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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그들에게 남은 것, 다른 무엇도 아닌 복수 <복수는 나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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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


박찬욱 스타일의 모든 것을 보여준 영화 <복수는 나의 것>.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랴. ⓒCJ 엔터테인먼트

 


자타공인 한국이 세계에 자랑하는 영화 감독 중 한 명, 박찬욱. 2000년 <공동경비구역 JSA>로 국내를, 2003년 <올드보이>로 해외를 접수하면서 지금의 박찬욱이 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시작은 미약하였다. 자그마치 25년 전인 1992년 <달은... 해가 꾸는 꿈>이라는 들어본 적 없는 데뷔작과 1997년 <3인조>라는 작품 모두 실패하며 암흑의 초창기를 보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 2002년의 <복수는 나의 것>이 있다.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복수는 나의 것>은 박찬욱 감독 최고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공동경비구역 JSA>로 데뷔 10여 년만에 입지를 다진 후 그 여세를 몰아 자신만의 색깔을 오롯이 입힌 영화를 만드는데, 그것이 이 작품이다. 박찬욱 영화를 지켜봐았던 사람이든, 박찬욱 영화를 처음 보는 사람이든 단번에 '박찬욱 영화'라는 걸 알 수 있게 해준다. 폭력, 하드보일드, 아이러니, 극단의 조화, 블랙코미디, 미장센...


박찬욱 영화들이 그렇듯 <복수는 나의 것> 또한 절대로 마음 편하게 즐길 수는 없을 거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불편할 것이며, 보고 난 후에도 계속 괴롭힐 것이다. 물론 그 불편함들을 충분히 감수하고도 남을 정도로 잘 만들어진 영화이기에 후회하진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린 이 영화를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 인간에 대해서...


복수는 그들 모두의 것


꼬리에 꼬리를 무는 복수의 뫼비우스의 띠. 그거 참... ⓒCJ 엔터테인먼트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류(신하균 분)는 신부전증을 앓고 있는 누나(임지은 분)가 있다. 누나는 반드시 신장을 이식받아야만 살 수 있는 상황인데, 혈액형이 다른 류는 신장을 이식하지 못한다. 조급한 마음에 천만 원을 가지고 아무도 몰래 장기밀매업자를 찾아가 자신의 신장을 떼어주는 대신 누나에게 이식할 수 있는 신장을 받기로 거래하는 류, 사기를 당한다. 


그때 병원에서 좋지만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온다. 누나에게 이식할 수 있는 신장을 찾았다는 것... 천만 원만 있으면 수술이 가능하다는 것... 이 사실을 알게 된 류의 여자친구 영미(배두나 분)는 일단 류를 쥐어패고는 일명 '착한 유괴'론을 설파하며 천만 원을 구할 방도를 제시한다. 잘나가는 사장님 자식을 납치해서는 잘 대해주고 딱 천만 원만 받으면 바로 아이를 돌려주는 것. 


류와 영미는 중소기업 사장 동진(송강호 분)의 딸 유선(한보배 분)을 타겟으로 삼는다. 그들 스스로가 약속한대로 유선을 마치 딸처럼 잘 보살핀다. 그리고는 곧 동진에게 협박편지를 보내 천만 원을 받아낸다. 하지만 당일 돌이킬 수 없는 사고가 잇따른다. 자신 때문에 아이를 유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류의 누나가 자살하고, 류가 강가에 누나를 묻고 있는 사이에 함께 온 유선이 물에 빠져 죽는다...


이제 시작된다. 류와 동진의 한 맺힌 복수가. 아무 잘못도 없는 딸을 유괴해 죽음까지 이르게 한 류와 영미를 향한 피의 복수, 역시 아무 잘못도 없는 자신의 천만 원과 신장을 갈취한 장기밀매업자를 향한 피의 복수, 그리고 조직에 속해 있는 영미를 죽인 동진을 향한 피의 복수까지. 그야말로 복수는 그들 모두의 것이다. 


복수할 상황에 처할 이유가 없는 이들에 남은 것, 복수


복수할 상황이 그들에게 갑자기 닥쳤다. 그저 복수를 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CJ 엔터테인먼트



다름 아닌 가족, 그것도 삶의 이유와 마찬가지인 가족의 죽음이 눈앞에 당도했다. 동진은 사실 잘나가는 사장님이 아니다. 일에만 몰두하다 이혼을 하고 아이밖에 안 남은 상황에서 회사마저 어려운 지경이었던 것을, 그래서 더욱 아이만 바라보고 있었던 그때 아이가 유괴당하고 죽기까지 한 것이다. 그에게 남은 게 복수밖에 더 있겠는가. 


