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트루 스피릿>
지난 2011년, 책 한 권이 번역되어 소개되었다. 제시카 왓슨의 <16살, 나는 세계일주로 꿈을 배웠다>라는 제목의 자기계발적인 에세이였다. 출간 당시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고 지금은 절판되어 구하기 힘들지만, 제목만 봐도 '이게 사실인가?' 하는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16살'이라는 어리디 어린 나이에 ‘세계일주’를 할 생각을 하고 실현시켰다는 건가?
이 책의 원제는 'True Spirit'으로, '진실된 영혼'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다. 10대 어린 나이에 세계일주를 성공시킬 수 있었던 기반엔 다른 무엇도 아닌 진실된 영혼이 있었다고 말하려는 것 같다. 제시카 왓슨이 세계일주를 실행에 옮긴 건 2009~2010년인데 10년이 훌쩍 지난 2023년에 영화화되어 우리를 찾아왔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트루 스피릿>은 2009년에서 2010년에 걸쳐 장장 210일(약 7개월) 동안 무동력 요트를 타고 홀로 세계일주(약 4만 5천 킬로미터)에 성공한 작은 영웅 16세 소녀 '제시카 왓슨'의 이야기를 담았다. 제시카는 일주 도중 영상 다이어리를 블로그에 올리며 전 세계인들과 소통하고 일주를 끝낸 후 책을 냈는데, 이 영화는 바로 그 영상 다이어리와 그녀의 책을 기반으로 했다.
16살 소녀의 요트 세계일주 도전
2009년 호주 퀸즐랜드주 선샤인 코스트, 16세 소녀 제시카 왓슨은 부모님 그리고 언니, 두 남동생과 함께 살고 있다. 그녀는 12살 때 17살이 되기 전에(기존 최연소 세계일주 기록) 무동력 요트로 세계일주를 하겠다고 가족 앞에서 선언했는데, 부모님이 흔쾌히 허락하고 응원했다. 대신 제시카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걸 계획하고 준비해야 했다. 해서 직접 멘토 벤을 찾아가 설득하고 4년 동안 관련 지식을 습득·체험했다.
워낙 어린 나이에 일면 무모해 보이는 세계일주를 천명했기에 시험 항해로도 호주 전역의 관심을 받았는데, 주로 부정적이었다. 특히 제시카의 부모와 멘토를 향해서도 비난의 수위를 높였는데, 제시카에게 무책임·무관심하다는 것이었다. 무모한 도전을 종용할 게 아니라 당연히 말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제시카가 철저히 준비했으니 충분히 도전할 만하다고 말해도 소용없었다.
가족에만 한정되어 보이는 믿음과 언론 등 대다수 사람이 보이는 것 같은 불신을 온몸에 새긴 채 시드니에서 공식적으로 세계일주를 시작한 제시카 왓슨.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육대주 중 오세아니아,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를 거쳐 오대양 중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 남극해를 지나 시드니로 돌아오는 대장정이다. 과연 그녀를 반드시 찾아가 목숨을 위협할 바다폭풍을 뚫고 추위·더위·배고픔 등의 기본 욕구를 이겨 내며 기나긴 여정의 외로움을 뒤로 하며 무사히 귀환할 수 있을까?
가장 인상 깊은 건, 딸을 오롯이 믿어 준 부모님
<트루 스피릿>에서 가장 인상 깊은 건 의외로 16세 소녀 제시카 왓슨의 무동력 요트 세계일주가 아니다. 그녀가 세계일주라는 무모한 도전을 꿈꾸고 고민하고 준비해 실현에 옮길 때까지 믿어 준 부모님이 가장 인상 깊었다. 제시카에게 난독증이 있어 홈스쿨링을 하며 요트에서 일상생활을 영위한 적도 있는 만큼, 충분히 바다에 익숙하거니와 가족과의 우애도 남다르다.
죽음이 찾아올지도 모르지만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은 어디서 오는 걸까. 그 또한 부모님의 절대적인 지지에서 온다고 영화는 말한다. 제시카가 자신을 믿지 못하고 힘들어할 때, 여론의 반대와 뭇매로 흔들릴 때, 홀로 요트를 타고 세계일주를 할 수 있을지 원론적인 의문에 휩싸일 때마다 힘을 북돋아 준다. 지금까지 잘해 왔고 앞으로도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부모가 자식을 위하는 건 쉽다, 하지만 믿는 건 쉽지 않다. 믿기 이전에 위하는 것에서 막혀 버리니 말이다. 어떻게 하는 게 진정으로 자식을 위한 건지 많은 부모가 잘 알지 못할 것이다. 부모가 진정으로 자식을 위한다면 자식을 믿어야 하고, 그건 즉 자식이 스스로 원하고 선택한 길을 갈 수 있게 서포트하는 것이다. 낭떠러지로 떨어지지 않게 파수꾼 정도의 역할이라면 어떨까?
하여, <트루 스피릿>은 도전 정신 충만한 해양 어드벤처물 이전에 하염없이 순수한 가족물이고 그 이전에 올바른 양육에 관해 직설적으로 보여 주는 자녀교육물이다. 모르긴 몰라도, 제시카 왓슨의 감동적인 세계일주보다 그녀를 든든하게 지탱해 주는 부모와 가족의 모습이 눈물샘을 자극할 것 같다.
해양물로서의 깔끔한 뒷맛
그럼에도 이 영화의 외향은 해양물이다. 즉 바다에서 홀로 사투를 벌이는 16세 소녀 제시카 왓슨이 단독 주인공으로 활약할 수밖에 없고 그래야 하는 것이다. 그녀의 현장감 넘치고 긴장감 서리는 사투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게 어설프거나 별로라면 이 영화를 볼 이유가 없다시피 할 테다. 과연, 바다 위의 제시카는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 줬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쁘지 않았다. 아무리 대단한 도전을 한다고 하지만 16세 어린 소녀의 입장에서, 폭풍을 헤치며 배가 흔들리고 그러다가 다치고 배가 뒤집혀 죽다 살아나도 더 견디기 힘든 건 외로움(심심)이다. 무풍지대에 돌입해 몇 날 며칠이고 꼼짝없이 갇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마당에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것인지 알 수 없는 불안이 겹치니 그야말로 미쳐 버리기 일보 직전이다. 죽을 고비를 넘기는 사투보다 더 한 고통이 아닐 수 없다.
호주를 넘어 전 세계적인 화제를 뿌린 대단한 사건이었기에 영화가 어떻게 끝날지 모두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과정이 중요할 것이다. 제시카 왓슨이 어떻게 세계일주를 기획하고 준비하고 실행에 옮겼는지 말이다. 이 영화는 영리하게 보여 줬다. 영화를 구성하는 거의 모든 면에서 적절했다. 짙은 여운 대신 깔끔한 뒷맛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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