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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삶이 삶을 지탱하고, 사람이 사람을 지켜주는 게 아닐까 <하와이언 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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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하와이언 레시피>


하와이의 작은 마을 호노카아, 태평하기 그지 없는 그곳에 젊은 청년 레오가 찾아온다. 무작정 쉬러 온 곳,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영화 <하와이언 레시피> 포스터 ⓒ㈜영화사 진진



하와이 섬 북쪽 끝의 작은 마을 호노카아, 나이 지긋한 미국계 일본인들이 모여 산다. 세상 어디에도 그런 곳은 없을 듯하다. 느리고 말 없고 태평하다. 딱히 뭘 하고 있는 사람이 없다. 그곳에 젋디 젊은 청년 레오가 찾아온다. 그 또한 느리고 태평한 듯하기에 큰 무리 없이 스며든다. 


마을에 하나밖에 없는 영화관에서 일하게 된 레오, 곧 동네사람들과 친해진다. 그들은 하나같이 천하태평하고 무미건조한 삶을 사는 것 같지만, 사실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여유롭고 안정된 삶이다. 여자를 밝히지만 파킨슨병에 걸린 아내만을 바라보며 사는 코이치, 팝콘 기계 옆에 앉아 기계가 돌아가기만 하면 잠을 자는 제임스, 먹는 걸 너무너무 좋아하는 영화관 주인 에델리, 과묵한 레오의 상사 버즈, 딱딱 맞는 말만 하는 미용사 미즈에, 그리고 천상 소녀같은 비이. 


명장면, 명대사, 명분위기의 향연


영화 <하와이언 레시피>는 명장면, 명대사, 명분위기의 향연이 펼쳐진다. 가본 적도 없는 하와이의 눈부신 하늘과 바다를 비롯한 거의 모든 장면들이 명장면이다. 그 장면들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듯하다. 느릿느릿하고 여유로운 삶의 모습들이 장면장면 짙게 배어 있다. '급할 수록 돌아가라'라는 말이 무색하게, '급할 게 뭐가 있나'를 보여준다. 처음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고 답답하고 짜증까지 났지만, 그게 곧 극도의 부러움이 표출된 거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나중엔 조금이나마 여유롭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곳에 의외로 '사랑' 있다. 아마 레오와 누군가의 사랑일 텐데,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밖에 없는 곳에서 어떻게? 영화 <하와이언 레시피>의 한 장면 ⓒ㈜영화사 진진



영화를 관통하는 스토리 라인에는 예상 외로 '사랑'이 있다. 누구와 누구의 사랑일까? 아마 레오와 누군가의 사랑일 것이다. 그런데 그곳에는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밖에 없다. 이 잔잔한 영화에서 그런 분위기를 연출하긴 쉽지 않을 듯한데, 어김없이 레오 또래의 여인 머라이어가 등장한다. 그들은 급속도로 친해지는데, 그들을 보고 비이가 심상치 않은 모습을 보인다. 비이는 50여 년 전 젊은 시절에 남편과 사별했다고 한다. 


딱히 이야기 선을 찾기 힘든 이 영화에서 레오와 머라이어와 비이의 삼각 관계는, 단순히 중심이 되는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중요한 상징으로 자리매김한다. 사실 머라이어는 중요하지 않다. 레오와 비이의 관계 때문이다. 비이의 입장에서 보면 이야기가 달라 보인다. 


사랑을 하는 사람의 욕망, 그리고 쉼의 위대함


노인은 '사랑'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할 수 없다고도 생각할 것이다.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여하튼 노인과 사랑은 한 통속으로 묶기 힘들다. 영화는 바로 그 지점을 건드린다. 그것도 노인들이 주를 이루는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노인도 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 있고 느끼고 싶고 느끼며 산다. 비이는 젊은 레오에게 '여자'이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그와 함께 있을 땐 목소리며 몸짓이며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천상 여자, 아니 소녀의 그것이라고 할까. 레오는 알 길이 없지만. 


그런 면에서 상당히 파격적인 설정일 테다. 분위기는 천지 차이지만, 영화 <은교>가 생각나기도 한다. 노인의 욕망을 그렸다는 점에서 말이다. 다만 <은교>에서 이적요가 '사랑'이 아닌 '욕망'의 화신이었다는 점에서는 다르다. 그는 은교의 '젊음'에 심취했던 것이다. 반면 비이는 자신을 변화시킨다. 그러며 레오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요리를 선사한다. '노인'의 욕망이 아닌 '사랑을 하는 사람'의 욕망인 것이다. 


쉼이야말로 살아 있는 것의 위대함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모습일 거다. 영화 <하와이언 레시피>의 한 장면 ⓒ㈜영화사 진진



한편 비이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 모습에서 또 다른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대단한 일은커녕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얼핏 무지렁이 같은 이들의 집합소 같은 그곳에도 삶다운 삶이 생동하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잘 보면 그들 모두 항상 무언가를 하고 있다. 음식을 만들고, 먹고, 졸고, 일하고, 멍 때리고, 앉아 있고. 


우린 삶을 오해한다. 무엇이든 열심히 해야 하고 쉬는 건 용납되지 않는다. 열심히 한 만큼 그에 비례해 쉴 수 있다. 그렇지만 쉼이 함께 하지 않는 삶은 지옥 같은 것이 분명하다. 그러지 않다고 반박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본능을 억제한 채 너무 오래 살아왔기 때문이라고 확신한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쉼이 함께 할 때 비로소 일의 능률이 오를 거라고 조언하고 싶다. 쉼이야말로 살아 있는 것의 위대함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모습일 것이다. 


삶이 삶을 지탱하고, 사람이 사람을 지켜준다


"육체는 말과 생각의 이유에 지나지 않아"


극 중 코이치 할아버지의 말이다. 생각나는 여러 명대사 중 하나인데,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영화 중반부가 넘어가면서 코이치를 비롯해 동네 사람들이 하나둘 레오 곁을 떠난다. '레오 곁을 떠난다'고 말한 이유는, 그곳에선 당연한 '떠남'이 레오에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곳은 그런 곳이고, 우리 인생도 다를 바가 없다. 애써 외면하고 있을 뿐이다. 당연한 걸 당연하게 받아 들이지 못하고 있다. 


변한 건 없다. 그대로이다. 다만 그때 그 사람들만 없을뿐. 그게 인생 아닐까. 영화 <하와이언 레시피>의 한 장면 ⓒ㈜영화사 진진



결국엔 레오도 1년 동안 정든 그곳을 떠난다. 그러곤 1년 후에 다시 찾는다. 변한 건 없다. 그곳은 그곳에 그대로 있다. 다만 사람들만 없을 뿐. 그게 인생 아닐까. 너무도 당연한 진리. 만나고 설레고 사랑하고 헤어지고 아파하고 추억하고 성장하는, 그런 당연한 진리를 영화는 찬찬히 보여준다. 


영화가 끝나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호노카아 마을의 전경과 사람들이. 10여 년 전, 호주 브리즈번에서 지냈던 1년과 많은 것들이 겹친다. 그 분위기와 전경들, 나름 치열했던 궤적도 떠오른다. 그 모든 것이 삶이다. 다름 아닌 삶이 삶을 지탱하고, 사람이 사람을 지켜주는 게 아닐까. 레오의 앞으로의 삶에는 호노카아 마을 사람들이 함께 할 것이다. 모든 이들의 삶에 모든 이들이 함께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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