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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바람의 검, 신선조> 이상과 현실이 충돌하는 그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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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바람의 검, 신선조>


<바람의 검, 신선조> ⓒ미디어소프트


아버지가 꿈꾸던 삶은 무엇이었을까. 아버지가 추구했던 이상은 무엇이었을까. 분명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돈만을 생각하는 가장의 모습은 아니었을 텐데. 알고 싶지만 차마 여쭤볼 수 없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힘들게 버티고 있는 아버지가 더욱 힘들어질까봐.

 

결혼할 나이가 다가올수록,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수록 책임이라는 의식이 강하게 들기 시작한다. 그 책임의 주를 이루는 것은 생계로 이어지는 ’. 일찍이 내가 추구했던 이상과 꿈꾸던 삶은 돈 앞에서 힘없이 바스러진다. 아버지의 삶에서 미래의 내 모습이 보이곤 하는 것이다. 그렇게 살기 싫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그것이 인생의 정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 그렇다면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과 꿈꾸는 삶이 가족의 생계보다 훨씬 더 깊고 중요하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예를 들어, ‘충성심을 자신의 목숨, 가족의 목숨보다 소중히 생각했던 일본 사무라이라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하겠는가? 일본 막부 시대에서 사무라이에게 무사도보다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충분히 예외가 존재할 수 있다.

 

사무라이의 삶과 이상 그리고 가족의 생계


2003년 개봉한 일본 영화 <바람의 검, 신선조>는 일본 도쿠가와 막부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신선조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면서, 사무라이의 삶과 이상 그리고 가족의 생계 사이에서 괴로워했던 한 사무라이에 대한 이야기이다.

 

신선조는 일본 에도 시대(도쿠가와 막부) 말기인 1863년에 막부 쇼군의 보호를 목적으로 조직된 무사 조직으로, 이후에 교토의 치안유지를 목적으로 활동을 하였으며 막부의 편에 서서 이에 반대하는 세력과 싸웠다. 메이지유신의 반대편에 섰기 때문에 보수반동 세력의 대표 격으로 평가받아왔던 것이, 세계 2차 대전 이후 패망하는 주군에게 끝까지 충성을 받쳤다는 점이 부각되어 최후·최강의 진정한 사무라이처럼 인식이 바뀌었다.

 

이 영화는 이런 신선조붐의 한 축을 이루었던 소설 <칼에 지다>(아사다 지로 지음, 양윤옥 옮김, 북하우스 펴냄)를 원작으로 하였다. 이 영화에 이어서 드라마 <신선조>가 열풍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이 영화는 결코 신선조를 미화하지 않는다. 대신 신선조에 속했던 인물을 내세워 인간을 그려낸다.

 

진정한 무사도란 무엇인가


주인공 요시무라 간이치로는 모리오카의 남부 번을 떠나 교토로 상경한다. 본래 조그마한 도장의 교관이었던 요시무라는 신선조에 입대하게 된다. 입대 환영식에서 무사의 기백이나 포부가 아닌 고향 자랑을 읊고, 무사답지 않게 돈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요시무라.

 

또 다른 주인공 사이토 하지메는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그를 죽이려 한다. 하지만 신선조 최강의 무사 사이토에 맞서는 요시무라 또한 만만치 않은 실력을 뽐낸다. 그렇게 그들은 계속 티격태격하면서도 사이토의 여자로 인해 조금씩 풀어진다. 


<바람의 검, 신선조>의 한 장면. ⓒ미디어소프트


한편, 영화는 요시무라의 고향에서의 삶을 그려낸다. 그는 하급무사이자 교관으로 있었는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어느 날, 셋째 아이를 몸종으로 들여보내고도 밥을 먹을 수 없는 나날들이 계속되자 아내가 자살을 시도한다. 이 모습을 본 요시무라는 정통 무사로서의 길과 고향을 버리고, 교토로 상경하여 신신조가 되어 가족을 먹여 살리는 길을 택한다.

 

영화는 이 두 갈래의 이야기를 이어주는 매개체로 극 중에서의 현재를 보여준다. 이야기의 화자들이 나와서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이다. 그 화자들은 바로 사이토와 요시무라의 딸 내외이다. 아주 우연히 요시무라의 딸의 남편이 운영하는 병원에 사이토가 손주를 데리고 온다. 거기에서 요시무라의 사진을 발견한 사이토가 과거를 회상하고, 요시무라의 딸의 남편(요시무라가 속한 남부의 번장이자 요시무라의 친구이기도 했던 오노 지로에몬의 아들)이 요시무라의 뒷얘기를 해준다. 결국 사이토의 오해는 모두 풀리게 되고, 무사의 시대가 끝났음에도 계속적으로 무사의 절개와 자세를 지키려 한다.

 

신선조는 시대에 흐름을 따라 쇼군파와 천황파로 분열되고 만다. 이때 보여주는 요시무라의 의외의 모습. 녹봉을 배로 주겠다는 천황파의 꼬드김에 넘어가지 않았던 것이다. 요시무라를 다시 생각하는 사이토.

 

총을 앞세운 천황파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칼의 쇼군파. 그 피 말리는 전쟁터에서 요시무라는 자신보다 동료들을 더 챙기며 믿음을 주고 격려를 심어주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모습에 사이토는 무사도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고, 요시무라야말로 진정한 사무라이라고 인정한다. 자신이 추구했던 무사도는 겉멋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바람의 검, 신선조>의 한 장면. ⓒ미디어소프트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돈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남을 배려하고 믿음을 심어주는 모습과 무사로써의 기본인 ()’를 져버리지 않는 모습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또한 요시무라는 천황파와의 싸움에서 홀로 적진으로 뛰어드는 결연함과 무모함을 보인다. 일면 종잡을 수 없는 모습이지만, 사무라이의 새로운 전형을 세운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감동의 눈물


영화는 사무라이들의 이야기답게 피가 튀고 살이 뜯기는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하지만 신선조의 이야기가 영화의 1/3 정도만 차지하기에, 화려한 액션의 향연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 있겠다.

 

반면 잔잔히 흐르는 음악과 수려한 경치, 그리고 감동적인 이야기와 연기로 생각지도 못한 눈물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생각날 테고, 누군가는 마지막 사무라이의 심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 누군가는 생명의 존엄성을 다시금 환기시켜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사실 막부니 신선조니 사무라이니 하는 것들에 관심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분들이 상당할 것이다. 그러니 이 영화에 아무런 재미도 감동도 느끼지 못할 수도 있겠다. 그런 분들께는 이 영화의 여운을 느끼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끝까지 그냥 이야기에 푹 빠져 보고 나면, 동양에서만 느끼는 특유의 정서를 깊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 정서가 주는 여운 또한 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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