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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말끔한 신원 미상 시체와 함께 하는 공포의 밀실 <제인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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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제인 도>


말끔한 신원 미상 여성 시체의 부검이 시작되며 일어나는 기이한 사건들... ⓒ오피스픽쳐스


화창한 날씨, 반듯하고 깔끔한 집, 한 점 싸늘한 기운조차 없어 보이는 그곳에서 일가족이 처참하게 몰살당했다. 그리고 지하실 땅 속에서 발견된 외상 하나 없고 매끈한 여성의 시체. 보안관은 도무지 그녀의 신원을 알아낼 수 없다. 신원 미상, '제인 도'다. 그래도, 아니 더욱더 어떻게 죽었는지 알아야 하기에 평소 믿고 맡기는 토미와 오스틴 부자의 부검소로 보낸다. 신원 미상 여성 시체의 부검이 시작된다. 


토미와 오스틴 부자는 신나는 음악을 틀어놓고 시체를 부검할 만큼 열정적이고 자신들의 일을 사랑한다. 오스틴은 다만 아버지 일을 거들어 드리는 것뿐이라고 말하긴 하지만 말이다. 그들이 하는 일은 명확하다. 부검을 하여 '어떻게' 죽었는지 알아낼 뿐, 그 외 '왜' 죽었는지, 어떤 '사연'이 있는지는 알 바 아니다. 철저한 직업의식이다. 


하루 일과를 끝낼 찰나 갑자기 맡게 된 신원 미상 여성 시체의 부검, 종종 있는 일이기에 부담스러울 건 없다. 하지만, 시체의 외부에서도 내부에서도 갈수록 이상한 점들이 발견되기 시작한다. 시체의 몸에 칼을 대려고 할 때 일어난 기이한 현상들이 마음에 걸린다. 영화는 토미와 오스틴 부자가 어쩔 수 없이 자신도 모르게 '왜' 죽었는지 천착하게 되면서 걷잡을 수 없이 파국을 향해 치닫는다. 이 시체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들의 운명은? 


수준급 시나리오와 번뜩이는 아이디어의 <제인 도>


저예산에 수준급 시나리오, 괜찮은 아이디어로 무장한 공포영화들이 몇 년간 우리를 찾아오고 있다. ⓒ오퍼스픽쳐스



할리우드는 전통적으로 공포영화에 캐릭터성을 많이 부여해 허접한 시나리오와 아이디어에도 불구하고 많은 성공을 이룩해왔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선 씨알도 안 먹히는 상황이 연출되었고, 완전히 반대의 길을 걸어 저렴한 제작비를 투입하는 대신 수준급의 시나리오와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승부한다. 덕분에 우린 매년 수작 공포영화를 즐길 수 있게 되었는데, 올해에도 어김 없이 찾아왔다. 그중 하나, <제인 도>. 


최근 들어 밀실 공포가 많이 찾아오고 있는데, 극도의 긴장감 조성에도 큰 몫 하지만 단순 공포 이상의 '심리'적 압박에 이용하고 있는 것 같다. <제인 도> 또한 그 기류에 훌륭하게 편승해 적절 이상의 공포를 선사한다. '신원 미상' 시체는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주고, 시체 '부검'은 그야말로 압도적인 물리적·시각적 공포를 준다. 


주인공들이 때론 웃으면서 때론 진지하게 학구적인 자세로 부검에 임해도, 그래서 각종 내장들을 각종 도구를 이용해 꺼내 살피는 모습만 봐도 누군가는 헛구역질을 연발할 것이다. 아니면 눈을 가리던가. 비록 우린 하루가 멀다 하고 섭취하는 내장들이지만, 그게 사람의 것이라고 생각하면 얘기가 달라지지 않을까. 그 역설에서 오는 부적합이 더 힘들지도 모르겠다. 


시종 강도를 더하는 긴장감


'깜놀' 대신 시종일관 조여오는 긴장감이 이 영화의 은근한 특징이다. ⓒ오퍼스픽쳐스



이 영화의 중심에는 단연 '제인 도'가 있다. 신원 미상의 여성 시체말이다. 살아생전 굉장한 미모를 자랑했을 게 분명한 외모의 소유자다. 예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이 시체가 스스로 일어나 관객들과 주인공들에게 공포를 선사함과 동시에 주인공들을 무슨 이유에서든 어떻게든 죽이려고 하면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흘러간다면 이 영화를 볼 이유가 있을까? 


'제인 도'라는 캐릭터와 함께 토미 역을 맡은 '브라이언 콕스'가 극의 중심을 잡는다. 능글능글하기까지 보이는 노련함으로 공포를 방어(?)해주기도 하지만, 그 자신 공포의 노예가 되었을 땐 관객들이 느끼는 감정이란 갑작스런 낭떠러지를 만난 것과 같을 것이다. 매우 효과적인 캐스팅이라 아니할 수 없다. 비슷한 느낌을 주는 만큼 오스틴 역의 에밀 허쉬도 상당히 괜찮다. 


영화는 다분히 오컬트적인 측면이 강함에도 화끈한 찰나 공포를 선사하진 않는다. 그럴 만한 요소가 도처에 깔렸음에도 쉽게 그러하지 않으니 그게 더 큰 공포일 수 있다. 시종 강도를 조금씩 더하는 긴장감이 심장을 조여오는 느낌을 줄 뿐이다. 나도 모르게 나의 오감이 스크린 사방을 살핀다. 차라리 공포의 순간이 빨리 오기를...


공포 이외의 다각도적인 흥미 요소


공포 이외의 것들이 오히려 공포를 부각시킨다. 다분히 사회문제적이고 심리적인 것들. ⓒ오퍼스픽쳐스



최근 공포영화 중 '수작'이라는 칭호를 얻는 영화들의 공통점이 있다. 앞서 말한, 공포 이외의 것이 그것이다. 공포의 원인이 사회문제적이고 심리적이다. 이른바 현실적이다. 그리고 문제적·비극적 슬픔도 담겨 있다. 이 영화는 비록 비현실적인 오컬트 공포가 주를 이루지만, 그 원인에서 오는 비극적 슬픔이 깊숙이 와서 박힌다. 


다시 돌아온 공포영화의 추세 중 하나인 '사운드' 또한 <제인 도>의 흥미 요소 중 하나이다. 시체와 혼수상태에 있는 사람을 구분하기 위해 영안실의 모든 시체에 종을 부착했다던 옛 전통, 바로 그 종소리가 이 영화의 '깜놀' 없는 대신 긴장감 어린 하이라이트에서 중요하게 작용한다. 


더불어 <제인 도>는 '추리'라는 방법론까지 채택해 다각도의 흥미를 돋우고자 한다. '어떻게' 죽었는지에 천착했다가 '왜' 죽었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고 그 때문에 다시 '어떻게' 죽었는지 추리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결국엔 '왜'... 하지만 '제인 도'는 끝까지 신원이 밝혀지지 않는 제인 도로 남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야만 수미쌍관의 완벽한 밀실 공포가 완성되는 게 아닐까. 


올 여름, 메이저급이라고 할 수 있는 <애나벨>과 스릴러에 가까운 <47미터>, 오랜만에 찾아온듯 한국산 공포영화 <장산범>을 제외하곤 공포영화가 눈에 띄지 않는다. 그야말로 올 여름 제대로 된 공포영화는 <제인 도> 한 편뿐이라 해도 무방한 것이다. 이 정도면 무더운 올 여름 나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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