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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과학'에 해당되는 글 1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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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정한 사랑'을 찾아 달로 향한 소녀의 이야기 <오버 더 문> 2020.11.02
  • '병맛' 주인공의 성장, 대립, 분열, 연대, 모험 이야기 <워리어 넌> 2020.08.17
  •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지, 근원에 목마른 인간이 들어가다 <서던 리치: 소멸의 땅> 2019.02.07
  • 어른을 위한 소년만화, 그 완벽한 모범 <강철의 연금술사> 2018.10.22
  • 여성 식물학자의 자전적 에세이로 본 과학, 인간, 사랑 <랩 걸> 2018.04.02
  • 과알못을 위한 완벽한 과학책 <야밤의 공대생 만화> 2018.01.22
  • 과학에서 종교로, 종교에서 과학으로의 인정에의 희망 <콘택트> 2017.08.23
  • 위대한 저서를 나열하며 과학의 역사를 파헤치다 <문제적 과학책> 2016.09.12
  • 물리학자가 보는 세상, 물리학자의 세상 보는 눈 <세상 물정의 물리학>(4) 2015.10.05
  • [내가 고른 책] '박진영의 공룡 열전' 그리고 '고양이 눈으로 산책'(2) 2015.07.12

'진정한 사랑'을 찾아 달로 향한 소녀의 이야기 <오버 더 문>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0. 11. 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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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오버 더 문>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오버 더 문> 포스터. ⓒ넷플릭스



'글렌 킨'이라고 하면 아는 사람이 별로 없겠지만, <인어공주>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지 않을까 싶다. 글렌 킨은 인어공주를 만든 장본인이다. 그는 월트 디즈니가 설립한 미국 최고의 종합예술대학인 '캘리포니아 예술학교(칼아츠)'를 졸업하고 1974년 디즈니에 입사해 10년 후 잠시 프리랜서 생활을 한 것 빼곤 40년 가까이 일하며 명성을 날렸다. 


인어공주뿐만 아니라 <미녀와 야수> <알라딘> <포카 혼타스> <타잔> <보물성> 그리고 <라푼젤>에 깊이 관여했다. 2012년 디즈니에서 정식으로 퇴사한 후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종종 단편 애니메이션도 만들었는데, 2017년 지금은 고인이 된 미국 농구의 전설 코비 브라이언트의 은퇴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디어 바스켓볼>로 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단편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감독으로 내정되어 있었다가 건강 문제로 하차했던 <라푼젤> 당시의 아쉬움을 풀어 줄 장편 애니메이션 연출 데뷔작 <오버 더 문>이 2020년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찾아왔다. 그의 화려한 경력을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기대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이야기와 메시지와 캐릭터와 색감으로 우리를 찾아왔을까. 


달의 여신을 찾아 달로 향하는 소녀


소녀 페이페이는 월병 가게를 운영하는 부모님과 함께 자유롭고 즐겁게 살아간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엄마가 들려 주는 '항아' 이야기이다. 옛날 옛적에 아름다운 항아와 멋진 후예가 사랑을 했는데, 불로 선약을 먹은 후 헤어져 항아는 하늘로 떠나 달 너머로 갔고 후예는 남게 되었다. 항아는 달에서 옥토끼와 함께 후예를 기다리지만 후예는 이미 생을 마친 지 오래다. 


시간이 흘러 페이페이의 엄마는 급격히 진행된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부녀가 함께 지낸 지 4년, 아빠는 재혼을 할 요량으로 여자를 데려와 페이페이에게 소개시킨다. 그녀에겐 페이페이보다 조금 어린 아들 친이 있었다. 엄마를 떠나보낼 수 없었던 페이페이는 혼란에 빠지고, 어느 날 달을 바라보며 엄마를 생각하다가 항아와 후예의 이야기에 생각이 가 닿는다. 항아가 후예를 생각하고 기다리는 것처럼 엄마도 아빠를 생각할 텐데 아빠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페이페이는 항아가 실제한다는 걸 아빠에게 보여 주면 아빠도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페이페이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현실에서 항아가 현현하여 부르는 듯한 황새의 모습에 용기를 얻어 직접 로켓 우주선을 만들기로 한다. 엄마한테 신화적 이야기만 듣고 아빠한텐 과학적 이야기를 듣지 않던 그녀가 말이다. 피나는 노력 끝에 로켓 우주선을 달로 출발시킨 페이페이 그리고 친과 그들의 반려동물들, 하지만 여지없이 추락하는데... 달에서 한 줄기 빛이 내려와 그들을 인도한다. 달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다름 아닌 항아, 과연 항아와 같이 찍은 사진을 가지고 돌아갈 수 있을까? 그런데, 항아도 원하는 게 있을 것 같은데?


진정한 '사랑'은 무엇인가


<오버 더 문>은 중국 고대신화에 나오는 달의 여신 이야기를 모티브로 '사랑'에 대한 메시지를 던지는 애니메이션이다.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고찰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는데, 그리 와닿지는 않는 것 같다.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있고 말이다. 사랑하지 않아서 헤어진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헤어진 항아와 후예 그리고 페이페이의 엄마와 아빠,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의 사랑은 영원하니 새로운 사람을 만나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메시지이다. 페이페이가 달까지 가서 나름 혹독한 모험을 겪고 난 후 얻은 결론이기도 하다. 


문제는, 제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페이페이에 있다. 항아와 후예 둘만의 사랑이라면 어떻든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엄마와 아빠 사이에 페이페이라는 존재가 있지 않은가. 가령 아빠는 엄마를 영원히 사랑하지만 새로운 사람을 만나 행복할 자격이 있다, 하지만 영화에서처럼 페이페이의 의견이나 바람을 듣지 않고 아빠 마음대로 할 자격은 없지 않은가. 페이페이가 완연한 어른이 된 이후라면 모를까... 신화 이야기와 현실 이야기를 잇는 건 좋은 시도이지만, 잘못 이었다는 생각을 지우기 힘들었다. 


결국, 페이페이도 엄마를 영원히 사랑하지만 새로운 가족과 함께 행복할 거라는 결론을 얻을 텐데 그 모양새가 썩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좋게좋게 하는 게 좋은 거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배려를 찾아보기 힘들거니와 배려가 없으면 언젠가 탈이 나기 마련이다. 현실적으로 젊은 아빠와 어린 딸만 남아 평생 살아가기는 힘들기에 언젠가 새로운 가족을 들여야 할 테지만, 이런 식은 아니라는 게 이 영화를 보며 느낀 바다. 


신화적 상상력과 과학적 상상력의 조화


아무래도 애니메이션이다 보니 영화를 기술적으로도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다. 캐릭터와 색감 등도 가장 중요한 요소일 테니 말이다. <오버 더 문>은 그런 면에서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는 작품이다. 달을 형광색에 기반한 화려한 색의 세계로 표현한 게 신의 한수였다. 페이페이, 항아 등 주요 캐릭터들이 기억에 남기 힘든 수준인 반면, 그들을 둘러싼 세계가 주는 영감이 크게 다가왔다. 또한 오히려 주요 캐릭터들이 아닌 영화를 끌고 가는 부 캐릭터들이 더 큰 족적을 남긴다. '귀여움'으로 중무장한 캐릭터들 말이다. 


그런가 하면, 은근히 아기자기한 액션들이 자주 나와 가슴보다 머리를 자극시켜 생각보다 지루하지 않은 경험을 했다. 아무래도 '진정한 사랑'이라는 소재와 주제를 내보이고 있는 만큼 가슴을 울리는 에피소드가 주를 이룰 만한데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신화적 상상력과 과학적 상상력이 조화를 잘 이루었다고 평하고 싶다. 달로 향하게 과정에서의 현실적 이야기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사랑이 주요하게 작용하는 작품인 만큼 어른이 볼 만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정작 그러지 못했다. 외형상 다분히 어린이를 위한 애니메이션이었다. 어른에게도 충분히 통용될 만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고 하기에도 애매모호한 점이 많았다. 어른이 보기엔 부족한 점이 많을 텐데, 어린이가 보기엔 부족한 점 없는 사랑 이야기라고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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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글렌 킨, 달, 디즈니, 사랑, 아쉬움, 오버 더 문, 인어공주, 중국 신화, 캐릭터, 항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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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맛' 주인공의 성장, 대립, 분열, 연대, 모험 이야기 <워리어 넌>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0. 8. 17.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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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워리어 넌: 신의 뜻대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워리어 넌: 신의 뜻대로> 포스터. ⓒ넷플릭스



7살 때 교통사고로 부모를 여의고 홀로 살아남아 사지마비 상태로 보육원에서 자란 에이바 실바, 20살 되던 해 어느 날 불분명한 이유로 죽고어 수녀원으로 옮겨진다. 그날, 수녀원에 용병 집단이 쳐들어와 수녀 전사(워리어 넌) 리더 섀넌이 죽고 만다. 그들이 찾던 건 섀넌의 등에 박힌 헤일로, 신비한 힘의 원천으로 수녀 전사들의 비밀 집단 '십자검 결사단'이 오랫동안 지켜왔던 보물이다. 섀넌이 죽는 현장까지 적이 쳐들어오자, 전투 수녀들은 대항하고 수녀 한 명이 급히 헤일로를 숨기기 위해 죽은 에이바를 이용한다. 


