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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대의'와 '사익', 그 아이러니의 파노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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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장예모 감독의 <영웅>1961년 5.16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18년간 권좌에 있으면서 1인 독재로 한국을 이끌었다. 1972년 10월에는 유신체제를 선포함으로써 비민주주의적 모순이 극에 달했고 결국 1970년대 후반으로 넘어 오면서 그 동안의 정치·경제적 모순들이 폭발하기 시작하였다. 이외에 1978년도와 1979년도는 정치적으로 무수히 많은 악재를 낳았다. 특히 1978년에 치러진 10대 총선에서 야당이 여당에 이김으로써 박정희 정권에 대한 민심은 바닥을 친다.

이러한 상황에서 박정희의 퇴진을 요구하는 '부마사태'가 벌어지고, 박정희 대통령은 경호실장 차지철의 입장을 수용해 강경진압을 채택한다. 그러자 차지철의 견제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는 퇴진위기에 몰리게 된다. 결국 1979년 10월 26일 서울 종로구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가에서의 만찬 도중 김재규는 박정희와 차지철을 그 자리에서 사살한다. 

김재규는 최후 진술에서 10.26의 목적 5가지를 말한다. 그 중 두 번째 이유가 "이 나라 국민들의 보다 많은 희생을 막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행한 일을 '혁명'이라 칭했지만 한 나라의 수반을 죽였기에 '반역'의 굴레가 따라다녔다. 하지만 최근 재조명이 되었고, <의사 김재규>(매직하우스)라는 책이 나오기까지 하였다.

그는 '대의'에 기반한 일을 한 것인가? 박정희의 5.16이 '혁명'에서 '쿠데타'로 격하되었으니 김재규의 '반역'은 '혁명'으로 격상되어야 하는가? 그가 한 행동이 다른 무엇도 아닌 국민과 나라를 위한 것이었다면 다시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대의(大義)'와 '사익(私益)'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계속된다. 

계속되는 '사익'에 의한 사건

10·26으로 박정희가 암살된 뒤 합동수사본부장을 맡고 있던 보안사령관 전두환과 육군참모총장이자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간에 갈등이 인다.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세력은 군부 내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하여 모종의 음모론을 내세워 정승화를 강제 연행한다. 한편 전두환은 부하에게 지시하여 국방부와 육군본부를 점령하게 함으로써 육군지휘부를 무력화시킨다. 

하지만 이와 같은 사태는 당시 대통령 최규하의 허가 없이 이루어졌다. 전두환을 위시한 신군부세력은 최규하에게 정승화 연행 허락을 요청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 이에 신군부세력은 국방장관을 체포하여 그를 통하여 대통령이 참모총장 연행을 허락하게 설득하였다. 결국 최규하는 정승화의 연행을 허락하였고, 이후 신군부세력은 제5공화국의 중심세력으로 등장하였다. 12.12 쿠데타의 전말이다. 

국민의 열망을 업고 혼란스러운 정국을 바로잡겠다는 명분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전말이 밝혀지니, 이 명분은 대의가 아닌 사익이라는 것이었다. 적어도 그 시작은 순수한 권력욕에 의한 정권찬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사익에 의한 사건은 계속된다. 

10·26과 12.12로 민주화 일정이 지연되자 광주시내 대학생들은 5월 14일부터 도청으로 진출, 16일에는 시국성토대회를 가진 뒤 횃불시위를 감행했다. 5·17비상계엄확대조치로 교내 출입이 차단된 전남대생들은 18일 오전 교문 앞에서 무장공수단과의 충돌로 다수의 희생자가 발생하자, 도심지에서 시위를 확산시켰으나 공수부대에 의해 곤봉과 대검으로 무자비하게 살상 당했다. 광주민주화운동의 간략한 전말이다. 신군부세력은 반공의 국시를 명분으로 내세우며 이들의 민주화운동을 가혹하게 탄압하였다. 이들 뒤에 북한이 있다는 것이었다.

한국의 현대사는 이처럼 가짜 '대의명분'을 내세운 '사익'으로 점철되었다. 이들의 가짜 대의명분 아래에서 당시 다른 진짜 대의명분은 모조리 사익이 되어 버렸다. 적반하장도 유분수. 시간이 흘러 모든 것이 왜곡없이 밝혀졌지만(여전히 계속되는 왜곡은 근절되어야 한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진정한 '대의'는 이런 것

영화 <영웅> 포스터 ⓒ 코리아픽처스



중국 영화 <영웅>을 보면 파검이 사막에 글자를 쓰며 자신의 생각을 무명에게 전하는 장면이나온다. '天下'. 무엇을 뜻하는가? 그는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일까? 

