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책 다시읽기] 리영희의 <역정 : 나의 청년 시대>
<역정: 나의 청년시대> 표지 ⓒ (주)창비
조심스럽게 그분을 부르며 시작한다. '리영희'. 2010년 12월 5일, '시대의 스승'이자 '사상의 은사'라 불린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가 타계했다. 하지만 2주기 즈음인 2012년 12월 4일 김지하 시인이 한 조간신문에서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를 쑥부쟁이라며 폄하했고 아울러 그의 사상적 스승이라는 리영희는 깡통 저널리스트에 불과하다고 깔아뭉게버렸다. 이 칼럼은 당시 대선이 얼마남지 않은 시점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험난하기 이를 데 없는 굽이진 현대사를 넘어온 그(리영희)의 역정이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일까?
그의 역정은 그 하루 전 저녁에 열린 리영희 2주기 '해직언론인 복직 콘서트'로 계속 이어졌다. 행사를 주관한 리영희재단은 이명박 정권에서 해직된 언론인 24명을 두고 '이 시대의 리영희들'이라고 명명했다. 또 그의 역정이 계속 이어지게끔 하는 매개체가 즉, 그의 책이 2012년 11월 30일에 그의 2주기에 맞춰 재출간되었었다.
<역정: 나의 청년시대>(창작과비평사). 그의 사상의 방향이 온전히 갖추어졌을 때 그의 저서의 독자들에 대한 도의적 의무감에서 썼던 그의 관한 이야기로, 1988년 3월에 창작과비평사에서 발행된 바 있다. 이 책의 부제가 '나의 청년시대'인 것은 의도치 않은 것이다.
1982년 겨울, 나는 원고지 뭉치를 싸가지고 경기도 양평군 한강 가에 있는 유인호 교수 소유의 농장에 틀어박혀 '나에 관한 이야기'를 쓰며 한 겨울을 보냈다. (중략) 1983년 초, 원고의 3분의 2가량이 끝났을 대 나는 또 과거에 있었던 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에서의 통일문제에 관한 강의와 관련하여 유인호 교수의 그 농장에서 곧바로 당국에 연행되어 집필은 거기서 중단되었다. (중략) 이 책의 구성이 나의 소년시절부터 1963년으로 끝난 것이 그 때문이다.(본문 중에서)
1980년, 광주시민의 민주항쟁 사건과 관련하여 '배후조종자'로 찍혀 신군부로부터 다시는 글을 쓸 수 없다는 선고를 받고 은거하던 중에 쓰게 된 글이라 그 자신에게 있어서도, 글을 접하는 독자들에 있어서도 더욱 특별하게 다가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청년시대 뒷 이야기는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 2005년에 나온 리영희와 임헌영의 대담집인 <대화>(한길사)에서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전체 내용의 앞부분은 <역정: 나의 청년시대>와 상당부분 중복되는 이 책은 이영희 선생의 "70년 삶의 줄거리"를 "역사의식이 투철한 비판적 담론"으로 엮은 회고록이다. 리영희 선생의 청년시절 뒷 이야기를 포함해 그의 삶과 사상의 궤적을 볼라치면 <대화>를 접하면 되겠다.
그의 청년시절은 어떠했을까? 리영희 선생은 1929년 평안북도 운산군에서 태어나서 삭주군에서 어린 꿈을 키웠다. 통상 '이영희'가 아닌 '리영희'로 불리우는 이유 중 하나가 생전 저자의 뜻이었고, 그 뜻에는 '평안북도'가 있다. 이후 고향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4살 되던 해에 서울의 경성공립공업학교를 다니게 된다. 격이 높았던 학교를 다닌다는 자부심을 가졌던 소년의 머리와 가슴 속에는, 학교의 대다수를 이루는 일본인 학생들과 어울려가는 사이에 민족적 각성이 자리잡아갔다.
해방이 되기 한 달여 전, 경성 상공에서 B29가 투하한 폭탄으로 인해 모두가 뒤숭숭해하고 있었다. 17살의 리영희는 이대로 있다가는 가족도 보지 못하고 죽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고향으로 가버릴 결심을 굳힌다. '경성유학'은 실패작으로 끝나지만, '해방'은 고향에서 맞게 된다. 비록 실감되지 않았지만.
희망을 품고 다시 서울로 올라온 리영희는 해방된 혼란 사회에서 신학년도가 된다. 때는 1946년. 학교는 '국립한국해양대학'이었다. "학비면제, 숙식·제복 국가부담"이라고 씌어진 공고 때문이었다고 한다. 가난한 시골 소년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줄 안다.
1950년까지 4년간 대학에 몸을 담은 소년은 20대에 영어선생으로 새로운 시절을 열게 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1950년 6월 25일에 터진 전쟁으로 안동에서의 생활을 접고 피신을 간다. 하지만 그의 나이는 20대, 그는 남자. 군대를 모면할 길은 없었다. 그는 국군-통역장교-미국 군사고문의 길을 걷는다.
