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연의 편지>

2018년 네이버웹툰에 '작품'이라고 할 만한 웹툰이 하나 공개된다. 8월부터 10월까지 선보인 여름 특선 10부작 단편이었는데, 반응이 폭발한다. 전무후무한 압도적 평점으로 완결했고, 완결 이후에도 그 감성을 느끼고자 수많은 이가 다시 찾고 있다. 도대체 이 짧은 단편에 무엇이 들었는지?
이듬해 5월에 단행본으로 출간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단 한 권으로 나왔어서 아쉬울 뿐이었다. 작업이 상당히 빠르게 진행된 편인데, 아무래도 단편이라 초반과 후반의 그림체가 크게 다르지 않을 테고 이야기 구조나 캐릭터가 무너지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야기가 더 오래 계속되었으면 작품이 달라졌을 수도 있겠다.
시간이 한참 흐른 2025년에 드디어 애니메이션 영화로 제작되었다. 요즘에는 웹툰이 영화 혹은 시리즈로 제작되는 게 다반사인데, 애니메이션으로 나온 걸 보니 애초에 계획했던 게 아닌가도 싶다. 원작의 그림체를 들여다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학창 시절의 로망을 되살리는 마법
16세 소녀 이소리는 교실 안에서 학폭을 당하는 김지민을 도와주려다 되려 자신이 학폭을 당한다. 거기에 김지민이 여름방학 때 돌연 전학을 가 버리자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고향인 청산으로 내려와 청량중으로 전학을 간다. 하지만 학폭 트라우마로 겉돌기만 할 뿐이다. 그때 우연히 책상 아래에서 편지를 발견한다.
정호연이라는 친구가 이소리를 위해 학교 전체를 소개해 주고, 그녀를 어딘가로 초대한다. 마치 보물 찾기를 하듯, 그곳으로 가면 뭔가가 있고 누군가가 있다. 그리고 편지가 있으니, 다시 편지가 이끄는 곳으로 가는 식이다. 그렇게 이소리는 조금씩 학교와 친해진다. 자연스레 친구들도 생긴다.
정호연이라는 친구의 호의와 배려를 편지라는 형태로 받아들이며 별생각 없이 따르니 좋은 일만 생기긴 하는데, 과연 정호연은 누구일까? 어디에 있는 걸까? 왜 이런 호의를 베푸는 걸까? 이 편지 랠리가 끝나면 만날 수 있는 걸까? 한편 이소리는 양궁부 소속 박동순과 친해지고 그가 정호연과 친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런가 하면 양궁부 소속 안승규와의 악연이 시작되는데…
'편지 찾기'가 만들어낸 가장 순수한 미스터리
그동안 학교 이야기, 학창 시절 이야기를 다룬 콘텐츠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나왔다. 그만큼 인생에서 그때 그 시절이 중요하다는 의미겠거니와 다시 돌아가고 싶은 때라는 의미기도 할 것이다. 주로 다루는 소재라 하면, 요즘에는 학폭을 많고 예전에는 사랑과 우정이 많았다. 경쟁이 주요하게 다뤄진 때도 있었다.
와중에 <연의 편지>는 독특하다. 학폭을 꽤 심각하게 다루는 한편, '학창 시절'이라는 찬란한 한때를 우정의 이야기로 치환해 보여준다. 그림체, 이야기 구조, 캐릭터 등이 조화를 이뤘기에 가능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을, 짧은 이야기를 흥미롭게 끌고 가는 동력은 보물 찾기의 방법론을 차용한 '편지 찾기'다.
학폭 트라우마로 힘들어하는 이소리를 위해 정호연이 마련한 연작 이벤트랄 수 있겠는데, 미스터리적 요소도 상당해서 뒤가 계속 궁금해진다. 그렇게 종국에 밝혀지는 일련의 사연은 상당한 감동을 자아낸다. 16살, 아직 청춘이라고 하기에 어린 그들이 보일 수 있는 최대치의 진심이 묻어난다.
학창 시절의 로망을 되살리는 마법
어른의 일터가 치열하고 각박하다고 하지만, 아이의 학교 또한 만만치 않다. 일터의 경우 불확실한 노후가 잡혀 있지만, 학교의 경우 불확실한 미래가 담보로 잡혀 있다. 학창 시절이 더 막막하다면 막막할 수 있다고 본다. 반면 일터나 학교 모두 나름의 로망이라는 게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로망 또한 학교가 더 강력하다.
<연의 편지>는 애초에 원작자가 의도했다고 밝혔듯, '연애편지'와 발음이 거의 같다. 그러니 제목을 보고 직접 말해 보면 자기도 모르게 떠오르는 것이다. '학창 시절의 로망, 사랑과 연애'를 말이다. 그렇다, 이 작품은 우정에서 아주 조금이나마 한 발 더 나아가 사랑의 감정이 생겨나게 한다. 확연히 느끼진 않더라도 말이다.
짧은 와중에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에 가까운 이야기 구조성을 띄고 있는 이 작품 <연의 편지>는 재미와 감동을 건네는 건 물론 이성과 감성을 골고루 터치하고 보는 맛과 듣는 맛까지 다채로운,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이 맛있는 한창 차림 같다. 부담 없이 마냥 행복에 젖고 싶으면, 다시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으면 언제든 다시 봐도 좋을 것이다.
'신작 열전 > 신작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절망을 끌어안은 가장 사랑스러운 가족이 세상을 건너는 법 (0) | 2025.12.17 |
|---|---|
| 외계인을 믿는 남자와 자본주의의 그림자 (1) | 2025.12.12 |
| 수학으로 세상을 보는 소년, 수학으로는 풀 수 없는 ‘관계의 방정식’ (0) | 2025.12.05 |
| 사막, 의족, 안대... 의심으로 굴러가는 지옥의 로드무비 (0) | 2025.1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