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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딜레마'에 해당되는 글 4건

제목 날짜
  • 가족 중 한 명을 죽여야 한다면, 누굴? <킬링 디어> 2018.08.03
  • 답을 찾을 수 없는 딜레마, 누구의 선택과 결정이 옳은가? <아이 인 더 스카이> 2016.07.15
  • 여러 모습과 생각 거리를 보여주는 완벽한 히어로물 <왓치맨>(2) 2015.09.14
  • <방황하는 칼날> 과연 누가 용서 받지 못할 자인가?(1) 2014.06.09

가족 중 한 명을 죽여야 한다면, 누굴? <킬링 디어>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8. 8. 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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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킬링 디어>


영화 <킬링 디어> 포스터. ⓒ오드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와 함께 고대 그리스의 3대 비극작가 중 한 명 에우리피데스, 그의 최고 작품 중 하나로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가 전해진다. 그리스 연합군 총사령관 아가멤논은 아울리스 섬에서 함대를 출발시켜 트로이로 진격해야 했는데, 바람이 멎는 바람에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예언자 칼카스를 통해 수호신 아르테미스의 노여움을 풀어야 한다는 신탁을 듣는다. 아가멤논이 아르테미스의 사슴을 죽이는 실수를 저질렀기 때문이었다. 그는 큰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친다. 그렇게 아가멤논은 트로이전쟁을 승리로 이끈 그리스의 영웅이 된다. 


<송곳니>, <더 랍스터> 등으로 전 세계 평론가들과 씨네필들의 열열한 지지를 받은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은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를 모티브 삼아 신작 <킬링 디어>를 만들었다고 한다. 운명, 딜레마, 가부장제 등의 이야기와 질문과 비판을 곁들였다. 가히 고대 그리스 최고 작품에 비견될 만한 각본의 성취를 인정받아 제70회 칸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 치밀함을 엿보자. 


가족 중 한 명을 골라 죽여야 한다


영화 <킬링 디어>의 한 장면. ⓒ오드



외과의 스티븐(콜린 파렐 분)에겐 젊은 친구가 한 명 있다. 마틴(배리 케오간 분)이라는 이름의 그 친구는 스티븐의 큰딸 학교 친구로 스티븐처럼 심장병 전문의가 되고 싶다고 한다. 병원에도 들르고, 산책도 같이 하고, 서로의 집도 오간다. 마틴의 집에 갔을 때 마틴 엄마의 유혹을 뿌리치고 나온 후 스티븐은 마틴의 연락을 피한다. 


집착적인 행동을 보이는 마틴, 얼마 지나지 않아 스티븐 가족들에게 이상 징후가 발견된다. 먼저 작은아들 밥이 두 다리를 쓸 수 없어진다. 육체, 정신, 심리 검사를 다 해보았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다. 머지 않아 밥은 밥도 먹지 않게 되고, 큰딸 킴도 두 다리를 쓸 수 없어진다.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마틴이 스티븐에게 설명한다. 사실상 협박이다. 마틴의 아빠가 스티븐에게 죽었다는 것이다. 그가 맡은 환자였던 마틴의 아빠는 수술대 위에서 죽었다. 마틴은 스티븐이 자신의 아빠를 죽인 것처럼 스티븐이 자기 가족 중 한 명을 죽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균형이 맞는 게 아니냐고. 


만약 스티븐이 직접 죽이지 않는다면 모두 병들어서 죽을 거라는 것이다. 밥이 죽고 킴이 죽고 스티븐의 부인 안나(니콜 키드만 분)도 죽을 거란다. 수족이 마비될 것이고, 먹는 걸 거부해서 기아에 허덕이게 될 것이며, 급기야 눈에서 피가 흐를 거고, 결국 죽을 거라고 말이다. 이 믿을 수 없는 예언을 믿을 수밖에 없는 스티븐은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정말 가족 중 한 명을 직접 죽일 것인가, 죽인다면 누굴 죽일 것인가. 


종교적 운명과 우연적 딜레마


영화 <킬링 디어>의 한 장면. ⓒ오드



아가멤논이 아르테미스 신의 노여움을 사서 결국 큰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스티븐은 마틴의 분노를 사서 결국 자기 가족 중 한 명을 직접 죽일 수밖에 없게 될 운명에 처한다. 거스를 수 없는 운명처럼 눈앞에서 벌어지는 믿을 수 없는 일들 때문에 우연으로 치부할 수도 없다. 


