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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젊은 죽음 앞에서도 '가치 있는 삶'을 고민한 청년을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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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영화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 포스터.

 

1989년 7월 노르웨이에서 태어난 마츠 스테인, 그는 태어날 때부터 엄마가 보균자로 아들만 갖는 희귀병인 뒤셴형 근육위축증을 갖고 있었다. 근육이 서서히 줄어들면서 점차 몸이 약해지는 병이었다. 하여 남들보다 발달이 느렸고 특수 휠체어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으며 결국 죽고 말았다. 2014년 11월로 그의 나이 불과 25세였다.

두 부모와 여동생은 넋이 빠져 아무것도 할 수 없었는데 문뜩 생각이 났다. 마츠가 살아생전 마지막 10여 년 동안 하루종일 매달린 게임 말이다. 그 게임은 바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W)'는 게임 역사에 길이남을 대명작이지만 그들에겐 한낱 게임에 불과했다. 그저 마츠가 할 수 있고 또 하고 싶어 하는 게 게임이어서 특수 장비까지 달아 게임을 하도록 내버려 뒀을 뿐이었다.

하여 그곳에 마츠의 부고 소식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다다른 것이다. 그렇게 마츠가 운영했던 블로그 '인생 사색'에 글을 남겼고 가족의 연락처를 남겼더랬다. 형식상으로 남긴 글이라고 생각했으나 오래지 않아 메일이 쏟아졌다. 마츠를 두고 '이벨린'이라고 부르며 하나같이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비는 내용이었다. 아울러 마츠, 즉 이벨린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예상할 수 있는 말들이었다. 이벨린은 많은 이에게 기쁨을 줬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영화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이 살아생전 마츠 혹은 이벨린, 이벨린 그리고 마츠의 이야기를 건넨다. 마츠는 비록 뒤셴형 근육위축증으로 움직이기조차 힘들어 갔지만, 이벨린은 많은 이의 진정한 친구이자 조력자였으며 삶을 송두리째 긍정적으로 바꾼 조언자였다. 또한 분위기 메이커였고 경청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즉 많은 이에게 큰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가치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많은 이에게 도움을 준 이벨린

 

작품은 마츠가 8년 동안 길드 스타라이트에서 텍스트로만 나눈 대화, 42000쪽에 달하는 아카이브를 바탕으로 이벨린의 인생을 재구성해 보여준다. 애니메이터들이 게임 속 모델로 생생하게 구현했고 마츠의 목소리와 비슷한 배우가 낭독했다. 마츠의 삶을 상당 부분 구성하고 규정하는 게임 속 이야기를 제대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마츠는 WoW 내에서 '이벨린 레드무어'라는 이름의 우락부락한 외모의 남성 캐릭터로 활동하며 탐정으로 일했다. 어쩔 수 없이 매사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현실과는 달리 게임 내에선 활발하고 적극적이었다. 또한 매우 활동적이기도 했다. 직업 특성상 사람들을 많이 만났는데 많은 이가 그의 도움을 받았다.

게임 내에서 이벨린과 친하게 지냈거니와 연인 사이라고 해도 무방한 사이였지만 성적이 떨어지자 부모님이 컴퓨터를 압수하는 바람에 우울증까지 앓게 된 소녀의 유일한 버팀목이었던 마츠. 마츠는 그녀가 언제든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렸고, 그녀는 마츠와 함께 게임을 하며 지난한 학창 시절을 견뎌낼 수 있었다.

한편 자폐로 4년 동안 방 밖에 나오지 않은 아들과 유대감을 쌓으려는 엄마의 고민을 들어주고 둘 사이가 다시 이어지는 데 다리 역할을 했으며 아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마츠. 마츠 덕분에 엄마는 인생의 가장 큰 걱정이 사라지며 천국에 와 있는 기분까지 느꼈다고 했고 아들은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는 경험을 이어갈 수 있었다.

 

게임 덕분에 할 수 있었던 가치 있는 일

 

이쯤 되면 마츠 그리고 이벨린의 이야기는 '게임'의 순기능 논의까지 나아간다. 마츠의 부모가 가장 고통스러웠던 부분이 마츠가 사랑에 빠지지 못할 것이고 우정, 사회관계, 타인과 함께하는 활동을 경험하지 못할 것이며 사회에 공헌할 수도 없고 타인의 삶에 의미 있는 영향력도 못 끼칠 거라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달랐다.

마츠는 게임을 통해 게임 속 세상뿐만 아니라 현실 세상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사랑에 빠졌고 우정, 사회관계, 타인과 함께하는 활동도 경험했다. 이보다 더 가치 있는 삶을 찾기도 힘들 것이다. 현실에서도 이루기 힘든데 게임을 통해 이뤘으니 ‘게임’을 다르게 볼 필요가 있을 정도다. 게임이 마냥 현실에 부정적인 영향만 끼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아울러 작품에도 나오듯 마츠가 무너져 가는 몸으로 힘겹게나마 게임을 할 수 있었던 건 특수 장치들 덕분인데, 바로 그 특수 장치들을 어떻게 이용했는지 세미나도 열어 비슷한 병으로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공유하려 했다. 이 또한 이루 말할 수 없이 가치 있는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마츠가 살아생전 고민을 거듭한 '가치 있는 일' 말이다.

이벨린, 즉 마츠는 생애 마지막 순간으로 치달을수록 죽음에 대한 극심한 공포와 함께 자신이 가치 있는 사람이었는지를 고민했다. 결과는 주지했다시피 그는 많은 이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가치 충만한 사람이었다. 스타라이크는 매년 마츠의 기일에 한데 모여 추도식을 여는데 연례행사이자 전통으로 거듭났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게임에도 우정, 사회관계 그리고 사랑은 존재한다.

 

마츠의 실화가 감동적이어서일까, 작품이 감동적으로 그려내서일까, 또는 둘 다일까.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은 2024년 선댄스 영화제 월드시네마 다큐멘터리 부문에서 감독상과 관객상을 수상하며 일찍이 화제를 뿌렸다. 또한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상영되었기에 넷플릭스 공개 전에 이미 많은 이에게 감동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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