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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다/조선경국전

[조선경국전] 이방원, 정도전을 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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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처 부인의 막내 아들 방석을 세자로 책봉하면서 이방원의 심기를 건드린 정도전은, 결정적으로 '사병혁파' 때문에 이방원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정도전은 요동정벌에 필요한 공병을 차출한다는 명분 하에 왕자들이 거느리고 있던 다수의 사병을 혁파하려 합니다. 이에 이방원은 자신의 권력기반인 사병을 한 순간에 잃을 위기에 처하게 되죠. 정도전이 일종의 승부수를 던진 것으로 보이죠. 


 그리하여 태조 7년(1398)에 이방원은 사병을 거느리고 당시 남은의 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정도전을 급습합니다. 정도전은 그 자리에서 죽고 말죠. 이방원의 명분은 그날 정도전이 이성계의 본처인 한씨 소생 왕자들을 경복궁으로 불러 차례로 죽이려는 음모를 꾸몄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상관없이, 그들(정도전, 이방원)의 정치적 야망의 간극이 불러온 참극이었죠. 


왕실의 세계


신은 일찍이 <주아(周雅)>를 읽어 보았다.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의 덕을 말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후직(后稷)과 공류(公劉)의 공을 쌓은 일과 인(仁)을 행한 일을 추구하여 그 유래가 멀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문왕과 무왕의 복을 이야기하는 자는 반드시 자손들의 무던한 인후와 무리 지은 번성을 노래하여 그 미친 데가 넓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우리나라 왕조의 세계(世系)도 번성하여 모(某) 이래로 대대로 덕을 쌓아 오다가 목왕(穆王)에 이르러 두드러지기 시작하여 전하에 이르러 대명(大命)이 모이게 된 것이다. 더욱이 하늘이 자손을 내려 주시어 이미 번성을 이루었고, 그 가운데 현명하고 덕이 있는 이를 골라 동궁의 자리에 올바르게 앉혔다. 나머지 자손에게는 모두 작위를 주고 영지(領地)를 나누어 주어 왕실의 울타리로 삼았으니, 이 또한 국가의 장구한 계책에서 나온 것이다. 이제 봉작(封爵)의 이름을 적어서 <세계편(世系篇)>을 짓는다. 



 -올재 클래식스 <조선경국전>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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