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리뷰] <서극의 칼>
서극표 무협의 정점이자, 서극표 무협의 마지막 <서극의 칼>. ⓒ워너브러더스 디지털배급
소싯적 무협이나 판타지 장르에 빠져 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현실에선 있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할 수 없는 일들과 하고 싶은 일들을 할 수 있는 세계를 그리는 무협과 판타지. 무협은 동양 그중에서도 중국을, 판타지는 서양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겠는데, 무협은 소규모적이거니와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이 주를 이루는데 반해 판타지는 대규모적이거니와 지극히 조직적인 게 특징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판타지보단 무협을 더 좋아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우리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다분히 판타지적인 장르에 푹 빠져 있다. 비록 수십 년 전부터 이미 미국을 점령해온 코믹스를 영화로 옮겨왔을 뿐이라고 해도 말이다. 여기, 2~30년 전 무협 장르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낸 이가 있다. 그 이름도 유명한 '서극'이다.
그는 <촉산>과 <황비홍> 시리즈로 8~90년대를 풍미한 감독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영웅본색> 시리즈를 비롯 <소오강호>와 <천녀유혼> <동방불패> 시리즈를 제작한 이로도 유명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무협 영화가 모두 그의 손에서 태어났으니, 그야말로 8~90년대 홍콩 무협의 대부인 것이다. 95년작 <서극의 칼>은 서극표 무협의 정점이자, 사실상 서극표 무협의 마지막이다.
전형적인 스토리와 캐릭터를 묻어버릴 액션
참 많이도 봐왔던 줄거리와 전개를 무참히 묻어버릴 정도의 액션을 선보인다. ⓒ워너브러더스 디지털배급
명검 제조소로 유명한 연봉호, 사부의 딸 소령은 고아 출신의 정안과 4년차 철두에게 두루 애정을 과시하며 저울질하는 중이다. 정안과 철두는 함께 일을 보러 나갔다가 좋은 일을 한 스님이 마적단에게 처참하게 살해당하는 걸 목격하고는 사이가 틀어진다. 와중에 사부는 정안을 후계자로 지목하고 철두 일행은 몰래 스님의 복수를 하려 한다.
한편, 정안은 소령과 소령의 유모가 하는 말을 우연히 듣고 사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죽음으로 향하는 복수의 길을 나선다. 정안은 아버지가 온몸에 문신을 한 비룡이라는 자객에서 처참하게 살해당하고 자신은 사부가 간신히 탈출시켜 키웠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를 따라나선 소령이 하필 마적단에게 잡히고 정안은 소령을 구하려다가 오른팔이 잘리는 부상을 당하고 만다.
흑두라는 아이 덕분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정안, 정안을 가만히 놔두지 않는 마적단, 죽을 고비를 넘기고 우연히 발견한 무급 비서, 고수가 된 정안은 마적단을 물리치고 또다시 위험에 처한 소령도 구한다. 급기야 마적단은 비룡에게 외팔의 고수를 처단해줄 것을 의뢰한다. 드디어 복수의 길 그 끝에 다다른 정안, 과연 복수는 가능할까?
영화는 지금 보면 전형적이다 못해 시시하기까지 한 스토리와 예측에서 한 치도 빗나감 없는 정직한 전개와 캐릭터를 선보인다. 반면, 그 모든 걸 즉, 그 모든 단점을 일거에 잊어버리게 할 만한 액션을 선보인다. '리얼 액션'이라고 많이들 홍보하는데, 이 영화야말로 진정한 리얼 액션이 아닌가 싶다.
