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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도서

1980년대 일본을 뒤흔든 문단의 아이돌, 그 실체를 논한다 <문단 아이돌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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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문단 아이돌론>


<문단 아이돌론> 표지 ⓒ한겨레출판



무라카미 하루키, 일본이 자랑하는 자타공인 전 세계적인 소설가 중 한 명이다.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 1순위로 지명되며 대중적 인기와 함께 비평적 인기를 한몸에 받고 있는 그다. 지난 2월 24일 일본 현지에서 출간된 신작 <기사단장 죽이기>는 그 인기에 완벽히 부합하며 일본 열도가 떠들썩하게 만들었는데, 초판 인쇄 부수만 자그마치 130만부다. 이쯤 되면 무서울 지경이다. 


1979년에 데뷔해 데뷔 40주년을 코앞에 두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 여전히 남녀노소 불문 대중과 평단 모두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동안 '하루키론'을 위한 수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온 건 물론이다. <기사단장 죽이기>는 이번 상반기가 가기 전에 한국에 상륙한다고 하는데, 그에 맞춰 하루키를 다룬 하루키론 책들이 나오는 중이고 앞으로도 나올 것 같다.  


그중 하나가 평론가 사이토 미나코의 <문단 아이돌론>(한겨레출판)이다. 일본에서는 2002년에 나왔으니 15년이나 지난 책인데, 그것도 책의 주제가 1980~90년대 일본 문단의 주요 작가라는 점을 볼 때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상륙에 맞춘 출간이라고밖에 생각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책이 굉장히 재미있고 가치가 있는 건 분명하다. 뜬금없다고 느낄 순 있을지언정 허투루 별 것 아닌 책을 낸 건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저자의 독특한 해석과 유머러스함이 빛을 바란다. 많은 책을 낸 걸로 아는데, 우리나라엔 2006년에 나온 <취미는 독서>라는 책 한 권밖에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기까지 하다. 그나마 그 책도 절판되었단다. 소설, 소설가, 문단, 문화, 사회로 이어지는 일련의 길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적인 지지를 보낼 만한 저자이다. 


RPG 게임을 연상시키는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 세계


저자가 소개하는 문단의 아이돌들은 모두 8명. 그중 우리가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이들은 5명 정도, 개인적으로 관심이 가는 이들은 2명 정도다. 다름 아닌 '두 명의 무라카미', 무라카미 하루키와 무라카미 류다. 저자는 하루키를 1980년대 후반 거품경제 시기에 경이로운 베스트셀러를 냈던 작가 중 하나로, 류를 '작가'라는 틀을 넘어 폭넓은 분야에 걸쳐 적극적으로 언론 활동을 펼쳐온 지식인 중 하나로 보았다. 


사실 하루키야말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문단 아이돌'의 핵심이다. 어마어마한 판매량과 함께 어마어마하게 잘 논해지는 작가이기 때문일 테다. 저자는 하루키의 판매량 수수께끼는 제외하고 '왜 그토록 잘 논해지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그의 소설은 '롤플레잉 게임'을 연상시킨다. '하루키 퀘스트'. 하루키 작품은 독자의 참여를 부추기는 인터랙티브 텍스트라는 것이다. 그의 문학은 뭔가 말하고 싶은 기분을 불러일으키고, 퍼즐이나 게임을 풀고 싶은 욕망을 자극하는 데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하루키가 작품에 그런 요소들을 숨겨놓고 독자와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한다는 것.


저자는 하루키 작품 해석을 게임에 맞춰 소개한다. 그의 작품을 대하는 독자 또는 비평가의 레벨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레벨 1은 분위기 비평이다. '나는 이 문체가 좋아, 이 세계관이 좋아'라며 어린아이처럼 써 내려가는 것. 레벨 2는 퍼즐 풀기다. 하루키 월드에 다양한 단어들이 존재하기에 그에 대한 해설을 써야 한다는 것. 쓸데없이 복잡한 '본격적 비평 시대'의 시작이다. 레벨 3은 도사가 되는 것이다. 수수께끼 풀이 기계 같은 사람이 비평 아닌 해석에만 몰두하는 것. 레벨 4는 공략본의 출현이다. 비평이 아닌 해석에만 매달린 이가 써내려간 하루키 퀘스트의 공략본이다. 


확실히 하루키 소설은 독자로 하여금 참을 수 없는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다. 매 작품마다 그렇다. 사실 가장 잘 알려진 <노르웨이의 숲>(혹은 <상실의 시대>)은 이런 면에선 가장 덜 궁금증을 자아낸다고 한다. 아는 사람들은 아주 잘 알 법한 하루키 월드의 진정한 맥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3년의 핀볼>, <양을 둘러싼 모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댄스 댄스 댄스>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하루키 팬들은 이 소설들을 읽으며 'RPG 게임'을 해왔던 거다. 


