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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The KIng'들의 극비 회동, 그들은 왜? <엘비스와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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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엘비스와 대통령>


'미국국립기록관리처'의 문건 중 최다 열람을 자랑하는 엘비스와 닉슨의 비밀 극비 회동을 소재로 만든 영화, <엘비스와 대통령> ⓒ(주)우성엔터테인먼트



1950년대 혜성같이 등장해 'The King'이라 불리웠던 사나이, 엘비스 프레슬리. 사후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연예인이다. 넘쳐나는 게 돈이었고, 세계 어딜 가나 당연히 주목을 끌었다. 그야말로 모든 걸 얻은 아쉬울 게 없어 보인다. 그런 그가 강력히 원하는 게 있었단다. 그는 비밀리에 1970년 말 당시 제37대 미국 대통령인 리처드 닉슨을 찾아간다. 


미국과 소련, 자유세계와 공산세계로 양분되어 첨예하게 대립하던 가운데, 자유세계를 이끄는 지도자인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 그야말로 세계를 호령하는 권력의 정점인 'The King'이나 다름 없었다. '닉슨 독트린'으로 역사에 이름을 깊이 아로새기고, 한창 골머리를 썩이고 있을 1970년대 말 엘비스 프레슬리를 맞이한다. 


'미국국립기록관리처'의 문건 중 최다 열람을 자랑한다는 '사건'인 엘비스 프레슬리와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비밀 회동. 그들은 도대체 어떤 목적으로 회동을 갖게 된 것일까? 세기가 낳은 특이한, 어느 면에서는 위대한, 그렇지만 서로 전혀 맞지 않을 것 같은 그들이 말이다. 궁금증을 자아내는 그들의 만남이 영화로 제작되어 선보인다. <엘비스와 대통령>. 왠지 재밌을 것 같다.


엘비스 프레슬리와 리처드 닉슨, 'The King'들의 극비 회동


전 세계 젊은이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 전 세계 자유주의의 지도자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 그들의 만남 자체가 흥미를 자아낸다. ⓒ(주)우성엔터테인먼트



원제는 'Elvis & Nixon'으로 대통령이 아닌 닉슨이다. 우리나라에서 엘비스는 알아도 닉슨은 상대적으로 잘 모를듯. 그리고 대통령이 이슈가 되다 보니, 제목을 살짝 비튼 것 같다. 아무래도 영화도 닉슨보다는 엘비스를 중심으로 흘러가지 않을까. 아무리 서방세계의 지도자라고 해도 'The King'이라 불리운 엘비스 프레슬리의 위상에는 모자랐을 것이다. 그런 두 사람이 만난다고 하니, 그 장면을 어떻게 그려냈을지 보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 거린다. 


엘비스(마이클 섀넌 분)는 멤피스에서 워싱턴 D. C.로 날아간다. 목표는 단 하나다. '비밀 연방 요원'이 되기 위해서. 즉, FBI 요원이 되고 싶은 거다. 그는 파라마운트에서 일하고 있던 오래된 친구 제리 실링을 꼬신다. 


엘비스는 자신이 가진 엄청난 인기를 무기로 구구절절한 편지를 닉슨(케빈 스페이시 분)에게 전달되게끔 한다. 보좌진까지 금세 도달한 편지, 젊은층과 남부에 인기가 없는 닉슨에게 좋은 기회가 될 것임을 간파한 보좌진은 비서실장마저 설득시킨다. 결국 닉슨의 책상 앞에 놓인다. 


하지만 닉슨은 '딴따라'일 뿐인 엘비스를 거들떠도 보려 하지 않는다. 비서실장을 설득시킨 카드마저 아무 소용이 없다. 그렇지만 그에겐 금지옥엽 딸이 있었으니, 딸은 당연히 엘비스의 사인과 사진을 받고 싶다. 엘비스의 '보좌진(친구)'과 닉슨의 보좌진은 이를 이용해 엘비스와 닉슨의 만남을 성사시키고자 한다. 자, 그들 앞엔 무슨 일이 벌어질까? 젊은이의 상징과 꼰대와 아재의 상징이 만나니 볼 만하겠다. 


세계를 움직이는 거인들의 무섭고 졸렬하고 단순한 생각


엘비스와 닉슨의 만남은, 엘비스가 비밀 요원이 되고 싶어하는 일념 하에 추진된다. 닉슨은 그의 유명세를 이용해 먹으려 하는 것이고. 그런데 그 이면에는 생각보다 무시무시한 게 숨겨져 있다. ⓒ(주)우성엔터테인먼트



영화는 두 주인공에 집중한다. 특히 전반부는 엘비스 프레슬리에 할애하다시피 한다. 그가 왜 비밀 요원이 되고 싶어 하는지, 어떻게 닉슨과 비밀회동까지 하게 되는지, 그의 고뇌가 무엇인지. 그러며 1970년 당시를 훑는다. 엘비스의 인기도 그렇지만 영화의 주가 되는 비밀 요원 되기도 시대의 산물인 것이다. 


