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책하다

블로그 이미지

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멕시코'에 해당되는 글 4건

제목 날짜
  • 불친절하고 불쾌하며 불편한 영화, 그럼에도? <에이프릴의 딸> 2019.05.17
  • '개인과 시대와 역사'라는 영화의 큰 목적을 완벽히 이룬 영화 <로마> 2018.12.27
  • 멕시코 '죽은 자의 날' 흩어진 모든 것이 모이는 시간 <코코> 2018.02.07
  • 인간의 구원과 멕시코 역사의 질곡을 짚어보다 <여자 목숨으로 사는 남자>(2) 2015.10.19

불친절하고 불쾌하며 불편한 영화, 그럼에도? <에이프릴의 딸>

모모 큐레이터'S PICK 2019. 5. 17. 08:00



[모모 큐레이터'S PICK] <에이프릴의 딸> 


영화 <에이프릴의 딸> 포스터. ⓒ(주)엣나인필름



우리나라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세계적으로 유망한 감독들이 많다. 그들은 주로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두각을 나타내 이름과 얼굴과 필모를 알리는 경우가 많은데, 멕시코의 젊은 거장 후보인 미셸 프랑코 감독도 그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그녀 뒤에서 빛나고 있는 멕시코라는 '후광'이 한 몫을 하지 않는다고 할 수 없겠는데, 지금 현재 전 세계 영화계를 주름잡는 '멕시코의 세 친구들' 알폰소 쿠아론,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기예르모 델 토로의 영향력이 워낙 막강하기 때문이다.

 

이 세 명의 거장이 구축한 각각의 독특하고 확고한 작품 세계를 씨네필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들도 사랑해 마지 않게 된 이유를 '멕시코'라는 공통분모로 굳이 생각해 볼 때, 미셸 프랑코 감독을 향해 기대의 시선을 보내지 않을 수 없어 보인다. 그것뿐이라면 기대와 달리 실망을 하게 되더라도 할 말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녀는 데뷔작부터 칸 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되었고 이후 내놓은 모든 작품(3 작품)이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자타공인 세계 최고의 영화제 칸이 총애하는 차기 거장임에 틀림없다.

 

<애프터 루시아>가 주목할 만한 시선 대상을, <크로닉>이 각본상을, 그리고 최신작 <에이프릴의 딸>이 주목할 만한 시선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것. 연출과 각본은 물론 편집, 프로듀서, 제작에까지 관여하는 그녀를 만능영화인이라 불러도 되지 않을까. 이 세 작품은 우리나라에도 모두 개봉되었는데, 아무리 출중해도 제3세계 영화는 흥행에 큰 제약이 따르기에 잘 수입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례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멕시코 영화 전성기라는 시대 조류가 뒤따른 것일까, 그녀의 영화들이 너무나도 좋기 때문일까, 어쨌든 그녀의 영화를 접하는 우리는 좋다.

 

엄마 에이프릴과 딸들

 

영화 <에이프릴의 딸>의 한 장면. ⓒ(주)엣나인필름



영화는 심심하게 시작해 파격적으로 끝난다. 후반부 내내 계속되는 연속적인 파격을 소개할 순 없으니 전반부를 들여다보도록 한다. 임신한 10대 발레리아와 언니 클라라는 함께 살고 있다. 클라라가 인쇄소를 운영하며 나름 안정적으로 지내는 그들이다. 그들은 발레리아의 임신 사실을 엄마에게 숨겼는데, 임신 7개월이 지나 클라라가 엄마에게 알린다. 엄마 에이프릴은 그들을 찾아오고, 아주 반가운 듯 해후한다. 곧 카렌이 태어난다. 에이프릴의 손녀이자 발레리아의 딸이다. 

 

카렌의 아빠는 17살에 불과한 마테오다. 에이프릴도 클라라를 낳았을 당시 10대 후반에 불과한 나이였다. 에이프릴은 발레리아가 아닌 마테오와 그때 그 심정을 공유한다. 에이프릴과 발레리아와 마테오는 따로 또 같이 카렌을 돌본다. 에이프릴은 카렌을 향해 ‘우리 예쁜 아기’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그만큼 애정을 듬뿍 쏟는 듯하다. 자신도 제대로 건사하고 컨트롤하기 힘든 10대 발레리아와 마테오가 어쩌지 못해 우왕좌왕할 때 에이프릴이 대신한다.

