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마사>
SNS는커녕 인터넷도 없던 1980년대 미국, 최초의 '인플루언서'로 불린 이가 있었다. 그녀는 일상생활 전반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쳤고 본인의 이름 자체를 브랜드로 내세워 미국 역사상 최초의 억만장자 여성으로 우뚝 섰다. 하지만 한순간에 헤어 나오기 힘든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영화 <마사>는 제목 그대로 '마사 스튜어트' 이야기를 전한다. 그녀의 말마따라 '소박하게 살던 소녀가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멋지게 실현해서 수익을 창출했다'는 게 그녀의 이야기일까, '타고난 수완으로 탄탄대로를 달리던 와중에 그녀를 싫어한 수많은 이의 집중포화를 받고 몰락했다'는 게 그녀의 이야기일까.
그런가 하면 '너무 완벽하고 너무 성공했고 너무 깐깐한 여성이 세상 남자들의 시기와 질투에 무너지고 말았다'는 게 그녀의 이야기일까. 이 작품의 기조는 마지막에 가닿아 있는 것 같다. 여자가 아니었다면, 덜 성공했더라면, 덜 깐깐했다면, 덜 싹수없어 보였다면 그런 식으로 추락하진 않았을 거라는 가정을 해 볼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소박한 소녀의 좋은 아이디어
마사 스튜어트는 어릴 적 뭐든 잘 키우는 완벽주의자 아버지한테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그는 직장 일에서 실패했고 6명의 자식을 제대로 부양하지 못했다. 하여 마사도 일찌감치 돈을 벌러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시급 15달러 모델일을 시작했다. 외모가 출중했기에 가능했다. 뉴저지주 너틀리에선 엄청난 일이었다. 돈을 적지 않게 벌 수 있었다.
1960년대 그녀는 뉴욕에서 장학금을 받으며 명망 있는 바너드 대학에 다녔다. 인기가 많았다. 예일대 로스쿨에 다니는 부잣집 청년 앤디와 사귀고 결혼한다. 1964년의 일이다. 신혼여행으로 5개월간 유럽을 여행했다.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요리의 향연을 맛봤다. 이후 빠르게 아기를 낳아 길렀다. 좋은 엄마는 아니었다고 한다.
1968년 증권 중개인으로 일하는 시아버지를 보곤 월가로 향한다. 당시 여자 증권 중개인은 찾아보기 힘들었는데 성공을 이어간다. 그러다가 흐름을 잘못 읽어 고객의 돈을 크게 잃은 후 월가에서 나와 코네티컷주 웨스트포트로 이사한다. 그곳의 폐 농가를 구입해 완전히 뜯어고친다. 그러곤 뭔가를 키우며 전원생활을 즐긴다.
앤디가 미국 최고의 미술 서적 출판사 사장이 되며 저자와 관계자들 파티가 줄을 이었다. 그녀는 사람들을 초대해 대접하는 게 좋았다. 그러다가 케이터링 사업을 시작했고 입소문이 퍼져 성공을 이어간다. <엔터테이닝>이라는 책을 내 베스트셀러에 오른다. 방송에도 출연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남편과의 사이가 좋진 않았다. 여자 문제가 얽혀 있었다. 그녀도 남자들을 만났지만 말이다.
너무 성공한 여성의 몰락
인플루언서, 사업가, 방송인, 베스트셀러 작가에 잡지까지 내놓는 족족, 하는 족족 크게 성공시킨 마사는 자신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운 '마사 스튜어트 리빙 옴니미디어'라는 회사를 만든다. 역시 큰 성공을 이어갔고 월가에 안착하며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억만장자 반열에 올랐다. 회사 가치는 자그마치 10억 달러를 훌쩍 상회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런 흐름이 한순간 이어졌지만 한 번에 꺾이고 만다. 주가 조작 혐의였는데, 그녀가 해외로 나가 있던 중 증권 중개인의 조언을 듣고 친구가 운영 중이던 생명 공학 회사 임클론 주식을 팔아 버린다. 주가가 폭락하고 있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알고 보니 신약이 승인되지 못한다는 소식을 미리 접한 내부자들이 주식을 팔아 버린 것이었다. 마사가 그 사건에 연루된 것.
이후 언론의 십자포화를 한 몸에 받으며 재판을 이어간 마사는 결국 감옥행이 확정된다. 그녀는 결백했고 검찰 또한 증거를 찾을 수 없었지만 애매모호한 혐의로 그녀를 기소했고 결국 감옥에 보내 버린 것이었다. 그녀로선 억울할 만한 일, 하지만 외부에서 보면 돈으로 수많은 이를 절망으로 던져 넣은 악질 CEO들 한 명에 불과했다. 그렇게 '마사 제국'은 파국에 직면하고 만다.
비록 마사는 감옥에 가며 거의 모든 걸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지만 2000~2010년대 방송계를 주름잡았다. 80대 중반의 지금도 X(구 트위터) 팔로워가 330만 명을 넘을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러니 인생의 뿌리가 송두리째로 뽑힐 장도로 추락하진 않았지만 인생이 많이 달라지고 또 미국인의 삶이 많이 달라진 건 사실일 테다. 그녀의 뒤를 따를 만한 '그녀'가 나올 수 있을까? 요원하다고 본다. 그 지점에선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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