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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한국영화사에 길이 남을 캐릭터 '강철중'의 <공공의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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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공공의 적>


벌써 15년이다. <공공의 적>이라는 최고의 범죄액션영화가 나온 지. 강철중이라는 최고의 캐릭터가 나온 지. ⓒ시네마서비스



한국영화 사상 가장 성공한 캐릭터는 누구일까. 여기에 정교한 조사나 연구는 필요없을 듯하다. 단번에 생각나는 이야말로 진정 기억에 남는 캐릭터일 테니. 개인적으로, 아마 영화 좀 본다 하는 많은 분들이 설경구가 분한 <공공의 적>의 '강철중'을 떠올리지 않을까 싶다.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캐릭터다. 


2010년대 들어 <이끼>를 제외하곤 이렇다 할 재미를 보지 못한 강우석 감독은 1990년대 <투캅스> 시리즈로 흥행과 비평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며 대가의 반열에 올라선 바 있다. 그는 1990년대를 코미디로 수놓았고, 2000년대 들어 <공공의 적> 시리즈와 <실미도> 등 드라마, 액션, 범죄로 외연을 넓혀갔다. '강철중'이라는 캐릭터는 그 기준 또는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설경구에게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싶다. 1999년 <박하사탕>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바 있는 그에게 강철중과의 조우는 충무로 최고의 배우로 가는 직행열차나 다름없었다. 이후 강철중에 묻히지 않고 과격한 캐릭터 스펙트럼을 선보인, 여전히 선보이고 있는 설경구의 또 다른 얼굴이자 인생 캐릭터가 아닌가. 


'강철중'만이 할 수 있는 수사


<공공의 적>에서 살인마를 집요하게 쫓는 직감적 수사는 오로지 강철중이라는 캐릭터만이 할 수 있다. ⓒ시네마서비스



비리경찰의 낙인을 가까스로 피한 강철중 경장(설경구 분)은 그럼에도 비리에 발 하나를 걸친 채 지내고 있다. 하지만 그의 직속선배는 자살했고 반장님은 쫓겨났다. 새로 부임한 반장은 가차없이 꼼꼼한 성격이라 아주 귀찮을 것 같다. 한편 잘나가는 펀드매니저 조규환(이성재 분)은 집에서는 상냥한 남편이자 아버지이지만 실상 사이코패스 살인마다. 그것도 부모님까지 죽이는...


비오는 날에 잠복근무를 하다 어쩔 수 없이 길가에 급변을 보게 된 강철중, 볼일을 끝낸 찰나 판초우의를 뒤집어쓴 조규환과 마주친다. 그때까지는 서로를 모르는 상태였지만, 조규환은 부모님을 죽이고 나오는 길이었다. 일주일 뒤 엄청난 자상으로 숨진 채 자택에서 발견된 조규환의 부모님, 조규환은 유족 참고인 조사를 받게 되는데...


그때 조규환의 행동에서 미심쩍은 부분을 발견하고는 뒤를 캐는 강철중. 급기야 그가 자신의 부모님을 살해한 살인마라는 직감적 확신을 갖고 뒤를 쫓는 강철중. 하지만 거기엔 어설프지만 동물적 감각의 심증만 있을 뿐 그를 구속할 아무런 물증도 없다. 강철중만 하고 강철중만 할 수 있고 강철중만 해낼 수 있는 수사가 시작된다. 


<공공의 적>은 절대 용서못할 '공공의 적'을 민중의 지팡이이지만 실상 공공의 적에 가까운 경찰 강철중이 쫓아 일망타진하는 스토리라인, 기본골격을 갖고 있다. 여기에 진정한 공공의 적인 조규환을 위시해 강철중과 관련 있는 각종 범죄자들과 경찰 내부 요원들까지, 모두 확고한 개성을 뿜어내는 캐릭터들로 가득 차있다. 