류는 힘든 것도 그렇게 힘든 게 없는 주물공장에서 열심히 일하다가 하루 아침에 해고당한 처지다. 거기에 누나의 치료비로 모아두었던 유일한 천만 원을 사기 당했다. 나름 방책을 연구해 '착한 유괴'를 실행에 옮기고 성공을 눈앞에 뒀는데 누나가 자살을 택하고 만다. 그에게 남은 게 복수밖에 더 있겠는가. 


잔인해도 이렇게 잔인한 복수가 없다. 눈이 찌뿌려지고 헉 소리가 나고 흠칫 놀란다. 우린 그동안 이보다 더 한 잔인함이 동반된 영화들을 무수히 많이 봐왔다. 그 이후에도 마찬가지이고. 그리고 이 영화가 복수에 초점을 맞췄기로 복수의 행위에 초점을 맞춘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행위가 눈에 띄는 건 행위의 연유와 사연의 처연함과 서늘함에 있겠다. 그들은 복수할 이유는 있었지만 복수할 상황에 처할 이유는 없었다. 


그래서 이 영화의 외적 하이라이트는 류와 동진의 복수에 있지만, 주요 쟁점은 동진의 천만 원을 갈취하고 류의 누나가 자살하고 동진의 아이가 물에 빠져 죽는 그때에 있으며, 우리가 생각해야 할 곳은 영화의 초반에 있는 것이다. 물론 류와 동진의 복수에서 연유하는 '악'의 개념도 생각해야 할 지점이다. 박찬욱 감독은 앞의 생각 지점보다 뒤의 생각 지점, 즉 악의 개념 또는 인간의 본성에 더 중점을 두었을 것이다. 


복수의 잔인함보다 초첨을 맞춰야 하는 곳


이 영화의 복수는 지극히 잔인하다. 하지만 눈을 크게 뜨고 복수를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CJ 엔터테인먼트



두 주요 지점이 사실 진부한 논의가 발화되는 곳이기는 하다. 류와 동진이 복수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 궁극적인 이유가 이 사회에 있다는 것. 밑바닥의 소외계층과 망한 상류층 간의 대결 구도. 하고 많은 사람들 중에 왜 하필 그들에게 그런 일이 벌어졌고, 왜 하필 그들끼리 서로 싸우게 된 것인가. 


그들과 똑같은 처지에 있는 누군가에겐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 걸 보면 그들의 능력 또는 운명이겠지, 하고 생각할 수 있다. 어디로도 빠져나가지 못하는 능력론과 운명론. 영화에서 장기밀매업자의 사기 행각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을 비롯 많은 '만약에'들에 안타까움을 표할 수밖에 없는데, 일개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성질의 것들이다. 누가 해줄 수 있을까, 누가 해야만 할까. 


일련의 행위 원인을 들여다보았다면, 일련의 행위 결과를 들여다볼 차례다. 물론 영화에 나온 두 캐릭터들로만 일반화시킬 순 절대 없겠지만, 작은 표본을 도출할 순 있을 것이다. 이들의 행위 자체는 아무리 자신의 삶의 이유를 잃고 남은 삶을 포기해버렸기로서니 분명 악마적이다. 직접 생각하고 실행에 옮기기까지 했으니 더욱더. 


지극히 평범하게 살아온 그들에게 '악마'의 타이틀을 붙일 순 없다. 피도 눈물도 없는 악마 같은 짓을 저질렀지만 사이코패스라고 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안나 하렌트가 아이히만을 두고 주장한 '악의 평범성'을 대입할 수 있을까. 거기에 어떤 깊이나 악마적 차원은 없었던 만큼 최소한 어느 정도는 맞는 면이 있겠다. 


그들은 내재된 악마의 목소리를 따랐다기보다, 상황이 던진 복수의 목소리를 따랐다. 즉, 누구도 그런 상황에 처하면 그정도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그에 버금가는 짓을 행할 수 있는 요지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아이히만이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행했다는 것처럼, 그들도 그저 그들에게 주어진 복수의 임무를 충실히 아니, 어쩔 수 없이 행했다. "너 착한놈인 거 안다. 그러니까 내가 너 죽이는 거 이해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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