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비참한 대학생활>
<비참한 대학 생활> 표지 ⓒ책세상
매주 토요일 촛불집회는 이제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 그동안 거리로 쏟아져 나온 이들만 해도 수백만 명에 이르니 사실상 박근혜 대통령 하야 운동은 전국민이 바라는 일이다. 비단 대통령 하야뿐만이 아니다. 최순실 게이트 규명, 세월호 사건의 진상 밝히기, 사드 배치 반대, 백남기 농민 문제 해결 등 모든 현안들에서 반정부 비판의 목소리가 함께 하는 것이다.
그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게 대학생들이다. 지난 10월 26일,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입학 및 학사관리 특혜 의혹 등으로 시끄러웠던 이화여대에서 최초로 시국선언을 한 후 전국적으로 수십 여개의 대학교에서 연이어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이는 시대를 이끄는 지식인으로서의 대학생, 그런 이들의 시국선언으로 봐야 하겠다.
한국 근현대사의 굵직한 시국에서 대학생은 여지 없이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한가운데에서 그야말로 시국을 이끌고 나아가며 '4.19 혁명'의 시작이 그랬고 '5.18 민주화운동'과 '6.10 민주항쟁'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전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그 유명한 '68 혁명'도 파리의 몇몇 대학교와 고등학교에서 시작되었다. 내년이면 30주년이 되는 6.10 민주항쟁, 내후년이면 50주년이 되는 68 혁명, 지금 우리에게 큰 힘이 되어준다.
68 혁명의 신호탄이라 불리는 책의 통렬하고 강렬한 메시지
68 혁명은 잘 알려져 있지만 생소하다.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이라는 '시간적', 유럽이라는 '위치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기도 하지만, 당시 우리나라는 군사 정권의 서슬퍼런 통치 아래에서 전 세계적으로 퍼진 혁명의 기운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68 혁명의 신호탄이라 불리는 책이 출간 50주년을 기념해 출간되었다. 1966년 작 <비참한 대학 생활>(책세상)이다. 2016년 작품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 통렬하고 강렬한 메시지를 들어보자.
68 혁명 이전에 프랑스에는 다양한 전위 집단 좌파주의자들이 존재했는데, 그 중 하나가 '상황주의자 인터내셔널'이다. 그들은 현재 자본주의 상품 물신성이 일상의 모든 영역을 스펙터클로 환원해 노동과 삶을 소외시킨다며, 소외의 극복을 위한 일상의 혁명을 추구했다. 이 조직과 스트라스부르대학 총학생회 간부들이 함께 제작하고 인쇄해 1966년 11월에 배포한 소책자가 <비참한 대학 생활>이다.
책은 총 3장으로 이루어진, 채 70쪽이 되지 않는 소책자이다. 첫 장이 대학생에게 던지는 실질적인 메시지다. 프랑스에서 성직자와 경찰 다음으로 멸시받는 존재가 대학생이라며, 비참한 대학 생활을 철저하게 고발하며 비판하고 주장한다. 전후 호황이 낳은 소비 자본주의 하에서 대학생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대학생이 '연장된 미성년 시기'에 머물러 있고, 자본주의를 제대로 이해하지도 비판하지도 못한다고 말한다. 또한 총체적인 시각을 갖지 못하고 자신만 힘들다고 칭얼댄다는 것.
자본주의는 그런 대학생들을 '하급 관리자'가 되도록 만들며, 현재의 비참함을 상쇄시켜 줄 것 같은 미래를 보이지만 그것 역시 자본주의를 떠받드는 기둥 중 하나로 전락시키는 '비참함'으로 수렴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정녕 통렬한 비판인데, 그 어느 행동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비참한 대학생의 소외에 대한 저항은 오직 사회 전체에 대한 저항으로만 가능하다고 일갈하고 있다.
둘째 장은 조금 어려울 수도 조금 지루할 수도 조금 의미 없을 수도 있다. 당시 1960년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던 청년들의 저항 운동의 성과, 한계, 그리고 여전한 비판을 담았다. 프랑스의 '블루종 누아르', 네덜란드의 '프로보', 미국의 '자유 언론 운동', 소련과 동유럽, 영국, 일본에서의 운동을 언급하며 "청춘만이 처음으로 생존을 위한 억제할 수 없는 분노를 내뱉으며, 일상적인 지겨움과 낡은 세계가 다양한 근대화 과정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발산한 죽은 시간에 대항해 자발적으로 반란을 일으킨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총체적 비판이 필요하며, 그러기 위해선 이론적 비판의 일관성을 갖추고 실천적 조직에 도달할 필요가 있다고 일갈하고 있다.