 

어느 날 갑자기 에이프릴은 발레리아와 마테오 동의 없이 마테오 부모와의 합의를 통해 카렌을 입양 보낸다. 당연히 발레리아는 에이프릴을 멀리한다. 고소하려고도 한다. 마테오는 어쩌질 못해할 뿐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에이프릴은 카렌을 입양 보낸 게 아니라 아는 사람의 집에 맡겨놓은 게 아닌가? 그러곤 마테오한테만 그 사실을 알린다.

 

한편, 에이프릴은 클라라에겐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저 뚱뚱해진 그녀가 살을 뺄 수 있게 강제할 뿐이다. 사실, 발레리아에게도 별 신경을 쓰지 않는 건 매한가지다. 그녀가 미성년의 나이에 아기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고도 별 반응이 없는 걸 보니 말이다. 클라라의 아빠와 발레리아의 아빠가 다르다고도 하는데, 에이프릴의 과거와 정체가 궁금해진다.

 

불친절한 영화

 

영화 <에이프릴의 딸>의 한 장면. ⓒ(주)엣나인필름



영화 <에이프릴의 딸>은 에이프릴의 ‘딸’이 아닌 ‘에이프릴’이 주인공이다. 그녀가 발레리아에게 저지르는 갑작스런 엽기 행각이 이상하고 또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우린 그녀에게 더 집중하게 된다. 그녀는 왜 딸에게 그런 것일까. 왜 클라라와 발레리아에게 그런 게 아니라 발레리아에게만 그런 것일까.

 

에이프릴의 행동 대상이 발레리아에 있지 않다고 유추해 볼 수 있겠다. 이 영화가 굉장히 불친절하다고 느낄 만한 대목인데, 에이프릴의 현재 그것도 본인이 사는 지역이나 집이 아닌 딸이 사는 곳에 와 있는 지금에서 단편적으로 지나가는 단서들로만 그녀의 과거와 사연과 정체를 유추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30대 후반의 젊은 나이에, 두 명의 다른 남자에게서 두 딸을 낳았고, 그들뿐 아니라 딸들과도 좋은 관계에 있는 것 같진 않다. 또한 별 다른 직업을 두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위와 같이 유추한 사실을 종합해 다시금 유추해 볼 수 있는 건, 에이프릴은 욕망에 충실한 사람이고 지금도 욕망을 분출할 의향이 있으며 그 대상의 범위가 굉장히 넓다는 것이다. 딸과 손녀를 향한 모성을 뛰어 넘는 욕망이 다름 아닌 마테오를 향하고 있다고 해도, 너무 충격을 받거나 분노를 행하거나 구역질을 느끼지 않도록 하자. 사실, 영화는 굉장히 느리고 무심하고 담담하게 진행되지만 충격적으로 갈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에이프릴의 욕망 충실한 행동을 여러 가지 측면에서 들여다볼 요지는 있다. 에이프릴 앞에 ‘여자’라는 수식어를 두어 ‘모성보다 욕망에 충실한 여자’라는 측면에서 볼 수 있겠고, 인류의 태곳적 신화 이야기 중 하나인 ‘부모와 자식 간의 경쟁’이라는 측면에서도 볼 수 있겠으며, 불완전한 한 인간의 어쩔 도리 없는 저지름 또는 사이코패스의 완전한 통제 하 전략적인 작전의 일환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해하기도 싫은 더럽고 추잡한 이야기라고 한마디로 상정해버려도 할 말은 없을 정도이다.

 

불편한 영화

 

영화 <에이프릴의 딸>의 한 장면. ⓒ(주)엣나인필름



수많은 사람들이 사는 이 세상에,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의 이해하기 싫은 이야기들이 참으로 많은 건 엄연한 사실이다. 그리고 동서고금 이보다 더 추잡한 수없이 많은 이야기가 우리를 사로잡았고 사로잡고 있으며 사로잡을 게 분명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영화를 들여다보면 어떨까. 그렇게밖에 들여다볼 수밖에 없는 심정이기도 하다. 인간의 본성과 맞닿아 있는 신화를 가지고 오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그렇게까지 할 정도의 의미가 있는 영화인지는 의문이다.