헤일로의 힘으로 되살아난 에이바는 아무것도 모른 채 수녀원을 탈출한다. 수녀원은 발칵 뒤집히고 어쨌든 헤일로를 뒤찾고자 에이바를 쫓는다. 한편, 아크 테크라는 기업의 수장이자 천재 과학자 질리언 샐비어스는 바티칸 기록보관원 출신 크리스천의 조언을 받아 양자 역학으로 영적 세계로 가는 다리를 만들고자 한다. 실상은 아픈 아들을 아프지 않은 세계로 보내기 위함이었다. 그녀는 교황청과 전쟁을 선포하며, 헤일로와 함께하게 된 에이바와 이어진다. 


에이바는 사지가 멀쩡하게 다시 태어난 세상을 자유롭게 떠돌고, 에이바를 쫓는 수녀원 내부는 세력 다툼으로 파가 갈라진다. 뒤가 구린 추기경의 명을 듣고 에이바를 죽여서 헤일로를 가져와 전통 있는 헤일로 운반자로 하여금 맡게 하자는 파가 있었고, 수녀원을 담당하는 신부와 함께 몇몇 수녀 전사들은 에이바로 하여금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게 우선이고 헤일로 운반자의 운명을 받아들인다면 그녀를 수련시키면 된다는 파가 있었다. 각자의 복잡다단한 입장들이 첨예하게 부딪히는 이야기의 행방은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죽음에서 깨어나 힘과 책임을 짊어지게 된 여성의 성장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시리즈 <워리어 넌: 신의 뜻대로>(이하, '워리어 넌')는 죽음에서 깨어나 막강한 힘과 책임을 짊어지게 된 어린 여성의 성장을 다룬다. 아울러, 종교와 과학의 대립이 다뤄지며 교황청 내 세력 다툼에 휘둘리는 십자검 결사단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흥미가 동할 설정임에 분명한대, 상당히 상이해 보이는 이야기들을 어떻게 짜맞출지 기대도 되지만 조마조마함이 앞서는 게 사실이다. 


이런 설정에서 어린 여성의 성장은 대체로 그녀가 속한 조직과 조직이 속한 선의 세계가 승리하는 과정에 일조하는 것으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내적 성장이라기 보다 외적 성장이랄까. 특히, 그동안엔 여성으로서 외적 성장이 필요해 보였다. 그런데, 이 작품에선 반대의 모습을 보인다. 결국 외적 성장도 뒤따르겠지만, 정녕 지루하다고 느낄 만큼 충분한 시간을 갖고 내적 성장을 이루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를 테면, 에이바는 악마의 세력으로부터 세상을 지키는 워리어 넌의 비밀 집단 십자검 결사단 리더로서 헤일로의 운반자 칭호와 의무를 받아들이는 데 관심이 없다. 그녀는, 살아생전 사지마비로 힘겨운 삶을 살았고 다시 태어나 훨훨 날아다닐 정도로 자유롭고 기분이 좋을 뿐이다. 만끽하는 게 우선이다. 이후, 수녀원과 아크 테크의 회유 및 협박 및 위협 등을 통해 자신이 처한 현실을 알고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충분하고도 넘칠 만한 고민과 한쪽으로서는 배신이라고 할 만한 행동을 하고는 돌고 돌아 길을 정한다. 이제까지의 성장 스토리와는 결이 다른 진짜 현실적인 성장 스토리, 괜찮다 싶었다. 


욕망이 대립이 선사하는 선 같은 악, 악 같은 선


종교와 과학의 대립과 교황청 내 세력 다툼을 다루기에 앞서, 작품 속 헤일로의 역사에 대해 잠시 언급하고자 한다. 1000여 년 전 용맹한 여전사이자 최초의 전투 수녀로 신의 믿음으로 끝없는 전투에서 큰 공을 이루며 싸우던 와중 죽음을 맞이한 아레알라, 천사 아드리엘이 강림해 천사의 링 헤일로로 그녀를 부활시킨다. 반면, 아드리엘은 영원한 삶을 포기했다. 이후, 전투 수녀 비밀 집단 십자검 결사단이 꾸려져 헤일로를 지켜 후세로 전하기 위한 처절한 활동이 계속되는 것이다. 


천사의 링 헤일로를 몸 안에 심고 특별한 힘과 막중한 책임감을 안고 살아가는 운명의 십자검 결사단 리더이자 헤일로 운반자, 문제는 많은 이가 헤일로를 원한다는 점이다. 짧은 시간밖에 현존하지 못하지만 너무나도 막강한 힘으로 십자검 결사단을 위협하는 악마 타라스크, 종교에의 믿음으로 약속받은 세계로 가는 다리를 막강한 에너지와 함께 과학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는 아크 테크, 십자검 결사단의 보수적 전통을 지키고자 하지만 동시에 그 조직의 중요성으로 말미암은 권력을 이용해 개인적 영달을 추구하는 추기경. 


와중에, 진짜 악마가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작품 전체적으로 선과 악이 불분명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악마 타라스크에겐 추악한 욕망이 보이지 않는 반면, 아크 테크 수장에겐 아픈 아들을 아프지 않은 세계로 데려가고자 하는 추악하다고 할 수 없는 욕망이 있다. 그런가 하면, 확신할 순 없지만 추기경은 세속적 권력과 개인적 영달으로 뒤가 구린 듯한 모양새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선 같은 악, 악 같은 선. 


주인공의 성장과 다양한 여성 캐릭터들의 분열과 연대


자못 유치해 보이지만 자못 진지한 분위기의 작품을 확실히 풀어주는 이가 주인공 에이바이다. 그녀는 '병맛'이라는 단어가 딱 어울리는 생각과 말과 행동을 생각지도 못할 타이밍에 던져, 보는 이로 하여금 웃음 짓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요즘 드라마구나' 하는 생각이 따라오게 만드는데, 눈쌀을 찌뿌리게 하지 않고 외려 적절하다고 생각하게 한다. 에이바로 분한 알바 밥티스타의 매력이 큰 몫을 차지하지 않나 싶다. 그녀를 보다 보면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을 지우기 힘든데, 10여 년 전 앳된 제니퍼 로렌스가 겹쳐진다. 앞날이 기대되는 배우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마라 시리즈 표준인 10화에 다다르는, 적지 않은 분량의 작품임에도 확실한 전개와 마무리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스토리가 앞으로 쭉쭉 뻗어나가며 시원시원하게 진행되지 않고, 에이바라는 캐릭터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전체적 설정의 형성 과정과 설명에 상당 부분 투자했기 때문이다. 즉, 시리즈를 절대 시즌 1으로만 끝내지 않을 거라는 담대한 포부를 밝힌 것이다. 


개인적으로, 아주 괜찮게 보았다. 비슷한 시기에 어린 여성의 성장 스토리가 중심이 되는 또 다른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저주받은 소녀>가 공개되었는데 이 작품이 주인공의 굴곡지지만 직선적인 여정을 중심에 두고 외롭지만 강인한 성장을 다루는 반면, <워리어 넌>은 주인공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성장의 여정을 중심에 두고 있지만 '워리어 넌'으로 불리는 다양한 여성 캐릭터들의 분열과 연대를 아우르고 있다. 두 작품 모두 이 시대에 어울리는 적확한 스토리와 메시지 그리고 충분하고도 넘칠 다양한 재미를 선사하기에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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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를 알 수 없는 미지, 근원에 목마른 인간이 들어가다 <서던 리치: 소멸의 땅>

넷플릭스 오리지널 2019. 2. 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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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서던 리치: 소멸의 땅>


영화 <서던 리치: 소멸의 땅> 포스터. ⓒ넷플릭스



작은 영화 <엑스 마키나>로 쟁쟁한 후보들을 뒤로 하고 아카데미 시각효과상을 거머쥐었던 알렉스 가랜드 감독, 일찍이 <비치>의 원작자, <28일 후> <네버 렛 미 고> <저지 드레드> 등의 각본가로 장르에 특화되고 장점을 가진 걸로 유명했다. 


그는 <엑스 마키나>로 연출가로서도 본격 시동을 걸며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에 오르고 많은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는 바, 이리 놓고 보니 시각효과와 각본과 연출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이는 장르 전문가라고 할 만하다. 


최근에 내놓은 작품 <서던 리치: 소멸의 땅>에 관심이 쏠리지 않을 도리가 없는 이유다. 이 작품은 북미와 중국에서만 파라마운트가 배급, 나머지 전 세계에는 넷플릭스가 배급하고 제작까지 하였는데 그리하여 감독은 창작의 자유를 보장받았다. 


