶은 시점에, 대대적인 호평 속에 대히트 한 드라마 <중쇄를 찍자>도 연출한 그다. 이 두 작품 모두 한국에서도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는데, 2000년대 초반 한일 합작 드라마를 찍은 경력도 있는 그이기에 특별하다 하겠다. 


그녀는, 명문 '게이오'에 진학할 수 있을까?


왕따를 당해 전학을 가게 된 사야카, 하지만 그곳에서도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한다. 그렇게 중학교로 진학을 하게 되었는데, 다행히 그곳에서는 친구들과 잘 어울린다. 문제는 친구들과 너무 잘 어울리게 되었다는 것. 공부는 뒷전이고 오로지 친구들과 노는 게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 담배 핀 사실을 선생님에게 들켜 무기 정학에 처한다. 


사야카를 향한 엄마의 믿음은 영화의 키워드 중 하나이자 사야카 인생의 키워드 중 하나이다. 같이 담배 핀 친구들을 알려주면 벌을 내리지 않겠다는 교장과 담임의 협박에도 굴하지 않는 사야카를 자랑스럽다고 당당히 말하는 엄마이다. 그런 엄마의 믿음에 대한 보답이었을까. 정학을 당한 김에 시간이 남으니 입시 학원에 가서 상담 한번 받아보자는 엄마의 말을 듣고 학원에 간다. 첫만남부터 '긍정'의 냄새를 풀풀 풍기는 츠보타 선생의 제안을 덥석 무는 사야카. 명문 '게이오' 대학에 진학하겠다는 다짐이다. 


사야카를 향한 엄마의 타당한 믿음, 그리고 츠보타 선생의 무한 긍정. 이 영화의 주요 키워드이자, 사야카가 명문 게이오 대학을 진학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두 기둥이다. ⓒ글뫼



츠보타 선생의 무한 긍정은 사야카 엄마의 믿음과 더불어 이 영화의 주요 키워드이다. 사야카를 떠받치는 두 개의 기둥이라 하겠다. 여기서 잠깐 게이오 대학에 진학하겠다고 다짐한 사야카의 수준을 말하자면, 일본 지도를 그리지 못하고 동서남북을 모르며 고등학교 2학년 생이면서 초등학교 4학년 수준의 수학 실력을 가지고 있다. 과연 그녀는 게이오 대학 진학에 성공할 수 있을까. 


한편 사야카에겐 남동생과 여동생이 있는데, 그중에 남동생 류타는 어릴 때부터 아빠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왔다. 다름 아닌 야구 꿈나무로 프로선수로의 길을 가고자 하는 것이다. 아빠는 류타의 의사, 가족의 의사와는 상관 없이 류타만이 가족의 희망이라 말하며 일방적인 지지와 관심, 질타와 응원을 보낸다. 다른 두 아이는 안중에도 없다. 특히 그에게 사야카는 '쓰레기'일 뿐이다. 이 가족, 괜찮은 걸까. 


이 영화가 괜찮은 이유, 그럼 조금 더 양보하자


실화를 바탕으로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사야카가 말도 안 되는 '명문 게이오 대학 진학'에 성공할 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니 더욱 확실하다. 그리고 과정도 어느 정도, 아니 확실히 눈에 그려진다. 엄마와 선생의 전폭적인 지지, 아빠와 담임의 일방적인 악담 사이에서 조금씩 성장하는 사야카. 계속 성장하지만 그만큼 암초를 만난다. 때론 부딪히고 때론 피하면서 전진하는 그녀는, 결국 꿈을 이룬다. 그녀를 끝까지 믿어준 엄마와 선생, 그리고 그녀의 모습에 그녀를 지지하게 된 이들의 응원, 무엇보다 그녀 자신의 악전고투 덕분이다. 


이 영화를 감동적이고 재밌게 보려면 현실과 너무 투영하며 감상하면 안 된다. 영화 자체가 갖는 이야기와 메시지를 들여다보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한다. 그럼에도 '단기 속성 코스를 이용한 꼴통의 명문 대학 진학기'는 얼핏 전혀 통하지 않을 뿐 아니라 욕을 바가지로 먹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어느 대학을 가든지, 대학을 가지 않아도, 네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그 길을 달려 나가자는 이야기. 네가 가고자 하는 길에서 반드시 1등을 하지 않아도 되니 어른다운 어른만 되면 된다는 이야기. 이런 단계까지 온 현재에 말이다. 


이 영화는 분명 식상하고 너무도 쉽게 예상된다. 그럼에도 우린 양보할 필요가 있다. 무시하고 치워버리기엔 영화가 괜찮으니까. 이야기 자체의 매력과 메시지에 관심을 쏟자. ⓒ글뫼



그럼 조금 더 양보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 영화는 괜찮으니까. 버리기엔 아까우니까. 더욱더 이야기 자체가 갖는 매력과 메시지의 힘에 관심을 쏟아야 한다.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 1~2년만 해도 충분하니까.' '무조건 명문 대학에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사람다운 사람이 될 수 있다' 따위는, 비록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라도 과감히 머리에서 지워 버리자. 


