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리뷰] 우디 앨런 감독의 <매치 포인트>
세계적 거장 우디 앨런이 영국을 배경으로 한 인간의 빙퉁그러진 욕망을 파헤쳤다. 상업영화를 표방했는데,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그의 전매특허인 풍자가 보인다. 개인적으로 포스터는 별로다. ⓒCJ 엔터테인먼트
테니스 선수를 때려 치우고 부유층의 테니스 강사가 된 크리스. 그는 상류층으로의 진입을 꿈꾼다. 와중에 그가 가르치는 부유층 집안의 자제 톰과 친해진다. 톰의 가족과 오페라를 함께 보게 된 크리스는 톰의 여동생 클로에의 눈에 든다. 그렇게 크리스는 톰과 클로에와 급격히 가까워진다. 클로에와는 잘 될 눈치다.
어느 날 눈부시게 아름다운 섹시한 여인을 보고 한눈에 반하는 크리스, 하지만 그녀는 다름 아닌 톰의 약혼자 노라였다. 그녀를 가슴 한구석에 고히 모셔둔 채, 크리스는 클로에와의 결혼과 장인 회사 취칙에 연이어 골인하며 꿈에 그리던 상류사회에 진입한다. 자타공인 상류층이 된 것이다. 그렇지만 톰의 약혼자 노라가 자꾸만 생각난다.
예술영화의 상업화에 성공한 세계적 거장 우디 앨런의 <매치 포인트>다. 주로 미국의 자본주의 위선과 허위를 풍자한 그가 이번엔 영국을 배경으로 한 인간의 빙퉁그러진 욕망을 보여준다. 영국 상류층의 위선과 허위를 풍자할 줄 알았건만, 그런 양상은 크게 다뤄지지 않았다. 아니, 있을지 모르니 한번 찾아보는 시간을 갖겠다.
천하의 죽일 놈에게 찾아가는 행운
왜 이런 천하의 죽일 놈에게 행운이 찾아가는 걸까. 정신없이 영화를 즐기다 보면 크리스 때문에 씁쓸함을 느낀다. ⓒCJ 엔터테인먼트
우리 앨런이 변화를 시도했다고 볼 수도 있겠는데, 좀 더 가벼워 보이고 좀 더 상업적으로 보이며 좀 더 이해하기 쉬운 것처럼 보인다. 전체적으로 큰 혼란 없이, 하나의 레일 위로만 달리는 기차와 같기 때문이다. 줄기차게 크리스만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영화는 끝에 와 있다. 다만, 그렇게 정신 없이 끝에 와 보면 알 수 없는 씁쓸함을 느낄 수 있다. 크리스 때문이다.
톰의 약혼자 노라를 가슴 한구석에 놓은 채 톰의 여동생 클로에랑 결혼해 톰의 아버지 회사에 취직해 중역의 자리까지 올라간 크리스. 그는 클로에라는 '성공'을 쟁취하고는, 노라라는 '사랑'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간다. 누구나 성공과 사랑을 함께 얻고 싶어할 테지만, 크리스에게는 클로에가 사랑이 될 수 없고 노라가 성공이 될 수 없었다. 클로에는 그가 원하는 사람이 아니었고, 노라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배우지망생에 불과했다. 그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이대로 계속 지낼 수 있을까.
'매치 포인트'라는 건 테니스를 비롯한 점수 내기 운동 경기에서 승부를 결정 짓는 마지막 1점을 말한다. 이 1점은 실력도 실력이지만 운이 상당히 작용한다. 너무나 결정적인 순간이기에 제 실력을 발휘할 수도 없거니와, 운에 맡기겠다고 마음 먹으면 이기든 지든 마음은 편하다.
크리스는 참 운이 좋은 사내다. 일사천리로 성공을 쟁취하고는 사랑을 향해 달려가도 그를 의심하는 이가 없으니 말이다. 보통 이런 식의 전개라면 영화 <리플리>의 리플리처럼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게 마련이지만, 또 그 파국이 너무 가슴 아프게 하지만, 크리스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끝까지 운이 좋았다. 이 영화가 씁쓸하지만 특별했던 이유다. 이런 천하의 죽일 놈에게 이런 행운이...
