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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반 고흐와 '속물' 고갱의 동상이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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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반 고흐와 고갱의 유토피아>


<반 고흐와 고갱의 유토피아> ⓒ아트북스

19세기는 인류 역사에 있어서 손꼽힐 정도의 전환점이 있었던 시기였다. 산업 혁명으로 인한 기술 발명은 인류의 일상 생활을 완전히 바꿔버리며 새로운 계급을 형성시켰고, 의식의 변화를 동반하지 않은 자본주의가 횡행해 모든 걸 집어삼키며 정국을 혼란스럽게 하였다. 이는 가장 먼저 유럽을 강타하였는데, 프랑스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19세기 후반 프랑스는 가히 '불안한 시대' 그 자체였다. 프랑스의 제국주의 편승은 정해진 길이었던 것이다. 


당시 프랑스 미술계에는 인상주의 운동이 일어나 엄청난 위용을 자랑하며 유럽과 아메리카, 그리고 아시아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인상주의는 19세기 초반 감정과 상상력을 중시하던 낭만주의에 반대하여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려는 사조인 '사실주의'에 영향을 받아, 모든 전통적 회화기법을 거부하고 눈에 보이는 세계를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묘사하려 하였다. 그 유명한 마네, 모네, 르누아르, 드가, 세잔 등이 인상파에 속한다. 


한편 이 인상주의의 성격에 기대볼 요량으로 1880년 중반에 빈센트 반 고흐와 폴 고갱이 파리에 도착한다. 사실 전에도 파리에 온 적이 있지만, 이번에는 '화가'로서 오게된 것이다. 이들은 사실 본래 목사 지망생과 잘나가는 주식중개인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가슴 속에 타오르는 불꽃이 그들로 하여금 화가로의 길을 가게 하였다. 


그런데 세계 최대의 도시 중 하나인 파리에서의 생활은 그들에게 참을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그들은 결국 파리를 벗어나 남프랑스의 아들로 향한다. 정확히 말해서, 반 고흐가 먼저 가서 터를 마련하였고 고갱을 초대한 것이다. 


지독한 자본주의에 의한 속물적 성격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그림이 팔리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이 그런 속물주의에 편협되어지고 있는 자신이 싫었다. 반 고흐의 경우, 화상인 동생 테오의 후원으로 생활을 지탱하고 있었는데 이를 타계하기 위한 방책으로 일종의 '예술공동체'를 만들려 했던 것이다. 여기에 고갱이 합류하게 된다. 그렇게 그들의 짧지만 강렬한 동거가 시작된다. 


시작부터 예견되었던 반 고흐와 고갱의 파국


<반 고흐와 고갱의 유토피아>(아트북스)는 이 9주 간의 동거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며, 그들이 추구했던 이상향(유토피아)의 실체와 엇갈림과 실패와 파국을 다루고 있다. 사실 이 책을 접하기 전까지 반 고흐와 고갱의 관계는 "반 고흐와 고갱이 서로 다툰 끝에 반 고흐가 귀를 잘랐다." 정도의 한 줄로 알고 있었다. 또한 반 고흐의 경우는 <반 고흐 영혼의 편지>(예담)을 통해, 고갱의 경우는 서머셋 몸의 소설 <달과 6펜스>를 통해 알고 있는 것이 전부였다. 그들에게 정작 중요했던 아들 '노란 집'에서의 9주 간의 동거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인상주의의 영향에서 벗어나 개성적인 방향을 모색한 '후기인상주의'의 대표적 인물로, 언뜻 봐서는 동일한 이상향을 그리고 있는 것 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개성적인 방향'이라는 말이 말해주듯, 애초에 그들의 이상향은 같은 듯 전혀 다른 것이었다. 물론 기본적인 방향을 같았다. 둘 다 파리의 지독한 자본주의에 실증과 분노를 느끼고 일종의 피신을 간 것이었다. 그 이후의 방향이 완전히 달랐을 뿐. 


반 고흐는 아를에서 예술공동체를 꿈꾸었다. 아무리 잘 나가도 가난을 달고 살 수밖에 없는 시스템을 바꿔 보겠다는 의지였던 것이다. 온전히 그림을 통해 세상을 바꾸려는 생각이었다. 반면 고갱은 애초에 아를에 오게된 이유가 반 고흐가 아닌 그의 동생 테오때문이었다. 돈이 궁했던 그는 테오가 후원을 한다고 하는 결정적 이유로 아를에 오게된 것이었다. 그는 그 누구보다 자본주의의 영향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어느 누구보다 자본주의를 잘 알고 행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에게 아를은 또 다른 파리였을 뿐이었다. 반 고흐의 '원시'와는 달리 고갱에게 '원시'는 서양 세계와의 결별이었다. 파국은 시작부터 예견되어 있었던 것이다. 


운명은 참으로 짓궂고 인간은 속절 없지만 예술은 위대하다


저자는 이 파국의 과정을 그들의 작품과 편지로 유추하고 기술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파국의 과정은 반 고흐와 고갱의 인생에서 그리고 미술역사에서 수많은 희극과 비극을 잉태한다. 반 고흐로서는 인생 최고의 명작들을 이 시기에 쏟아 냈고, 미술역사에서는 새로운 시대를 여는 혁신적 순간이었다. 반면, 반 고흐는 불꽃이 활활 타올랐다가 식어버리듯 얼마 안 있어 생을 마감했으며, 고갱은 서양 세계를 완전히 등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함께 하면 안 되는 그들이었지만, 함께 했기에 위대함을 잉태한 그들의 만남은 그 누구의 만남보다 극적이라 하겠다. 


책은 이처럼 인간과 예술과 세상을 유려하게 접목시켰다. 그렇게 읽는 이로 하여금 생각하게 한다. 지금 우리가 사는 현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19세기 후반의 프랑스 파리. 그 파국의 소용돌이에서 새로운 시대를 열려고 하는 이들을 보며, "나는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행해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그리고 다함께 잘 살고자 하는 다분히 정치적이지만 지극히 순진한 생각을 가진 '바보' 반 고흐와 반 고흐와 어느 정도의 동류 의식이 있었지만 사실 반 고흐의 동생 테오의 후원을 기대하는 '속물' 고갱의 동상이몽. 운명은 참으로 짓궂고 인간은 속절 없지만 예술은 위대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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