<서극의 칼>의 액션, 날 것의 액션
이 영화가 자랑하는 액션은 다름 아닌 '날 것'의 액션, 현존 영화들이 따라하기 힘들다. ⓒ워너브러더스 디지털배급
액션 기술은 나날이 진보해 이젠 왠만한 리얼 액션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 대역 없이 위험천만한 액션을 맨몸으로 구사하는 맨몸액션은 일찍이 성룡이 정점을 찍었고, 타격감이 훌륭한 와중에 서로간의 완벽한 합으로 감탄을 자아내는 기술액션 또한 일찍이 <본 시리즈>가 정점을 찍었다. 그렇다면 이 <서극의 칼>의 액션은 무엇인가.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날것의 액션'이라고 해야 할까. 무협 액션이 가지는, 가질 수밖에 없는 '판타지'적인 모습을 이 영화에선 찾아볼 수가 없다. 거기엔 장풍가 오가고, 허공을 걷고, 소리보다 빠른 칼의 움직임이 있을 텐데, 이 영화엔 오로지 칼과 칼의 부딪힘만이 있을 뿐이다.
이 '날것'에는 비단 칼과 칼의 부딪힘만이 있는 것만은 아니다. 죽었다 살아나 외팔이 된 정안이, 아버지가 남긴 반쪽짜리 칼에, 타다만 반쪽짜리 비서로, 더 이상 복수의 의미가 아닌 살아남기 위한 싸움들을 헤쳐나가기 때문이다. 거기엔 날것의 액션 이전에 날것의 삶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삶의 나락으로 추락했다가 우연히 얻은 비서로 절정고수가 되어 나타난 영웅 정안의 뜻밖의 전혀 영웅 같지 않은 모습은, 서극 감독의 의도가 다분히 깔려 있는 모습이라 할 수 있겠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 영화엔 삶을 오롯이 감당하는 있는 그대로의 육체와 그에 걸맞는 둔탁한 폭력과 판타지와 이상과는 거리가 먼 현실이 있는 것이다.
<와호장룡>와 극점을 이루는 '아름다운' 무협
가장 아름다운 무협 영화라 할 수 있는 <와호장룡>, 그와 정반대의 극점에서 또다른 아름다움을 뽐내는 <서극의 칼>. ⓒ워너브러더스 디지털배급
개인적으로, 역대 최고의 무협 영화는 단연 이안 감독의 <와호장룡>이라 생각한다. 무협이 이리도 섬세하고 아름답고 감동적일 수 있는가. 어찌 그 어떤 영화보다 진한 여운을 남길 수 있는가. <와호장룡>은 완벽한 와이어 액션과 기술 액션을 자랑한다. 거기에 감각적이라느니 비주얼적이라느니 하는 말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서극의 칼>은 이와 정반대의 극점에서 또 하나의 '아름다운' 무협을 탄생시켰다. 거기에 온갖 수식어를 붙여도 여한이 남는다. 스타일리시하고 비주얼리시하고 화려하면서도 날것이고 거칠면서 역동적이고 현실적이면서도 현란하게 정신 없다. 한마디로 정해진 합이나 정교한 양식 없이 최대한 있는 그대로를 담아낸 것이다.
오래전부터 소문이 자자했던 이 영화의 액션이 재조명되고 있는 것 같다. <와호장룡>이 그 자체로 완벽을 자랑하며 더 이상의 후계자 없이 고고히 하늘 위에 존재하는 느낌이라면, <서극의 칼>은 그 자신 또한 개척의 주자였던 만큼 많은 여지를 남기면서 수많은 후계자와 추종자를 만든 느낌이다.
진보를 거듭하고 있는 액션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 궁금하다. 모르긴 몰라도 이 영화가 보여준 액션의 한 단면이 그 끝에 있을 게 분명하다. 결국 영화가 추구하는 건, 진짜 영화다운 것과 진짜 현실같은 것 아니겠는가.
'오래된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준익의 소품이 윤동주와 송몽규를 품다 <동주> (1810) | 2017.12.29 |
---|---|
이런 전설이 없고 이런 신화가 없다 <에린 브로코비치> (0) | 2017.12.22 |
드니 빌뇌브 감독의 거장으로 가는 길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0) | 2017.12.01 |
시대와 완벽히 조우한 박찬욱의 메시지 <공동경비구역 JSA> (0) | 2017.1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