마지막 장은 '상황주의자 인터내셔널'이 추구하는 '자본주의가 낳은 소외를 극복하기 위한 일상의 혁명'의 방법을 다루며 호소한다. 이 소책자가, 그리고 상황주의자 인터내셔널과 스트라스부르 총학생회가 말하고자 하는 진짜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하겠다. 역시 그 전제는 '세계의 총체적 전복을 위한 총체적인 비판'이다. 먼저 혁명운동의 역사를 들여다본다. 1871년 파리코뮌, 1917년 볼셰비키혁명, 그리고 관료주의적 노동조합과 전통적 좌파 정당, 트로츠키주의자, 아나키스트를 모두 비판한다. 단순히 비판하기 위한 비판이 아닌, 자본주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에서 오는 실질적 비판이라는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그러며 새로운 혁명운동의 주체로 노동자평의회와 그 목적으로 노동자 자주관리를 제시한다. 그들이 해야 하는 건 '상품 체계의 구체적인 초월'에 있다. 소책자의 마무리까지 날카로움과 자본주의가 낳은 소외, 그리고 총체적 비판의 깃발을 들고 있다. 다름 아닌 2년 후에 전 세계를 뒤흔들 혁명의 깃발이다.
"세상을 변화시키고 삶을 바꾸자는 것은 프롤레타리아에게는 하나이자 동일한 떼어놓을 수 없는 지침이며, 계급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의 소멸, 궁핍함이 지배적인 현재 사회의 해체, 그리고 궁극적으로 가능한 자유의 통치에 도달할 때까지 함께할 지침이다. 급진적 비판과 소외된 현실이 부과한 모든 행동들과 가치들의 자유로운 재구성이 프롤레타리아의 최대 강령이고, 삶의 모든 순간과 사건들의 구성 속에서 해방된 창조성이 승인할 수 있는 유일한 '시', 모두에 의해 쓰인 시이며 혁명적 축제의 시작이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오로지 '축제'일 뿐이다." (본문 중에서)
아이도 아닌, 어른도 아닌, 어중간한 존재 대학생
50년 전에도 대학생은 아이도 아닌, 그렇다고 어른도 아닌 어중간한 존재였나 보다. 그 옛날 대학생은 '당대를 대표하는 지식인이자 가장 앞장서 시대를 움직인 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리도 통렬하게 비판받고 있었다니 말이다. 이 소책자를 본 대학생 치고 세상을 바꾸고자 전방위적인 비판 활동을 하지 않을 수 없었겠다 싶다. 한편, 50년이 지난 지금의 대학생도 그때와 다르지 않은 바 자신의 불투명한 앞날을 걱정하는 데 그치고 총체적인 비판과 저항을 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대학생 때 세상에 대한 비판은커녕 내 자신의 불투명한 앞날을 걱정하면서 투덜대는 활동 비슷한 것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저 열심히 수업 듣고 시험 공부 하고 친구랑 밥 먹고 차 마시고 술 마시고 집에 와서 열심히 놀았다. 딱히 취업 공부를 하지 않았는데, 취업 공부를 열심히 했었으면 그럼에도 취업하기가 너무너무 힘들었다면 세상에 대한 비판 의식이 한층 강했을 거라 생각한다. 이 소책자가 비판하는 부분이 바로 그 부분인데, 나는 그런 의식조차 없었으니 책이 비판하고자 하는 대학생 군(群) 축에도 끼지 못한다. 지금까지, 앞으로도 한으로 남아 있을 줄 안다.
그런데 이 소책자가 대학생에게 던지는 과감하고 통렬한 비판이 끝모를 데 없다고 느껴진다. 적어도 지금 같은 시국에서는 말이다. 반드시 세상을 향한 총체적인 비판을 해야 한다는 것, 그러지 않으면 '하급 관리자' 따위나 되어서 자본주의의 하수인 노릇을 하게 될 거라는 말이 아닌가. 그게 과연 '잘못'인지, 그것이 청춘만이 할 수 있는, 해야 할 '직무'를 저버리는 것인지 의문이다. 이는 생각해볼 문제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오로지 축제다
소책자의 마지막 부분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오로지 '축제'일 뿐이다'가 던지는 메시지는 지금 한국의 시국에 통렬함 대신 희망을 던져준다. '축제', '놀이'와 같은 혁명을 우리가 시연해내고 있는 게 아닌가. 세계 만방에 떨치고 있는 게 아닌가. 우린 혁명의 한가운데에 있는 것이다. 부디 이 혁명의 불꽃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한국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 번져, 50년 동안 더욱 가속화된 자본주의 소비사회의 일상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자극제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68 혁명 당시 시위가 3개월 동안 이어지자 염증을 느끼고 그 반발심리로 다시 보수주의자들이 정치권에 득세하는 현상이 벌어진 걸 교훈삼아야 하겠다. 거기에 이 <비참한 대학 생활>이 던진 총체적 전복과 비판, 놀이와 축제의 메시지가 한 몫 했을 진데, 우리는 우리의 방식으로 고수하면서 받아들일 걸 받아들여야 하겠다. 어쨌든 현 시국에, 대학생들은 이 책을 읽어야 하겠다. 여전히 우리 마음을 후벼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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