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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평범한 우리가 바로 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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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20세기 폭스


1929년 시작된 미국발(發) 세계 대공황은 10년 동안 계속된다. 그 10년 동안 사람들의 삶은 말할 수 없이 피폐해졌다. 그 중에서도 특히 가장의 역할을 했던 중년 남자들의 삶은 처참했다. 그들의 삶을 위로해줄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1938년 처음 등장한 <슈퍼맨>이 그 중 하나이다. 당시 대공황으로 위축되어 있던 중년 남성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들의 상처받은 내면과 폭발할 것 같지만 행할 수 없었던 욕망을 대변해 주었다. 


한편 1939년에는 <더 뉴요커>에 제임스 서버의 단편소설이 연재된다. 제목은 '월터 미티의 은밀한 생활'. 주인공 월터 미티는 특별할 것 없는 지극히 평범한 직장인이다. 그런 그에게는 특이할 만한 사항이 있는데, '상상'이다. 좌절을 당하거나 힘든 일이 생기면, 상상을 통해서 푼다. 그 상상 속에서 그는 슈퍼맨에 버금가는 파워를 보인다. 역시 당시 대공황으로 위축되어 있던 중년 남성들의 처지와 욕망을 대변해주며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콘텐츠로 재탄생 되었던 '슈퍼맨', 그리고 '월터 미티의 은밀한 생활' 전자의 경우 우리에게 더할 나위 없이 친숙한 캐릭터임에 반해, 후자는 적어도 우리에게는 그리 친숙한 편은 아니다. 일찍이 1947년에 영화로 제작되어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말이다. 


'대변'은 해주되, '위로'는 되어주지 못한다


벤 스틸러가 감독과 주연을 맡은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65여 년만에 '월터 미티의 은밀한 생활'을 재탄생시켰다. 과연 그는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면서 터무니없는 공상을 일삼는 사람'을 지칭하는 고유명사가 된 '월터 미티'를 어떤 식으로 그렸을까? 그가 감독과 주연을 맡았기 때문에, 온전히 그의 생각과 연기로 인해 재탄생했을 것이다. 



<월터의 현실은 상상이 된다>의 한 장면. ⓒ20세기 폭스



월터는 세계적인 잡지 '라이프'에서 16년 동안 포토 에디터로 일하고 있다. 그는 40세가 넘었음에도 좋아하는 사람에게 제대로 인사조차 못하는 소심한 직장인이다. 결혼을 하지 못한 건 물론이다. 소심한 것뿐만 아니라 특별히 해본 것도 없고 가본 곳도 없는 그에게 한 가지 유희가 있는데, 멍 때리면서 하는 '상상'이다. 그 상상 속에서는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다. 적어도 월터는 그 상상 속에서 안 해본 것이 없고 못 가본 곳도 없으며 너무나 적극적이기까지 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라이프'지의 폐간 소식이 들려왔다. 광고 급감과 인터넷의 영향으로 폐간을 하고 온라인으로 방향을 바꾼다는 결정때문이었다. (실제로 '라이프'지는 2007년 폐간하고, 웹사이트만으로 그 명맥을 유지하게 된다.) 그 마지막 표지 장식을 전설적인 포토그래퍼 '션 오코넬'(숀 펜 분)이 보내온 '삶의 정수' 사진으로 채운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하지만 하필 그 한 장의 사진이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월터 미티는 어떻게든 그 사진을 찾아야 했다. 그는 션 오코넬을 찾아 급기야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그린란드로 향한다. 그러는 사이에도 그는 좋아하는 사람에게 제대로 된 고백을 하지 못한 채 밍기적 거리기만 할뿐이다. 반면 상상 속에서는 어쩌면 그리 잘 이어지는지. 