신의 힘에 의해 이미 정해진 처지를 바꿀 능력 따위는 인간에게 없다. 특히 과학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인간에게 들이닥친 초자연적인 힘에 의한 모습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할 수 있는 건 모조리 해보겠지만, 그저 지켜보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종교라는 게 그런 것인가, 종교인들이 할 수 있는 게 그런 것인가. 


영화는 운명의 굴레에 종속되어버린 한 가족의 모습을 통해 종교의 한 면모를 통렬하게 비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한편, 이미 운명의 굴레 속에 들어간 또는 들어갈 수밖에 없게 된 일개 인간이 겪는 끔찍한 딜레마도 보여준다. 과연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말이다. 


운명이 신의 영역이라면 딜레마는 인간의 영역이다. 운명이 선택되어지는 거라면 딜레마는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옳고 그름, 선과 악이 나뉘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치명적이고 어렵기 그지없다. 그럴 때 찾는 게 아이러니하게도 운명이다. 절대로 선택할 수 없는 난제에 부딪혔을 때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타개하려는 게 그것이다. 영화는 딜레마에 처한 한 인간의 나약함과 무책임한 모습을 통해 종교를 비꼬고 운명을 무시하는 이들도 통렬하게 비꼬고 있는 것 같다. 


가부장제


영화 <킬링 디어>의 한 장면. ⓒ오드



자, 우리 스티븐의 얼굴을 보자. 얼굴을 뒤덮다시피 하는 '털'의 존재를 볼 수 있다. 밥은 마틴에게 겨드랑이 털을 보여줄 것을, 마틴은 스티븐에게 겨드랑이 털을 보여줄 것을 청한다. 이 세 남자 사이에서 나이순대로 보여지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은 털로 상징되는 권력, 그 본능적이고 동물적인 모습이다. 


극중에서 안나는 말한다. 왜 남편이 잘못한 걸 가지고 남편 아닌 가족들이 피해를 봐야 하느냐고 말이다. 신의 대리인 마틴의 논리는 스티븐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스티븐'이 마틴의 아빠를 죽였으니, '스티븐'이 자신의 가족 중 한 명을 죽여야 한다는 것. 등가교환이라면 스티븐이 죽어 마땅하나, 신은 '가부장제'라는 절대적 법칙을 만들어 내렸으니 가장인 스티븐이 주체가 되어 가족을 죽이는 '고통'을 맞보아야 한다는 것.


이 진중하고 으스스하고 가슴 졸이게 하는 영화에서 가장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다. 당연한 듯 하나하나 실행되고 실행에 옮기려고 하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태이기도 하다. 아마도 그렇게 느끼면 느낄수록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게 그만큼 철처히 들어맞았다고 할 수 있겠다. 가부장제에 대한 통렬한 비꼼. 


여러 가지 것들을 통렬하게 비꼬는 와중에 그에 걸맞지 않아 보여 그 비꼼의 수위가 더욱 강해지게 만드는 분위기 연출에는 OST의 역할이 지대했다. 클래시컬한 OST들은 영화를 굉장히 날카롭고 불편하게 만든다. 모든 배우들이 발성하는 높낮이 없는 낮고 무성의한 목소리톤과 기묘하게 어울린다. 두 번 다시 보기 싫은 영화이지만, 여러 가지 의미로 두 번 이상 봐야 할 것 같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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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제, 가족, 그리스 비극, 딜레마, 요르고스 란티모스, 종교, 죽음, 킬링 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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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을 찾을 수 없는 딜레마, 누구의 선택과 결정이 옳은가? <아이 인 더 스카이>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6. 7. 1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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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아이 인 더 스카이>


영화 <아이 인 더 스카이>는 작금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테러와 그에 따른 무고한 피해를 눈 앞에서 보고 있는 우리들에게 답을 찾기 힘든 딜레마적 상황을 던진다. 영화 <아이 인 더 스카이> 포스터. ⓒ엔터테인먼트 원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 한 여자 아이가 평화롭게 훌라후프를 돌린다. 그러며 시내에 나가서 빵을 팔기도 한다. 지극히 평범하고 평화로운 아이의 모습이 왠지 을씨년스럽다. 무슨 일인가 벌어질 것만 같다. 


