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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읽기

<더 씨드> 문익점의 목화씨가 도요타 자동차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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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읽기] <더 씨드>


2006년 대량 리콜사건 은폐 사건이 발각되면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고, 2011년에는 동일본 대지진과 태국 홍수에 따른 생산 차질로 한때 세계 3위로 추락했던 '도요타 자동차'가 세계 자동차 판매 순위에서 2012년에 이어 2013년에도 1위를 지켰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일본 자동차 업체인 도요타그룹이 지난해 세계 시장에서 자동차 판매 1위를 지켰다. 도요타그룹은 23일 지난해 세계 자동차 판매량이 998만대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기존 최대 기록이던 2012년의 974만대보다 2%증가한 수치다. 지난해 브랜드별 판매량은 도요타와 렉서스를 합쳐 894만대, 경차와 소형차 브랜드인 다이하츠가 87만대, 트럭 브랜드인 시노자동차가 16만2천대였다. 이에 따라 도요타그룹은 경쟁사인 미국의 제너럴모터스(GM)와 독일의 폭스바겐을 제치고 세계 자동차 판매 1위를 유지했다."(<디지털타임스>, 2014년 1월 23일자 기사)


자동차 업계를 넘어 세계적인 기업의 반열에 올라 있는 '도요타'는 일본 내에서 닛산·혼다은 물론,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인 GM·폭스바겐 등을 따돌리고 톱의 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그 원천은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더 씨드>(비지니스맵)의 저자는 그 원천을 그 유명한 고려 시대 문익점의 목화씨라고 주장한다. 흥미를 끄는 소재라 아니할 수 없겠다.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더 씨드> ⓒ비즈니스맵

'도요타 자동차'의 '도요타'는 창업주 '도요타 사키치'에서 비롯되는데, 그가 최초에 설립한 회사는 '도요타 방직'이었다(206쪽). 어려서부터 호기심이 많았던 그는 소학교 4학년을 마친 후 불현듯 학업을 중단한다. 대신 할머니가 고생스럽게 목면을 짜던 모습을 보고는 18살의 나이에 직기를 발명하리라 결심한 것이다(203쪽). 일본인 특유의 기질과 그만이 가지고 있는 열정이 합해져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하고, 수많은 특허를 출현시켜 혁신을 주도한다. 


"사키치는 평생 인력지기를 동력지기로, 동력직기를 자동직기로 발전시키고, 다시 평면직기를 환상직기로 개발해내면서 자동직기 개발에 몰두한다."(본문 207쪽)


결국에 1926년 도요타 자동직기주식회사를 설립하게 된다. 훗날 도요타 자동차의 모태가 되는 회사이다. 저자는 이 부분에서 문익점을 떠올린다. 문익점이 목화씨에서 시작되는 의(衣)생활 혁신의 길을 찾았듯, 도요타 사키치는 목화씨에서 시작된 직기에서 자동차 혁신의 길을 찾았다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도요타 사키치의 '직기'가 문익점의 '목화씨'에서 시작되었다는 점. 어떻게 가능한가?


'목화씨'는 아시다시피 '문익점'이 중국(당시 원나라)에서 몰래 가져왔다. 고려 말, 공민왕 폐위사건을 바로잡고, 외교적 노력으로 사건을 풀고자 국왕의 명에 의해 원나라로 파견된(21쪽) 문익점. 저자는 문익점에 대해, 문익점이 원에 파견된 배경에 대해, 문익점이 목화씨를 얻게 된 배경에 대해 모든 의문점을 꼼꼼히 풀어가며 목화씨 채취를 생생히 들려준다. 그의 결론은 이렇다. 


"짐작컨대, 문익점은 원에 사행할 때 연경지방에 일찍부터 목면이 재배되고 있는 것을 눈여겨보고 있다가 귀국하는 길에 그 씨앗을 몰래 따서 가지고 온 것이 아닐까 한다."(본문 50쪽)


하지만 그 사실보다 더욱 중요한 건, 이 씨앗으로 엄청난 의료(衣料) 혁명을 이뤄냈다는 사실. 그 하나만으로 그의 업적은 칭송될 만 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가져온 목화씨는 우여곡절 끝에 전국에 퍼진다. 1398년에 문익점은 향년 6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지만, 목화씨로 인해 시작된 목면 산업은 엄청난 속도로 발전을 거듭한다. 하지만 17세기 들어서 정체기에 들고 더 이상의 혁신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에 반해 일본은 그 시기를 놓치지 않았다. 


"일본이 면화종자를 얻고 재배법과 직조기술을 배워간 것은 15세기 말부터였으나, 일반 서민에게 면포가 널리 보급된 것은 17세기 말부터였다. 17세기 중엽은 우리에게는 다시없는 종자혁신의 시점이었으나, 우리는 그 시기를 놓쳐버리고 말았다."(본문 131쪽)


이후에는 어떻게 되었을까? 결국 조선의 목면은 '재래종'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채 면업 식민지가 되어버린다(131쪽). 이에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저자는 조선이 지닌 경제 시스템의 한계, 과중한 조세와 수탈, 면업 재배와 미곡 생산의 상관관계, 변화 모색 실패 등을 이유로 들고 있다. 


한편 오래전부터 무역으로 많은 면포를 수입해 간(155쪽) 일본에서는 17세기에 민간에서 활발히 재배되었다고 한다(159쪽). 민간도 민간이지만 일본에서는 전쟁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에 군수품으로 많이 애용되었고, 급속한 발전이 따라온다. 이후 목면업은 일본 역사에 한 획을 긋게 되는데, 그것은 일본 근대 자본주의적 면방직업으로 인한 근대화이다. 


19세기 말 일본에서 목면업이 사라지고 근대 목면업 즉, 방적기와 면화로 인한 기계공업이(167쪽) 이를 대체하게 된다. 이를 앞세워 국력을 키운 일본은 조선을 침범하고 조선의 면업을 초토화하며 자신들의 면방직업 원료 기지로 쓰기에 이른다. 이에 조선은 '경성방직주식회사'로 맞서지만, 일본은 '도요 방적주식회사'를 앞세워 조선에 진출한다. 600여 년 전 고려 시대 문익점이 중국에서 가져온 목화씨가 일본으로 건너가 그 힘으로 조선을 침범하게 된 것이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 한 상황인가. 


저자는 문익점의 목화씨를 '혁신과 창조의 원천 씨앗'이라고 명명하며, 그 씨앗이 고려와 조선 그리고 일본에서도 자라나 엄청난 혁명을 가져왔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조선에서는 그 성장의 변곡점을 넘지 못하고 일본에 의한 의료 식민지로 전락했다. 반면 일본에서는 도요타를 비롯해 방적 산업에서 획기적인 발전, 근대화로까지 이어져 단계 없는 도약을 이루어냈다는 것이다. 


지금 한국도 '한강의 기적'을 이뤄내며 혁명이라 할 수 있을 만한 발전을 이룩했다. 하지만 정체·쇠퇴기에 이른 듯한 모습이 곳곳에서 보인다. 물론 단계 없는 발전 뒤에는 정체가 있기 마련이다. 문제는 이후다. 쇠퇴기로 접어들 것인가, 지속 발전을 통해 안정기로 접어들 것인가. 이건 이 시대의 정부, 기업, 국민의 몫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목화씨를 앞에 두고 반성을 해야 한다.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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