 

영화는 보는 내내 굉장히 불편하기도 했다. 주지했듯 영화적으로 매우 불친절했기에 끊임없이 이면을 들여다봐야 했던 점도 있지만, 이면을 들여다보고 해석을 하려 하면 할수록 불편했다. 영화를 차지하는 상당히 많은 장면이 알 수 없는 곳으로 말없이 차를 타고 가는 뒷모습인데, 답답함과 불안함의 불쾌한 뒤섞임이 영화 전체로 퍼지는 걸 목격하게 된다. 물론 이런 느낌의 영화를 즐기는 이도 많을 테고 이런 느낌이 영화를 보는 동력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많기에, 취향의 문제이겠다.

 

영화를 보고, 영화에서 헤어 나와, 영화를 통해 2차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개인적으로 그런 영화를 즐기고 또 그런 영화가 괜찮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에이프릴의 딸>은 영화를 보고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영화 밖으로 나가 영화를 통해 생각하지 못하고 영화 안에서 돌고 돌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 또한 다분히 취향의 문제로, 오롯이 영화에 천착하는 것이야말로 영화를 보는 진정한 방법일 수 있다.

 

<에이프릴의 딸>은 어떤 영화일까. 누구한테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그렇다고 나 혼자만 알고서 보고 그저 즐기기도 힘들고 나를 돌아보며 여러 생각을 하기도 싫다. 현실적으로 공감할 만한 요소가 있지도 않다. 다만, ‘인간’으로서 깊고 깊은 곳을 들여다보고 질문을 던져보게 한다. 이것이야말로 이 영화가 불편하고 불쾌했던 역설적 이유가 아닐까.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Posted by singenv
멕시코, 불친절, 불쾌, 불편, 에이프릴의 딸, 여자, 욕망

트랙백

※ 스팸 트랙백 차단중 ...{ ? }

'개인과 시대와 역사'라는 영화의 큰 목적을 완벽히 이룬 영화 <로마>

넷플릭스 오리지널 2018. 12. 27. 08:00



[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


영화 <로마> 포스터. ⓒ넷플릭스



1950년대 이후 컬러영화가 대중화되었다지만, 사실 최초의 컬러영화는 19세기 말경에 시작되었다. 그 역사가 100년이 훌쩍 넘은 셈. 이제는 당연한 컬러영화 시대에 종종 고개를 내미는 흑백영화는 자못 새롭게 다가온다. 


눈이 호강하다 못해 피곤해지게 만드는 화려한 색감의 '요즘' 영화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왠만한 화려함에는 성에 차지 않게 된 조류의 반대적 개념이라 하겠다. 영화를 위해 흑백을 수단으로 했던가, 흑백 자체에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집약적으로 들어 있던가. 


최근 들어서도 1년에 한 번은 흑백영화 또는 흑백과 컬러가 교차로 나오는 명작을 보게 되는 것 같다. 아니, 현대 흑백영화는 대부분 명작인 것인가. 우리나라 영화로는 <동주> <지슬> 등이 생각나고, 외국 영화로는 <프란시스 하> <프란츠> <아티스트> 등이 생각난다. 


올해도 어김없이 명작 흑백영화가 찾아왔다. <그래비티>의 알폰소 쿠아론이 넷플릭스로 건너가 자전적 이야기 <로마>를 내놓은 것이다. 이 영화는 칸에서 받아주지 않았지만 베니스에서는 최고 영예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중산층 집안 가정부 클레오 이야기


멕시코시티 중산층 집안 가정부 클레오의 평범한 이야기. 영화 <로마>의 한 장면. ⓒ넷플릭스


1970년대 초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의 중산층 동네 '로마', 남자 아이 셋과 여자 아이 하나 그리고 친정 엄마와 같이 사는 한 중산층 집안에서 클레오는 다른 한 명과 함께 가정부로 일하고 있다. 


단란해 보이는 가족, 모두 클레오를 한 가족처럼 대하고 어린 두 아이들은 클레오를 엄마 또는 이모처럼 생각한다. 클레오는 남자친구도 사귀며 지극히 평범하고 행복하지 않을 것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종종 들려오는 흉흉한 말들이 마음을 심란하게 할 뿐이다. 정치적 격랑의 강도가 심상치 않은 듯하다. 와중, 클레오는 남자친구의 아이를 임신했지만 남자친구는 도망가 버리고, 클레오가 몸을 담고 있는 이 가족의 가장이 바람을 피워 뒤숭숭하고, 멕시코시티는 보다 격렬한 시위로 몸살을 앓는다. 


