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가수들>

미국 어느 한적한 시골의 작은 펍, 밤이 되자 사람들이 하나둘 오더니 문전성시를 이룬다. 젊은이와 늙은이, 따로 또 같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하지만 별게 없으니 넋두리로 그치고 만다. 분명 더 할 얘기가 있어 보이는데 말이다. 그때 누군가 말하길 자기가 여기서 노래를 가장 잘 부른다고 한다.
바텐더가 어느 노인에게 슬쩍 떠본다. 할배가 한 곡 뽑아서 저 젊은이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버리라고. 하지만 노인은 몸이 좋지 못해 한 발 뒤로 뺀다. 바텐더는 100달러와 술 한잔을 건다. 그렇게 노인은 즉흥 노래 대결의 포문을 연다. 자타공인 최고의 노래꾼답게 기똥찬 노래 실력을 선보인다.
그에 몇몇이 참전해 뒤를 잇는다. 하나같이 개성 강하고 실력 출중한 노래꾼들이다. 그들은 각자 자기 이야기를 노래로 풀어 전한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이가 압도적인 실력으로 모두를 감동시키고 나아가 하나로 뭉치기까지 하는데… 억눌렀던 감정을 내보이니 경쟁은 오간 데 없고 어느덧 연대로 나아가고 있다.
아카데미가 주목한 20분의 울림
넷플릭스는 아카데미 시즌에 맞춰 걸작 단편 영화를 선보이곤 하는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가수들>을 내놓았다. 20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영화이지만 희로애락이 다 들어가 있다. 나름의 반전까지 선사하니 희열을 느끼게 해 준다. 아카데미 수상 경력이 있는 샘 데이비스 감독의 이 작품은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 단편 영화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며 저력을 과시했다.
19세기 러시아 작가 이반 투르게네프의 단편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하는데, 유려하게 재해석해 옮긴 것 같다. 거친 질감에 날것의 느낌이 강하게 전해지는 바, 35mm 필름으로 촬영했고 현장에서 라이브로 녹음했으며 전문 배우 아닌 SNS 가수들과 오디션 출신 가수들을 캐스팅했다.
일련의 즉흥 노래 대결, 첫 번째 참가자의 노래에 이은 두 번째 참가자는 개인적 실패의 경험을 노래에 녹여냈다. 세 번째 참가자의 경우 실직 이후의 삶을 고백한다. 네 번째 참가자는 가족과 단절된 상황을 전한다. 그리고 마지막 참가자, 모두의 감정을 요동치게 하는 그는 가족과의 기억을 절절하게 꺼낸다.
경쟁을 넘어선 노래의 힘
<가수들>은 누구나 노래를 통해 감정을 표출하며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하는 가수일 수 있다고 말한다. 시골의 어느 밤, 작고 허름한 펍에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는 가수가 있을 리 희박하지만 제목부터 ‘가수’라고 하니 말이다. 거칠기 이를 데 없어 보이는 뭇남자들이 서로 치고박는 대신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묘하다.
그들은 하나같이 실패하고 힘겨워하고 지치고 불안한 삶에 있어 한시름 정도 덜어 보고자 펍에 왔다. 다들 대동소이하다 보니 서로의 얘기를 들어주기보다 각자 아무한테나 쏟아낸다. 그러니 각자의 내면이 이어지며 감정을 교류하지 못하고 부유할 뿐이다. 그렇게라도 하니 다행이라 할 수 있지만 남는 건 없다.
그때 노래가, 음악이 모두를 집중시킨다. 누군가의 진솔한 이야기를 그가 전하는 고유의 리듬과 멜로디로 전달받는다. 각자의 내면이 이어지며 감정을 교류한다. 비로소 너의 삶과 나의 삶, 우리의 삶이 인정받고 이해받는 것이다. 노래를 하고 노래를 들으며 감동을 전하고 감동을 받는다.
예술은 누구의 것인가
이곳은 실상 보이지 않는 곳이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을 만한 곳, 관심을 두지 않는 한 많은 이들에게 존재하지 않는 곳. 그곳에서 울려 퍼지는 날것의 이야기, 그들이 불러 전하는 노래는 ‘예술’의 탄생과도 같다. 예술이 결코 돈 많고 지체 높은 이들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 삶을 오롯이 표현하는 데 예술이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걸 말하고 있다.
나아가 예술이 결코 혼자만 즐기는 비타협적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이 전해진다. 예술이야말로 보편타당한, 누구나 직접 행하고 또 마음껏 즐길 수 있다고 말이다. 주지했듯 누구나 노래를 부를 수 있고, 노래를 부르는 이는 곧 가수다.
단편 아닌 장편으로, 노래를 부르고 듣는 이들의 사연을 하나둘 좀 더 자세히 끄집어 내 보여줬으면 어땠을까 싶다. 그만큼 큰 감동이 전해졌고 여운이 길게 이어진다는 뜻일 텐데, 막상 그러했으면 감동과 여운의 질이 떨어지지 않았을까도 싶다. <가수들>이 전하는 생각지도 못한 종류의 감동을 직접 받아 보면 어떨까.
'넷플릭스 오리지널' 카테고리의 다른 글
| F1의 한 시대가 지나가고 있을 때 혜성처럼 등장한 챔피언 (0) | 2026.03.10 |
|---|---|
| 여성 체스 선수로 전무후무 유일무이의 업적을 남기기까지 (0) | 2026.03.06 |
| 오락실에서 세계 정상까지, 1997년 15살 '게임의 신' 전설 (0) | 2026.02.20 |
| 1980년 동계올림픽 '레이크플래시드의 기적'을 기억하라 (0) | 2026.0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