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복종>
소설 <복종> 표지 ⓒ문학동네
'21세기 한반도에서 제2차 한국전쟁이 벌어진다.' 아마도 한국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현실이 아닐까 싶다. 그럴리 없다던가 전쟁이 나도 우리가 쉽게 이긴다던가 하는 말은 큰 위로가 되지 않는다. 60년 전 이미 겪었던 일이고, 그것이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가장 큰 사건 중에 하나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전히 불안에 떨고 있다. '북한 공포증'이라고 해도 좋을까? 그 때문인지 북한은 여러 사람들에게 여러모로 쓸모가 많다.
아무 걱정이 없을 것 같은 유럽에는 어떤 공포증이 존재할까. 전 세계를 휘감고 있는 '경제 공포증'을 제외한다면 '이슬람 공포증'이 가장 클 것이다. 2015년 1월 파리와 6월 리옹에서의 테러는 그 공포증을 증대시키며 현실화시키기도 했다. 안전 지대란 없다는 뜻이다. 물론 이슬람을 통으로 묶어 테러리즘의 집합소로 전락시키는 건 합당하지 않지만, 이성적으로 분리하기 쉽지 않은바 '이슬람 공포증'은 단순히 테러를 넘어 이슬람의 전반적인 문화, 역사, 종교에 대한 공포로 확대된다. 이는 기독교와 이슬람의 오랜 역사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이슬람 공포증'이 현실로
미셸 우엘벡이라는 가장 논쟁적인 작가 중 한 사람이 '이슬람 공포증'을 현실로 옮긴 소설을 출간했다. 제목은 <복종>. 다름 아닌 프랑스에 이슬람 정권이 들어선다는 내용이다. 짚고 넘어가야겠다. 이슬람 정권이 왜 문제가 되는지를, 그들 말을 빌리자면 어떻게 '디스토피아'인지를.
프랑스에 이슬람 정권이 들어서는 건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힘든 현실이다. 세계를 이끌어가는 몇몇 국가 중 하나인 나라가 뭐가 아쉽다고 가장 증오해마지않는 이슬람이 중앙을 차지하게 놔두겠는가? 그런데 그게 꼭 그렇지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경제. 프랑스 또한 전 세계적인 경제 위기에서 결코 빗겨갈 수 없다. 경제 위기 때는 언제나 극우가 출현해 큰 인기를 얻는다.
<복종>의 시대는 2022년 즈음인데, 대선에서 극우 정당인 국민전선이 크게 활약한다.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좌파와 우파가 사이좋게(?) 나눠서 정권을 유지해왔다. 그런 체제가 깨질 위기에 몰린 것이다. 이에 좌파와 우파는 힘을 합쳐 극우 정당이 아닌 이슬람 정당을 밀어준다. 극우와 이슬람이라는 사상 초유의 대선. 결과는 이슬람 정당의 승리. 폭력이 아닌 '민주주의' 형식에 의한.
이슬람 공포증의 실체는 '복종'에 있다
문제는 이 다음에 있다. 이슬람 공포증의 실체도 여기에 있다. 명백히 '민주주의' 형식에 의해 이슬람 정권이 들어서자 사회는 대대적인 변화로 요동친다. 모든 공립학교는 이슬람학교로 대체된다. 주인공 프랑스와 교수는 이슬람교로 '개종'해야 할 위기에 처한다. 일부다처제가 시행되면서 여자는 가정에 전념하게 되고 이는 곧 '실업률의 감소'로 이어진다. 프랑스를 괴롭히는 이민자 문제와 테러 문제는 이슬람 정권이 들어서면서 해결되는 기미가 보인다.
뭐가 문제라는 것인가? 뭐가 '이슬람 공포증'이라는 말인가? 전보다 살기 좋아졌으면 좋아졌지 나빠진 건 없어 보인다. 여기서 미셸 우엘벡의 <복종>이 갖는 미덕이 엿보인다. 그건 바로 제목에 있다. '복종'. 복종하여 편안한 삶을 살 것인가? (남자에 한해서)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또 다양한 부인도 얻고. 그야말로 편안한 삶이다. 단, 자신을 버리고 완전한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무신론은 있을 수 없고 이슬람이 모든 걸 판단하고 모든 것의 우위에 있는 그런 삶.
유럽이, 기독교가 절대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진 이슬람. 어떻게 저리도 반대일까 할 정도의 극명한 대조의 두 종교. 역사적으로 이 두 종교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계속해왔다. 어느 한쪽에 의한 다른 한쪽의 지배와 복종 또한 계속되어 왔다. 지금은 백중세다. 서양(기독교)의 문화적 우세(우수함이 아니다. 그냥 대세적으로 그렇단 거다.)과 이슬람의 물질적 우세.
과연 <복종>은 '디스토피아 소설'인가?
겉으론 이렇지만, 어느 한쪽의 우세가 다른 한쪽의 우세를 잡아먹었을 때는 절대 용납할 수 없고 용인할 수 없는 차이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디스토피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복종은 이슬람이 서양 기독교의 한복판에 들어앉았을 때를 그리고 있는 것 뿐이다. 반대가 되어도 누군가에게는 디스토피아일 것이다.
대표적인 디스토피아 소설로 조지 오웰의 <1984>,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뽑는데, 미셸 우엘벡의 <복종> 또한 디스토피아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문화적 상대성을 감안한다면 그렇게 불러야 하겠다.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부를 수 없는 것일까? 확실히 <복종>의 보편성은 확연히 떨어진다. 지극히 논쟁적인 동시에 지극히 편협한 시각으로 바라본 소설이다. 하지만 상대성을 들이민다면 이슬람을 증오하는 것 또한 자유로운 게 아닌가.
소설 <복종>이 출간된 날과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이 일어난 날이 같다고 한다. <샤를리 에브도>는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외치며 활개를 쳐왔는데 급기야 마호메트를 건드렸다. 마호메트를 비하하는 만평을 실었고 곧바로 테러를 당한다. 샤를리 에브도의 자유에의 외침이 정답인가, 마호메트를 비하하는 자유를 누린 이를 테러한 이슬람이 잘못인가. 샤를리 에브도가 선을 넘어 지나친 짓을 한 것인가, 그에 대해 이슬람은 정당한 방위를 한 것인가. 정답이 없는 이 대립이 꺾일 때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
복종 - 미셸 우엘벡 지음, 장소미 옮김/문학동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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