클레오는 혼자서 아이를 낳아 키우게 될까, 가장의 외도로 흔들리는 이 가족의 앞날은 어떨까, 멕시코시티와 멕시코는 언제쯤 보다 좋은 세상으로 발돋움할 수 있을까. 


'개인과 시대와 역사'라는, 영화의 목적


'개인과 시대와 역사'라는 영화의 목적을 완벽히 이루다. 영화 <로마>의 한 장면. ⓒ넷플릭스


영화 <로마>는 20여 년 전 베를린 은곰상에 빛나는 명작 흑백컬러영화인 중국 장이머우의 <집으로 가는 길>이 생각나게 한다. 단순히 흑백영화라는 점뿐만 아니라 한 개인, 한 가족의 특별할 것 없는 개인사 또는 가족사를 통해 시대까지 자연스럽게 들여다보는 맥락에서 그렇다. 


이 가족의 네 아이 중 하나가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라고 하는데, 그의 개인사를 가져오면서 가정부 클레오의 시선을 취하고 있어 보다 자유롭고 객관적으로 가족사를 전달할 수 있었다. 


조망하는 듯한 정적이게 스며드는 카메라 워킹과 일절 OST 없이 자체 사운드로만 채우는 시도가 완벽히 들어맞았다. 흑백인 점까지 더불어, 이 개인사와 가족사에 오롯이 천착할 수 있게 철처하게 판을 짜서 준비를 한 것처럼 보인다. 


영화를 만듦에 있어 완벽한 단 하나의 정답은 있을 수 없다. 다만, 무수한 정답들이 있을 뿐일진대 이 영화는 그 무수한 정답들 중 하나의 완벽한 모범이 아닐까 싶다. 영화의 주요 요소를 모두 포기하면서 또는 모든 것을 집약시켜 '개인과 시대와 역사'라는 영화의 가장 큰 목적 중 하나를 보여줬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상 길이 남을 또 하나의 명작을 목도했다. 


진실과 진심을 담은 이 영화


진실과 진심을 담은 이 영화 한 편이면 족하다. 영화 <로마>의 한 장면. ⓒ넷플릭스


1968년은 전 세계적으로 혁명의 물결이 진하게 흘러간 의미있는 해이지만, 멕시코에게는 라틴아메리카 최초의 올림픽 개최로 인한 경제 성장의 해이다. 이듬해 수도 멕시코시티에는 지하철이 개통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1968년 멕시코시티에서는 민주화와 경제 성장 균형 분배 요구, 부정부패 척결 시위가 격렬히 벌어지기도 하였다. 급격한 경제 성장의 필연적인, 필연적이어야 하는 사회적 갈등의 한 모습이다. 그때 정부는 틀라텔롤코 광장에서 시위대를 향해 대학살극을 벌여 수백 명이 희생당하고 수천 명이 다쳤다. 


1971년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로마>는 이런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의 당대 일련의 사회적 갈등을 유추할 수 있는 면면들을, 한 개인과 가족의 사소하다면 사소하달 수 있는 일들과 자연스럽게 병치시킨다. 


요란하지 않고 담담하게, 깊고 따뜻하게, 감당하기 힘들지만 꿋꿋하게 나아가는 클레오가 자신의 삶에서 주인공이 되는 과정을, 이 가족의 진정한 일원이 되어 사랑하고 사랑받는 과정을, 견딜 수 없는 개인과 가족과 사회의 복잡다단한 일들이 밀려와도 무너지지 않고 단단하고 꿋꿋하게 일어나는 과정을, 우리는 진실과 진심을 담은 영화 한 편으로 느낄 수 있다.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Posted by singenv
가족, 개인, 넷플릭스, 로마, 멕시코, 사회, 시대, 알폰소 쿠아론, 역사, 영화

트랙백

※ 스팸 트랙백 차단중 ...{ ? }

멕시코 '죽은 자의 날' 흩어진 모든 것이 모이는 시간 <코코>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8. 2. 7. 08:00



[리뷰] <코코>


<코코> 포스터.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픽사, 디즈니, 혹은 픽사&디즈니는 거의 매해 우리를 찾아와 거의 실망을 안기지 않았다. 세상이 점점 디지털화 되어가는 만큼 최첨단 디지털 기술로 나날이 완벽해가는 애니메이션을 선보이는 동시에, 살아가는 데 기본 중에 기본이 되는 지극한 아날로그적 가치를 선보인다. 그 조화는 가히 환상적이다. 


