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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희망을 버리지 말자'는 인생에의 지독한 은유 <쇼생크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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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쇼생크 탈출>


어느덧 개봉 20년이 훌쩍 넘은 자타공인 최고의 영화 <쇼생크 탈출>. Best of Best다. ⓒ더 픽쳐스



평생 가장 많이 본 소설은 J. 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우연히 접하곤 1년마다 꼭 한 번씩은 봐서 최소 10번은 족히 봐왔다. 한국어는 물론 영어로도 중국어로도 봤고, 일본어로는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요즘 몇 년 동안엔 못 보고 있는데, 여전히 내 생애 최고의 소설로 남아 있다. 드라마도 있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 <하얀 거탑> <하이킥 시리즈> <응답하라 시리즈> 등. 


영화는 어떨까. 한국과 미국 것이 나눠진다. 윤종빈 감독의 <용서받지 못한 자>를 참 많이 봤다. 군대 경험이 있는 한국 남자라면 뿜어져 나오는 웃음과 평생 남을 트라우마의 역설로 괴로워하면서 재밌게 볼 것이다. 그리고 스티븐 킹 원작,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의 <쇼생크 탈출>이다. 


스티븐 킹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은 미드의 새로운 신기원을 이룩한 <워킹데드 시리즈> 초창기를 진두지휘한 이로 유명하다. 모르긴 몰라도 많은 이들이 가장 많이 본 영화로 <쇼생크 탈출>을 뽑지 않을까 싶다. TV에서 잊을 만하면 방영되는 결과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수많은 명작을 제치고 '네이버 평점'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 명작 중의 명작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에게 '쇼생크 탈출'의 의미는 무엇일까?


주인공 앤디에게 탈옥, 즉 '쇼생크 탈출'은 자유 그 자체다. 뭐가 더 있겠나. ⓒ더 픽쳐스



영화는 1947년 미국, 전도유망한 은행 부지점장 앤디(팀 로빈슨 분)가 바람난 아내와 그 애인을 총으로 쏴죽인 혐의로 종신형을 언도 받고 '쇼생크' 교도소에 갇히면서 시작된다. 다음날 입소 동기 중 한 명이 잘못 보여 간수장에게 얻어맞고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하지만 그건 으레 있는 일로 치부된다. 이곳의 갇힌 죄수들은 인간 이하 취급을 받으며 소장과 간수장 이하 간수들은 절대적 권력의 소유자들이다. 


교도소에 갇힌 죄수들 모두가 그리 주장하듯이 앤디도 한사코 무죄를 주장한다. 자신은 아내와 그 애인을 죽이고 싶었지만 결코 죽이진 않았다는 것. 곧 쓰러질 것 같이 비리비리한 앤디의 첫인상을 좋지 않게 보았지만 점점 그 결기랄까 아우라랄까에 빠져든 레드(모건 프리먼 분), 그는 이미 20년째 복역 중인 종신형수로 구하지 못하는 물건이 없는 이다. 앤디는 그에게 상식 밖의 물건들을 요청하곤 한다. 


앤디는 오래지 않아 간수장과 소장의 눈에 띈다. 은행원이라는 점을 이용해 간수장의 세금 문제를 해결해주고 이어 소장의 회계 비서를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그건 곧 소장의 비리를, 즉 돈세탁과 세금포탈을 맡게 되었다는 뜻이었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앤디는 우연히 자신의 혐의가 벗겨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소장이 이를 가로막는다. 어느날 앤디는 방에서 감쪽 같이 사라지는데... '쇼생크 탈출'을 감행한 것일까. 


자유에의 희망


앤디가 역설한다. '자유' 그 자체보다 더 필요한 건 자유에의 '희망'이라고. ⓒ더 픽쳐스



원작자 스티븐 킹은 스릴러공포 장르로 유명하고 또한 정평이 나 있다. 소설도 소설이지만 영화로 나와 엄청난 인기를 얻었는데, <캐리> <샤이닝> <미저리>라는 공포스릴러의 대명사급 영화들이 그것이다. 반면 생각 외로 공포와는 거리가 먼 드라마 장르로도 우리를 설레게 했다. <쇼생크 탈출>을 필두로 <그린 마일> <스탠 바이 미> 등의 영화들이 그것이다. 그는 정녕 장르를 가리지 않는 이야기꾼인 것이다. 