영화의 배경은 중국 춘추전국시대 중 전국시대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2200년 전으로, 중국대륙은 진, 제, 초, 연, 한, 조, 위 7개의 나라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중 제일 강한 군사력을 자랑하는 나라는 진나라였다. 전국시대 말기 진나라는 후에 시황제가 될 '영정'이라는 군주가 다스리고 있었다. 그는 천신만고 끝에 기어코 중국을 거의 통일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런 그도 두려워하는 이들이(나라가 아니다) 있었다. 바로 전설의 검객 '은모장천'(견자단 분)과 '파검(양조위 분)', 그리고 '비설(장만옥 분)'이 그들이다. 그들은 호시탐탐 '영정'의 목을 노린다. '영정'은 1만의 호위병을 두고, 자신의 백보 안에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단지 7명의 친위대만 머물게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무명(이연걸)'이라는 이름의 무명검사가 찾아온다. 자신이 영정을 위협하는 3명의 검객을 죽였다고 주장하는 것이었다.('영정'은 그 3명을 죽인 자는 자신의 십보 안으로 들어오게 하였다.) 그렇게 해서 영정의 십보 안까지 들어간 '무명'. 그는 영정에게 3인을 어떻게 죽였는지 고한다. 

먼저 은모장천을 7명의 친위대으로 하여금 기운을 빠지게 한 다음 죽였다고 하였고, 파검과 비설은 연인 사이인데 그들의 제자인 월(장쯔이 분)이 파검과 불륜을 저지르는 모습을 비설이 보아 비설이 파검을 죽이고 무명과 싸우다가 죽었다고 말이다. 하지만 영정은 거짓말임을 간파한다. 

결국 무명은 인정하고 진짜 이야기를 한다. 전말은 이렇다. 은모장천은 무명이 엄청난 고수임을 간파하고 져준다. 그리고 파검과 비설 역시 져준다. 그때 파검이 사막에 '天下'라는 글자를 쓰며 무명에게 그 뜻을 말해준다. 대략 다음과 같다. 

"나는 영정의 군대에게 모든 것을 잃고 이렇게 검객이 되었다. 오직 그를 죽일 날만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영정이 중국을 통일하는 것이 나의 사사로운 복수보다 더 중요하므로 난 복수를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니 너도 '천하'라는 '대의'를 위해 그렇게 해라"

개인의 사사로운 원한은 전란 속에 희생당하는 백성들에 비하면 너무나도 사사로운 것이다. 또한 연나라와 진나라의 원한도 천하라는 대의 아래에서는 사사로운 것이다. 비설은 이 같은 파검의 생각을 반대하다가 결국 같이 죽음을 맞이한다. 

일련의 사건들과 그에 얽힌 생각들을 알게 된 영정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탄식한다. 

"생각지도 못했다, 과인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이 정녕 과인이 수배했던 자객이란 말인가!"

이게 저의 결정입니다. 죽은 자들은 전하께서 최고의 경지를 잊지 않길 바랍니다. ⓒ 코리아픽쳐스


무명의 생각 또한 파검과 같았고, 그 또한 의미 있는 죽음을 맞이한다. 천하의 모든 사람들을 위한 희생. 

"이게 저의 결정입니다. 이렇게 검을 찌르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겠지요. 하지만 전하는 살아남을 것입니다. 죽은 자들은 전하께서 최고의 경지를 잊지 않길 바랍니다."

영화는 화려한 볼거리와 기막힌 색채의 대조에서 오는 상징의 오묘함, 중후한 분위기를 선사한다. 감독 장예모는 이 영화로 전미비평가협회 감독상과 베를린 영화제에서 단편영화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세계적인 감독으로의 발판을 마련해 준 영화로, 연출력 또한 뛰어나기 그지없다. 이는 그 중심에 대의를 위해서 과감히 자신을 희생하는 숭고한 이들의 이야기가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영화는 말하고자 하는 바와는 별도로, 화려한 볼거리와 기막힌 색채의 대조에서 오는 상징의 오묘함을 선사한다. ⓒ 코리아픽쳐스


이 영화는 이에 대해 많은 논쟁을 낳았다. 천하통일이라는 대의를 위한 개인의 희생, 중화주의, 힘과 승자의 논리, 목적을 위한 모든 수단의 정당화 등. 난 이 모든 것에 앞서 개인의 신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천하도 개인이 모여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사익' 또는 '사의'는 당사자에게 있어 그 무엇보다 소중할 것이다. 그들에게 '대의'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지 모른다. 둘 다 각자의 신념에 속한다. 그 신념이 무엇을 지향하고 어디를 향하는지가 중요한 잣대이다. 옳다 그르다의 문제라기보다 개인의 신념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다.

이와는 별개로 '대의'의 탈을 뒤집어 쓴 '사익'의 화신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아야 하겠다. 엉뚱한 곳에서 그 기준을 내세우지 말고, 여기에야말로 옳다 그르다의 기준이 확고히 자리잡아야 할 것이다.


"오마이뉴스" 2013.5.20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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