픽사&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이 아이들보다 어른들에게 더 와닿는 연유가 역설적으로 거기에 있다 하겠다. 조금이라도 더 어른일수록 조금이라도 더 아날로그적인 습성이 남아 있지 않겠는가. 그걸 접해본 사람이라면 그리워하지 않을 수 없고 말이다. 영화 <코코>의 기본은 '가족' '사랑' '우정' '화해' '기억' 등의 가치이다. 


<코코>는 멕시코라는 이질적이라면 이질적이고 친숙하다면 친숙한 곳의 '죽은 자의 날'이라는 멕시코 전통 명절을 배경으로, 현실과 비현실이 만나고 삶과 죽음이 모이며 흩어진 가족과 멀어진 사랑이 다시 만난다. 그 가장 중요한 키를 '코코'가 지니고 있지만, 그 사이사이를 이어주는 이들은 따로 있다. 


죽은 자의 날, 미구엘의 모험 아닌 모험


죽은 자의 날, 미구엘의 모험 아닌 모험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아빠가 음악가인 한 가족이 있었다. 그들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아빠는 꿈을 이루기 위해 가족을 뒤로 하고는 떠나버린다. 홀로 남은 엄마는 살기 위해 신발을 만든다. 그녀는 신발 만드는 법을 온가족에게 퍼뜨리고 집안 자체가 신발 만드는 기업이 된다. 여기 그 아빠와 엄마를 고조할아버지와 고조할머니로 둔 미구엘이 있다. 하지만 그는 음악을 좋아라 한다...


미구엘의 고조할아버지 때문에 멕시코에서 유일하다시피 음악을 멀리하게 된 미구엘의 집안, 그럼에도 그는 멕시코 최고의 음악가 에르네스토 델라 크루즈의 '기회를 잡아라'라는 말을 듣고는 꼭 음악가 광장에서 연주를 하려고 한다. 할머니가 부셔버린 기타 대신 그가 택한 기타는 델라 크루즈 납골당에 전시해놓은 기타. 


하필 그 날은 '죽은 자의 날', 미구엘은 그 기타를 훔쳐 한번 튕기는 순간, 죽은 자의 세계로 가버리고 만다. 미구엘은 다시 산 사람의 세계로 돌아가고자 하는데, 이멜다 고조할머니는 음악을 절대 하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그의 저주를 풀어주고자 한다. 하지만 미구엘은 그런 조건이라면 사절! 우연한 기회에 자신의 고조할아버지라고 믿게된 델라 크루즈에게 축복을 받고자 길을 떠난다. 


기억, 사랑, 통섭...


기억, 사랑, 통섭...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죽은 자의 날'은 스페인의 침략 이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멕시코의 전통 명절이다. 해골과 뼈 모양의 조형물이나 사탕을 만들고, 죽은 사람의 사진과 이름을 제단에 올리고는, 여러 종류의 축제를 연다. 이승과 저승이 이때만큼은 한 곳에 모여 어울리는 것이다. 영화에서도 굉장히 중요하게 비치는 바, 제단에 사진과 이름이 올라가 있지 않으면 저승에 있는 이가 이승으로 갈 수 없다. '기억'의 소중함...


멕시코에서 음악은 곧 삶이다. 멕시코인들은 비록 고단한 삶이지만 와중에 '사랑'을 최고의 가치로 치며 스페인 등의 풍습과 문화가 혼합된 특유의 낭만과 열정이 이를 뒷받침한다. 음악은 사랑을 표현하기 위한 최고의 수단인 것이다. 한편 잘 드러내려고 하진 않지만 이면에 항상 있는 슬픔 또한 음악만큼 잘 표현해낼 수 있는 수단이 없다. 미구엘의 가족이 음악으로 흩어졌다지만 반드시 음악으로 다시 뭉칠 수밖에 없을 거다. 


<코코>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는 픽사&디즈니가 추구하는 가치와 일맥상통하는 '통섭'이 아닐까 한다. 서로 소통하고, 전체 또는 부분들을 하나로 잇는 것 말이다. 미구엘과 그의 강아지 친구 단테는 참으로 꼬이고 꼬여 대대로 끊어져버린 태초의 끈을, 음악이라는 그 끈을 다름 아닌 음악으로 잇고자 한다. 그 와중에 가족이 있고 사랑이 있고 화해가 있고 기억이 있다. 그 작업은 쉽지 않지만 반드시 해내고 말 것이다. 