언제나 무라카미 하루키에 비교당하는 무라카미 류


무라카미 류, 우리나라에선 무라카미 하루키에 비해 그 인기가 확실히 떨어진다. 단적으로 서점에서 이름을 검색해보면 알 수 있는데, 하루키 관련 책이 200여 권 정도인 반면 류 관련 책이 100여 권이다. 사실 이 정도만 해도 엄청난 수치인데(현재 절대적인 인기를 구사하고 있는 일본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와 비슷하다), 단지 '무라카미'라서 비교당하는 것 같은 기분을 지울 수 없다. 이는 일본 현지에서도 다를 바 없다고 한다. 


저자에 따르면, 하루키 월드뿐만 아니라 '류 월드'도 확연히 존재한다. 그 특징은 '조잡 파워'와 '와이드 쇼'로 정리할 수 있단다. 아마추어리즘의 힘으로 독자를 무장해제 시켜 특별한 공감을 느끼게 하는 반면, 대중적인 텔레비전 뉴스의 시대를 읽는 센서와 시대를 읽는 센서가 특출나게 발달했다는 것. 그래서 시간이 가면 갈수록 스스로를 갉아먹는다고 진단한다. 제대로 된 작품이 아니더라도 시대를 앞섰다는 평가를 받기 위해 빨리 내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한편, 하루키와의 비교는 일본에서 엄청나게 오랜 시간 계속 되어 오고 있는데, 저자는 두 무라카미의 비교론을 의심스러워 한다. 만약 둘 중 하나의 이름이 무라카미가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과연 이런 정도까지 비교를 했을까? 그리고 의외로 무라카미 비교론자들은 모두 결국엔 류의 손을 들어준다는 것이다. 하루키에 비해선 류의 작품에 비평적인 요소가 더 잘 소화되어 있기 때문일 텐데, 이런 이항 대립의 도식은 하등 의미 없고 소모적일 수 있다는 것. 


하루키와는 다르게 류의 작품을 거들떠 본 기억은 거의 없다. 센세이션을 일으킨 데뷔작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를 익히 알고 있는 것과, 영화로 옮겨진 소설 <69>를 굉장히 인상 깊게 봤다는 정도? 아마 저자의 말처럼 류를 보는 시선이, 단순히 소설가 이상의 그 무엇, 지식인으로 옮겨졌기 때문일까. 그를 잘 알지도 못하지만, 풍기는 분위기로도 어느 정도 파악이 가능하다. 


1980년대의 일본, 우린 지금도 따라가고 있다


이밖에도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요시모토 바나나', '우에노 지즈코', '다치바나 다카시' 등도 거론된다. 대부분 저자의 빼어난 촌철살인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특히 '지식의 거인'이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서광으로만 알고 있던 다치바나 다카시의 여성차별을 위시한 '여성과 어린이 문제'는 상당한 충격을 안기기에 충분했다. 


여성 작가로는 무라카미 하루키만큼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는 차치하고, 우리나라를 강타하고 있는 페미니즘의 한 축인 사회학자 우에노 지즈코는 눈여겨 볼만 하다. 우리나라에도 2010년대에만 10여 권의 책이 번역되어 나와 있는데, 저자는 이 역시 날카롭기 그지 없는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그녀를 두고, '남자 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했음에도 남자 사회 내에서 앉을 자리를 확보했으며, '인텔리=양갓집 자제'를 위한 담론을 생산했다'고 평한다. 어쨌든 고지식한 영감들을 상대로 싸워왔다는 점도 잊지 않고 있지만. 


이 책은 분명 작가 비평, 문예 비평의 성격을 띠지만, 1980년대 일본 사회 자체를 비평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끔 한다. 큰 틀에서 보면, 무라카미 하루키를 위시한 1부에서는 '거품 경제'를, 우에노 지즈코를 위시한 2부에서는 '페미니즘'을, 무라카미 류를 위시한 3부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주제를 좆기 때문이다. 자세히는 호황과 불황, 페미니즘 유행, 지적 권위주의 파괴 라는 일련의 주제들 말이다. 


이 책을 통해 들여다본 1980년대 일본은 그대로 1990~2010년대 한국이다. 전례 없는 호황이 지나 기나긴 불황의 시대가 도래하고, 페미니즘의 대중화되고 있다. 누구나 책을 쓸 수 있는 시대, 여지 없이 지적 권위주의가 파괴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일본의 그림자를 따라기기 바쁜 것인가. 아니면, 그들이 걸었던 길이 누구나 걸어야 할 길인 것인가. 우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선 우리도 한 번쯤 정리가 필요해 보인다. 비평을 위한 비평이 아닌, 비평을 수단 삼아 우리가 지나왔고 지나가고 있고 지나갈 길을 목적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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