우디 앨런의 적나라함이 말하는 것들
크리스는 성공을 택할 것인가, 사랑을 택할 것인가. 그는 이 양자택일의 갈림길 앞에서, 적나라하고 지질하고 역겨운 싸움을 계속한다. 우디 앨런은 이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CJ 엔터테인먼트
영화는 시종 일관 눈을 뗄 수 없게끔 전개된다. 중간에 조금 지루한 공방이 이어지지만, 그조차 긴장 속에서이다. 태풍의 한 가운데는 잔잔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우디 앨런의 연출력과 스타일을 가장 잘 엿볼 수 있는 대목인데, '적나라함'이 그것이다. 이 대목은 그때까지와의 긴장감이 주는 가슴 조임과는 다른 종류 가슴 조임이 있다.
크리스는 영원히 '성공'을 멀리하고 영원히 '사랑'과 함께 할 수 있을까. 그토록 성공을 열망해 사랑하지도 않은 사람과 결혼한 그가? 상류층 진입이라는 목표로 테니스 선수를 때려 치우고 테니스 강사가 되었던 그가? 그럴 순 없을 테다. 하지만 상대가 한 번 보면 절대 눈을 뗄 수 없는 절세미녀다. 성공의 본능과 맞먹는 수준의 본능이다.
하지만 성공과 사랑이 불꽃을 튀기며 대립각을 세우면 사랑은 더 이상 사랑이 아니게 된다. 성공이야 애초에 그럴 거라는 걸 알고 자신의 무엇을 희생한 채 시작한 것이기에 그러려니 할 수 있겠지만, 사랑은 그럴 수 없는 것이다. 현실이 있는 사랑에서 현실이 없는 사랑으로의 길을 갈 수는 없는 거다. 크리스는 그런 양자택일의 갈림길 앞에서 고민한다.
이 고민 하에서의 크리스와 노라의 적나라하고 지질하고 역겹까지한 싸움이 계속된다. 아무것도 없이 오직 크리스만 바라보고 둘만 함께 하자는 노라, 그 앞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크리스. 먼저 시작한 건 크리스였지만, 막상 그 상황이 눈앞으로 오니 너무 두려운 거다. 정녕 인간 말종이라 할 만한 크리스, 그런데 왜 크리스의 상황에 공감이 가는 거지? 왜 나도 모르게 그를 응원하고 있는 거지? 인간이 다 그런 건가. 우디 앨런이 말하고자 하는 게, 그가 보여주는 '적나라함'의 의도가 바로 그것인가, 싶다.
영국의 '용서 받을 수 없는 짓'
이미 '용서 받지 못할 짓'을 수도 없이 저지른 영국(상류층)에게, 역시 '용서 받지 못할 짓'을 저지른 이 하나를 포용하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CJ 엔터테인먼트
우디 앨런이 이 영화에서는 예상과 다르게 영국 상류층의 위선과 허위를 드러내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크리스가 상류층을 대변하진 못할 테니까. 하지만 그런 이들이 그 한 명뿐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와 같은 사람들을 충분히 포용(?)할 수 있을 정도의 영국 상류층이니 만큼, 더 한 이들도 충분히 포용할 수 있을지 모른다.
영국 상류층은 세계 여러 나라의 상류층 중에서도 특별할 거다. 상류층이라는 개념의 원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만 그들이 저지른 짓은, 나아가 영국이라는 나라가 저지른 짓은, 결코 용서받지 못할 게 많다. 1차, 2차 세계대전을 치르며 아주 훌륭하게 이미지를 탈바꿈했지만, 영국이라는 나라는 한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전 세계에 수많은 식민지를 만들었던 파렴치의 대명사였다. '산업혁명' 시대 때 자행된 말 못할 학대의 나날들은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빙퉁그러진 욕망의 발로라고밖에...
그런 '용서 받을 수 없는 짓'을 수없이 저지른 나라가 영국일진대, 지금은 '신사의 나라'이자 상류층만 존재할 것 같은 멋진 나라가 되었다. 알고도 쉬쉬 하기도 하지만, 아예 모르는 경우도 다반사다. 참으로 운이 좋은 것 같다.
크리스 또한 용서 받을 수 없는 짓을 저질렀지만, 아주 훌륭하게 상류층에 편입되어 나날이 좋은 일들만 있을 것이다. 우리 앨런이 영국 상류층을 배경으로 그와 같은 사건을 보여준 건, 다름 아닌 영국이라는 나라와 영국 상류층의 역사를 그의 스타일로 풍자한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들의 운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지금까지는 그들이 역사의 주인이었고 게임의 승리자였을지 모르나, 운이라는 대리인을 내려 보낸 신이 언제까지고 그들의 편을 들어주진 않을 거다. 인생이 좋은 쪽으로 계속될수록 어두워질 크리스의 표정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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