대신, 명문을 목표로 함에 따라 열심히 하는 모습이 자신과 가족과 주의 사람에게 좋은 에너지를 줄 수 있다는 것. 믿음이야말로 삶에서 그 무엇보다 중요하고 그 무엇보다 강력한 동기이자 끈이라는 사실. 같은 '할 수 있다'의 긍정이지만, 그 힘으로 자신을 버리고 사회와 시대에 헌신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바꾸고 다른 사람을 돕는 긍정을 키워나가야 한다는 것. 이런 류의 메시지를 잘 선별해야 한다. 


언제나 믿음으로 존재할 '믿음', 그에 대한 헌사


영화 <친구>를 보면, 준석이가 상택이에게 이런 말을 한다. 학창 시절 양아치짓 하겠다고 돌아다닐 때 패서라도 자신을 잡아줄 사람이 있었다면 이리 되진 않았을 거라고. 사야카의 엄마와 츠보타 선생은 사야카를 패지 않았다. 다만 그녀를 믿었을 뿐. 그렇다고 그녀를 방목하지도 않았다. 관심을 갖고 지켜보며, 이끌지 않고 뒤에서 받쳐줬을 뿐. 준석이가 바란 것도 그런 게 아닐까. 


이끌려고 하다 보면 믿지 않고 기대를 하게 된다. 사야카의 아빠가 류타에게 기대를 하게 된 것처럼 말이다. 인생에 반드시 뒷걸음질 치는 날이 올 텐데, 그럴 때 기대는 곧 실망으로 바뀌기 마련이다. 그 실망은 고스란히 당사자에게 전이된다. 그 한 번의 뒷걸음질이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것처럼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절대 그렇지 않음에도.


절대적인 '믿음'이 해체되는 가족과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만 같은 이들을 다시 뭉치게 했다. 명문 게이오로의 길은, 다시 하나되는 가족으로의 길이다. ⓒ글뫼



반면 믿음은 여전히 믿음으로 존재한다. 다른 무엇으로 바뀌지 않으며 그 하나로 그 어떤 것도 이겨낼 수 있다. 그리하여 해체되는 게 당연해보였던 가족이 다시 뭉쳤다. 그녀가 명문 게이오를 진학해 인생역전이 되는 것은 그 자체로 훌륭하지만, 꼭 그 '진학'이라는 결과가 아닌 과정에서 가족이 뭉친 건 아주 큰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는 꼴통 사야카의 명문 대학 진학기, 곧 인생역전 드라마지만, 그녀에게 보내는 사람들의 '믿음'에 대한 헌사이기도 하다. 아니, 믿음에 대한 헌사가 전하고자 하는 진정한 메시지다. 


아마 같은 소재를 가지고 우리나라에서 영화를 만들었다면 이런 식으로 나오진 않았을 거다. 모르긴 몰라도 비상업적 독립 영화로 나왔을 테고, 가해자도 과거에 피해자였던 그런 식의 스토리가 진행되었을 것이다. 씁쓸함이 짖게 남았을 테다. 그건 그것대로 훌륭했을 게 분명하다. 그렇지만 영화적 재미는 확실히 떨어지니, 본 사람의 뇌리에는 남았을 것이지만 본 사람 자체가 많지 않았을 거다. 


반면, <불량>은 교훈과 해피엔딩을 좋아하는 일본 영화의 공식을 그대로 따른다. 식상함과 함께 전형적임을 장착했다. 그렇지만 어설프지 않게 지향하는 스타일을 정확히 고수하고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말했기에, '때론 식상하지만 정직하고 전형적인 영화를 보고싶다'는 마음을 충족시켜준다. '밥, 국, 김치'에 질려 한동안 다른 스타일만 찾다가 한 번쯤은 밥, 국, 김치가 너무 먹고 싶을 때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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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로 뒤집는 세계사> 적재적소의 미술품으로 세계사를 다시 본다

신작 열전/신작 도서 2014. 9. 22.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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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미술로 뒤집는 세계사>


<미술로 뒤집는 세계사> ⓒ르네상스

과거를 들여다보는 방법은 여러가지다. 그 중에서 제일 쉽고 정확한 건 '기록'이다. 후대를 위해 현재를 기록으로 남긴 이가 과연 얼마나 있겠냐마는, 덕분에 그땐 어떤 모습으로 살았을지 알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많은 사실을 일깨워주는 기록을 남긴 이는 아마도 동시대를 위해서 그러했을 것이다. 또한 그러함으로 자신을 반추해보는 계기로 삼았을 게다. 


기록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비단 글만 있는 게 아니다. 따져보니, 지금은 예술의 기본 골격을 이루는 것들이다. 문서를 비롯해, 미술품, 건축물, 조형물 등이 언뜻 생각난다. 큰 범위 안에서 보니 '미술'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야말로 미술은 시대를 반영하는 최고의 수단이 아닌가? 