흥행을 일체 생각하지 않는 창작의 자유 보장은 이 작품에 수없이 포진되어 있는 흥행 요소들을 작품성 요소로 유지 또는 변하게 하였다. 원작의 난해함을 그대로 또는 더욱 심오하게 발전시키는 동시에 시각효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면모를 선보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그곳, '쉬머'


정체를 알 수 없는 그곳 '쉬머'로 향하는 5명의 여성 대원. 영화 <서던 리치: 소멸의 땅>의 한 장면. ⓒ넷플릭스


어느 날 하늘에서 무엇인가가 국립공원 근처 등대로 떨어진다. 이후 근방으로 파장의 결계가 쳐지고 점점 커지는 형국이다. '쉬머'라 불리는 그곳에 정부는 비밀리에 3년간 정보 취합 및 조사를 위한 탐사대를 보내고 드론도 띄우지만 돌아오는 건 없었다. 


생물학자이자 세포/암 병리학과 교수 리나(나탈리 포트만 분)는 비밀작전에 투입되었다가 1년간 돌아오지 않는 남편 케인(오스카 아이작 분)으로 힘든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돌아온 케인, 하지만 그는 곧 알 수 없는 내출혈로 쓰러지고 함께 병원으로 가던 도중 군인들에 의해 납치된다. 그들이 끌려간 곳은 쉬머 코앞의 진지 X 구역. 


리나는 케인이 쉬머에서 돌아온 유일한 생존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가 비밀작전에 자진 투입한 이유가 자신이 불륜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7년 군인 경력과 생물/병리학적 지식을 동원해 남편을 살리고자 쉬머로 들어갈 것을 결정한다. 


리더 심리학자, 생물학자, 지질학자, 물리학자, 응급요원의 5명 여성으로 구성된 팀은 당연한 죽음이 도사리고 있는 그곳으로 간다. 그러곤 곧 단기기억상실증을 경험하고 상상으로도 구현하기 힘든 돌연변이들을 발견한다. 이 땅의 정체는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과학적 질문


그곳엔 파격적인 복제와 변형과 자멸이 일상인 돌연변이가 있다. 영화 <서던 리치: 소멸의 땅>의 한 장면. ⓒ넷플릭스


영화 <서던 리치: 소멸의 땅>은 호러적인 분위기와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과학적 질문을 기반으로 한 고품격 SF이다. <엑스 마키나>로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진 알렉스 가랜드 감독은, 앞으로도 장르 요소를 앞세워 인간을 탐구할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가 가지는 난해함은 다름 아닌 과학적 질문에서 비롯된다. 제목에서도 암시되어 있듯 영화를 관통하는 단어는 '소멸'인데, 그 반대편 혹은 동일한 층위를 가지는 단어 '복제' '변형' '자멸' 등이 함께 중요하게 거론된다. 


이는 리나가 세포/암 병리학과 교수라는 점과 리더 심리학자인 벤트리스가 암에 걸렸다는 점, 그리고 쉬머가 점점 확대되는 점 등에서 악성종양, 즉 '암'과 연관이 깊은 듯하다. 세포의 변형, 복제로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즉 자멸, 소멸하게 만드는 게 암이라는 질병 아닌가. 


지구에 갑자기 생겨버린 쉬머의 정체를 알고 제거할 방법을 찾고자 하는 건, 인간의 몸에 갑자기 생겨버린 암의 정체를 알고 제거할 방법을 찾고자 하는 모습과 일치한다. 그 모양새를 영화로 옮겨놓은 것이리라. '나'를 소멸에 이르게 하는 것이 다름 아닌 '나'를 이루는 세포의 생성이라니, 아이러니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근원에 목마른 인간, 미지로 들어가다


한편, 돌아오지 못한다는 걸 잘 알고 있음에도 그곳으로 향하는 마음은 무엇일까, 이유는 무엇일까. '공포'라는 것의 근원에 '미지'가 있다면, 인간은 가장 대면하기 싫은 공포라는 것의 '근원'을 알고자 미지로 들어가는 것일 테다. 인간은 근원에 목 마르다. 


그곳엔 무엇/누가 있을까. 무엇을 이루는 무엇일 있을 테고 누구를 이루는 누군가가 있을 테다. '내'가 그곳에 이르면 다름 아닌 '내'가 있지 않을까. 변형과 복제와 소멸이 이루어지는 그곳에서, '나' 역시 변형과 복제와 소멸 또는 변형이나 복제나 소멸을 이룩할 것이다. 


이쯤 되면, 과학이고 철학이고를 떠나서 그저 답을 얻기 힘든 질문, 되돌아올 뿐인 생각, 형용하기 힘든 설명만 할 수밖에 없게 된다. '나는 누구/무엇인가'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나는 왜 사는가'


<엑스 마키나>의 지극히 현실적이어서 너무나 비현실적인 시각효과와 협소하고 막힌 곳에서 이뤄지는 숨막히는 이야기는, <서던 리치: 소멸의 땅>에 이르러 초현실적이어서 현실적인 시각효과와 광대하고 열린 곳에서 이뤄지는 광활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두 영화는 '인간'에 대한 질문 하나를 공통점으로 둔 채 거의 모든 면에서 정반대의 면모를 보여줌에도 서로가 서로에게 묘한 기시감을 들게 한다. 


비단 같은 감독의 작품이어서만은 아닌, 연장선상에 있는 느낌이어서, 최소 3부작은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감독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그때 또 우린 어떤 질문과 맞닥뜨리게 될까. 어떤 현실, 비현실, 초현실적인 시각효과를 맛보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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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과학, 근원, 넷플릭스, 돌연변이, 서던 리치: 소멸의 땅, 엑스 마키나,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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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을 위한 소년만화, 그 완벽한 모범 <강철의 연금술사>

생각하다 2018. 10. 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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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읽기] <강철의 연금술사>


<강철의 연금술사> 세트 표지들 ⓒ학산문화사



어릴 때 족히 수천 권을 봤을 일본 만화들, 20대가 되고 30대가 되니 남는 건 별로 없다. 스마트폰 출시 이후 다양한 방법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접하게 된 만화도 그 피해자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나도 만화 편력도 그와 함께 변해가는 중일 테고. 그럼에도 여전히 나의 서재를 차지하고 있는 만화책들이 있다. 어김없이 매해 다시 본다. 


웹툰책을 제외하고 순수 만화책은 손에 꼽는다. 데즈카 오사무의 <아돌프에게 고한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몬스터> <20세기 소년>, 그리고 아라카와 히로무의 <강철의 연금술사>가 그것이다. <슬램덩크> 정도 들여놔야 하는데, 솔직히 이제는 예전만큼 재미있지가 않다. <슬램덩크>를 위시해 일명 '소년 만화'들이 이젠 시시하달까?


일본 만화계의 수장 '소년 점프'는 1980년대부터 익히 말 한만 만화들을 쏟아냈는데, 1990년대에 이르러 <드래곤볼> <슬램덩크> <유유백서>도 압도적 평정을 한다. 이후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2000년대에 이르러 <원피스> <나루토> <블리치>도 도약한다. <강철의 연금술사>는 '소년 점프'의 두 번째 최전성기 한 가운데에 나왔다. 


배틀물이 최강세인 일본 만화계에서 <강철연>은 일명 '원나블'의 상업적 인기에 미치진 못했지만, '어른들의 소년 만화'를 완벽하게 구현해내어 완결된 지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변치 않는 사랑을 받고 있다. 연재 당시에도 '상업적' 인기가 아닌 순수 단행본 판매만 비추어볼 땐 <원피스>에 이은 2000년대 최강자 중 하나였다.


원래대로 돌아가기 위한 여정


연금술의 나라 아메스트리스, 에드워드 엘릭과 동생 알폰스 엘릭은 죽은 엄마를 되살리기 위해 연금술로 인체연성을 시도한다. 하지만 결과는 참혹 그 자체. 엄마라고 하기 힘든 무엇인가가 연성되었다가 바로 죽어버렸고, 에드는 왼쪽 다리를 알은 몸 전체를 잃고 만다. 에드는 오른쪽 팔을 희생하여 겨우 알의 영혼을 갑옷에 정착시킨다. 


에드와 알은 원래대로 돌아가기 위해 '현자의 돌'을 찾는 여정을 떠난다. 그것은 연금술의 기본 법칙인 등가교환을 무시하고 대가 없는 연성을 가능하게 해주는 전설의 돌이다. 불로불사를 가능하게 해준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거기에는 여지없이 이 나라, 아니 이 세계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거대한 음모가 감추어져 있다. 


일반 사람이라면 근처에도 다다를 수 없을 것 같기에, 그들은 군부의 개가 되기를 자처한다. 국가 연금술사가 된 것이다. '강철의 연금술사' 에드워드 엘릭과 동생 알폰스 엘릭은 현자의 돌을 찾아 원래의 몸으로 돌아가는 데 성공할 수 있을까?


소년만화답게 진지한 와중에 '빵' 터지는 유머를 잃지 않으며 판타지 세계는 아니지만 판타지적인 요소가 짙게 스며들어 있다. 전체적으로 배틀 액션이 기본으로 물고 물리는 캐릭터들의 향연이 이채롭다. 한편 '어른'의 소년만화답게 낯간지럽지 않은 진지 키워드와 주제들이 다수 포진되어 있다. 반전(反戰), 종교, 민족, 과학, 신, 도덕, 장애, 여성, 신념 등... 묵직한 개념들이 서로 얽히고설켜 극을 이끌어간다. 


