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어네스트와 셀레스틴: 멜로디 소동>
절대 양립할 수 없는 관계였던 곰과 쥐, 어네스트와 셀레스틴은 세계의 고정관념을 깨고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함께 사는 그들, 어네스트는 3개월 만에 동면에서 깨어나 셀레스틴의 성화에 못 이겨 길거리에서 바이올린을 켜며 돈을 벌려고 했으나 그러지 못한다. 셀레스틴이 실수로 바이올린을 두 동강 낸 것이다.
명품 바이올린 스트라디바리우스를 고치기 위해선 어네스트의 고향인 샤라비로 가서 옥타비우스에게 맡겨야 했다. 하지만 어네스트는 꺼려한다. 반면 셀레스틴은 죄책감 때문에 혼자서라도 가기로 한다. 그 뒤를 쫓는 어네스트, 결국 그들은 만나서 함께 샤라비로 향한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샤라비, 아무런 음악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이상한 규칙과 법을 지키고 있었다.
규칙도 규칙인데 '도' 음 하나를 제외한 다른 음들을 내면 체포되어 갇히는 '어네스토프법'이 철저히 시행되고 있었다. 누가 어떤 이유로 이런 법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는가. 와중에 어네스트는 별생각 없이 음악을 연주했다가 경찰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기도 한다. 그래도 이곳에 온 목적을 달성해야 하므로 옥타비우스를 찾으려 한다. 그들은 샤라비에서 무사할 수 있을까?
'법'을 이용해 사회를 죽이는 것
2012년 프랑스에서 동명의 동화책을 바탕으로 내놓은 애니메이션 <어네스트와 셀레스틴>, 2년 뒤 한국에도 상륙했다. 서로를 부정하기 바쁜 곰과 쥐, 와중에 어네스트와 셀레스틴은 서로의 존재 자체를 인정한다. 10년 뒤 2022년에 후속 편이 프랑스에서 개봉했고 3년 뒤 한국에 상륙했다. <어네스트와 셀레스틴: 멜로디 소동>이라는 제목으로.
이번 작품의 키워드는 부제로 엿볼 수 있듯 '멜로디'다. 멜로디 자체를 철저히 부정하는 어네스트의 고향 샤라비, 그 이유는 오롯이 어네스트에게 있으니 그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걸 극구 꺼려한 이유가 있었다. 이유는 그렇다 치고, 사람이 모여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규칙'과 '법'을 이용해 통제하려는 술수는 악랄하다.
규칙과 법은 그 자체로 목적이어야 한다. 다른 무엇을 위한 수단 또는 도구가 되는 순간 지옥으로 가는 열차를 타는 것이다. 그리고 작품에서처럼 '왜'가 빠지고 '원래부터 그랬다'는 식으로 법을 다루고 대하다 보면 사회는 일순간 경직되어 활동성을 잃는다. 생각을 정지하고 현상이 본질인 것처럼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그야말로 죽은 사회다. 극 중 샤라비는 죽은 사회다. 그럼에도 미파솔이 수시로 출몰해 멜로디를 퍼뜨리며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나아가 그가 이끄는 음악 되찾기 운동도 지하에서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빙퉁그러진 법치주의, 전체주의, 권위주의에 맞서 자유를 되찾고자 안전과 안정을 내던지는 것이다.
귀여운 외형, 결코 녹록지 않은 작품
이쯤 되면 아무리 동화적인 그림체로 아기자기하고 아름답게 그려냈다고 해도 세계관과 이야기, 메시지 등은 어른스럽기 이를 데 없다. 정치적이고 철학적이며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짚어내기까지 하니 각 잡고 들여다보면 어렵디 어렵다. 특히 지금 한국의 35세 이하는 민주화된 세상에서 태어났으니 이해하기 힘들 테다.
작품에선 그나마 법이 기준이고 사람이 기준은 아니라고 하지만 그 지점이 더 문제가 될 수 있다. 과거 독재 시대 때는 정상에 있는 사람을 목적으로 다른 모든 게 수단이자 도구였다. 그러니 눈에 보이는 확실한 대상이 있었다. 반면 법을 내세우면 일견 맞는 것 같다, 따라야만 할 것 같다. 생각이 없어진다.
다분히 인간의 본성을 거스른다. 본성이라 하면 동물적인 감각이 가장 먼저 떠오를 텐데, 장 자크 루소가 말했듯 인간은 본래 자유롭고 평화로우며 공동체 의식을 가진 존재였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불평등이 생겨나고 자유롭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런 만큼 작품 속 샤라비의 모습을 보면, 인간 세계가 갖춰야 할 이성적 체계를 완벽히 구축한 것처럼 보이나 실상 인간 세계가 지양해야 할 반인륜적 체계를 구축했다고 보는 게 맞다.
녹록지 않은 작품이다. 관련하여 대충 혹은 잘못 알고 있다면 잘못 이해할 요량도 있다. 곰과 쥐가 주인공으로 나올 뿐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그 자체라고 해도 틀리지 않으니 더욱 유의할 필요가 있다. 1편에서 2편처럼 오랜 세월이 흐른 뒤 3편이 나온다고 해도 잊지 않고 찾아볼 것이다. 예전과 지금이 별반 다르지 않은 것처럼 지금과 나중이 별반 다르지 않을까? 아마도 그럴 것 같은데, 씁쓸하다.
'신작 열전 > 신작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헤어 나올 수 없는 슬픔이 무시무시한 공포로 현실화 될 때 (1) | 2025.07.07 |
---|---|
K-팝 아이돌의 진면목을 가볍고 진실 되게 접할 수 있는 기회 (0) | 2025.07.03 |
엄마에게 무슨 사기를 어떻게, 왜 당했다는 걸까? (1) | 2025.06.20 |
영화사를 대표할 만한 산악 액션 블록버스터가 귀환했다 (2) | 2025.06.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