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색, 계>
돌아오는 2025년은 일제로부터 한국이 독립한 지 80주년 되는 해다. 그 말인 즉 일제가 패망한 지, 그리고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제의 압제에서 시름했던 수많은 나라의 국민들이 해방을 맞이한 지 80년이라는 말이다. 시간이 참으로 빨리 흘러 벌써 이렇게 오래되었나 싶기도 하고 아직 100년도 안 되어 시간이 그리 많이 흐르진 않았구나 싶기도 하다.
일제로부터의 독립 이야기는 그동안 수없이 많은 콘텐츠로 만들어져 우리를 찾아왔다. 영화 부분에선 한국, 중국, 대만을 필두로 일본에서도 만들어졌다. 다양한 시선이 존재하는 와중에 이안 감독의 <색, 계>가 보여주는 시선은 특별하거니와 독보적이다. 2007년에 선보인 후 15년이 훌쩍 지났음에도 전례를 찾아볼 수 없다. 고혹적인 명작이랄까.
이 작품을 몇 번 접했는데 그때마다 완전히 달랐다. 20대 때, 30대 때, 40대 때 받는 느낌이 상반되기까지 했다. 20대 땐 오히려 '계(械)'의 부분, 즉 이성적인 부분에 감화되어 분노했더랬다. 30대 때는 '색(色)'의 부분, 즉 욕망과 감정이 뒤섞인 부분에 감화되어 흥분했다. 지금 다시 보니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며 모든 이들이 가엽게 느껴졌다.
친일파 처단의 꿈을 꾸는 애국 연극서클
중일전쟁이 발발하고 많은 이가 피신하는 가운데 대학교 1학년생 왕자즈도 홍콩으로 피신한다. 친구의 선배인 광위민의 권유로 애국 연극서클에 가입해 좋은 연기를 펼쳐 항일전쟁에 보탬을 줄 큰돈을 모금한다. 어느 날 일제의 괴뢰정권 왕징웨이 정부의 특무 대장 이모청이 홍콩으로 숨어든다. 광위민의 선배가 그의 밑에서 일하고 있어 자세한 소식을 들은 서클 일원은 이모청을 암살하기로 작정한다.
이모청 암살 작전의 핵심은 왕자즈의 미인계, 하지만 여의치 않다. 산전수전 다 겪은 이모청이 쉽사리 곁을 내주지 않는 것이다. 하여 서클 일원은 진퇴양난에 빠진다. 돈은 계속 나가고 작전에 진전은 없으니 말이다. 설상가상으로 이모청은 상하이로 돌아가 버리고 만다. 애국 연극서클의 치기 어린 도전은 허무하게 끝난다.
3년이 지나 상하이로 가서 이모네에 살고 있는 왕자즈 앞에 광위민이 나타난다. 그가 말하길 국민당의 저항군이 그들의 활동을 주시하고 있었고, 우두머리 격인 우 영감이 그들을 포섭해 이모청 암살을 추진하고 있었으며, 이번에야말로 왕자즈의 미인계를 제대로 이용하고자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왕자즈는 3년 만에 다시 이모청의 곁으로 가는데…
욕망이라는 감정과 경계라는 이성 사이에서
영화 <색, 계>는 제목부터 유의할 필요가 있다. '색계(色界)'로 붙이면 보통 불교에서 말하는 물질로 이뤄진 세계를 말하지만 '색, 계'는 색과 계를 나누니 각각 욕망과 경계를 말한다. 물론 붙일 때와 나뉠 때의 '계'는 한자가 다르지만 말이다. 그렇게 볼 때 이 영화는 욕망이라는 감정과 경계라는 이성이 첨예하게 부딪히는 현상을 다룬다.
비단 이모청의 고민만이 아니라는 점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이모청은 당연히 경계하고 조심해야 하지만 왕자즈도 그래야 하는 것이다. 누구에게서 무엇을? 바로 왕자즈를 뱀처럼 휘감으며 자신의 불안을 해소하려는 이모청과의 관계를 말이다. 이 작전이 실패한다면 다른 무엇도 아닌 그 때문일 테고, 하여 하루빨리 암살 작전을 실행에 옮겨야 했다.
하지만 국민당 저항군은, 그러니까 우 영감은 상부의 지시를 기다려야 한다며 미적댄다. 그에겐 광위민이나 왕자즈는 안중에도 없다. 쓰다가 여차 하면 버릴 도구일 뿐이다. 그러니 모든 걸 지켜보며 다 알고 있음에도 현장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그들은 이모청을 죽이는 게 최종 목표가 아니라 그들 조직이 유지되고 커지는 게 훨씬 더 중요했다.
영화 속 논란 거리들, 다 가엽다
영화는 여러 모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극후반부 왕자즈의 선택이, 국민당 저항군의 행태가, 왕자즈와 이모청의 징그러울 정도의 격정적 섹스 장면들이, 그리고 이 모든 걸 아우르는 명작의 풍모까지 논란을 불러오지 않은 것을 찾는 게 빠를 정도였다. 의견이 분분하나 가장 큰 반향을 일으킨 두 부분, 왕자즈의 선택과 섹스 장면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왕자즈의 선택은 몇 번 보고 나니 일면 이해가 간다. 극 중에서 그녀의 선택이 아니라 영화 흐름상 그녀의 선택 말이다. 그녀가 그런 선택을 함으로써 영화가 비로소 완성된 것이다. 이 영화만의 입체적인 다채로움이 빛나는 부분이다. 영화 안팎으로 이렇게 볼 수도 저렇게 볼 수도 있거니와 모두 나름의 처지에 따른 합당한 선택이다. 그는, 그녀는, 그들은, 우리들은 어떻게 했어야 했나? 돌이켜 보니 정답은 없고 나름의 해답만 있다.
사람은 가도 사랑은 남는다는 말이 있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과 비슷한 듯, 관계 맺음에 있어 사람이 주체가 아니라 관계 그 자체가 주체라는 것이다. <색, 계> 속 항일운동의 일환으로 지난하게 진행한 암살 작전 또한 같은 결로 진행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 아니었을까. 사람을 두고 뭔가를 하려면 관계를 맺어야 하는데 관계를 맺으면 뭔가를 하기가 힘들어진다는 아이러니다.
아마도 시간이 더 지나 이 작품을 다시 볼 텐데 그땐 또 어떤 부분을 어떤 시선으로 들여다볼지 궁금하다. 지금은 이해하는 것들이 그때 가선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르고, 지금은 보이지 않는 것들이 그때 가선 보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명작의 수명은 영원을 향해 나아가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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