소말리아의 극단주의 테러 조직 알 샤바브의 수장급들 생포를 위해 미국, 영국, 케냐가 합동 작전을 펼친다. 그들이 모인 곳은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의 한적한 곳. 생포 작전에 돌입하려던 찰나, 최첨단 초소형 드론의 활약으로 그들이 자살 폭탄 테러를 하려는 사실을 알아낸다. 우여곡절 끝에 생포 작전은 사살 작전으로 바뀐다. 사살 작전을 위해선 드론 미사일 투하가 필요하다. 


답을 찾을 수 없는 딜레마 상황


도무지 답을 찾을 수 없는 딜레마가 있기 마련이다. 반드시 수많은 인명 피해가 수반될 자살 폭탄 테러를 사전에 제거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부수적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가. 아니면 아직 벌어지지도 않은 일로 부수적 피해를 감수할 수는 없는 것인가. 영화 <아이 인 더 스카이>는 작금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테러와 그에 따른 무고한 피해를 눈 앞에서 보고 있는 우리들에게 답을 찾기 힘든 딜레마적 상황을 던진다. 


사살 작전을 위한 미사일 투하 진전 한 여자 아이가 중상 이상의 피해가 확실시되는 곳으로 와서 빵을 판다. 총리, 장관, 장군, 작전지휘관, 미사일 조종사 등 작전에 관련된 그 누구도 판단을 내리기 힘들다. 영화 <아이 인 더 스카이>의 한 장면. ⓒ엔터테인먼트 원



급기야 사살 작전을 위한 미사일 투하 진전 한 여자 아이가 중상 이상의 피해가 확실시되는 곳으로 와서 빵을 판다. 총리, 장관, 장군, 작전지휘관, 미사일 조종사 등 작전에 관련된 그 누구도 판단을 내리기 힘들다. 법적으로, 정치적으로, 도덕적으로, 완벽한 결정이 있을 수 없다. 어떻게 해야 할까. 


도덕과 법, 누구의 선택과 결정이 옳은가?


영화는 미사일 투하에 대한 논쟁과 선택과 결정이 주를 이룬다. 작전에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지휘관과 장군은 자살 폭탄 테러로 입게될 엄청난 인명 피해를 사전에 없애기 위해 반드시 미사일을 투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에 반해 내무장관, 법무장관, 국무장관, 국방장관들은 정치적 후폭풍을 두려워 하면서 결정을 서로 미룬다. 이해는 되지만 정녕 비열하고 저열한 행태가 아닐 수 없다. 


한편 작전의 직접적 지휘관은 그 어떤 정치적, 도덕적 판단 없이 오로지 법적인 판단을 앞세우며 '임무 완수'에만 매달린다. 물론 추후 입게 될 수 있는 엄청난 인명 피해를 사전에 제거한다는 명분이 확고하다. 그렇지만 부수적 피해를 조작하면서까지 임무를 완수해야 할 이유는 뭘까. 결국 임무 완수에 따른 자신의 위신과 영달이 아닌가. 


작전 지휘관은 어떤 정치적, 도덕적 판단 없이 법적인 판단을 앞세우며 '임무 완수'에만 매달린다. 부수적 피해를 조작하면서까지 임무를 완수해야 할 이유는 뭘까. 자신의 위신과 영달이 아닌가. 영화 <아이 인 더 스카이>의 한 장면. ⓒ엔터테인먼트 원



이 딜레마에서 가장 큰 문제는 어느 누구의 선택과 결정은 옳고 어느 누구의 선택과 결정은 그르지 않다는 점이다. 전부 다 옳다고 할 수도 있고 전부 다 그르다고 할 수도 있다. 보는 이에 따라서, 처한 상황에 따라서, 신념과 환경에 따라서. 그래서 장관들의 비열하고 저열한 행태와 지휘관의 막무가내 임무 완수의 이유를 무조건 그르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누구라도 그때 그 자리에 있다면 그렇게 했을 수 있다. 