1970년 당시는 전 세계적은 격렬했던 68 운동의 여파가 아직 가시지 않은 가운데 베트남전쟁 반대와 흑인인권 운동까지 절정에 치달았을 때다. 엘비스는 이런 모습에서 미국이라는 국가의 위기를 느낀다. 그 중에서도 마약을 하는 이들이 가장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고는 비밀 요원이 되어 그들을 쓸어버리고자 한다. 이런 생각은 닉슨도 하고 있었을 게 분명한 바, 우습지만 그들은 세계를 움직이는 거인들이 아닌가. 


우습고 어이없고 황당한 엘비스의 바람은 당시로선 사회를 지탱하는 큰 줄기였다. 극한의 대립과 혁명의 불꽃이 전 세계를 휘몰아치는 가운데, 국가의 존립을 걱정하며 마약사범을 소탕하려는 '정의로운' 생각과 행동이지 않은가. 지극히 무섭고 졸렬하고 단순하고 확실한 생각이다. 그런 생각을 'The King'이라고 불릴 정도의 사람이 하고 있다는 게 치가 떨린다. 


닉슨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거다. '닉슨 독트린'을 발표하며 동맹국에서 한 발 뒤로 빼며 자국에 힘을 실은 것도 비슷한 맥락인 것이다. 미국이라는 국가의 위기. 물론 그의 이름 앞에는 임기 4년의 미국 대통령 말고도 서방세계의 지도자라는 수식어가 붙는 만큼, 쉽지 않은 선택이다. 해야 할 생각도 많고 해야 할 것도 많다. 그 앞에 비밀 요원이 되고 싶다며 미국을 걱정하는 전 세계 최고의 스타가 나타났으니, 크나큰 힘을 얻을 게 분명하다.


소소한 추억팔이 정도로만 괜찮은 영화


영화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볼 만하지 않다. 그나마 주연을 맡은 케빈 스페이시와 마이클 섀넌의 역사 인물 따라하기가 소소한 웃음을 줄 뿐이다. 그래도 소소한 추억팔이 정도는 될 것 같다. ⓒ(주)우성엔터테인먼트



실화를 바탕으로, 상당 부분은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진 <엘비스와 대통령>은 코미디를 지향한다. 대놓고 웃기려는 부분은 아마 한 군데도 없을 텐데, 엘비스와 닉슨이라는 실존 인물을 생각하면 웃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의 얼굴, 표정, 말투, 행동, 생각까지 완벽에 가깝게 따라하는 두 배우의 연기(라기보다 모방?)를 보고 있노라면 말이다. 굉장히 진지한대, 굉장히 웃기다. 그들이 진지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드디어 영화 중반 이후 극적으로 만나게 되는 두 사람, 사실 영화의 재미는 그때부터 시작된다. 영화는 그 장면을 세계를 호령하는 '왕들의 만남'이라고 포장하는데 전혀 틀리지 않다. 두 명의 '왕'을 모시는 보좌진들 간의 유의사항 전달 회의를 보면 빵 터지지 않을 수 없다. 또 둘이 만나서 신경전 아닌 신경전을 벌이는 장면도 웃지 않을 수 없다. 집을 개축해서 1500평인 대통령 집무실보다 조금 더 넓어졌다고 자랑하는 엘비스, 닉슨 대통령 전용 간식인 M&M 초콜릿을 와구와구 먹어대는 엘비스...


시대를 이끄는 두 사람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도 종종 비춰지니, 그것이 재미와 코미디의 한 요소이다. 둘의 공통점이라면 굉장히 천한 출신이라는 건데, 엘비스는 그게 한(恨)이 되었고 닉슨은 콤플렉스가 되었다. 엘비스는 특히 '남자'로서 '남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 했는데, 육군에 들어간 걸 자랑스럽게 여기며 명예 보안관을 넘어 요원까지 되고 싶어 했던 것이다. 닉슨은 사방에 '적'들이 있다고 생각하며 완벽주의자로서 엄청나게 일을 했고 누군가를 만날 때면 상대방을 완벽히 조사해 책 잡힐 일이 없게끔 했다고 한다. 영화에서 그런 모습을 살짝 엿볼 수 있다. 


이런저런 점들을 미루어 보아 많은 이들에게 어필이 될 만한 영화는 아니다. 굉장히 엄중한 시국이었던 당시에, 굉장히 엄숙한 만남이었을 거라 생각되는 이들의 회동이, 이런 식의 코미디 아닌 코미디, 정극 아닌 정극으로 비춰지는 게 결코 잘 와닿을 것 같진 않다. 소소한 추억팔이 정도는 괜찮을 것 같다. 


엘비스 프레슬리와 리처드 닉슨이라는, 당대를 넘어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물들을 만나는 재미. 그것도 그들이 한 자리에서 만남을 가졌다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놀라움. 무엇보다 그들이 서로 지극히 맞지 않을 게 분명하거니와, 'The King'이라고 불릴 만한 유이무삼한 존재들이라는 데에서 오는 대치의 격렬함. 아마 격렬한 기대만 하지 않고 본다면 적어도 격렬한 실망을 하진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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