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스티브 잡스>
영화 <스티브 잡스> 포스터 ⓒUPI 코리아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난 지 5년이 다 되어 간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혁신의 아이콘'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그리고 그가 만든 제품을 사용한다. 나는 2007년 '아이팟 나노 3세대'로 애플 제품을 처음 접했다. 얼마 못 가 잃어버리고 2008년 '아이팟 클래식'을 구입해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2011년에는 '아이폰 4'를 구입해서 4년 간 사용했고, 2015년에는 '아이폰 6s'를 구입했다. 앞으로도 애플 제품을 계속 사용할 것 같다. 아마 거기에는 '스티브 잡스'가 크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10여 년 간 애플 제품을 사용하면서 솔직히 불편했던 게 있다. 애플만의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으면 조작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것. 아이튠즈가 그 대표적인 프로그램일 텐데, 컴퓨터에 아이폰을 연결해 무엇을 할라 치면 반드시 아이튠즈가 필요하다. 그 조작이 쉽지 않을 뿐더러 가끔은 왜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만 사용하게 만들어 놨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일명 '닫힌 시스템'. 스티브 잡스가 공동 창업자인 스티브 워즈니악과 대척점을 이루면서 까지 놓치지 않았던 철학이다. 이 점은 호불호가 명확히 갈릴 것이다.
스티브 잡스, 그는 혁신적인 만큼 괴팍하기 이를 데 없다고 알려져 있다. 자신이 세계 최고인 걸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으며, 자신이 옳음을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분명히 그랬다. 분명 엄청나게 잘 나갔던 적이 있었고, (결과적으로) 너무 앞서나가 세상이 그를 알아주지 않아 주저 앉은 적도 있었으며, 결국 최고를 넘어 가히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보이는 면과 달리 그에겐 많은 문제들이 끊임없이 뒤따랐고 그는 괴로워 했다. 궁금해진다. 가려진 모습이, 화려한 조명 뒤의 모습이, 무대 뒤의 모습이.
스티브 잡스의 런칭 프리젠테이션 무대 뒤 모습
영화 <스티브 잡스>는 스티브 잡스의 가려진 모습, 화려한 조명 뒤의 모습, 무대 뒤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스티브 잡스의 인생에서, IT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세 장면이라 할 수 있는 1984년 매킨토시 런칭 프리젠테이션, 1988년 넥스트 큐브 런칭 프리젠테이션, 그리고 1997년 아이맥 런칭 프리젠테이션의 뒷 이야기다. 화려하기만 한 런칭 프리젠테이션 무대 뒤의 모습은 어땠을까. 어느 잡음도 들어오지 않게 하고 조용히 명상 하며 준비했을까. 애플 제품의 단순한 디자인이 선불교의 참선 정신에서 비롯되었다는 말도 있듯이, 충분히 그런 장면을 상상해볼 수 있다.
영화 <스티브 잡스>의 한 장면 ⓒUPI 코리아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스티브 잡스는 앉아서 지루한 회의를 하거나 명상 따위로 런칭 무대 준비를 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걸어 다니며 이야기하고 회의하는 스타일로, 추진력을 더했다고 한다. 영화는 그런 스티브 잡스의 스타일이 고스란히 묻어 난다. 의외라면 의외일 수 있겠다. 영화 <버드맨>의 무대 뒷이야기를 연상케 하는 카메라 워킹과 분주함이다. 다만 이 영화가 조금 덜 복잡하고 덜 폐쇄적이고 덜 역동적이다.
역사적 런칭 프리젠테이션, 그리고 소모적 논쟁
영화는 특이하게 전개된다. 누가 봐도 알기 쉽게 3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위에서 말한 3번의 역사적 런칭 프리젠테이션이다. 마치 연극 같다. 연극 무대의 뒷이야기를 연극에 올린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영화의 전체적 흐름은 서사지만, 그 40분 간의 뒷이야기는 눈과 귀에 피가 쏠릴 만큼 몰입감이 높다. 단순 서사라면 그렇게 몰입할 수 없다.
막상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프리젠테이션을 하기 까지 40분 간의 무대 뒷이야기를 다루었다. 누구나 알만 한 유명한 프리젠테이션을 굳이 영화로 옮길 필요까지 없을 거라 생각했을지 모른다. 영화에서 스티브 잡스(마이클 패스벤더 분)는 3번의 현장에서 고정된 몇 사람을 만난다. 마케팅 담당자 조안나 호프만(케이트 윈슬렛 분), 애플의 공동 창업자 스티브 위즈니악(세스 로건 분), 애플 CEO 존 스컬리(제프 다니엘스), 개발팀 엔지니어 앤디 허츠펠트(마이클 스털버그 분), 그리고 전 여자친구 크리산 브레넌과 딸 리사 잡스.
영화 <스티브 잡스>의 한 장면 ⓒUPI 코리아
그들의 대화는 놀랍게도 굉장히 사적이고 소모적이고 비타협적이다. 중요하기 그지 없는 런칭 프리젠테이션을 코앞에 두고 할만 한 이야기가 전혀 아니다. 조안나와는 그래도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지만 들어보면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자신만이 옳다고 말하는 잡스와 데이터로 현실적인 주장을 펼치는 조안나의 끝없는 소모적 설전이다. 위즈니악은 찾아와 '애플 2'를 언급해줄 것을 부탁한다. 그들의 헌신을 잊지 않고 한 마디만 해주라는 부탁이다. 하지만 잡스는 절대 그럴 생각이 없다. 절대. 결국 그것도 끝이 보이지 않는 소모적 논쟁이다.
그런 소모적 논쟁을 제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앤디와의 논쟁이다. 잡스는 1984년 매킨토시 런칭에서 반드시 '안녕'이라는 말을 듣고 싶다. 그런데 담당자인 앤디는 그 짧은 시간 안에 도무지 고칠 수 없다. 문제는 잡스가 무조건 '안녕'을 듣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프리젠테이션도 없다는 입장이다. '할 수 없다'와 '해라'의 평행선이 계속 된다. 소모적 논쟁의 극치다. 스컬리, 크리산, 리사와도 마찬가지다. 잡스의 굽힐 줄 모르는 신념 또는 고집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그와 대척점을 이루었다.
스티브 잡스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결국 그의 신념이 옳았다. 그 당시에는 분명 고집이었을지 모른다. 잡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눈에는 말이다. 아마 그는 그때도 그것이 신념이었을 것이다. 그 신념은 자신에 대한 확신에서 비롯되었고, 시간이 흘러 그 신념과 확신은 성공을 이루었다. 성공은 신화가 되고 전설이 되었다.
영화 <스티브 잡스>의 한 장면 ⓒUPI 코리아
이 영화는 태반이 아주 사적이고 소모적인 논쟁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잡스의 신념과 확신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그 장면들이 모두 신화, 전설의 한 장면처럼 느껴진다. 그에겐 그런 (쓸 데 없는) 논쟁이 중요했고 결국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 쓸 데 없음의 옮음을 증명했다.
참으로 깔끔하고 빠르고 몰입감 높은 이 영화로 스티브 잡스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조금은 더 알게 된 것 같다. 그와 같은 삶을 살고 싶진 않지만, 그와 같은 신념과 철학을 갖고 싶다. 그와 함께 일하긴 싫지만, 그가 만든 제품을 사용하고 싶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애플을 애용하는 게 먼저고 그 이유가 스티브 잡스 때문이 아니라 스티브 잡스가 먼저고 그가 만든 게 애플이기 때문에 애플을 애용하는 거였다. 난 스티브 잡스를 애용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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