사태를 바라보는 넓은 시야가 필요하다


영화는 직접적 피해자(폭탄 테러 조직)의 입장은 아예 다루지 않은 채 직접적 가해자와 간접적 가해자, 간접적 피해자를 다룬다. 사실 간접적 피해자도 입장 서술이 전혀 되지 않고 일방적으로 당하기 때문에 다뤄지지 않는다고 보면 맞겠다. 그렇게 볼 때 오로지 가해자의 입장만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간접적 가해자의 입장이 애매하다. 다름 아닌 조종사인데, 미사일 투하 버튼을 누르는 이로서 윗선의 결정에 따라 실행만 할 수 있다. 그 결정에 따라 무고한 생명의 목숨을 빼앗게 되더라도 실행을 해야 하고 그 심리적 피해는 고스란히 실행자에게 돌아온다. 가해자이자 피해자이다. 그렇지만 아무도 그들의 피해는 보상해주지도 보살펴주지도 않는다. 


영화가 가해자의 입장만 서술한 건 영화적으로 괜찮은 선택이었다. 피말리고 답답하고 한숨 나오는 결정의 시간을 긴박감있게 보여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설프게 폭탄 테러의 당위성을 보여주며 스케일을 확장시켰다면 자칫 이도저도 아니게 될 수 있었다. 그들이 테러를 하려는 이유를 아예 배제함으로서 가해자의 딜레마에 더 집중할 수 있었고, 이 사태의 한 면을 거의 완벽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사태를 바라볼 땐 더 넓은 시야가 필요하다. 맹목적이고 절대적인 사고를 지양해야 한다. 극단적 사고와 행동을 보이는 그들을 극단적으로 제압하려고 할 때는 심사숙고가 필요하다. 영화 <아이 인 더 스카이>의 한 장면. ⓒ엔터테인먼트 원



그렇지만 모든 일에는 양면이 있다. 영화는 영화고, 사태 자체를 바라볼 땐 더 넓은 시야가 필요하다. 맹목적이고 절대적인 사고를 지양해야 한다. 극단적 사고와 행동을 보이는 그들을 극단적으로 제압하려고 할 때는 심사숙고가 필요하다. 물론 그것이 필요한 것과 그것이 가능하다는 건 또 다른 얘기다. 누구라도 필요하다는 건 알겠지만 가능할지는 모르지 않을까. 그래도 해야하는 건,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된 건지 태초의 연유부터 따져보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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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 결정, 딜레마, 선택, 아이 인 더 스카이, 임무, 테러,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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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모습과 생각 거리를 보여주는 완벽한 히어로물 <왓치맨>

지나간 책 다시읽기 2015. 9. 1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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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 읽기] <왓치맨>



<왓치맨> 표지 ⓒ시공사



때는 냉전 시대. 장소는 미국. 세계를 소련과 양분하며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던 시절입니다. 과거 나치 그리고 공산주의와 싸우며 나라를 지켜내는 등 혁혁한 공을 세웠던 히어로 중 한 명인 '코미디언'이 죽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살해를 당했죠. 한때 히어로였던 그를 죽일 만한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심히 의문입니다. 또 다른 히어로 '로어셰크'는 그의 죽음 뒤에 분명히 더 큰 무엇이 있다고 의심하고 여기저기 캐고 다닙니다. 동시에 다른 히어로들을 찾아가 위험신호를 보내요. 하지만 그들은 별다른 반응이 없죠. 


<왓치맨>은 로어셰크의 추리와 활동이 한 방면을 차지합니다. 히어로의 추락, 그 상징과도 같은 인물인 로어셰크는 국가(경찰)의 추격을 받으며 숨어서 생활하고 있는데요. 그들이 아닌, 완전히 다른 위험 세력을 감지한 것 같습니다.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히어로들에게도 검은 손길이 뻗쳐 가고 있다는 것을요. 


죽음을 당한 코미디언과 로어셰크를 비롯해 과거의 영광을 함께한 히어로들은 누가 있을까요? 로어셰크가 하나하나 찾아가는 길을 따라가 봅니다. 4명인데요. 초월적 존재인 '닥터 맨해튼', 닥터 맨해튼의 애인 '2대 실크 스펙터', 발명가이자 재력가 출신의 '2대 나이트 아울', 가장 현명한 천재 '오지맨디아스'까지. 이들 중 코미디언만이 유일하게 국가의 하수인 히어로 역할을 계속 해왔고, 로어셰크는 비공식적으로 히어로 역할을 해왔습니다. 


