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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읽기

<허삼관 매혈기> 부모님, 이제는 당신을 위해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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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 읽기] <허삼관 매혈기>


<허삼관매혈기> 표지 ⓒ 푸른숲

몇 년 전, 일명 '현대판 라푼젤' 브라질 소녀가 10년 동안 길었던 머리카락을 600만 원 가량에 판매해 소형 주택을 장만했다는 기사가 난 적이 있다. 얼마후엔 영국 여성들이 돈이 필요해 머리카락을 팔았다는 기사도 났었다. 몸의 한 부분을 팔아서 돈을 장만하는 것만큼 절실한 건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부모님께 물려받은 몸을 소중히 해야 한다는 신조가 널리퍼진 나라에서는 더욱 말이다. 그럼에도 불과 몇 십년전, 국가 전체가 가난에 찌들었을 당시에는 머리카락을 팔아 간간히 연명하는 집들도 많았다고 한다. 그리 옛날 일도, 그리 먼 일도 아닌 것이다. 


요즘은 여간해서 한 가지 일만 해서 먹고 살기가 힘든 것 같다. 그래서 '투잡 시대'라고 하는가 보다. 불황의 그림자는 정말 깊고 넓게 드리우고 있다. 소설 <허삼관 매혈기>(푸른숲)에서 주인공 허삼관은 피를 팔아서 가족들을 

먹여 살리고 각종 사건을 해결한다. 


사실 그는 본 직업이 있다. '하얗고 보드라운 누에고치로 가득 찬 수레를 미는 작업'(37쪽)을 한다. 하지만 그걸로 인생을 온전히 살아가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허삼관은 근룡이와 방씨를 알게 되어 본격적인 '매혈'로 접어든다. 허삼관이 왜 피를 파냐고 묻자, 근룡이가 말한다.


"우리는 여자를 얻고 집을 짓고 하는 돈은 전부 피를 팔아 벌어요. 땅 파서 버는 돈이야 겨우 굶어 죽지 않을 정도니까요."


'매혈'을 해야 한번에 목돈을 쥘 수 있는 것이다. 복권보다는 장기매매에 가까운, 비합리적이지만 누구나 생각해 봄직한 행위이다. 처음 해보는 매혈은 그에게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허삼관은 이렇게 피를 판돈으로 이쁜 여자 허옥란을 낚아챈다(?). 피는 곧 돈이고, 돈은 곧 힘인 것이다. 이미 '그'의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이고 '우리'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누구나 살면서 반드시 '매혈'을 해야 할 때가 올 것이기에. 한번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나'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


허삼관은 3형제(일락, 이락, 삼락)를 낳아 잘 살아간다. 그러던 중 첫째 일락이가 점점 허옥란의 전 남자친구 하소용을 닮아가는 것이었다. 주위 사람들은 이를 두고 허삼관에게 중국 최악의 욕인 '자라 대가리'라며 놀려 댄다. 거의 파탄 지경에 이른 가정은 사상누각에 있다. 어느 날 일락이가 대형 사고를 친다. 대장장이 방씨의 아들을 돌로 찍어 위태로운 상태에 빠지게 하고, 허삼관에게 치료비를 청구하지만 자기 아들도 아닌 일락이 때문에 돈을 물어 줄리 만무한 허삼관이었다. 방씨는 허삼관네 가산을 차압해 간다. 


결국 허삼관은 옛날을 생각하며 피를 팔아 방씨로부터 다시 가산을 되찾는다. 이후 어쩌다가 다쳤다는 하소용 아내의 병문안을 가 그녀와 관계를 맺는다. 허옥란은 이 사실을 알게 되고 이에 허삼관은 너도 했으니 나도 했다는 식으로 넘어간다. 


문화대혁명 시기, 전래 없는 대가뭄으로 모두가 허기에 시달린다. 역시 허삼관은 세 번째로 피를 팔아 가족을 살린다. 애잔하게 마음을 울리는 허옥란의 푸념을 들어본다.


"일락이가 대장장이 방씨네 아들 머리를 박살 냈을 때 피를 팔러 갔었지. 그 임 뚱땡이 다리가 부러졌을 때도 피를 팔았고. 그런 뚱뚱한 여자를 위해서도 혼쾌히 피를 팔다니 피가 땀처럼 덥다고 솟아나는 것도 아닌데...... 식구들이 오심칠 일간 죽만 마셨다고 또 피를 팔았고, 앞으로 또 팔겠다는데......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고생을 어떻게 견디나...... 이 고생은 언제야 끝이 나려나.(171쪽)


끝없이 이어지는 가난과 역경 속에서, 언제 끝날지 모를 고생을 하는 이 시대의 부모님들이 생각나는 구절이다. 피를 팔아서는 안 되지만 팔지 않으면 '이 고생을 어떻게 견뎌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아이러니. 슬픈 일이 있으면 기쁜 일도 있고, 울 때도 있으면 웃을 때도 있는 법. 이 소설은 무겁고 암울하지 만은 않다. 익살과 해학으로 때론 비극도 희극으로 승화 시키고 있다. 


익살과 해학에 가려지는 슬픔과 비극


피를 팔기 전에 물을 몇 사발 먹어 피를 물게 해야 많이 팔 수 있다고 해서 오줌보가 터지기 직전까지 물을 마시고 어기적 어기적 걸어가는 모습이라든지, 허옥란이 아들 셋을 날 때 허삼관은 밖에서 한번, 두번, 세번 웃어서 이름들이 일락, 이락, 삼락으로 지었다는 내용은 잔잔한 웃음을 머금게 한다. 


