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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도서

우리의 역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델리의 삶, <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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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쿠쉬완트 싱의 <델리>


<델리> 표지 ⓒ 아시아

행정사회적인 의미인 도(都: 도읍)와 경제적인 의미인 시(市: 저자) 두 가지 의미가 합쳐져 탄생한 '도시'. 많은 소설가들이 도시를 이야기했다. 서울을 이야기한 정이현의 <달콤한 나의 도시>, 더블린을 이야기한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 파리를 이야기한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말테의 수기>, 파리와 런던을 이야기한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 등. 


거기엔 도시에 대한 사랑, 증오, 애정, 질투 등 그야말로 애증의 모순적인 감정을 드러낸다. 어느새 '삭막함'의 대명사처럼 되어 버린 도시를 어찌 멀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한편 세련되고 매력적인 도시를 어찌 가까이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도시에는 떨쳐내고 싶지만 떨쳐버릴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있는 듯하다. 


쿠쉬완트 싱의 <델리> 또한 작가의 델리에 대한 애증의 모순적인 감정이 강력하게 드러나 있다. 작가의 그 감정을 '바그마티'라고 하는 남녀추니를 통해 드러낸다. 남녀추니란 선천적으로 여성과 남성의 성기를 모두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말하는데, 소설 속에서 바그마티는 남녀 모두를 상대하는 창녀로 출현한다. 그녀(그)는 델리라는 도시, 델리의 험난한 역사, 그리고 델리의 역사에서 많은 사람들이 처했던 상황까지 커버할 수 있는 존재이다. 


소설로 읽는 충분한 재미


소설은 그런 바그마티에 대한 애증 그리고 델리에 대한 애증을 강하게 표출하는 지식인 화자의 시선을 따라간다. 그는 주업으로 역사 건축물을 안내해주곤 하는데, 그러며 자연스레 시제는 과거로 향한다. 그렇게 델리의 600년 과거와 현재를 단편적으로 오가며 서술되는 소설은 막힘없이 진행되는 가독성이 있다. 물론 거기엔 충분한 재미, 즉 소설로서 읽는 재미가 있다. 


여기서 재미란 여러 가지가 있겠다. 작가의 유머를 한층 가미시킨 재밌는 문장, 과거를 여행할 때마다 계속해서 시선이 바뀌어(황제, 왕자, 환관, 시인, 방랑자, 군인 등) 지루함이 없는 부분, 사랑, 열정, 섹스, 미움, 복수, 폭력 등이 난무하는 리얼리티와 판타지티의 공존, 그리고 그들의 역사와 우리의 역사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동질감에서 오는 신기함까지. 소설이 갖춰워야 할 모든 걸 갖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감동은 당연히 따라온다. 


하지만 재미만 있는 건 아니다. 대중성만 갖췄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이다. 작가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25년 동안 준비를 했다고 하는데, 그 사실에 한 치의 의심도 품지 않게 해주는 소설이다. 그 사실을 알고 나면 읽기 전에 읽는 동안 읽고 난 후 숨이 턱턱 막힐 수 있겠지만, 작가의 탁월한 능력이 그렇게 하게 놔두지 않는다. 독자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보여주고 만지고 느끼게 해주며 결국 델리에 대한 애증의 감정을 들게끔 하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 재미의 한 부분인 '그들의 역사와 우리의 역사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동질감'과 작가가 25년 동안을 준비한 끝에 내놓은 소설이 보여주는 내공의 깊이가 한 라인에 서 있다. 작가가 보여주는 델리의 600년 역사는 그 시선들이 계속 바뀜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참혹하다. 끊임없이 외세의 침략을 받으면서, 민초는 참상과 고된 삶을 이어가고 반역자들은 대대손손 부귀영화를 누리며 호의호식한다. 그뿐이랴? 그건 현재까지 이어진다. 


"인도 최초의 독립전쟁이라 할 수 있는 세포이 항쟁 이후 국왕은 폐위당해 버마로 쫓겨나고 왕족은 몰살당하고 나라를 되찾으려 했던 독립투사들은 대포에 맞아 갈가리 찢겨 죽거나 영국인들의 유흥거리로 전락한 교수형을 당했다. 반면에 영국인들의 개가 되어 첩자 노릇을 했던 간악한 귀족들은 대를 이어 누릴 부귀영화를 보장받았고, 돈에 눈멀어 영국군의 앞잡이가 되었던 무지한 자들은 상류층으로 올라설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


추악한 델리, 반면 아름답고 경이로운 과거의 델리


여전히 제3세계가 존재한다면, 그 대표 주자라고 할 수 있는 인도의 수도 '델리'. 지금 델리는 어떻게 변했을까? 작가는 현재의 델리를 여지 없이 보여준다. 떠들썩하고 초라해 보이는 시장과 오두막집들, 정화되지 않은 오수에서 풍겨나는 악취에 구역질이 치밀 수 있는 비좁고 꼬불꼬불한 샛길, 어디에서나 가래와 시뻘건 베텔즙을 밷어내고 변의를 느끼면 아무 데서나 일을 보며 상스러운 욕지거리로 친밀감을 표시하면서 이야기를 하는 중에도 사타구니를 긁적거리는 사람들까지. 


추악한 델리. 반면 작가가 보여주는 과거의 델리는 비록 갈가리 찢겼지만 아름답고 경이롭다. 작가는 이렇게 델리의 과거와 현재 또한 대비 시켜 보여준다. 소설 전체가 수많은 대비로 이루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서울은 어떨까? 델리와는 다를까? 답은 '똑같다.' 과거 '이촌향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서울로 올라와서 한평생 터전을 꾸리고 살아가고 있지만, 정작 서울을 마음 깊이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세계적인 도시로 발돋움한 지 오래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빈민과 소외 계층이 다수 존재하고 이들을 짓뭉개 버리려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서울은 역사적으로도 찬란한 문화의 꽃임을 자청했고 실로 그러했지만, 꽃이 꽃이게 하기 위해 많은 이들의 희생이 뒤따랐다. 현재의 서울을 추악하다고 표현할 수는 없겠지만, 아름답다고 말하지도 못하겠다. 그리고 그런 서울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도 못하겠다. 쿠쉬완트 싱은 델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소설을 썼다고 했는데, 과연 그는 그 자체만으로도 위대하다. 


델리 - 10점
쿠쉬완트 싱 지음, 황보석 옮김/도서출판 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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