다른 4명은 코스튬 히어로를 법적으로 금지하는 '킨 법령'이 시행되자마자 은퇴하였죠. 그후 닥터 맨해튼과 실크 스펙터는 함께 국가의 비밀 기관에서 지내게 되었고, 나이트 아울은 평범한 재력가로서의 삶으로 돌아왔으며, 오지맨디아스는 정체를 밝히고는 글로벌 기업의 수장으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평화 시대에 너희들 같은 살인자(히어로)는 필요 없다


히어로가 은퇴를 하고, 그것도 모자라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간다니 뭔가 이상하지요? 다른 히어로물과는 전혀 다른 <왓치맨>만이 가지는 설정인데요. 다른 히어로들이 언제까지고 계속 히어로를 한다거나, 아예 사라진다거나, 죽는다거나 하는 설정임에 반해 <왓치맨>의 히어로들은 대를 이어 히어로를 하거나 히어로를 동경해서 히어로를 하거나 해서 국가에 의해 쫓겨 나죠. 토사구팽 당했다고 할까요. 그 중심엔 평화 시대에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이 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건 이런 겁니다. '평화 시대에 너희들 같은 살인자는 필요 없다.' 그럼 생각해 봅시다. 전쟁이 일어나면 살인자들이 필요하다는 것일 텐데, 이거야 말로 지독히 모순적인 반인주의 아닌지요? 평화 시대에도 살인자가 필요 없다면, 전쟁이 일어나도 필요 없어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든 대화와 타협으로 풀어나가도록 해야겠지요. 


하지만 폭력이 대화와 타협보다 앞선다는 것 쯤은 쉽게 알 수 있죠. 묻지마 살인 앞에서 말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선의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계속해서 또다시 전쟁이 일어날 기미가 보이고, 결국 제3차 대전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가장 현명한 천재 오지맨디아스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에 이르죠. 전 인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이 그것입니다. 이건 전쟁에서 대화와 타협이냐 폭력이냐 하는 문제를 초월하는 철학적인 문제를 야기시킴과 동시에, 전자의 문제를 완전히 무력화시키죠. 


오지맨디아스는 뉴욕 절반을 날려버리며 3백만 명의 목숨을 한 방에 앗아가는 조치를 취해요. 그로 인해 전쟁을 멈추고 전 인류가 알 수 없는 새로운 적에 맞서려는 움직임을 보일 것이라 예측한 것이죠. 과연 가장 현명한 천재의 예측에 따라 전 인류는 그런 움직임을 보입니다. 전 인류를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었을 전쟁은 한순간에 멈추죠. 3백만 명의 희생 덕분에. 


3백만 명의 희생이냐, 예측 가능한 전 인류의 죽음이냐


자, 여기서 엄청난 딜레마가 등장합니다. 3백만 명의 희생이냐, 충분히 예측 가능한 전 인류의 죽음이냐. 분명한 건 어느 누구도 이 딜레마에 동참하기 싫다는 점입니다. 또 만약 이 딜레마에 동참하게 되면 대부분은 3백만 명의 희생에 손을 들어주지 않을 거라는 점입니다. 저 같아도 그랬을 것 같아요. 저는 그리 현명하지 못하거든요. 눈에 보이는 3백만 명의 희생을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차라리 충분히 예측 가능하지만 적어도 제 손으로 하지도 않을뿐더러 나 때문도 아닌 전 인류의 죽음이 나을 것 같아요. 그렇다면 오지맨디아스는 진정한 영웅이라고 해야 할까요, 역사상 최악의 살인마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데 오지맨디아스를 누가 지켜볼 수 있을까요? 누구보다 막강한 힘을 가졌기에 일반 사람들을 지켜줄 수 있는 히어로인데요. 그런 히어로들이 오지맨디아스처럼 폭주할 지 어떻게 압니까. 그럴 때는 그들을 누가 통제할 수 있나요. 더 막강한 누군가가 나타나서? 그러면 그 더 막강한 누군가는 누가 책임지죠? 위의 엄청난 딜레마를 능가한다고도 할 수 있는 딜레마가 여기에 있네요. 