일락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몰라 하소용과 허삼관 사이를 왔다갔다 하다가 결국 가출을 시도한다. 허삼관은 걱정된 나머지 일락이를 찾아 나서는데, 집에서 몇 발자국도 옮기기 전에 일락이가 있는 것이 아닌가? 대거리 끝에 허삼관은 일락이를 업고 어딘가로 향한다. 


"이 쪼그만 자식, 개 같은 자식, 밥통 같은 자식......오늘 완전히 날 미쳐 죽게 만들어놓고.....가고 싶으면 가, 이 자식아.(중략) 나중에는 네가 내 계부 노릇 좀 해라. 너 꼭 기다려라. 내세에는 내가 널 죽을 때까지 고생시킬 테니....."

"아버지, 우리 지금 국수 먹으러 가는 거예요?"

"그래."


온화한 미소로 대답해주는 허삼관의 표정이 눈앞에 떠오르는 듯하다. 이후 하소용이 죽으려 할 때 일락이를 필요로 한다. 허삼관은 알량한 마음일랑 접어두고 사람 목숨을 소중히 하는 마음으로 일락이더러 해주라고 한다. 일락이는 마지못해 이를 따르지만, 결국 하소용은 죽고 만다. 진짜 아버지 하소용이 주고 가짜 아버지 허삼관이 진짜 아버지가 되는 순간이다. 


그래도 가족이다


어느 날, 문화대혁명의 여파로 허옥란이 비판 대상자가 된다. 하소용과의 불미스러운 과거가 원인이 된 것이었다. 결국 가족 비판 대회까지 열어 허옥란을 비판하게 된다. 여기서 허삼관은 자신의 입으로 아들들이 보는 앞에서 임분방과의 일을 말한다. 허옥란으로 향하는 비판의 화살을 자신에게로 돌리기 위해서 였다. 그는 양심 있고 정 많은 그런 사람이다. 


시간이 흘러 일락이와 이락이가 농촌 생산대로 떠난다. 일락이가 쇠약한 몸이 되어 집에 왔을 때 그를 다시 보내기 위해 피를 팔고, 또 이락이의 생산 대장이 방문할 때 대접하기 위해 피를 판다. 한번 피를 팔면 세 달은 쉬어야 하는데, 한 달에 두번이라니. 가족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피땀' 흘리며 일하는 아버지의 자화상이다. 그런데... 이렇게 피땀 흘려 일해도 남 부끄럽지 않게 돈을 벌 수 있는 현실인가? 반문하게 된다. 


일락이의 가족에게 큰 위기가 닥친다. 옛날 피를 처음으로 팔게 되었을 때 알게 된 방씨가 오줌보가 터져 몸이 망가지고, 피를 팔고 나선 근룡이가 쓰러져 죽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 허삼관은 일락이가 간염에 걸려 위독한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된다. 허옥란과 함께 상하이에 보내 먼저 치료를 하게 하고 자신은 가는 길에 계속 피를 팔며 돈을 마련하기로 한다. 계속되는 고난한 여정으로 허삼관의 생명이 단축되어 가는 걸 느끼지만, 계속 가야만 한다. 아들을 살리기 위해. 눈물의 여정은 계속되지만 쉽지 않다. 그래도 결국 일락이는 건강을 되찾는다. 


이제는 당신들을 위해 사세요


시간을 훌쩍 흘러 허삼관의 나이 예순. 허삼관은 어느 날 승리반점 앞을 지나다가 옛날 피를 팔고 항상 들려 먹었던 돼지간볶음 한 접시와 황주 한 잔이 먹고 싶어진다. 그래서 그는 생전 처음으로 다른 누군가가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 피를 팔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젊은 혈두에게 치욕스럽게 거절 당하고 만다. 사십 년 만에 처음으로 피를 팔지 못한 것이다. 그러며 집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해야 하는지 걱정하며 눈물 짓는다. 이에 아들 셋은 동네 창피하다고 울지 말라고 허삼관을 나무란다. 허옥란은 아들들을 욕하며 허삼관과 함께 승리반점에 가 한없이 돼지간볶음과 황주를 먹는다. 자기 자신을 위해. 


가끔 가다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이제는 부모님이 그만 고생하셨으면 좋겠다고. 더 이상 자식들을 위해 헌신하지 마시고, 당신들을 위해 돈을 벌고 돈을 쓰고 인생을 보내셨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가? 피땀 흘려 돈을 벌어도 가족들 먹여 살리기 힘든 이 세상에 말이다. 그래도 부모님께 한마디 건네고 싶다. 


'이제는 당신들을 위해 사세요. 저희들은 부모님 덕분에 잘 컸으니까요. 알아서 살아갈 수 있어요. 이제는 저희가 잘 보살펴 드릴게요. 건강하세요.'


예전에 이 소설을 누군가에게 추천해준 적이 있다. 그때 들었던 말이, "펄 벅의 <대지>랑 비슷하네. 그 책 먼저 봐봐." 하지만 나는 엄연히 다른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이 소설이 더 마음에 와 닿기도 했다. 적어도 계속 보고 싶어지는 소설이라는 점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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