<쇼생크 탈출>은 제목에서도 충분히 유추가 가능하듯 <몬테크리스토 백작> 이후 '감옥 탈출'이라는 오래되었지만 엄청난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모토를 가져왔다. 우리는 영화에서 주인공이 '어떻게' 탈출할지 노심초사, 학수고대하며 지켜볼 수밖에 없다. 얼마나 기상천외한 방법을 선보일까?


하지만 이 영화는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한 것들을 우리에게 선보인다. 그건 '왜' 탈출해야 하는지와 맞물려 있는데, 영화는 시종일관 단순명쾌하게 '자유에의 희망'이라고 말한다. 물론 그 모습은 전적으로 앤디의 행동과 그 행동으로 레드가 유추하는 바를 통해서다. 그리고 몇몇 죄수들의 에피소드들까지. 


앤디는 간수장의 세금 문제를 해결해주는 대신 함께 땡볕 아래서 일하는 동료 죄수들에게 '맥주' 2캔씩을 부탁하고, 한창 소장 밑에서 잘나가고 있을 때 모든 죄수들에게 모짜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을 선사하곤 독방으로 직행한다. 레드에게는 반드시 탈옥하여 완벽한 자유를 선사할 멕시코의 어느 해변에서 존재하지 않는 사람의 이름으로 함께 사업할 것을 약속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은 '자유'로 수렴된다. 그 장면들이 하나같이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들이다.


'희망을 버리지 말자'는 인생에의 지독한 은유


그렇지만, 희망에의 과정은 너무 가혹하다. 그리고, 자유에의 결과는 더욱 가혹하다. ⓒ더 픽쳐스



마냥 좋을 것만 같은 '자유'의 역설도 잊지 않는다. 장장 50년 동안 교도소에서 생활하다가 이제는 자신의 죄를 완전히 뉘우치고 사회생활을 해도 되겠다고 판단해 풀어준 죄수가 있다. 그는 교도소 내에서 도서관 사서로 꽤 중요한 일을 하며 간수와 죄수 모두에게 두루 신뢰를 얻고 있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밖에 나가면?


죄수들 중에서야 중요하고 신망이 두텁지 일반인 중에서는 죄수 출신 늙은이일 뿐이다. 그는 교도소에서 나가기 전에 사고를 일으켜 형을 연장하고자 했지만 여의치 않았고, 교도소를 나가서도 사고를 일으키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너무 늦었음을 직감했다. 결국 그가 그가 할 일은 생을 마감하는 것밖에 없었다. 자유를 진정 바라고 그에 준비된 사람만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역설을 몸소 보여준 에피소드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어딜까, '내가 있고자 하는 곳'은 어딜까. 나에게 자유가 없을 때 과연 끝없이 자유를 탐할 수 있을까. 본래 자유로운 몸이었다면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실로 오랫동안 자유가 주어지지 않을 때도 여전히 자유를 탐할까, 오히려 자유가 없는 그곳이 더 자유롭다는 역설이 가능하지 않을까. 


문제는 그럼에도 강제로 자유가 주어졌을 때다. 강제로 자유를 빼앗고 다시 강제로 자유를 부여하고. 그보다 더 '강제'의 무서움을 보여주는 사례는 없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말한다. 희망을 절대 버리지 말라고. 여기서는 '언젠가 반드시 풀려날 거라는' 직접적 희망이겠다. 인생의 부분부분들에 대한 지독한 은유인데, 살면서 진정 자유롭다고 생각할 때가 언제인지, 과연 그런 때가 있긴 한 건지 생각해보면 알 것이다. 실제 감옥을 탈출해서는 안 되겠지만, 인생 감옥에서는 탈출을 꿈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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