<미술로 뒤집는 세계사>(르네상스)가 세계사를 설명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굳이 미술 작품을 수단으로 한 게 이해 가는 바다. 이 책은 세계 역사에 큰 영향을 준 사건을 중심으로, 딱딱하거나 지루할 수 있는 세계 역사를 친구로 삼기 위해 또 더 생생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사건들과 연관된 미술 작품을 안내자로 삼았다. 아무래도 한 눈에 들어오는 미술품이 더 친근하다. 


목차를 보아하니 구석기와 신석기부터 68 혁명까지 그야말로 굵직한 사건들만 다루었다. 그래서 얼핏 보면 저자가 머리말에서 말한 '10여 년 이상 교육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주입 받아온 내용'이 이 책에서도 계속되는구나 싶다. 분명 저자는 이 통념에 도전하며 다른 방향에서 다가간다고 했는데 말이다. 그렇지만 읽어보면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구석기 사람들의 원시공동체에서 지금의 우리 삶을 돌아보고, 로마제국의 몰락에서 경제적 불균형 문제를 도출 시킨다. 또한 진시황의 중국 통일을 통해, 그 과정에서 평화가 아닌 백성의 고통을 보기도 한다. 21세기 최고의 화두인 '이슬람'은 어떤가? 저자는 미술품을 통해 이슬람에 덧씌워진 '폭력'과 '테러'의 이미지를 버리고 진짜 모습을 볼 수 있게 도와준다. 


이 밖에도 저자는 나폴레옹을 통해 '제국주의'를, 사회주의를 통해 '자본주의'를, 68 혁명을 통해 '민주주의'를 재고찰한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반드시 존재하는 법이다. 저자의 세계사 읊기와 더불어 기존의 통념을 부수기 위한 노력이 눈부시다. 여기에 어김없이 그 역사적 사건들을 포착한 미술품들이 적재적소에 자리 잡고 있다. 


반면 명백한 문제점들이 눈에 띈다. 어떤 주장을 하고 논리를 펼치든지 미술품을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해야 하기 때문에 한계가 분명하다. 분명 하고 싶은 말이 더 많았을 테고 논리와 주장의 범위가 더 넓었을 텐데 말이다. 독자들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가고자 했기에 감수해야 했을 부분이다. 내용적 측면에서 결과적으로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한편 이 책에 나오는 120여 미술 작품 중 대다수가 19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구석기와 신석기, 그리고 20세기 사건을 말할 때는 제외하고 말이다. 특히 4장 '로마제국은 왜 멸망했는가'에서는 10장의 작품이 나오는데, 그 중 7개의 작품이 1800년대 그려진 그림이다. 


다른 장에서도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는데, 특히 유럽을 설명하는 그림들이 많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그런 그림들을 갖고 역사를 설명하는 것에 큰 믿음이 가지 않는다. 아무리 투철한 고증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그림으로 옮겼다고 해도, 그림이다 보니 최소한 어느 정도의 왜곡은 분명히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인물들의 경우는 실제보다 잘 생기고 예쁘고 키도 크게 그리는 등, 그림이 그려졌을 당시의(비교적 현대의) 눈높이에 맞춰 그려졌을 것이 아닌가? 그런 그림들을 통해 역사를, 그것도 디테일하게 설명하고 있으니 조금은 실망의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물론 이 책의 진짜 콘셉트는 앞서 말한, 그리고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역사적 통념을 뒤집는 데 있다. 미술 작품은 그저 통념을 뒤집는 데 수월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하지만 수단 자체에 믿음이 가지 않는다면, 어떻게 목적을 이룰 수 있겠는가? 비록 책 전체는 아닐지라도 몇몇 장에서 쉬 믿을 수 없는 그림을 통한 설명은 재고해볼 여지가 있을 듯싶다. 


책은 기획한 바대로 쉽고 재밌게 읽히는 편이다. 개인적으로 마지막 장의 68 혁명에 관한 글은 굉장히 유용하게 읽었다. 어디에서도 쉽게 접할 수 없는 이야기이자, 더군다나 '혁명'이 주제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알게 모르게 금기시되었던 게 사실 아닌가. 이 12장 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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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ngenv
그림, 기록, 미술, 미술로 뒤집는 세계사, 믿음, 세계사
  • BlogIcon 제철찾아삼만리
    2014.09.23 09:56 신고

    이책 재밌겠는걸요..조만간 서점가면 한번 훅 봐야겠어요~~
    잘 지내져? 오늘도 좋은날되세요!!

    • BlogIcon singenv
      2014.09.23 14:03 신고

      잘 못 찾아뵈서 죄송합니다~ㅋ
      '제철찾아삼만리'님 블로그는 한 번 들르면
      헤어나오질 못해서 ㅋㅋㅋ
      항상 관심 감사드려요^^


  • 2014.09.23 11:17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행인생
    2014.09.23 11:34 신고

    초대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 BlogIcon singenv
      2014.09.23 14:03 신고

      좋은 블로그 만드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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