다양한 캐릭터들의 훌륭한 조화


<강철연>은 역대급 인기 만화답게 많은 콘텐츠로 재탄생되었다. 만화(책)으로 시작해 애니메이션 2번, 극장판 2번, 실사 영화와 소설과 게임까지. 그러면서 중점적으로 내세우는 주제와 캐릭터들이 조금씩 바뀌었는데, 바뀌지 않는 건 시작부터 끝까지 탄탄하기 이를 데 없는 스토리이다. 


매주 연재되면서 앙케이드 조사를 통해 등수를 매기는 일본의 만화 시스템 덕분에 더 재미있고 또 독자의 입맛에 맞춰진 콘텐츠가 탄생할 수 있지만 그 때문에 뒤로 갈수록 스토리가 산으로 가는 경향이 심하다. 많은 인기 만화들이 그렇게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다. 반면 이 만화는 마치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히 세팅되어 있거니와 끝까지 휘둘리지 않고 고수한 듯 스토리가 이어진다. 아마도 메이저 잡지에서가 아니라 중소 규모의 잡지에서 연재되었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뭐니뭐니 해도 극을 이끌어 나가는 가장 큰 주체는 에드와 알을 중심으로 한 캐릭터들이다. 그 어떤 만화 아니 콘텐츠에서도 마찬가지일 터, 하지만 이 만화에서 에드와 알의 여정 비중은 갈수록 줄어든다. 상당한 강수이자 모험인데, 결론적으로는 대성공, 거의 모든 캐릭터들이 자기 맡은 바 임무(?)를 훌륭히 소화해낸 것이다. 


임무란 다름 아닌 신념을 바탕으로 한 이상, 협력과 적대와 독주를 하면서도 누구 하나 신념을 잃지 않는다. 신념들이 대립하지만 궁극적이고 모두를 위한 곳으로 모이기도 한다. 가장 중심적인 주제이기도 한 '하나는 전체, 전체는 하나'를 몸소 보여주기도 하는 것이다. 


한편, 만화는 두 주인공뿐 아니라 많은 주조연 캐릭터들이 장애를 가지고 있고 또 가지게 된다. 거기에 어떤 동정이나 자학 또는 자격지심이 없다. 한없이 슬퍼하면서도 되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고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 여성 캐릭터들의 강함이 두드러지기도 한다. 에드와 알의 스승인 이즈미 커티스, 아메스트리스 최북부를 지키는 브릭스 요새 사령관 올리비에 밀라 암스트롱, 불꽃의 연금술사 로이 머스탱의 부관 리자 호크아이를 비롯 동쪽의 싱에서 온 란팡과 메이 창 등 육체적·정신적으로 생각하기 쉽지 않을 정도의 강함을 자랑한다. 작품의 핵심에 가까운 캐릭터들이기도 하다.


<강철연>만의 특장점, 진지 키워드


이 '소년만화'만의 특장점이기도 한 진지 키워드들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착한 놈'과 '나쁜 놈'의 대결은 상대적으로 만들기 쉽고 보기에도 편안하다. 하지만 콘텐츠 자체로만 이야기될 뿐 콘텐츠에서 파생되는 건 없다시피 할 것이다. 반면 선과 악의 모호한 구도는 만들어 내기도 어렵거니와 즐기기도 편하지 않다. 하지만 인간을 보여주는 진정 위대한 콘텐츠로 오래도록 살아남을 게 분명하다. <강철연>은 후자의, 그런 콘텐츠다. 각자의 신념이 중요하고 우선이며 선과 악은 상대적 개념일 뿐이다. 


아메스트리스는 킹 브래드레이의 철권 통치 아래에 있는 군부독재국가이다. 사방에 적이 있거니와 수많은 내전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왔다. 그중에서도 '이슈발 내전'은 가장 큰 내전이었거니와 여전히 진행 중에 있는 것과 다름 아니다. 이 작품의 핵심에 군(軍)이 있는데, 고증이 철저한 군대 체계와 전쟁 상태, 전투 기술 그럼에도 어둡기 짝이 없거니와 비극적으로 그려지는 전쟁이 그것이다. 즉, 전쟁 관련 장면이 나오면 나올수록 반전이 기술되어지는 것과 다름 아니다. 


적어도 겉으로는, 이슈발 내전의 이유는 종교와 민족이다. 아메스트리스와 명백히 종교와 민족이 다른 것이다. 이슈발인은 유일신을 믿는 반면, 연금술의 나라 아메스트리스는 과학이 우선이다. 합리적인 진리를 추구하는 과학의 눈에 종교는 가장 합리적이지 않은 개념일 테지만, 그들을 없애버리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 진리인지는 절대 확신할 수 없는 게 아닐까. 만화는 거기에 이어 과학의 도덕성에까지 들어간다. 


만화가 도달한 곳은, 에드와 알이 도달한 곳은, 수많은 캐릭터들이 도달한 곳은 어디일까. 희생 없이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등가교환'에서 출발해 도달한 곳은 어디일까. 만화는 연금술로 등가되는 과학의 갈 길을 생각하고 있는 듯도 하다. 과학의 기반 위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진지한 고민. 만화는 에드와 엘이 도달한 법칙, 일명 '등가교환을 부정하는 새로운 법칙'으로 대신한다. '10을 받으면 자기의 1을 더 얹어서 11로 만들어 다음 사람에게 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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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식물학자의 자전적 에세이로 본 과학, 인간, 사랑 <랩 걸>

신작 열전/신작 도서 2018. 4. 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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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랩 걸>

 

 

<랩 걸> 표지 ⓒ알마


 

'과학책'의 진화가 계속되고 있다. 본래 과학책은 잘 읽히지 않았다. 인류 발전에 없어서는 안 됨에도 불구하고 어렵고 재미없는 과학을 다룬 책이라면 역시 어렵고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그래서 누군가가 대중화에 앞장섰다. 칼 세이건, 스티븐 제이 굴드 등이 과학의 대중화에 앞장섰다면, 올리버 색스 등은 의학의 대중화에 앞장섰다고 할 수 있겠다.

 

앞서 언급한 세 명이 모두 세상을 떠난 지금에 와서는, 알파고의 출현이나 4차 산업 혁명의 도래 등의 트렌드에 맞춰 과학의 대중화가 상당히 진척된 느낌이다. 그 총체적 접근법은 역시 책이다. '과학책' 말이다. 과학 자체를 대중의 입맛에 맞게 소개하기도 하고, 과학자를 색다르게 대중에게 소개하기도 하며, 때론 그저 과학자가 썼을 뿐 과학과 연결된 게 없는 것 같은 이야기를 건네기도 한다.

 

미국의 저명한 여성 식물학자이자 교수 호프 자런의 <랩 걸>(알마)은 과학자가 썼을 뿐 얼핏 과학과 연결된 게 없는 것 같은 이야기를 중구난방 건네는 책이다. 식물에 대한 다층적이고 다방면인 단편, 종종 드러내는 내외면의 깊숙한 이야기, 그리고 과학자로서 치열하게 사투하는 자전적 에세이까지. 저자는 치밀하게 구성한듯, 마음대로 느슨하게 구성한듯, 크게 세 이야기들을 오가며 식물, 과학, 사랑, 인간을 말한다.

 

식물에서 과학으로

 

저자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나무는 은청가문비라고 한다. 그 나무는 모질고 긴 겨울 내내 초록색을 자랑하며 우뚝 서서 푸른 빛을 발한다. 팔십 년을 넘게 살고는 어느 해 치명적인 실수를 범해 죽고 만다. 때아닌 5월의 폭설 때문이었다. 저자는 그때 비로소 나무가 살아 있는 생명이라는 것을 완전히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나무는 삶을 살고 있었다. 사람의 삶과 비슷하면서도 다르게. 고비를 넘겨 최고의 시간을 누리고 시간에 따라 변화했다. 


나무에게서 과학의 정수를 발견했다. 과학은 가르쳐주었다. 모든 것이 처음 추측하는 것보다 복잡하다는 것, 무엇을 발견하는 데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아름다운 인생을 위한 레시피라는 것, 한때 벌어졌거나 존재했지만 이제 존재하지 않는 모든 중요한 것을 주의 깊게 적어두는 것이야말로 망각에 대한 유일한 방어라는 것을.


사람은 식물과 같다. 빛을 향해 자라난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저자가 과학을 선택한 것은 과학이 저자가 필요로 하는 것을 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가장 기본적인 의미의 집, 다시 말해 안전함을 느끼는 장소를 저자에게 제공해준 것이 다름 아닌 과학이었다. 저자의 식물을 향한 관심이 곧 저자의 과학에 대한 깨달음과 이해로 나아간 것이다. 그녀는 식물학자가 될 운명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남자 아닌 여자였다. 그녀는 아빠와 같아지기를 절실히 원하기는 했지만 동시에 극복할 수 없는 큰 산과 같은 엄마의 연장이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대학 생활은 문학 전공으로 시작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과학이야말로 진정 속한 분야라는 것을 깨달았다. 머지 않아 과학계에 만연한 성차별을 받게 될 운명. 


