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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다/조선경국전

[조선경국전] '조선'의 국호가 만들어진 경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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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이 편찬한 <조선경국전>은 어떤 책일까요? 태조 3년(1395)에 편찬하여 임금(태조)에게 바쳐졌다고 합니다. 주로 중국의 이상 시대로 알려진 주나라의 법전인 <주례>를 참고하였고, 여기에 조선 현실에 맞는 제도를 참작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례>에 담긴 육전(六典)에서 치전, 예전, 정전은 그대로 조선에 받아들이고, 교전을 부전으로, 형전을 현전으로, 사전을 공전으로 바꿔 받아들였습니다. 이를 조선으로 풀어쓰자면

치전->이조(인사행정), 예전->예조(교화), 정전->병조(군사), 부전->호조(재정), 현전->형조(법륙), 공전->공조(공영)입니다. 그렇다면, 정도전은 조선의 국호를 어떻게 짓게 되었을까요?




국호


해동(海東)의 나라들은 국호가 일정하지 않아서 '조선(朝鮮)'이라고 부른 것이 셋이 있었다. 단군(檀君), 기자(箕子), 위만(衛滿)이 그것이다. 박씨, 석씨, 김씨가 서로 계승하여 '신라(新螺)'로 불렀고, 온조(溫祚)는 '백제(百濟)'불렀고, 견훤(甄萱)은 '후백제(後百濟)'로 불렀다. 또한 고주몽(高朱蒙)은 '고구려(高句麗)'로 불렀으며, 궁예(弓裔)는 '후고구려(後高句麗)'로 불렀다. 왕씨는 궁예를 대신한 뒤에 전히 고려의 국호를 답습하였다. 이들은 모두 한 지역을 몰래 차지하여 중국의 칙명을 받지 않고 스스로 국호를 세우고, 서로 침략하고 빼앗았으니 비록 국호를 칭한 것이 있다 하더라도 이를 어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다만 기자만이 주(周)나라 무왕(武王)의 명령을 받아 조선후(朝鮮候)가 되었다. 지금 중국(명)의 천자는 고명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오직 '조선'이라는 칭호가 아름다울 뿐 아니라 그 유래가 매우 오래다. 이 이름을 근본으로 하여 받들고 하늘을 좆아서 백성들을 기르면, 길이 후손들이 번창할 것이다."


주 무왕이 기자에게 명한 것처럼, 명(明) 천자가 전하에게 명하였으니 이름이 바로잡히고 말도 적당해진 것이다. 기자는 무왕에게 홍범(洪範)을 가르쳤고, 홍범의 뜻을 부연하여 <팔조(八條)의 교(敎)>를 지어서 우리나라에서 실시하니 정치의 교화가 크게 이루어지고 풍속이 지극히 아름다워졌다. 조선이라는 이름이 천하 후세에 알려진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제 '조선'이라는 아름다운 국호를 답습하였으니 기자의 선정(善政)도 마땅히 강구해야 할 것이다. 오호라! 명 천자의 덕도 주 무왕에 비교하여 부끄럽지 않거니와 전화의 덕, 또한 어찌 기자에 비하여 부끄러움이 있겠는가! 장차 <홍범(洪範)의 학(學)>과 <팔조의 교>가 오늘날 다시 시행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공자(孔子)는 말하였다. "내가 그 나라를 동쪽의 주(周)나라로 만들겠노라"고. 공자가 어찌 나를 속이겠는가?



-올재클래식스, <조선경국전>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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