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어프렌티스>
1970년대 미국 뉴욕, 30대의 도널드 트럼프는 아버지가 이끄는 부동산 개발 기업인 트럼프 그룹에서 부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하지만 실상은 세입자들에게 밀린 집세를 받으러 다니고 있다.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으니 그마저도 쉽지 않다. 돈이나 제대로 받으면 괜찮다고 할 정도다. 그런 한편 그는 사교 클럽을 드나들며 성공의 물꼬를 트려고 기회를 엿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로이 콘의 눈에 띈다. 그로 말할 것 같으면 정재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한 ‘악마의 변호사‘였다. 도널드는 마침 진행 중이던 재판의 변호사로 그를 고용해 기어코 이긴다. 이후 도널드는 로이를 전속 변호사로 데려오고 로이는 도널드의 인생 멘토가 된다. 도널드의 수습생 시절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도널드는 로이가 전해 주는 승리를 위한 3계명을 마음에 새기고 실천에 옮기려 한다. 공격, 공격, 공격하라. 인정하지 말고 모든 걸 부인하라. 절대로 패배를 인정하지 말라. 그런 한편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로이의 힘을 빌리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렇게 도널드 트럼프는 제2의 로이 콘이 되어 가는데…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말이다.
'수습생' 시절의 도널드 트럼프
뉴욕의 부동산 개발 신화를 새로 쓴 도널드 트럼프를 대중적으로 널리 알린 건 베스트셀러 <거래의 기술>과 TV 서바이벌 프로그램 <어프렌티스>다. 영화 <어프렌티스>는 바로 그 프로그램의 제목을 따 왔다. 자연스레 도널드 트럼프가 떠오를 것이다. 그런가 하면 '어프렌티스'는 '수습생'이라는 의미가 있는데 영화 속에서 로이 콘에게 성공으로 가는 길을 전수받는 수습생 도널드의 모습이 그려진다.
<어프렌티스>는 <경계선> <성스러운 거미>로 큰 충격을 안긴 알리 아바시 감독의 신작으로 역시 칸 영화제에 초청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그의 전작들에서 유추할 수 있듯 이 작품 또한 문제작인데 당연히 도널드 트럼프 측의 험악한 협박을 받았다. 이제 그가 미국의 제47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으니 이 작품의 앞날이 어떨지 궁금하기까지 하다.
영화는 도널드 트럼프의 성장(?)이 주요 스토리 라인이다. 지금의 그를 보면 상상하기 쉽지 않은데, 그도 젊었을 적에는 어딘가 어리숙한 한편 물불 가릴 줄은 알았다. 그런데 무자비하고 잔인한 로이 콘을 롤모델로 하여 삶의 행로를 뒤바꿔버리면서부터 달라지기 시작한다. 그 자신이 바라는 대로 또 로이가 바라는 대로 성장한 것이다.
그렇지만 성장의 모습이 항상 긍정적일 수는 없다, 올바를 수도 없다. 도널드는 어느덧 로이보다 더 무자비하고 잔인하게 변했고 로이조차 그를 제어할 수 없었다. 누구도 범접하기 힘든 부동산 거물이 되어 가는 동시에 누구든 눈앞에서 치워 버릴 수 있는 정재계 괴물이 되어 갔다. 어디까지가 도널드 그 자신이 원했던 모습이고 또 로이가 원했던 모습일까.
'도널드 트럼프'라는 창으로 들여다본 미국
영화는 도널드 트럼프의 청년 시절 개인사를 들여다보는 한편 '도널드 트럼프'라는 창으로 1970~80년대 미국을 들여다본다. 워터게이트를 위시한 사건들이 정치를 뒤흔들었다면 로널드 레이건의 신자유주의 정책은 경제를 뒤흔들었다. 도널드가 추진한 부동산 사업의 핵심이 세금 면제에 있었는데 바로 그 부분을 정부가 정책을 통해 제대로 긁어준 것이다.
극 중에도 나오는 바 대규모 프로젝트에 세금을 면제해 준다는 건 하층민 구제를 위해 쓰일 세금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즉 1%를 위해 99%가 희생해야 한다는 뜻. 21세기 들어서도 변하지 않는, 아니 공고하게 고착화된 미국 경제 구조의 시작이 다름 아닌 여기에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중심에 도널드 트럼프가 있었고 말이다.
한편 도널드는 로이에게서 전수받은 승리의 3계명을 더욱 악랄하고 잔인하고 무자비하게 발전시켜 자신만의 것으로 만든다. 이후 거래는 물론 정치를 하면서도 요긴하게 쓴다. 그렇게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가 완성된 것이다. 부동산 신화를 새로 쓴 이가 기술을 고스란히 가져와 정치 신화를 새로 썼다고 할까.
영화는 입체적이라고 말하긴 힘들다. 오히려 평면적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 혹은 문제적 인물 도널드 트럼프의 완성되기 전인 청년 시절을 그렸으니 그 자체로 입체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다만 엄청난 메서드 연기로 도널드 트럼프 그리고 로이 콘 등 실존 인물들을 스크린에 살려내는 데 성공했다. 그 부분에선 이견이 없을 줄 안다. 2020년대 후반부 미국, 나아가 전 세계를 뒤흔들 사람의 이야기니 만큼 한 번쯤 보면 좋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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