과학계 내 성차별은 복잡하고 다양한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저자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성차별은 굉장히 단순하다. 그건 "저 여자가? 그럴 리가."와 같이 지금의 네가 절대 진짜 너일 리 없다는 말을 끊임없이 듣고, 그 경험이 축적되어 짓누르는 무거운 짐이 되는 것이다. 


인간에서 사랑으로


책은, 인간과 사랑에 대한 심오하지 않은 에세이적 고찰, 그래서 훨씬 마음에 와 닿는 고찰로 나아간다. 거의 1년 365일 실험실에 틀어박혀 생활하는 그녀에게도 평생 친구가 생기고, 또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는다. 평생 친구는 다름 아닌 빌, 함께 실험실을 꾸려가는 동료이기도 하다. 


빌은 오른손 일부가 없는 장애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졸업무도회도 가본 적 없다는 그, 저자와 함께 액슬하이버그 섬에 도착해 연구를 할 때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춤을 추다. 저자는 빌의 바로 앞에 앉아 고개를 쳐들고 그를 바라본다. 빌이 지금 하고 있는 일, 빌이라는 인간, 그 순간의 모든 것을 똑바로 목격하는 증인으로서. 


저자는 야외에서 간단하게 피크닉하는 자리에서 클린트를 만난다. 그들은 사랑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사랑하게 되었고, 서로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지도 희생하지도 않았다. 사랑은 너무 쉬웠고 달콤했다. 인간으로서 가장 행복한 때가 아닐까. 머지 않아 저자는 사랑의 결정체, 임신을 한다. 하지만 임신은 그녀의 일생에서 가장 힘든 일이었다. 그녀는 조울증을 앓았는데 당연히 약을 먹을 수 없었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그녀의 조울증을 설명할 수도 해결할 수도 없었고, 그저 함께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임신 기간 동안 여러 어려움을 겪었음에도 정상적이고 건강한 분만을 했다. 그녀는 아이의 어머니가 아닌 아버지가 될 것을 결심한다. 그게 얼마나 이상한 생각이라는 걸 생각하지 않은 채 그를 사랑할 것이고, 그도 그녀를 사랑할 것이고, 모든 게 괜찮을 거라 생각한다. 훗날 그녀는 아이의 엄마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온다. 


그녀는 아들이 태어나기 전에는 아이를 사랑할 수 있을까 걱정했고, 태어난 후에는 그녀의 사랑이 아이가 이해하기에 너무 큰 게 아닐까 걱정한다고 한다. 그리고 비로소 깨닫는다. 아들이야말로 그녀가 기다리는 줄도 모르고 기다렸던 기다림의 끝이라는 것, 그 아이는 불가능한 동시에 불가피했다는 것, 누군가의 엄마가 될 단 한 번의 기회가 한 번 그녀에게 주어졌다는 것을 말이다. 


모든 게 과학이고 과학의 눈으로 보면서도 과학은 일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인간은 빛을 향해 자라난다는 점에서 식물과 같지만, 식물은 중대하고도 기초적인 면에서 인간과 같지 않다. 사랑은, "널 사랑해"라는 말을 어떻게 할지는 모르지만 행동으로 어떻게 보여줄지는 아는 것과 같다. 형체가 없어 만질 수는 없지만 항상 함께 있다는 걸 믿고 느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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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알못을 위한 완벽한 과학책 <야밤의 공대생 만화>

신작 열전/신작 도서 2018. 1. 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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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야밤의 공대생 만화>


<야밤의 공대생 만화> 표지 ⓒ뿌리와이파리



자타공인 2017년 최고의 책으로 손꼽는 책, <야밤의 공대생 만화>(뿌리와이파리). 해가 넘은 지금에서야 접했다. '과알못', 과학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보아도 재미있고 심지어 유익하기까지 한 책이 분명하다. 저자는 태블릿 펜을 산 겸으로 '만화나 그려볼까?'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는데, 책에서 소개한 몇몇 인물들의 위대한 발견의 이면과 맞닿아 있어 흥미롭다. 


나는 문과생으로, 명명백백한 과알못이다. 학창시절에 배웠던 화학, 물리, 생물, 지구과학에서 기억나는 건 '칼카나마알아철니주납수구수인백금' 주기율표 정도이다. 문제는 주기율표가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모른다는 것이고, '칼카나마~'가 어떤 것의 줄임말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과알못의 고백은 이쯤에서 접는다. 


대신, 역사와 위인 이야기는 좋아한다. 고로 과학사도 좋아라 한다. 정작 중요한 그들의 업적이 무엇인지는 이해하지 못해도, 그들의 이야기는 좋아한다는 말이다. 아울러 만화 또한 좋아한다. 소년만화도 좋아하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는 교양만화에 눈길이 많이 갔고 자연스레 많이 접했다. 


이 책은 그 지점에서 완벽히 부합한다. 과학을 알지 못해도 심지어 싫어해도, 만화를 좋아한다면 역사를 좋아한다면(?) 이 책은 맞다. 결정적으로, 이 책에서는 현재진행형의 다양한 개그코드와 저자의 과학을 향한 애정(또는 애증일까)을 맛보고 엿볼 수 있다. 엄선된 댓글을 읽는 건 큰 즐거움이다. 


과학기인 또는 과학천재 열전


책은 과학인물사를 표방하지만, 실상은 과학기인열전 또는 과학천재열전에 가깝다. 고로 아주 재미있고 흥미로운 이야기와 사례들이 가득하다. 그중 단연코 가장 눈에 띄고 가장 자주 등장하는 이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학자 아이작 뉴턴이다. 그는 최단강하곡선을 하룻저녁에 풀어버렸고 미적분을 가장 먼저 발견하기도 했으며 심지어 새로운 화폐를 만들기도 했다. 너무나도 유명한 뉴턴의 생소한 일화들이 재밌다. 


한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수학자 레온하르트 오일러의 이야기는 자못 심금을 울린다. 그의 업적은 너무나도 어마어마한데, 그 업적들 중 상당수가 그가 눈이 먼 이후에 올린 것들이라고 한다. 라플라스의 "오일러를 읽으라, 그는 우리 모두의 스승이다"라는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고 그의 위대함이 묻어난다. 


여기, 역사상 최고의 천재 존 폰 노이만이 있다. 그는 7살 때 8자릿수끼리 나누기가 가능했고 9살 때 미적분을 마스터했으며, 15년 전에 읽은 책을 모두 암송할 정도로 기억력이 좋았다. 20대가 되자 한 달에 한 편꼴로 논문을 썼다 한다. 그리고, 자신이 개발에 참여한 컴퓨터와의 계산 배틀에서 싱겁게 이겨버렸다는 실화 전설이 내려온다. 


과학계의 천재 하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나 알버트 아인슈타인 정도가 떠오를 텐데 이 책 덕분에 수많은 숨겨진 천재를 알게 되는 기쁨(?)을 맛보았다. 혹은 슬픔. 물론 역사에 길이 남을 연구로 칭송받지만 생전에 주목을 받지 못한 천재들도 존재하거니와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으니 마냥 절망(?)에 빠지는 결과만 낳는 건 아니다. 


<야공만>이 시사하는 것들


<야밤의 공대생 만화>는 참으로 많은 걸 시사하고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이런 식의 콘텐츠여야만, 즉 현재진행형의 수많은 인터넷 드립과 패러디로 중무장한 콘텐츠여야만 관심을 갖는 것인가 하는 안타까운 마음과 이런 식으로도 충분히 훌륭하게 어렵고 지루한 지식들을 전달할 수 있구나 하는 감탄이 큰 축을 이룬다. 


책을 접하기 전에는 앞엣것의 마음이 주를 이루었다면, 책의 첫 페이지를 보는 순간 뒤엣것의 마음으로 급격히 옮겨 갔다. 감탄을 금할 수 없다는 것, 더 읽다 보면 너무 재미있어서 그런 저런 마음 같은 건 잊어버리게 된다는 것. 책을 다 읽고 덮은 지금 드는 생각은 어서 빨리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지 하는 마음 뿐.


한편, 저자는 마치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은 격'으로 자신의 작업을 겸손하게 말하고 있는데, 어렸을 때부터 만화 그리는 걸 좋아하고 만화가가 꿈이기까지 했다는 말은 결코 그 '끄적거림'이 그저 끄적거림으로 끝나지 않을 것임을 암시한다. 이 책을 다 본 즉시 '나도 뭔가 해볼까?'하고 생각해봤는데, 그 '뭔가'가 나에겐 없다는 슬픈 자책만 돌아올 뿐이었다. 저자가 챕터를 끝낼 때마다 올리는 교훈을 나도 써 볼까?


아니, 쓰지 않을 테다. 생각나는 게 하나같이 우울하고 슬픈 것들이다... 황새 따라 하려다가 가랑이 찢어지는 뱁새가 되긴 싫다는 말이다. 이것도 일종의 교훈일까. 여하튼 <야밤의 공대생 만화>를 '과알못', 아니 '만알못', 아니 '책알못' 한테도 과감히 맹목적으로 추천하고 싶다. 이 책 읽으면 좋아질 것이다. 과학도, 만화도, 책도.