히어로들의 소시민적 모습


위와 같은 철학적이리만치 생각할 거리와 함께 <왓치맨>의 재미는 히어로들의 모습입니다. 히어로들의 소시민적인 모습 말이에요. 그들의 현실적인 고민과 함께. 명실공히 히어로지만 코스튬만 벗어면 평범한 이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어요. 국가에서 봐준다고 하지만 먹고살아야 하고 또 미래도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자신의 일을 할 테고, 남들과 다를 바 없는 일반적인 사랑도 할 거예요. 


기뻐서 웃고 슬퍼서 울기도 해요. 정말에 빠지기도 하고 희망에 차기도 하죠. 우리네 롤러코스터 같은 감정과 시시각각 바뀌는 삶의 굴곡을 그들도 가지고 있다는 것이죠. 작가는 그런 모습을 신랄하게 잘 표현해 냅니다. 진짜 히어로가 이 작품을 봤으면 굉장히 뜨끔했을 거예요. 


일반적인 히어로물을 생각하고 본다면 실망할 수도 있겠습니다. 지구를 침공하는 외계인과 일대 결전을 벌이는 것도 아니고, 지구를 지배하려는 욕망에 가득 찬 이와 계속되는 설전을 벌이지도 않아요. 히어로물다운 엄청난 액션이 나오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반면 계속되는 식상한 히어로물에 슬슬 질려가고 있는 분들께는 환영할 만한 콘텐츠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일단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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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ngenv
냉전 시대, 딜레마, 왓치맨, 평화 시대, 희생, 히어로
  • BlogIcon 멜로요우
    2015.09.14 13:36 신고

    왓치맨이라는 히어로도있었네요~ 처음들었어요. 조금 평범한 영웅이긴하지만 매력있을거같아요

    • BlogIcon singenv
      2015.09.20 16:47 신고

      2009년에는 영화로도 나왔죠~ 망했지만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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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칼날> 과연 누가 용서 받지 못할 자인가?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4. 6. 9.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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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방황하는 칼날>



<방황하는 칼날> ⓒCJ 엔터테인먼트



2013년 최고의 독립 영화라 할 만했던 <가시꽃>(이돈구 감독).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주인공의 독한 속죄가 주된 내용이다. 주인공은 고등학생 때 친구들의 강요에 따라(피해자) 집단 성폭행 범죄의 일원으로 참여하게(가해자) 되었고, 10년의 시간이 지나 우연한 계기로 성폭행 당한 당사자와 친해지게 되었다. 어느 날 그녀의 아픔을 알게 되었고, 그 아픔에 자신의 과거가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그 과거를 속죄하기 위해 친구들을 찾아가 단죄를 내리는 것이다. 


영화 <방황하는 칼날>(이정호 감독)은 <가시꽃>과 같은 내용의 뿌리를 가지지만 다른 줄기를 보여준다. 고등학생들의 집단 성폭행, 그 와중에 친구들의 강요에 따라 참여하게 된 약한 이. 다만 이 영화에서는 성폭행을 당한 이가 죽게 되었고, 이를 그녀의 아버지가 알 게 된 것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몸부림치며 딸을 성폭행한 범죄자들을 찾아가 단죄를 내린다. 


자, 여기서 출현하는 이가 경찰이다.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공공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국가의 합법적 명령을 직접 실행에 옮기는 이들이다. 그들은 개인의 판단은 뒤로 하고 범죄자를 잡아야 할 의무가 있다. 딸을 성폭행한 범죄자들을 찾아가 단죄를 내리는 아버지는, 그들의 눈에는 범죄자일 뿐이다. 그것도 개인적 원한으로 살인을 자행한 파렴치한 살인자. 


물론 성폭행범들도 범죄자이지만 우리나라 법 체계 상 살인이 더 우위에 있다. 위에서 성폭행 도중에 피해자가 목숨을 잃었다고 하였는데, 성폭행이 죽음의 직접적 원인이 아니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극 중의 대사를 빌리자면, "또 그냥 이렇게 넘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방황하는 칼날>의 한 장면. ⓒCJ 엔터테인먼트



"범죄에 애 어른이 어디 있어, 다 같은 범죄자지."


