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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희대의 사기꾼 이야기에 공감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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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지난 2011년 MBC 예능 프로그램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버킹엄 궁전과 백악관 등을 사기로 팔았던 '희대의 사기꾼' 아서 퍼거슨의 일대기가 방영된 적이 있다. 본래 스코틀랜드의 평범한 사람이었던 그는, 어느 날 프랑스의 에펠탑을 보다가 외국인에게 사기를 쳐 팔아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 

이후 영국으로 가 버킹엄 궁전과 빅 벤, 넬슨 기념주 등을 팔았고 결국은 전국에 수배령이 내려진다. 하지만 그는 기막히게 변장을 하였기에, 경찰들은 그를 잡을 수 없었다. 계속해서 활동을 하다가 교묘하게 미국으로 빠져나간 아서 퍼거슨은 또 다른 사기 행각을 벌인다. 이번엔 미국의 백안관 임대 사기를 쳤고 이를 성공시킨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사기 행각이 될 자유의 여신상 판매 사기. 그는 호주의 부유한 관광객에게 이를 팔려고 하다가 붙잡히고 만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할 '아이디어'로 세상을 주무른 아서 퍼거슨. 분명 희대의 사기꾼이라고 할 만하다.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할 만한 점은 그의 행각을 보고 느끼게 되는 감정이다. 그가 봉이 김선달처럼 범죄자라기보다 괴짜에 가까운 이미지를 가졌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어떤 불쾌감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20세기 초를 수놓았던 재즈풍의 낭만적인 모습이 그려진다. 모리스 르블랑이 만든 추리소설 역사상 가장 매력적인 도둑 '아르센 뤼팽(괴도 루팡)'이 생각나게 한다.

누가 그에게 돌을 던지랴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 ⓒ 드림웍스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주인공 '프랭크 애버그네일'(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 또한 희대의 사기꾼이라 칭할 수 있다. 그는 어린 나이에 부모님의 이혼으로 집을 나온 뒤 힘겹게 살아간다. 여기까지는 보통의 사람들에게도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이후 인생의 갈림길에서 선택을 하는 것이다. 

밑바닥에서 열심히 살아 자수성가를 할 것인가. 너무나도 힘든 현실의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옳지 못한 쪽으로 빠질 것인가. 평생 현실에 안주하며 살아갈 것인가 등. 여기에서 프랭크 애버그네일은 전혀 다른 인생을 개척(?)한다. 돈 많은 사기꾼으로의 인생을. 

그는 천재였지만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고, 어느 때보다도 가족의 보살핌을 받아야 할 때 그렇지 못했다. 또한 그의 우상인 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위해 사기를 쳐 돈과 명예를 차지하려 했다. 그는 애초에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고, 불행이 그에게 들이닥친 것이다. 그의 어린 시절이 행복했던 만큼, 그 행복이 달아났을 때 그는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중산층의 행복한 가정에서 자란다. 그러던 10대 중반에 가세가 기울고 급기야는 부모님의 이혼으로 모든 것이 파탄난다. 프랭크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어린 나이였고, 그의 머리는 오로지 옛날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찬다. 돈을 많이 벌어서 가족을 다시 모이게끔 하려는 것이었다. 

비상한 머리로 온갖 사기를 치고 때에 맞춰 조종사가 되고 변호사가 되고 의사가 된다. 이 모든 걸 10대가 가기 전에 이루어낸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건 오로지 가족의 결합을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이미 재혼을 했고, 예전 행복했던 시절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들의 유쾌한 숨바꼭질 게임, 가볍게 또는 무겁게

그를 쫓아다니는 FBI요원이 한 명 있다. 21년 경력의 최고 베테랑 칼 핸러티(톰 행크스 분). 칼은 천신만고 끝에 프랭크와 대면하지만 프랭크의 귀신같은 연기 솜씨로 인해 놓치고 만다. 기필코 잡고 말겠다는 칼과 잡아볼 테면 잡아보라는 식으로 대담하게 움직이는 프랭크. 

유머러스하고 자유분방한 프랭크와 재미없고 고지식한 칼의 대조가 볼만하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긴장되는 장면들의 연속이지만, 결코 심각하지 않고 외려 유쾌하기 까지 하다. 희대의 사기꾼 아서 퍼거슨이 범죄자라기보다 괴짜에 가까운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처럼, 통 큰 도둑 아르센 뤼팽이 매력적인 것처럼, 프랭크와 칼의 유쾌한 숨바꼭질 게임을 보고 있으니 이들이 범죄에 관련되었다고 생각하기가 어려워진다. 실제 인물의 캐릭터가 어땠을지는 모르지만, 매력적인 인물로 재탄생시켰다고 보여진다. 엄연히 새로운 인물인 것이다.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한 장면. 베테랑 FBI 요원 칼과 미성년자 희대의 사기꾼 프랭크의 첫 대면. ⓒ 드림웍스


프랭크가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비단 그의 외모와 괴짜 이미지, 그리고 유쾌한 분위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자유분방한 생각과 천재적인 브레인, 그럼에도 완벽하지 않은 그의 인생이 어필하고 있는 그 무엇 때문이다. 이는 현대인의 욕망과 상충하고 결함과 대면한다. 온갖 규칙에 의해 경직된 현대인의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욕망을 끌어오르게 한다. 동시에 누구나 한 가지 이상씩은 가지고 있는 결함을 그 또한 가지고 있다. 그만이 가지고 있는, 그만이 어필할 수 있는 매력이다.

'정신적' 행복을 위하여

프랭크의 사기행각의 윤리성을 따지기보다 왜 사기행각을 하기 되었는지의 이유와 어떻게 사기행각을 펼치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더 흥미롭게 다가온다. 여기에 베테랑 칼이 어떻게 프랭크에게 당하는 지도 흥미요소이다. 영화는 분명 희대의 사기꾼 프랭크 애버그네일을 미화하고 있지만, 결코 불쾌하게 다가오지 않는 것이다. 이는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의 연출력과 1960년의 분위기가 일조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정당방위, 정상참작이라는 용어가 있다. 프랭크의 사기행각이 정당방위에 의한 것이라고, 그의 사기행각이 정상참작이 되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이유가 있었고, 미성년자였으며, 극악무도하고 파렴치한 짓을 하지는 않았다는 것만은 알 수 있다. 그가 행한 일만 보고 그에게 돌을 던질 수는 없을 것이다. 결정적으로 그는 '물질적' 풍요를 위한 사기행각을 벌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신적' 풍요에 목적이 있었다.

프랭크 애버그네일은 현재까지도 기업인으로 잘 살아가고 있고, 가족들과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가족들과의 '정신적' 행복을 되찾았으니, 더 이상 사기행각을 벌일 이유가 없었다. 또한 그는 사기행각을 벌였을 당시 칼에 의해 붙잡혔는데, 칼의 중용으로 FBI 위조지폐 감식반에서 일하게 되었다고 한다. 일종의 정상참작의 개념이 아니었을지. 

시대의 분위기를 살려 주인공의 사기행각 미화를 크게 부각시키지 않은 연출력, 다양한 시기의 다양한 감정을 훌륭하게 연기한 주인공역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연기력이 돋보였다. 고독하고 외롭고 힘없는 한 인간이 세상을 어떻게 해쳐나가는지에 대한 통찰력, 범죄에 대한 다양한 질문을 하게 만들었던 점도 돋보였다. 가볍게 때론 무겁게, 미시적으로 또는 거시적으로 보아도 무난하게 즐길 수 있는 영화이다.


"오마이뉴스" 2013.5.13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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