야밤의 공대생 만화 - 10점
맹기완 지음/뿌리와이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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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에서 종교로, 종교에서 과학으로의 인정에의 희망 <콘택트>

오래된 리뷰 2017. 8. 2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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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콘택트>


<백 투 더 퓨처> 시리즈와 <포레스트 검프> 등으로 익숙한 감독 로버트 저메키스의 숨겨진 명작 <콘택트>. ⓒ워너브라더스



1980년대 '스타워즈'와 쌍벽을 이루며 그야말로 역대급 시리즈로 자리매김한 '백 투 더 퓨쳐'. 그 단편적인 재미만큼은 그 어느 콘텐츠도 따라잡을 수 없을 영화 시리즈였다. 스타워즈에 조지 루카스가 있었다면, 백 투 더 퓨쳐엔 로버트 저메키스가 있었다. 이후 그는 작품성으로 선회하는데, 우리가 모를 리 없는 영화들이 포진되어 있다. 


1994년 <포레스트 검프>, 2001년 <캐스트 어웨이>, 2004년 <폴라 익스프레스> 등이 그것이다. 이쯤까지가 그가 1990년~2000년대 초반 우리에게도 익숙한 '할리우드 영화' 도식을 만들고 알린 시기이다. 기본적인 대서사의 지붕 아래, 약간의 사랑과 약간의 유머와 약간의 감동과 약간의 사연과 약간의 전문지식 등이 생동하고 있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편안하게 즐기며 동시에 감정이입과 몰입까지 할 수 있다. 


이 와중에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지만 모르는 사람도 많을 영화 한 편이 있다. 1992년작 <죽어야 사는 여자>는 아니고, 2000년작 <왓 라이즈 비니스>도 아니다. 내가 소개하고자 하는 영화는 아름답기로 소문난 1997년작 <콘택트>이다. <코스모스>로 유명한 세계적인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장편소설을 영화한 작품으로, 전문적인 지식과 문학적 유흥의 완벽한 합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공상과학 영화가 보여주는 아이러니한 현실


현실과 지극히 동떨어진 일을 하는 우주과학자들, 하지만 그들도 현실과 지극히 연결되어 있다. ⓒ워너브라더스



앨리 애로웨이(조디 포스터 분)는 어릴 적 매일같이 모르는 이의 교신에 열중했다. 일찍 세상을 떠서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 그리고 자신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아끼고 좋아해줬지만 9살 때 세상을 뜬 아버지. 그녀는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수학과 과학 분야에 인생을 건다. 과학이야말로 진리 추구의 해답이거니와 '거대하고 거대한 우주에 오직 지구 생명체만 존재한다는 건 공간 낭비다'라는 신념을 지니고 있다. 


그 신념은 지구 아닌 우주에의 인간 아닌 생명체의 존재를 절대적으로 긍정하게 되는 것으로 발현되고, 그 생명체가 보내는 신호나 메시지를 잡아내 결국에는 그들과 접촉하고자 하는 목적을 추구하게 된다. 그녀는 보장된 자리를 내팽겨치고 미래가 전혀 보장되지 않은 일개 프로젝트 그룹을 이끌며 나라의 돈을 받아 천문대를 돌아다닌다. 


'위대한' 일을 하며 현실과 동떨어진 일을 하는 것 같아 보이는 과학자들, 하지만 그들도 자본의 지원이 없으면 나라의 동의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애로웨이처럼 출중한 실력의 소유자라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렇다면 대학에 소속되어 안정된 상황에서 하고 싶은 걸 하면 되지 않겠냐고 말할 수 있겠는데, 그건 더더욱 불가능하다. 일정 정도의 논문은 물론이고 행정과 정치도 병행해야 하는 곳이 그런 곳이다. 


애로웨이는 가히 그 출중한 실력으로 몇 년에 걸쳐 수많은 난관을 뚫고 중요한 발견을 해낸다. 외계 생명체가 보낸 것으로 추측되는 신호를 잡은 것이다. 하지만 그 공은 고스란히 그녀의 프로젝트에 가차없이 지원을 끊어버린 국가에서 가로채버린다. 그러곤 군대까지 대동한 검열도 시행한다. 일개 개인의 위대한 발견은 곧 나라의 위대한 발견이 되는 것이다. 영화는 그런 과학자의 현실적인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공상과학 영화가 보여주는 지극히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종교와 과학, 이중적 잣대의 아이러니한 차별


기독교 나라라고 할 수 있는 미국, 종교가 최우선이지만 과학 또한 그들이 결코 놓을 수 없는 것이다. 여기에서 모순이 발생한다. ⓒ워너브라더스



애로웨이가 수신한 신호는 1936년 히틀러의 베를린 올림픽 연설이 송출된 후 다시 보내진 것이었다. 지구를 침공한다는 둥 비상식적이지만 그들 입장에선 지극히 상식적인 생각을 내뱉으며 애로웨이의 공을 깎아내리는 국가, 이에 그녀는 천신만고 끝에 그 영상의 프레임 사이에 있는 디지털 신호를 알아낸다. 그 신호는 다름 아닌 운송 수단, 외계를 오갈 수 있는 운송 수단 설계도였던 것이다. 


이전과 똑같이 다시금 애로웨이의 공을 뺏어가는 국가, 각 나라의 대표를 뽑아 외계로 향하는 운송 수단에 탑승시킨다. 하지만 애로웨이는 그 대표에 낄 수 없었다. 그녀가 종교를 신을 믿지 않는 무신론자였다는 이유였다. 어이없고 황당하지만 대표를 뽑는 대통령 직속 고문단에는 당연히 종교인 팔로 조스(매튜 맥커너히 분)도 있었다. 그와 그녀는 사랑도 나눈 사이지만, 엄연한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기독교 나라에서 과학자에게 들이대는 잣대는 이중적이기 그지 없다. 과학자로서 객관적인 데이터로 판단하건대 신이 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을 텐데, 그럼에도 절대다수가 절대자를 믿는다는 주장 하에 그녀의 신념은 묵살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무신론자인 그녀는 가장 큰 공을 세우고 나서도 역사적인 믿음과 대다수의 사람들의 바람을 무시했다는 이유로 대표로 선별되지 못한다. 과학자의 비애임과 동시에 '종교는 종교대로 과학은 과학대로'라는 절대적 이성적 잣대의 아이러니한 차별이다. 


여기서 영화가 나아갈 길,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확연히 보인다. '조화'. 절대로 맞물리지 못할 것 같은 과학과 종교의 화합. 신은 믿지 못하되 외계생명체 존재는 믿는 애로웨이 박사와 신에의 절대적인 믿음의 팔로 조스 신부가 방향과 신념은 다르되 '진리에의 추구'라는 지향점은 같다는 결론까지. 그건 서로를 존중하고 믿는 것일 테다. 자신이 믿는 바의 중심을 지키면서 상대의 중심에게 다가가기. 


과학에서 종교로, 종교에서 과학으로의 인정에의 희망


영화는 주인공 애로웨이를 통해 말한다. 과학과 종교에의 화합을 말이다. '우리가 작고 보잘 것 없는 존재이지만, 우리가 우주에 속해 있는 위대한 존재이며 결코 혼자가 아니란 사실' ⓒ워너브라더스



인간 대표들의 외계 탐험은 결국 무산되고 실의에 빠져 있는 애로웨이는 비밀리에 진행되는 똑같은 종류의 외계 탐험 프로젝트에 참여해 수송선에 탑승하게 된다. 그녀는 기이하고 기이한 일을 겪고 돌아오는데, 전세계 모든 이가 지켜본 그녀의 경험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녀가 주장하는 18시간은 1초도 되지 않은 찰나에 불과했던 것이다. 결국 청문회가 열리고 누구의 말이 맞는지 설전이 이어진다. 


과학자 애로웨이 박사의 과학자답지 않은 발언이 이어진다. 객관적인 증거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와중에 오로지 그녀의 주장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1조 달러 정도의 어마어마한 금액이 들어간 초국가적 프로젝트인 것, 그렇게 얼렁뚱땅 넘어갈 만한 사안이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과학자적인 신념을 끝까지 지켜낼 수 없는 발언을 할 수밖에 없다. 그녀가 직접 경험했고 다같이 나누고 싶기 때문에. 


"제 인생에 변화를 가져올 소중한 경험을 했습니다. 비록 우리가 작고 보잘 것 없는 존재이지만, 우린 우주에 속해 있는 위대한 존재이며 결코 혼자가 아니란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어요. 전 그 경험을 모든 분들과 나누고 싶어요. 그게 바로 제 희망입니다."


과학자로서 한 인간으로서 참으로 멋있고 아름다운 발언이다. '절대자'를 믿는 종교인과 '절대적' 데이터를 믿는 과학자. 그녀는 과학자로서 과감히 한 축을 무너뜨리는 생각과 발언을 한 것이다. 과학의 끝에 영적 경험이 있을 수 있고, 영적 경험을 과학으로 증명할 수도 있을 테다. 또한 인간 그 자체로서의 위대하고 완벽한 존재의 발현과 동시에 작고 보잘 것 없는 존재의 발현, 이는 과학과 종교 모두를 인정하는 태도다. 그걸 모든 이들이 알아주었으면 한다는 게 그녀의 희망이고 이 영화가 바라는 바이다. 