누군가는 그 어떠한 잘못을 해도 살인은 용서 받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들은 이런 논리를 국가의 사형 제도에 들이대, 인간이라 할 수 없는 것들에 행하는 사형도 반대하곤 한다. 그렇다면 한 여자를 두고 집단으로 성폭행을 자행해 죽음에 이르게 한 행위는 어떠한가? 아니, 죽음에 이르게 하지 않았다고 해도 말이다. 


과연, 그 행위가 살인보다 하위의 개념인가? 살인보다 죄질이 떨어지는가? 정녕 그렇게 말하며 지나칠 수 있는가? 살인보다 인간의 존엄성을 더 크게 해친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최소한 이 두 죄 간의 비교를 말도 되지 않는다고 치부해 버리지 않아야 하지 않겠는가? 참으로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영화이다.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너무나 뚜렷하다. 영화 자체가 한 가지의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딸을 성폭행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 소년 vs 그 소년을 죽인 딸의 아버지. 과연 이들 중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처벌의 수위를 정할 때 이들 중 누가 죄질이 더 악랄한가? 그리고 과연 당신이 딸의 아버지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당신이 이들을 쫓는 경찰이라면? 당신이 이들의 판결하는 판사라면?



<방황하는 칼날>의 한 장면. ⓒCJ 엔터테인먼트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남은 인생이란 없습니다."


꼬리를 무는 질문 공세를 받다 보니, 영화에 대한 관심은 후반으로 갈수록 줄어든다. 어쩌다 보니 극 중 딸의 아버지처럼 분노에 치를 떨고 있고, 난감해 하는 경찰의 모습에 답답해 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그 마음을 한편으로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의 최고 명장면은 바로 이렇다. 딸을 성폭행해 죽음에 이르게 한 소년을 찾아가 죽인 아버지를 빨리 잡아 처벌해 주라면서 경찰을 찾아와 오열 하는 성폭행범의 부모님들. 그들은 아들이 죽었다는 사실 하나 밖에 보이지 않는다. 한편 이해가 되면서도 그들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적개심에 치를 떨게 된다. 그럼에도 그들에겐 세상에 둘도 없는 아들일 테니까...


"자식을 잃었으면서도 그냥 이렇게 멍하니 앉아 있는 게... 정말 최선의 방법이에요?"


영화는 중반을 넘기면서 방황하기 시작한다. 경찰도 국가 기관이기에 앞서 사람이기 때문에, 스스로의 가치 판단으로 인해 살인자 아버지에 대한 연민이 계속된다. 그 예리한 칼날이 무뎌지고 방황하는 것이다. 도무지 가치 판단을 내릴 수가 없다. 


그런데 이건 내용적 측면이고, 영화 자체로도 방황이 계속된다. 너무나 명확한 메시지를 던져 놓으니 더 이상 전개할 스토리가 없어 보이는 것이다. 그것을 중후반의 숨막히는 추격전, 그리고 끝에서 보여주는 전에 없을 딜레마 상황으로 대체해보려 한다. 하지만 추격전은 전혀 스릴이 없었고, 딜레마 상황은 지루했다. 차라리 추격전 와중에 딜레마 상황을 넣고, 화끈하게 결말을 짓는 것이 좋았지 않았을까 싶다. 


점점 비인간적인 사회가 되어가는 와중에 '방황하는' 생각이 있어서 '방황하는'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다. 어느 쪽을 택해도 비인간적일 수밖에 없는 이런 딜레마의 상황에서는 방황하는 것이 인간적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이런 일을 일으킨 당사자들을 심도 깊게 들여다보는 게 필요하다. 저질러진 사태를 놓고 논쟁을 하기에 앞서 그 태초의 원인부터 살펴보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Posted by singenv
경찰, 딜레마, 방황하는 칼날, 살인, 살인자, 성폭행, 추격전
  • BlogIcon 제철찾아삼만리
    2014.06.09 11:48 신고

    방황한다...그것이 가장 인간적이다 생각이 듭니다.
    영화평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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