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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죽이는 여자들'에게 비로소 찾아오는 해방의 순간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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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발코니의 여자들>

 

영화 <발코니의 여자들> 포스터. ⓒ그린나래미디어

 

유럽 전역에 찾아온 폭염, 프랑스 마르세유의 한 마을 발코니들이 활짝 열린다. 마음만 먹으면 서로 뭘 하고 있는지 훤히 들여다볼 수 있다. 30대를 바라보는 세 친구, 니콜과 앨리즈와 루비가 맞은편에 이사를 온 근사한 남자에게 끌린다. 니콜은 첫 소설을 준비 중인 작가, 앨리즈는 첫 극장 영화를 준비 중인 배우, 루비는 인기가 꽤 많은 캠걸이다.

그들은 맞은편 남자의 초대로 그의 집으로 향한다. 루카스라는 그는 유명하다는 이들의 사진을 찍는 사진작가다. 근사한 집에서 놀고먹고 마시다가 니콜과 앨리즈만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다음 날 루비가 피칠갑을 한 채 홀로 집으로 돌아온 게 아닌가. 니콜과 앨리즈는 그 모습을 보고 기겁을 한다. 갑자기 루카스의 집으로 달려가는 루비, 쫓아가는 친구들.

루카스가 처참하게 죽어 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루카스가 루비를 성폭행했고 루비가 스스로를 지키려 한 것이었다. 정신을 놓다시피 한 루비, 사태를 함께 수습하자는 니콜, 신고하자는 앨리즈. 결국 그들은 함께 사태를 수습하기로 한다. 시체를 훼손하고 은닉하고 유기하는 수순으로 말이다. 와중에 셋은 각자 차마 말 못 할 사정이 있다.

 

행위-고뇌-트라우마-해방의 과정

 

영화는 푹푹 찌는 한여름의 해프닝처럼 시작한다. 마을의 어느 부인이 자신을 괴롭히는 남편을 죽였는데, 니콜한테 와서는 혼자 넘어져 혼절했다고 말한다. 니콜은 함께 좋아해 준다. 이 영화 <발코니의 여자들>이 '여성' 주체의 이야기를 풀어 나갈 거라는 걸 선언한 것이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의 노에미 메를랑이 연출, 각본, 주연을 도맡았고 셀린 시아마가 공동 각본을 맡아 여성 서사를 확장시켰다.

프랑스 영화가 종종 보여주는 파격을 이 영화도 보여주는데, 다름 아닌 '노출'이다. 하지만 관객의 눈을 사로잡고자 끌어당기는 종류의 노출이 아니다. 영화를 통해 일찍이 접해 본 적이 없는 일상적인 노출들이 대부분인데, 오히려 상당히 불편했다. 여성의 몸이 얼마나 대상화되고 또 소비되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한편 포스터를 보면 '이 영화에서 '여자'는 죽지 않습니다'라는 단 한 줄의 카피가 돋보이는데, '여자'에 방점이 찍혀 있다. 이 또한 선언 같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영화에서 여자가 의도적으로 죽임을 당했는지, 그저 스쳐 지나가듯 죽었고 희생자로서 죽었고 가해자일 때는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남성 서사의 강화 장치로서 죽었다. 죽었을 때조차 주체가 될 수 없었다.

반면 <발코니의 여자들>에선 남자만 죽는다. '여자가 남자를 죽인다'라는 현상 자체가 중요하지 않고 행위 이후 고뇌 끝에 트라우마를 딛고 진정한 해방으로 가는 본질이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앞서 언급한 '선언'을 영화 전체로 확대할 수 있겠다.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겠지만 굳이 돌아가려 하지도 않겠다고.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발코니'라는 공간이 주는 함의가 흥미롭다. 집이라는 닫힌 공간, 아니 닫혀 있어야 하는 공간에서 유일하게 열린 공간이 발코니다. 안에서 밖을 전망하며 휴식을 취하는 목적일 텐데, 그렇다는 건 밖에서도 안을 볼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발코니에서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나만의 열린 공간이 아닌 모두의 열린 공간.

그러니 마음만 먹으면 남들이 뭘 하는지 알 수 있고 내가 뭘 하는지 알려질 수 있다. 서로 소통이 매우 긴밀하게 이뤄질 수 있고 비밀 따위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하물며 살인 사건이 일어나면 알려지지 않을 도리가 없을 테다. 영화의 세 친구도 그 점을 모르지 않기에 똘똘 뭉친다. 애초에 그들도 발코니를 통해 친해졌을 것이었다.

문제는 열려 있다고 허락 없이 집 안으로 들어갈 권리는 없다는 점이다. 루카스가 성에 개방적인 캠걸 루비를 성폭행하면 안 되듯이 말이다. 그런 마인드는 극 중 죽음을 불러온 착각인데, 죽어도 할 말 없는 생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 영화가 가벼운 블랙 코미디 형식을 띠고 있으나, 그 이면에는 결코 가볍게 지나갈 수 없는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는 이유다.

꼭 한 번 찾아서 접하면 좋을 영화다. 여전한 무더위에도 딱 맞는 외피를 가졌으나 정작 이면을 들여다보면 서늘하기 짝이 없는 복잡하고 어둡기까지 한 이야기가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영화임을 선언하고 있기에 이야기로서만이 아닌 깨달음을 얻고자 할 때도 유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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