삶과 죽음이 하나되는 시간


삶과 죽음이 하나되는 시간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아쉬운 부분도 없지 않아 있다. 가족이라는 명제를 다시 생각해야 하는 시대에 전통적이기 짝이 없는 케케묵은 가족 개념을 선보이고 있다는 점, 살아생전 얼마나 잘 살았냐에 따라 죽어서도 계급이 나뉘어 지는 듯한 모습 등 말이다. 보편적이고 아날로그적인 가치를 전하기 위해 희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지만, 조금 더 신경 써 주었으면 하는 부분들이다. 


그럼에도 영화는 급기야 20년이 넘은 기억부터 5년 전 기억까지 불러낸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증조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외삼촌이 돌아가셨을 때... 어떤 건 희미해져 한 장면 정도밖에 기억나지 않고, 어떤 건 여전히 생생하기 그지 없어 가슴이 아리고 쓰린 그 기억들이 차례로 떠오른다. 그들이 기억하는 게 그들로 하여금 저승에서조차 사라지지 않게 한다는 영화 속 깨달음. 


한편, 충격이라면 충격일 수 있지만 따뜻하기 그지 없게 다가온 부분도 거기에 있다. 삶과 죽음이 하나되는 장면,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한 곳에 모여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삶과 죽음 모든 것들을 축복한다. 우리에게 죽음은 너무나도 먼, 무섭고 두려운 무엇이 아닌가. 우리도 제사를 지내며 조상님을 모시지만 그건 굉장히 엄숙한 자리가 아닌가. 멕시코가 부러워지는 것이다, 이 영화 한 편으로.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Posted by singenv
가족, 기억, 멕시코, 사랑, 삶, 음악, 죽음, 코코, 통섭

트랙백

※ 스팸 트랙백 차단중 ...{ ? }

인간의 구원과 멕시코 역사의 질곡을 짚어보다 <여자 목숨으로 사는 남자>

신작 열전/신작 도서 2015. 10. 19. 08:00



[서평] <여자 목숨으로 사는 남자>



<여자 목숨으로 사는 남자> 표지 ⓒ새움


마야, 아즈텍 등의 당대 최고 문명을 이룩하고, 스페인의 일방적 식민지 통치 시대를 거쳐, 미국의 영향을 받은, 다분히 혼합적인 문화 색체를 띠고 있는 나라 멕시코. 그래서인지 멕시코 하면 어딘지 불안하고 위험한 나라라는 편견과 함께, 정열적이고 충동적인 느낌이 강하다. 그야말로 온갖 것들을 들이부어도 다 녹여버리는 용광로와 같은 나라이다.


우리나라 소설가 구광렬의 <여자 목숨으로 사는 남자>는 그런 멕시코의 특징을 고스란히 소설로 옮겼다. 사실 멕시코 소설이나 마찬가지다. 충동적이고 종잡을 수 없는 전개, 평화롭지만 불안이 숨 쉬고 있는 공간, 위험하기 짝이 없지만 정열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함께 한다. 그 중심에 유학생 강경준이 있다.


소설은 1980년대를 배경으로, 유학생 강경준이 어이없기 짝이 없는 이유로 세계에서 가장 악명 높은 나우칼판 감옥에 갇히면서 시작한다. 고문과 날조, 배신이 이어진다. 돈 때문이었다. 하지만 제도혁명당의 부정부패가 절정에 이르고 나라 경제는 외환위기로 파탄이 나며, 나라꼴이 말이 아니었기에 어이없는 이유는 어이없지 않은 것이었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시대에는 오히려 상식이 비상식이 되지 않는가. 당시 우리나라와 다를 바 없는 멕시코였다.


대지진으로 강경준은 탈옥 아닌 탈출을 감행한다. 그는 감옥 생활 중에 사랑하는 연인을 얻었는데, 대지진 때문에 그녀를 잃고 만다. 여자 목숨으로 사는 남자 강경준으로서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강경준은 곧 첼탈족 전설에 나오는 여자 목숨으로 사는 남자, 전사 치첸이었다. 만년에는 ‘빨리 죽었으면’ 하곤 ‘죽음을 기다리는 즐거움’으로 살았다는 그, 강경준에게도 그와 같은 삶이 남아 있었다.

