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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영화들 재개봉 열풍, 언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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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고 열풍이 영화계를 강타하고 있습니다. 지난 11월 6일에 한석규, 심은하 주연의 <8월의 크리스마스>(1998년)이 재개봉되었는데요. 1만 명 이상의 나쁘지 않은 성적을 기록하고 있는 중이랍니다. 이어서 14일에는 아놀드 슈왈제네거 주연,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터미네이터 2>(1991년)이 색보정과 디지털 작업을 통해 '리마스터링판'으로 재개봉되었죠. 또한 11월 21일에는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2003년)가 10주년 기념으로 10년 전 개봉한 날에 맞추어 재개봉한다고 합니다. 곽경택 감독이 

<친구 2>로 복귀한 게 굉장히 뻘쭘해지는 상황이죠. 


이뿐만이 아닙니다. 20일에는 뤽 베송 감독의 <제5원소>(1997년)가, 28일에는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1994년), <화양연화>(2000년)이 재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다 열거하기에도 벅차지만, 최대한 유명한 영화로 열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28일에는 이소룡의 <맹룡과강>(1972년)이 40여 년 만에 재개봉을 앞두고 있으며, <러브레터>(1999년)는 올해 2월 달 재개봉에 이어 '재재개봉'되는 진기한 풍경을 연출할 예정이죠. 올해 초 재개봉했을 당시 예상 외의 성적을 거두었고, 팬들의 요청이 빗발쳤을 거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이런 재개봉 풍경은 비단 최근만은 아닙니다. 올해에도 벌써 <러브레터>를 비롯해 뤽 베송의 <레옹>(1995년 개봉, 1998년 재개봉), <시네마 천국>(1989년 개봉, 1993년 재개봉) 등이 재재개봉해서 좋은 성적을 올린 바 있습니다. 사실 이런 재개봉 열풍은 북미에서 시작되었죠. 제작년 말에 <라이온 킹>(1994년)을 3D로 재개봉해 아주 좋은 성적을 올리더니, 이어서 작년 초에 <미녀와 야수>(1991년), <타이타닉>(1997년)을 연달아 3D로 재개봉해 히트를 칩니다. 정말 지긋지긋할 정도인데요. 이에 그칠 할리우드가 아닙니다. 올해에는 <몬스터 주식회사>(2001년), <니모를 찾아서>(2003년), <쥬라기 공원>(1993년)을 역시나 3D로 재개봉해 짭짤한 수익을 올린 것이죠. 




잘 보면 이들 영화의 공통점이 보입니다. 대부분이 1990년대에 개봉해 당시 모든 흥행성적을 갈아엎을 정도의 빅히트를 친 영화들이죠. 또는 센세이션을 일으켜 일종의 문화 현상으로까지 발전된 영화들입니다. 정말 누구나 한 번씩은 들어봄직한 영화들인 것입니다. 재개봉을 추진한 배급사에서는 그런 점을 아주 잘 파악해낸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벌어들인 수익도 상당하니까요. 


출판계 같은 경우는, 유명한 대작가가 죽은 지 70년이 넘는 순간 상당한 돈을 투자해 해당 작가의 작품들을 발간하곤 합니다. 얼마 전 '어니스트 헤밍웨이', '헤르만 헤세', '윌리엄 포크너'의 소설들이 쏟아져 나왔던 현상이 그 대표적 예죠. 그렇게 해도 왠만한 신간보다 많이 팔리니까 남는 장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영화계로까지 번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죠. 하지만 영화계의 재개봉 열풍을 출판계의 고전 열풍에 단순히 비교할 수는 없겠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90년대의 추억을 되새길 수 있는 세대의 '욕구'가 그만큼 강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이 지금 한국 문화 소비 계층의 주체가 되었다고 할 수도 있겠구요. 욕구에 걸맞는 '(소비)능력'까지 갖췄다고나 할까요?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겠습니다. 정치경제적 관점이면서도 식상한 관점이지만, 현실의 팍팍함에서 오는 과거 도피 현상이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은 비단 출판계에서 뿐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국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 (암울한) 미래가 보이지는 않죠. (칙칙한) 현재도 보이지 않습니다. (찬란한) 과거가 보이기 쉽죠. 


문화적 관점에서 보자면 이렇습니다. 현재의 문화 전반에 대한 '불만'의 표출. 10~20대조차도, 현재의 문화를 낮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스스로를 잉여라고 지칭하는 건, 비단 취업을 못한 젊은이만의 전유물이 아닌 것입니다. '왜 우리는 세상을 바꿀 문화를 창조하지 못하지?' '왜 우리는 이런 쓰레기 같은 정보의 바다에서 허우적대고만 있지?'와 같은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다고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응답하라 1994> 요즘 정말 '핫' 합니다. 그렇지만 엄밀히 말해서 그건 단지 '추억'일 뿐입니다. 추억에 잠겨 잠시 현실에서 벗어나 현실에서 살아갈 힘을 얻게 하는 건 괜찮습니다. 하지만 추억에 매몰되어 현실에서 도피해버리는 행동은 옳지 못한 것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백번 양보해 현실 도피까지도 괜찮다고 칩니다. 최악의 경우, 과거의 모든 것들을 찬란하다 못해 '옳다'고까지 생각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도피를 넘어 부정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죠. 


최근들어 불고 있는 복고 열풍. 아마도 이제 시작일 것입니다. 최소한 몇 년 동안은 계속될 것으로 보여집니다. 지금은 현재 문화의 '대안' 정도로 여겨지고 있는 듯 합니다만, 시일이 흐른 뒤 어떻게 변질되어 갈까 걱정이 되는 게 사실입니다. 주지했던 사실들을 한 번 더 생각해 본 후에 추억을 즐기시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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