이 영화의 원작소설을 지은 칼 세이건은 무신론자였지만 마냥 신을 부정하지 않았다. 다만 과학적으로도 생각해보라고 권했다고 한다. 신이 자신을 본떠 만들었다는 '위대한' 존재 인간이 얼마나 작고 보잘 것 없는지를 말이다. 그건 외계생명체와의 끈임없는 접촉과 대화 시도에서 시작된다. 그렇지만 그것이 결코 절대자의 부정과 동일선상에서 이루어져서는 안 되겠다. 상호존중과 자가보완이 함께 나아가는 길이다. 그것이 모든 이의 행복과 그 기반 위의 진보로 귀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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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저서를 나열하며 과학의 역사를 파헤치다 <문제적 과학책>

신작 열전/신작 도서 2016. 9. 1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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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문제적 과학책>


<문제적 과학책> 표지 ⓒ윌북



역사, 그중에서도 인물과 사건, 관계와 연도를 좋아하다 보니 어떤 것에 관심을 갖을 때 그런 것들이 눈에 보인다. 음악, 미술, 스포츠, 과학 등. 클래식은 잘 안 들어도 클래식의 역사는 좋아하고, 그림은 잘 못 그려도 미술의 역사는 어느 정도 알며, 운동은 잘 못해도 스포츠의 역사에는 관심이 많다. 과학? 과학은 정말 젬병이라, 한 줄 이해하기도 벅차지만 과학의 역사는 무진장 좋아라 한다. 


책도 좋아하는지라, 해당 분야의 고전들을 많이 알고 있다. 밝히기 부끄럽지만, 역시 알고 있을 뿐 정작 읽은 건 많지 않다. 위에 제시한 것 중에서 음악, 미술, 스포츠 등은 굳이 책까지 필요하진 않은 분야들이다. 반면 과학은 조금 다르다. 논문 형태로 이론을 주장하고 전달해야 한다. 논문이 곧 책이 되는지라, 과학사를 대표하는 몇몇 책들을 익히 알고 있다. 물론 소수의 책은 직접 읽기도 했고. 


생각나는 책들을 읊어보자면, 아이작 뉴턴의 <프린키피아>,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 제임스 D. 왓슨의 <이중 나선>,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 제임스 글릭의 <카오스> 등. 은근히 많다. 이중에 읽은 건? 뒷 부분의 2~3권 정도. 


위대한 저서를 나열하며 과학의 역사를 파헤치다


과학은 잘 모르고 관심도 없지만 역사와 책을 좋아하는 나와 같은 인간을 위한 맞춤 도서가 나왔다. <문제적 과학책>(윌북). 정말 짜맞춘 듯한 기획이다. 기원전 몇 백년에 나온 고전 중에 고전부터 불과 30여 년 전에 나온 신고전까지 36권 36인을 중심으로 다뤘다. 인류의 과학사가 그들만으로 이뤄지지는 않았을 터, 그 전후로 그보다 많은 이들과 저서도 다룬다. 


이 책은 다분히 비과학적이다. 무슨 말인고 하면, 과학의 역사에서 획기적인 역할을 한 위대한 이들과 저서를 나열하며 그야말로 과학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과학 이론을 주장, 설파하거나 중구난방 흩어진 과학 이론들을 집대성 하는 '과학적' 작업이 아니라, 지극히 인문학적으로 접근한 것이다. 과학의 역사. 과학사. 


역사의 소중함을 설파하면서도 정작 '역사'가 갖는 어려움 때문에 소홀히 하는 경우가 상당하다. 아무래도 지나간 것들이기 때문에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특히 과학의 경우, 지나간 것들 중 상당 부분이 '틀리다'고 판명나곤 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할 거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은 틀린 것이고, 뉴턴의 법칙조차 계속해서 도전을 받는다. 오랫동안 절대적 진리로 군림한 베이컨적 사고 방식도 예외가 아니다. 언젠가는 아인슈타인의 이론도 깨질 날이 오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이 책은 획기적이다. 과학사를 아주 쉽게 빨리 훑을 수 있다. 특히 책을 완전히 다 읽지 않아도, 과학사의 중추에 해당하는 책들과 핵심적인 설명만 보아도 된다는 게 엄청나다. 물론 과학사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순 없겠지만, 기본 입문 이상이다. 


'종합' 이론의 전략, 그 앞엔 '기원'이 있었다


책을 보다 보면, '종합'이라는 게 눈에 띈다. 현대로 올수록 그 단어가 갖는 의미가 강렬해지는데, 경영 전략 용어로 '2등 전략'이 생각나게 한다. 우리가 흔히 세상을 완전히 뒤바꿀 만한 발견을 '코페르니쿠스적 발견'이라고 하는데, 그런 그조차 '지구가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 태양이 세상의 중심이다'라는 견해를 내세운 첫 번째 인물이 아니다. 그는 여기저기 흩어지고 제대로 중심이 잡혀 있지 않은 주장과 이론들을 집대성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식의 집대성 혹은 종합은 뒤로 갈수록 많아 진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너무나도 유명한 이들의 책도 마찬가지다. 


위에서 언급한 이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 제임스 글릭의 <카오스> 등이 그렇다. 이밖에도 많지만 일일이 언급할 필요는 없을 정도로 충분한 베스트셀러들이다. 20세기 과학사를 대표하는 이들과 저서들은 위대한 선배들의 이론들을 하나의 거대 설명으로 엮어, '말쑥한 제목'과 '유려한 문장'과 '생생한 비유'로 쓰여 대중들을 사로 잡았다. 


우린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는 너무도 잘 알지만, 그가 있기까지 J. B. S 홀데인이나 윌리엄 D. 해밀턴, 조지 로버트 프라이스는 잘 모른다.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는 빅뱅 이론뿐만 아니라 과학사, 나아가 책의 역사에서도 빼놓을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책이지만, 스티븐 와인버그가 없었으면 절대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자신이 누구보다 훌륭했다는 것이 있지만, '기원'은 아니었던 바 기원에 큰 빚을 지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하겠다. 접하는 이들도 말이다. 


'앎'에서 오는 행복, 그럼에도 불편한 '과학' 책


책을 읽는 내내 행복했다. 비록 과학 그 자체라고 할 순 없지만 과학에 대해 조금은 더 알게 되었다고 느꼈기 때문인데, 내가 과학을 전혀 모르고 그래서 관심도 거의 없어서 더욱 그렇게 느껴졌을 거다. '앎'에서 오는 행복은 특별하고, 모르는 데에서 오는 앎은 더더욱 특별하다. 또한 앎이라는 게 과학과 형제가 아닌가. 


다만, 다분히 서양 중심적이라는 걸 알아야 하겠다. 원제에서 알 수 있는데, 'The Story of Western Science'다. 개인적으로 동양에도 과학이라는 게 존재했었나 싶을 정도로 동양 과학에 문외한인데, 동양 과학은 전혀 실려 있지 않은 게 아쉬웠다. 어쩌면 함께 싣는 게 불가능했을 거다. 사고 체계가 달랐을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오히려 원제는 제대로 된 것이고, 책 표지에 나와 있는 '세상을 바꾼 위대한 과학책 36권'이 좀 걸린다. 서양만이 과학을 했고, 세상을 바꿨다는 말인지...


책을 읽는 내내 역시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비전문가를 위한 과학사 책이라고 하지만, 대부분 전혀 알 수 없는 말들의 연속이었던 거다. 지은이와 옮긴이가 정말 최선을 다해 쉽게 풀고 추가적으로 설명했음에도 말이다. 과학 책들이 그 어느 때보다 대중에게 퍼지고 있는 요즘 딱 알맞은 책이지만 한계는 분명하다. 이 책 또한 그 시류와 함께 한계를 빗겨가지 못한다. 그럼에도 좋은 시도이고 계속 이어나가야만 하는 시도이고 언젠가는 한계를 뛰어넘을 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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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자가 보는 세상, 물리학자의 세상 보는 눈 <세상 물정의 물리학>

신작 열전/신작 도서 2015. 10. 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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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세상 물정의 물리학>



<세상 물정의 물리학> 표지 ⓒ동아시아


인문학도에게 과학은 저 먼 달나라 이야기보다 더 멀게 느껴진다. 그건 과학도가 느끼는 인문학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중학교 때까지 과학을 참 좋아했다. 그 중에서도 실험과 관찰, 과학의 역사가 재미있었다. 반면 이해와 함께 수많은 암기가 따라와야하는 분야들은 점점 멀리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 나에게 과학은 거의 없는 존재였다. 


대신 그 자리를 역사를 비롯한 인문이 채웠다. 거기에도 수많은 암기가 필요했지만, 이야기가 있었다. 수많은 이야기들이 나를 매료시켰다. 그 이야기들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존재할 것이었다. 나에게도 해당될 수 있는 이야기였다. 세상 누구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과학과는 완연히 다른 맛이 있었다. 