그러던 중에 겪게 되는 일련의 사건은 그로 하여금 새로운 의식에 눈을 띄게 해준다. '거창양민학살사건'. 리영희가 속해 있던 연대의 제3대대가 1951년 2월 10일과 11일 사이의 밤에 거창군 신원면에서 719명의 양민을 집단학살한 사건이다. 그가 지휘관이나 전투병과 장교가 아닌 통신장교에 불과했기에 직접적인 책임이나 관련이 없었지만, 그가 받은 충격은 그에게 있어서 큰 전환점이 되었다고 한다.
어째서 이 나라에서는 인간말살의 범죄가 '공비'나 '빨갱이'라는 한마디로 이처럼 정당화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그후부터 머리를 떠나지 않게 되었다. 이것은 내가 이데올로기의 광신 사상과 휴머니즘에 대한 멸시를 깨쳐야겠다는 강렬한 사명감 같은 것을 느낀 계기가 되었다.(본문 중에서)
7년간의 군대생활을 마치고 그는 권총을 펜으로 바꾸어 합동통신사 외신기자로 본격적으로 세상을 향해 일침을 날린다. 외신기자로 미국을 방문할 수 있었고, 비록 우울했던 미국 체재였지만 '워싱턴 포스트'와 긴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이후 군대생활을 통해 알게 된 한국사회의 추악한 권력의 진면목을 목격한 그는 이승만을 증오하는 일념으로 '워싱턴 포스트'에 이승만 정권에 대한 비판 기사를 올린다. 이런 그의 신념에 찬 기사들은 이후에도 계속 이어진다.
4.19가 지나고 5.16이 왔다. 그의 말을 빌리면 '군치'의 시대가 온 것이다. 리영희는 군부독재 정권의 '구악' 척결에 어느 정도 찬성의 뜻을 내비친다. 하지만 군인통치하의 정치적 파쇼화 경향을 걱정하면서 판단을 유보한 상태로 기사생활을 계속한다. 그 이후 18년 동안의 군부독재가 이어질 것은 예상하지 못한 채.
그러던 1961년 11월 어느 날, 리영희 기자는 박정희를 따라 워싱턴을 방문한다.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의 방미여행 수행기자로 임명된 것이다. 박정희와의 악연이 시작된 것이다. 그 결정타는 그가 쓴 정상회담의 진짜내용을 담은 '특종기사' 덕분이었다.
케네디는 앞으로 군사정권의 태도를 보면서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달라는 대로 다 주기로 약속했다"는 식의 다른 수행기자들의 기사와는 전혀 다르다.(분문 중에서)
군인정권이 "잘 기억해두겠다"던 협박은 김빠진 형태로 훗날에 표시되었다. 박 의장이 15일간의 여정을 마치고 귀국한 후, 청와대에서는 공식·비공식 수행원을 초대한 자축 겸 위로연이 베풀어졌다. 수행취재 기자들도 초대되었으나 나 한 사람만이 그 대상에서 제외된 것이다.(본문 중에서)
책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리영희의 험난한 청년 시절도 끝을 맺는다. "20대에 이르도록 사회적 및 역사적 문제의식·지식이 백지상태나 다름없었다"(<대화>)고 자조하는 그는 "실존적 선택을 강요당하는 반복적인 과정을 통해서"(<대화>) '지식인'이 되어갔다. 상식조차 범죄로 규정되었던 대한민국 사회에서, 그의 곧은 신조를 바탕으로 한 삶이 얼마나 고되고 힘들었을지. 그 시작이자 맛보기로서 이 책 <역정: 나의 청년시대>을 대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책이 다시금 우리 앞에 나타난 이유는 그의 2주기 때문 만은 아닐 것이다. 지난 5년간의 민주주의의 퇴행과 2012년 대선의 결과로 알게 된 대한민국 절반의 역사 인식, 그리고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박정희 시대 독재의 망령까지 리영희의 삶과 사상이 다시금 조명받아야 할 이유가 아닌가 한다.
한 쪽에서는 '시대의 스승', 한 쪽에서는 '의식화의 원흉'으로 불리며 굴곡진 한국 현대사를 삶 자체로 보여준 리영희. 사실 나는 그를 잘 모른다. 그의 대표작조차 접하지 못했다. 단지 젊기 때문이라고 치부해버리기엔 너무 부끄러울 뿐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그를 알아야 한다. 당시 그의 영향을 받은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 시대의 주류·비주류를 이루고 있고, 그의 이름 하나에 누구는 눈물을 흘리며 누구는 입에 게거품을 물지 않는가.
누구보다 '진실'을 원했고, '진실'의 공유를 바랐고, '진실'의 전도를 실천했던 그의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각자의 몫이다. 하지만 그를 접하고 알아야 하는 건 필수이다. 그리고 이 책 <역정: 나의 청년 시대>을 시작으로 그의 삶과 사상을 천착해봄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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