캐릭터로 만들어낸 영화적 재미


강우석 감독이 좇는 '영화적 재미'. 이 영화는 강철중이라는 캐릭터를 그 최상의 요소로 완벽하게 이용했다. ⓒ시네마서비스



이 영화가,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보다 더욱 우위에 서 있는 건 '영화적 재미'인 것 같다. 그에 맞게 선택된 요소가 바로 '캐릭터'이고. 강철중이 강철중일 수 있었던 배경에 그런 선택과 집중이 있었던 것이다. 영화가 캐릭터 중심이 아니었다면 강철중은 분명 튀었을 테지만 불운의 캐릭터로 남았을 게 분명하다. 


이에 비견할 만한 영화로 <타짜> 정도를 들 수 있겠다. 고니와 정 마담의 쌍두마차에 은은한 조연 고광렬과 강력한 조연 아귀까지, 주옥같은 캐릭터들의 나열과 열연이 영화를 그야말로 받들었다. <공공의 적>은 강철중 원탑에 사실상 등장하는 거의 모든 인물이 잊히지 않을 만한 캐릭터성을 선보였다. 


캐릭터가 살기 위해선 절대 평면적이어선 안 된다. 입체적이어야 하는데, 결코 쉽지 않은 아니, 엄청나게 고된 연출과 연기가 필요하다. 이 영화는 웃기지 않은 웃긴 상황연출에, 튀는 듯하면서도 그 연출의 스펙트럼을 벗어나지 않는 계산된 연기가 함께 한다. 허름한듯, 마치 에드리브의 향연인듯 한 느낌이지만 결코 그러지 않았을 것 같은 느낌인 것이다. 


그러며 부모님까지 죽인 사이코패스 살인마의 엽기적 행각을 보고 있노라면, 상반된 분위기가 동시에 던지는 역설적 쾌감을 맛볼 수 있다. 마냥 한 쪽으로 기울지 않은, 균형 잡힌 연출의 계산된 미학을 여기서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 영화는 분명 캐릭터의 승리이지만, 그 뒤에 연출의 승리가 있다. 


15년 동안 차용하는 '입체적' 캐릭터의 의미


강철중이 가지는 압도적 캐릭터성에 지난 15년 동안 많은 영화들이 기댔다. 이제는 더 나아가야 할 때가 아닐까. ⓒ시네마서비스



<공공의 적>은 2002년에 나왔다. 자그마치 15년 전의 영화다. 하지만 기시감을 크게 느낄 수 없는 건, 이후 수많은 범죄영화들이 이 영화를 차용한 면이 크다 하겠다. 그건 이 영화의 영향력이 그만큼 크다는 반증을 보여주는 한편, 한국영화의 질적인 발전이 그만큼 크지 않았다는 반증을 보여주기도 한다. 


'강철중'이라는 캐릭터가 한국영화 캐릭터의 교본과 같을 지라도, 또 다분히 입체적이라고 할지라도, 다시 만드려고 해서는 안 된다. 성공의 법칙에서 보면 반드시 따라야만 할 테지만, 강철중은 이미 하나의 스테레오타입이 되어버리지 않았는가. 강철중을 위시한, 이 영화에 나오는 다양한 종류의 캐릭터 유형 또한 마찬가지이다. 


차라리 평면적인 인물로의 회귀도 필요해 보인다. 계속되는 입체적 인물로의 강행군은 더 이상 입체적 인물의 입체를 입체로 보이지 않게 할 수 있다. 아무 특징 없는 것 같은 일반적 인물도 사실 얼마나 많은 생각과 행동과 경험이 함께 해왔을 것인가. 캐릭터에 생명을 불어넣는 건 연출과 시나리오와 연기에 있지 캐릭터 자체에 있지 않다.


이제는 시대와 조우하고 관객과 소통하고 자본과 협상해야 하는 시대인 만큼, 오로지 영화적 재미만 보고 영화를 만들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공공의 적>과 같은 영화 시리즈, '강철중'과 같은 캐릭터를 또 만나고 싶다. 다시 그런 날이 오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아가고 회귀하고 다시 나아가고 다시 회귀하는 게 세상의 이치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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