 

강경준은 세계 최악의 나우칼판에서 세계 최고의 파라다이스 치아파스로 간다. 첼탈족 전설은 그곳의 어느 노파에게서 들은 말이다. 강경준은 그곳에서 파라다이스에 걸맞은 생활을 이어간다.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조차 들지 않을 정도로. 또 다른 연인을 만나 결혼을 하고 아기도 갖는다. 하지만 고래 힘줄보다 더 질긴 인연이 그들을 찾아온다. 나우칼판 감옥에서 그를 괴롭혔던 간수들이었다. 결국 강경준은 그녀를 잃고 그녀의 언니와 함께 반란군에 합세한다. 그와 함께 하는 여자는 죽음을 면치 못할 터인데...


"‘기회의 땅’으로 인식되어온 미국은 과연 평등한 국가일까? 윌슨이 민족자결주의 원칙을 언급했을 때 그는 백인국인 벨기에의 권리를 염두에 두었던 것이지,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이나 제3세계의 유색인종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불굴의 백인우월주의자’였던 그는 각료회의에서 ‘검둥이’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뱉었으며, 흑인에게 주어졌던 관리직마저 빼앗았다. 미합중국이 정착한 해는 언젠가? 미국 역사교과서로 공부하는 학생들은 당연히 1620년이라 답할 것이다. 백인들이 인디언을 몰살시키고 정착했던 버지니아 지역의 역사는 지워버리고, 평화적 정착에 성공한 뉴잉글랜드 지방을 최초 정착지로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의 천연두 등 악성 전염병이 신대륙에 번져 면역력이 전혀 없는 인디언들이 힘없이 죽어감에도, 백인 식자층들은 이러한 천연두 같은 역병을 두고 야만인 제거를 위한 ‘신의 놀라운 기적이자 은총’이라고 했다. 콜럼버스 일행이 도착했을 무렵 아메리카 대륙에는 적게는 800만, 많게는 1,600만 정도의 원주민이 살고 있었다. 이들은 수백 개의 부족국가로 나뉘어져 있었으며, 그중에서 멕시코에 터를 잡은 마야와 아즈테카, 페루 지역에 터를 잡은 잉카족은 그 당시 유럽 문명과 궤를 달리하였을 뿐, 지구상 그 어떤 민족보다 훌륭한 문명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대륙의 정복자들은 진보와 문명의 이름으로 불과 십여 년 만에 절반 이상의 원주민을 학살하고 말았다." (본문 중에서)


소설은 짧지만 서사는 거대하다. 멕시코 중부와 하부를 관통하며, 영어(囹圄)의 몸에서 멕시코의 국민 영웅까지. 그와 함께 한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 그중에서도 여자의 목숨으로 살아간 사람. 결국엔 나라를 위해 그 목숨을 가차 없이 내던진다. 작가는 이 모든 것을 다루는 데 전혀 거침이 없다.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이 활극에는 사랑과 배신, 증오와 용서, 기쁨과 슬픔, 의문과 깨달음, 혁명과 영웅 등 인간이라는 대서사시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있다.


거침없는 와중에도 곳곳에 서정적인 울림이 있는 건 작가가 시인이기도 하겠지만 멕시코 특유의 이성적이지만은 않은, 충실하게 감정적인 느낌과 일맥상통하는 감정선을 따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서사의 품에서 참으로 많은 에피소드들이 혼란스러운 듯 일정하게 진행되는 건 읽는 이에게 축복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거대한 소용돌이를 헤쳐 나가는 강경준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구원과 멕시코 역사의 질곡을 짚어볼 수 있다. 


여자 목숨으로 사는 남자 - 10점
구광렬 지음/새움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Posted by singenv
구광렬, 나우칼판, 멕시코, 삶, 여자 목숨으로 사는 남자, 죽음, 파라다이스
  • BlogIcon 공수래공수거
    2015.10.19 12:15 신고

    요즈음 미국 역사를 잠시 되짚어 볼 기회가 있었는데
    미국도 모순이 많은 나라임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 BlogIcon singenv
      2015.10.25 15:26 신고

      미국 역사야 말로 모순의 소용돌이죠... 모순덩어리 그 자체입니다.

트랙백

※ 스팸 트랙백 차단중 ...{ ? }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블로그 이미지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by singenv

공지사항

  • 댓글에 대한 공지
  • [책으로 책하다 도서 목록]
  • <오마이뉴스> 서평/리뷰 송고 방침
  • 모든 이미지는 인용 목적으로 사용..

