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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다

[명심보감] 말도 안 되는 저주 섞인 말의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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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행편(孝行篇)


- <시경(詩經)>에 말하기를, "아버지는 나를 낳으시고 어머니는 나를 기르셨네. 가엾으신 아버지 어머니여, 나를 낳으시기 애쓰시고 수고하셨네. 그 은덕 갚으려면 높은 하늘처럼 끝이 없네. 하였다.


- 공자가 말하기를, "효자가 부모를 섬기는 데는 보통 거처할 적엔 공경을 다하고 봉양하는 데는 부모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고 병이 들었을 적에는 지극히 조심하는 마음을 다하고 부모가 죽었을 때에는 슬픔을 다하고 제사를 지낼 때에는 그 엄숙한 마음을 다할 것이다." 하였다. 


- 공자가 말하기를, "부모가 살아 계시거든 먼 곳에 가서 놀지 않으며 놀더라도 반드시 정한 방향이 있어야 한다." 하였다. 


- 공자가 말하기를, "아버지가 부르시면 예! 하고 대답할 뿐 군말이 없고 마침 밥이 입에 들었으면 이것을 토하고 달려간다." 하였다. 


- 강태공이 말하기를, "자기가 부모에게 효도하면 자기 자식도 역시 자기에게 효도하나니 이 몸이 이미 효도하지 못했으면 자식이 어찌 효도하기를 바라리오." 하였다. 


- 또 말하기를, "효도하고 순하게 하는 사람은 자기도 효도하고 순하게 하는 자식을 낳을 것이요, 다섯 가지 시역(弑逆)을 범한 사람은 자기도 다시 다섯 가지 시역을 범할 자식을 낳을 것이다. 이 말을 믿지 못하거든 오직 처마 끝에 떨어지는 물을 보라. 방울방울 떨어지고 떨어져서 조금도 어기고 옮기는 일이 없이 제자리에 떨어진다." 하였다. 


'명심보감'을 보면서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편이 나왔네요.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에 대한 효도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겁니다. 그만큼 '내리사랑'에 비해서 '올리사랑'이 부족하다는 반증이겠지요. 특히 공동체보다 개인을 중요시 하면서 모든 개인을 객체로 인식하는 현대 사회에서 부모님에 대한 효도는 그 의미가 많이 퇴색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지 없이 이번 편에서도 소위 '웃기는' 구절이 눈에 띕니다. 강태공이 말한 구절입니다. 마지막 구절을 보십시오. "다섯 가지 시역을 범한 사람은 자기도 다시 다섯 가지 시역을 범할 자식을 낳을 것이다' 라니요...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저주 섞인 막말입니까. 동양을 대표하는 고대 성인 중 한 명인 강태공이 이런 말을 했다니요. 정말 어이가 없어서 말도 나오지 않습니다. 이 구절이 어떻게 '효행'을 역설하는 편에 들어가 있는지요?


오히려 반대로 착하고 순한 자식을 낳아 자신이 못 다했던 일들을 할 수 있게 해줘야 하지 않을까요. 완전한 연좌제의 냄새가 풀풀 풍기는 저주라니. 이의 근거로 하는 다음 말이 더더욱 가관입니다. 조금도 어기고 옮기는 일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고지식함의 끝을 보여줍니다. 감히 말씀 드리지만, 이 시대에 전혀 맞지 않는 구절이네요. 도저히 봐줄 수가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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