일반인이 알고 있는 과학의 대표는 물리와 화학이다. 물리는 물질의 이치를 탐구하는 게 목적일 테고, 화학은 물질의 조성과 성질을 연구하는 게 목적일 테다. 일반인과는 동떨어진, 다른 차원의 것이다. 특히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인 인문학과는 연구 대상부터 다른 바, 상종하는 건 생각하기 힘들다. 인문에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나의 이야기가 있지만 과학에는 그런 게 없지 않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작년 초에 노명우 교수이자 사회학자가 쓴 <세상 물정의 사회학>(사계절)을 굉장히 재미있고 인상 깊게 본 기억이 있다. 세상 물정, 즉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와 사회학은 참 좋은 시너지를 일으켰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인문/사회 도서였다. 누가 봐도 이 책의 제목을 차용한 '물리학자' 김범준 교수가 쓴 <세상 물정의 물리학>(동아시아)라는 책은 나의 오랜 고정관념을 상당 부분 타파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앞의 책보다 더 좋은 제목이었고, 시너지도 더 좋았지만, 깊이는 상당히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그것이 더 좋은 결과를 낳았지만. 


통섭이니, 융합이니 하는 게 2000년대 들어 대유행을 했다. 가장 대표적인 게 인문과 과학의 통섭과 융합인데, 인문 쪽보다는 과학 쪽에서 주도하고 있다. 과학하면 골방에 틀어박혀서 실험하고 관찰하고 연구하는 이미지가 퍼져 있기도 하고, 실제로 과학자들이 인문학을 통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모르니 사람을 위하고 세상을 위한 활동을 하지 못하기도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 물정의 물리학>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미 수많은 통섭 활동에서 다 말했던 것들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이 괜찮았던 이유는 통섭을 방법론으로만 택했다는 점이다. 통섭을 위한 통섭이 아니었고, 통섭 그 자체에 목적이 있지 않았다는 뜻이다. 저자는 물리학자, 그 중에서도 통계물리학자이지만 세상을 보는 눈은 사회학도, 인문학도의 그것이다. 세상을 보는 프레임이 통계물리학일 뿐이다. 이 점이, 이 책이 이미 나와 있는 수많은 통섭 활동의 연장선상에 있음에도 식상하지 않고 새로운 이유다. 


예를 하나만 들어도 저자가 세상을 보는 눈을 가늠해볼 수 있다. 경남 진주의료원 폐업과 시골 초등학교 통폐합 문제에 대해 저자가 접근했다. 먼저 물리학적으로 접근한다. 이윤 추구의 커피전문점과 공익 성격에 맞게 이동거리를 생각해야 하는 학교의 분포도를 작성했다. 커피전문점은 인구밀도에 정비례하게, 학교는 인구밀도의 3분의 2승에 비례하게 놓아야 한다고 한다. 이 둘이 다른 이유는 이윤 추구와 공익 성격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의료원 폐업과 시골 초등학교 통폐합은 지극히 이윤 추구적인 행동이다. 이들은 공익 성격의 시설들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저자는 통폐합으로 인해 학생들이 증가한 통학거리를 이동하느라 소모할 시간의 총합은 결국 엄청난 경제적 손실로 이어질 거라고 말한다. 즉, 이윤 추구적으로 생각해도 시골 초등학교 통폐합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인문학적인 생각을 뒷받침하는 정확한 계산 혹은 통계가 가지는 힘은 인문학도의 상상을 초월한다. 정확하고 객관적인 지표에 어느 누가 쉽게 반론을 제시할 수 있겠는가. 


저자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또 다른 의미에서 인문학도의 생각을 완전히 벗어난다. 인문학도는 생각할 수 없는 그런 것들을 물리학도는 생각하는가 보다. 그가 보는 또 다른 세상을 엿보자. 그런 생각해본 적 있는가? 프로야구 구단들이 경기를 위해 이동하는 거리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저자는 '몬테카를로 방법'(주어진 온도에서 물리계의 평형상태가 어떤 것인지를 체계적으로 알아보는 계산법)이라는 통계물리학의 가장 중요한 컴퓨터 계산법으로 공평한 경기일정표를 만들었다. 물론 실제로는 다양한 제약 조건이 있어서 적용하지는 못했다. 그가 생각하는 것들이 부럽다. 


또 하나의 흥미로운 연구는 보행자 문제에 관한 것이었다. 먼저 누구나 직관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것과 같은 결과, 60% 정도의 사람들만이라도 우측 보행 규칙을 잘 따른다면 길이 거의 안 막힌다는 결과를 얻었다. 하지만 보행자 밀도가 상대적으로 클 때는 전혀 이해되지 않는 결과를 얻었다. 무법 보행자가 어느 정도 있는 상황이 더 길이 잘 통하게 된다는 결과였다. 그건 서로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는 우측통행자들의 집단이 길의 가운데에서 만나게 되기 때문이었다. 우측 통행이 해답이 아니고, 밀도가 해답이었던 것이다. 그가 할 수 있는 방법들이 부럽다. 


인문학도가 과학적 지식을 얻는 건 정말 어렵다.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면 과학도가 인문학적 지식을 갖는 건 가능하다. 상대적으로 쉽다. 못하는 게 아니고 잘 못할 뿐이다. 그러면 이 세상은 과학도들의 것이 될 테다. 적어도 현재 세상을 움직이는 건 과학이니 말이다. 정확히 말하면 과학 기술이라고 해야 하나? 순수 과학과 순수 인문이 함께 매도당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는 그게 맞을 것이다. 


사실 통섭, 융합은 순수 과학이 과학 기술한테 밀리지 않기 위한 수단일지 모른다. 과학 기술도 어찌 보면 통섭, 융합의 일환이니 만큼 같은 걸로 맞대응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통섭, 융합은 다방면에서 더욱 활발히 일어나야 할 필요가 있다. 목적은 같을 테니까, 더 다양한 시선과 방법으로 더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진행하게끔 하면 될 일이다. 


세상물정의 물리학 - 10점
김범준 지음/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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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ngenv
과학, 세상, 세상 물정의 물리학, 융합, 인문, 통섭
  • BlogIcon 空空(공공)
    2015.10.05 13:54 신고

    물리와 화학 ..
    저에게는 참 어려운 학문입니다 ㅎ

    • BlogIcon singenv
      2015.10.25 15:13 신고

      저도요 ㅋㅋ 다가가기 너무 힘듭니다 ㅋㅋ

  • BlogIcon 조아하자
    2015.10.07 22:30 신고

    저는 공대생인데도 과학 잘하는 사람이 부러워요~ ㅋㅋㅋ

    • BlogIcon singenv
      2015.10.25 15:14 신고

      아, 공대생이셨어요? ㅋㅋ 저도 중국학과를 나왔지만, 중국어 잘하는 사람들이 부럽더군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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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른 책] '박진영의 공룡 열전' 그리고 '고양이 눈으로 산책'

생각하다 2015. 7. 1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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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른 책] '박진영의 공룡 열전' '고양이 눈으로 산책'


이번 주 내가 고른 책은 

뿌리와이파리의 <박진영의 공룡 열전>(박진영)

북노마드의 <고양이 눈으로 산책>(아사오 하루밍//이수미)


<박진영의 공룡 열전>은 과학이고, <고양이 눈으로 산책>은 에세이인 것 같네요. 


어릴 때부터 공룡을 참 좋아했던 거 같아요. 포악한 티라노사우루스, 우직한 트리케라톱스, 착할 것 같은 초식공룡 브라키오사우루스 등. 아직도 몇몇은 이름을 외우고 있네요~ 그래서 영화 <쥬라기 공원> 시리즈도 참 재밌게 봤던 기억이 있어요. 요번에 정말 오랜만에 돌아온 <쥬라기 월드>가 소위 초대박을 이어가고 있다는데요. 그에 맞춰 나온 책인 듯해요. <박진영의 공룡 열전>. 모르긴 몰라도, 유명한 공룡들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려 하겠죠? 재밌을 것 같군요ㅎㅎ 영화를 먼저 보고 책을 보면 좋을 듯해요~


언제부턴가 고양이가 그렇게 귀엽더라고요! 개와는 다르게 조금은 새침한 고양이들이 왜 그렇게 예쁜지! 보자마자 막 달려들고 그랬으면 눈길이 안 갔을지도 모르겠네요ㅎㅎ 일본이야말로 고양이 천국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일본 사람들과 고양이가 비슷한 느낌이 좀 있는 것 같기도? <고양이 눈으로 산책>은 고양이를 무척이나 사랑하는 저자가 고양이의 시선으로 도쿄를 산책한 일상을 기록한 책이라고 하네요. 아직 감이 잡히진 않은데요. 막상 받아 보니 큰 기대가 되진 않아 아쉽네요!


다음 주 서평은 <박진영의 공룡 열전>으로 하도록 하겠습니다~


두 책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요~

 박진영의 공룡 열전

고양이 눈으로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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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ngenv
고양이, 고양이 눈으로 산책, 공룡, 과학, 도쿄, 박진영의 공룡 열전, 에세이, 쥬라기 월드
  • BlogIcon 조아하자
    2015.07.13 22:52 신고

    안그래도 전 오늘 고양이와 관련된 동화를 구매하려다가 말았어요 ㅎㅎ

    • BlogIcon singenv
      2015.07.19 16:56 신고

      고양이, 정말 매력적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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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책하다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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