    최근...

  • 포스트
  • 댓글
  • 트랙백
  • 여전히 한국 경제를 뒤흔들고 있는..
  • 영화계 '왕들'이 귀환해 만든 위대..
  • 결혼에서 이혼으로 가는 선상의 순..
  • 개인 성장, 사회 변화와 함께 하는..
  • 밖은 초대형 허리케인 안은 초대형..
  • 더 보기
  • 이 작품이 사랑받지 않을 날이 오길..
    ㅇㅇ ㆍ 10.22
  • 이해하진 않더라도 또는 못하더라도..
    singenv ㆍ 10.01
  • 누구나 한번은 거쳐간 시간이지만..
    여강여호 ㆍ 10.01
  • 결국엔 보는 이들이 느끼는 나름의..
    여강여호 ㆍ 09.20
  • 위기는 항상 생기기 마련인데, 위기..
    singenv ㆍ 07.01

태그

  • 관계
  • 사랑
  • 역사
  • 성장
  • 가족
  • 죽음
  • 삶
  • 영화
  • 아포리즘
  • 가해자
  • 폭력
  • 넷플릭스
  • 미국
  • 인간
  • 일본
  • 천재
  • 소설
  • 욕망
  • 현실
  • 전쟁
  • 중국
  • 책
  • 만화
  • 행복
  • 책으로 책하다
  • 피해자
  • 재미
  • 연기
  • 희망
  • 여성

글 보관함


  • 2019/12
    (5)

  • 2019/11
    (13)

  • 2019/10
    (22)
«   2019/12   »
일 월 화 수 목 금 토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링크

카테고리

다양한 시선 (1253)N
신작 열전 (546)
신작 도서 (296)
신작 영화 (250)
넷플릭스 오리지널 (51)N
모모 큐레이터'S PICK (32)
지나간 책 다시읽기 (108)
한국 대표 소설 읽기 (11)
오래된 리뷰 (185)N
생각하다 (231)
황창연 신부의 삶 껴안기 연재 (5)
그대 그리고 나 (17)
서양 음악 사조 (8)
인권 선언 문서 (4)
조선경국전 (5)
중국 영화사 개괄 (5)
출판계 살리기 프로젝트 (3)
카프카의 편지 (6)
팡세 다시읽기 (14)
명상록 다시읽기 (12)
보고 또보고 계속보기 (46)
감독과 배우 콤비 (10)
일기로 읽는 히스토리 (6)
궁극의 리스트 (8)
제9의 예술, 만화 (14)
독립영화의 힘 (4)
생생 스포츠 (10)
내맘대로 신작 수다 (17)
첫 문장-아포리즘 (8)

카운터

Total
1,950,277
Today
208
Yesterday
193
방명록 : 관리자 : 글쓰기
singenv's Blog is powered by daumkakao
Skin info material T Mark3 by 뭐하라
favicon

책으로 책하다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 태그
  • 링크 추가
  • 방명록

관리자 메뉴

  • 관리자 모드
  • 글쓰기
  • 다양한 시선 (1253) N
    • 신작 열전 (546)
      • 신작 도서 (296)
      • 신작 영화 (250)
    • 넷플릭스 오리지널 (51) N
    • 모모 큐레이터'S PICK (32)
    • 지나간 책 다시읽기 (108)
      • 한국 대표 소설 읽기 (11)
    • 오래된 리뷰 (185) N
    • 생각하다 (231)
      • 황창연 신부의 삶 껴안기 연재 (5)
      • 그대 그리고 나 (17)
      • 서양 음악 사조 (8)
      • 인권 선언 문서 (4)
      • 조선경국전 (5)
      • 중국 영화사 개괄 (5)
      • 출판계 살리기 프로젝트 (3)
      • 카프카의 편지 (6)
      • 팡세 다시읽기 (14)
      • 명상록 다시읽기 (12)
    • 보고 또보고 계속보기 (46)
      • 감독과 배우 콤비 (10)
      • 일기로 읽는 히스토리 (6)
      • 궁극의 리스트 (8)
    • 제9의 예술, 만화 (14)
    • 독립영화의 힘 (4)
    • 생생 스포츠 (10)
    • 내맘대로 신작 수다 (17)
    • 첫 문장-아포리즘 (8)

카테고리

PC화면 보기 티스토리 Daum

티스토리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