<월터의 현실은 상상이 된다>의 한 장면. ⓒ20세기 폭스



소심한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월터처럼 현실을 망각한 채 상상 속에서 헤엄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상상 속에서 힘 센 슈퍼맨이 되어 보고 우주를 마음껏 뛰놀며 좋아하는 사람에게 멋지게 고백해 짜릿한 사랑을 약속했음에 분명하다. 영화는 그런 소심한 남성의 욕망을 대변해주려고 하고 있다. 문제는 '대변'은 해주고 있되, '위로'는 전혀 되지 않는 다는 점에 있다. 제목처럼 상상이 현실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다. 극 중에서는 현실이 상상이 되는데 말이다. 이 영화를 보고 상상이 현실이 되는 상상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인생이란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서로를 알아가고 느끼는 것


월터는 아깝게 한 발 늦어 계속해서 션 오코넬을 놓치고 만다. 그렇게 월터는 그린란드로, 아이슬란드로, 아프가니스탄으로, 히말라야로 여정을 떠난다. 여정 도중 그는 헬기에서 뛰어 내리고 상어에게 쫓기고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초원을 질주하고 화산 폭발 때문에 도망가곤 한다. 이는 누가 보아도 상상 속에서나 나올 법한 일들이다. 그런 일들을 월터는 어느새 상상 속이 아닌 현실 속에서 행하고 있었다. 


그렇게 월터는 천신만고 끝에 히말라야에서 숀 오코넬과 조우하게 된다. 과연 숀 오코넬이 월터에게 건냈던 '삶의 정수'가 담긴 사진은 무엇이었을까? 월터는 그 사진을 찾아서 라이프지의 마지막 호의 표지로 쓸 수 있게 할까? 또한 월터는 그가 좋아하는 여인과 좋은 결말을 맞이할 수 있을까? 이 모든 게 상상 속에서가 아닌 그의 현실 안에서 일어날 수 있을까? 영화는 끝에 가서 '삶의 정수'가 담긴 사진을 통해 반전 아닌 반전을 선사한다. 숀 오코넬이 생각한 '삶의 정수'란 특별할 것 없는 우리 가까이에 있는 평범한 삶의 단면이었던 것이다. 



<월터의 현실은 상상이 된다>의 한 장면. ⓒ20세기 폭스



어릴 때는 특별한 삶을 꿈꿨다. 특별한 삶만이 소중하다고 생각했다. 그때의 특별한 삶이란 매일 똑같이 되풀이 되는 생활 이외의 것이었다. 그리고 나 또한 다른 사람과는 완연히 다른 그런 사람이 될 거라고 믿었다. 적어도 부모님처럼은 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런 특별한 삶을 꿈꿨던 것이 사실은 굉장히 평범한 것이라는 걸 말이다. 평범하건 소중하건 모두 소중한 삶이라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영화는 이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월터를 통해 보여주려던 성장과 월터를 통해 전혀주려던 위로는 많이 어설펐지만, 무슨 말을 하려는 지는 충분히 알 것 같았다. 그의 상상이 현실로 바뀌었어도 여전히 상상인 것 처럼 느껴졌지만, 충분히 재미는 느낄 수 있었다. 분위기의 산만함과 편집의 어설픔과 스토리의 비(非)개연성 때문에 종종 지루함을 느꼈지만, 오랜만에 보는 벤 스틸러의 정극 연기가 나쁘지 않았다. 사전 마케팅으로 판타지틱 어드벤쳐 영화처럼 소개된 것과는 달라서 실망했지만, 적어도 그걸 구현함에 있어 부족함이 없었기에 실망을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었다. 


이 영화는 판타지 어드벤쳐와 블랙 코미디와 로맨스와 드라마를 모두 담으려 했지만 단 한 가지도 제대로 담지 못했으며, 모든 것이 어설프고 산만하며 어중간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현대 중년 남성을 대변하는 월터 미티를 상징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래서 일부러 그렇게 연출을 한 것이라면... 정말 대단하다고 밖에 할 말이 없다. 하지만 그것이 아주 조금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 다만 한 가지 건질 수 있는 멋진 말이 있다. 아마도 '라이프'지의 모토인 것 같데, 이 영화가 말하려는 바이기도 하다. 


"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서로를 알아가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 인생의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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