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아름다운 반항아>
이탈리아가 낳은 전설적인 로커이자 싱어송라이터 잔나 난니니는 1954년 이탈리아 중부의 소도시 시에나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내고 1970년대 홀로 대도시 밀라노로 갔다. 그곳에서 성공을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아무나 범접하기 힘든 커리어를 쌓았다. 물론 보통의 사람이 상상하기 힘든 부침을 겪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아름다운 반항아>는 그녀가 2016년에 지은 자서전을 바탕으로 한다. 그녀의 삶은 충분히 특별하고도 남았지만 그녀의 삶을 들여다본 이 영화는 특별한 점 없는 대신 탄탄하고 견고한 드라마가 중심을 잡아준다. 그 중심엔 잔니 난니니로 분한 레티시아 토니의 연기가 있다.
전기 영화는, 그것도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을 다루는 전기 영화는 아무래도 원작이 있기 마련이다. 하여 영화보다도 그 원작이 얼마큼 괜찮은지가 더 중요할 수 있다. 자서전이라면 가감 없이 솔직히 자신의 이야기를 내보여야 할 것이다. 어설프면 원작을 읽을 이유도 영화로 만들 이유도 없다. 그러니 전기 영화는 만들어진 이유가 확실할 테고 그 자체가 최소한의 관람 요소다.
이 영화도 곳곳에 포진한 난니니의 솔직한 이야기가 포인트일 수 있다. 그녀가 크게 성공한 건 누구나 알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그 이면의 진짜 이야기, 특별한 이야기를 원한다. 그녀의 성공을, 아니 인생을 방해한 건 무엇이고 그녀는 어떻게 헤쳐 나왔는가. 한 번쯤 들여다볼 만하다.
도전, 좌절, 성공, 추락, 부활의 대서사
이탈리아 시에나, 지방 전통 쿠키를 팔아 부자가 된 다닐로 난니니는 딸이 테니스를 하길 원했다. 테니스야말로 이른바 '고귀한' 스포츠가 아닌가. 그런데 딸 잔나 난니니는 노래를 하고 싶었다. 그렇게 어른이 될 때까지 잔나는 아버지와 대척점을 이뤘고 1970년대 어느 날 어른이 되자마자 집을 뛰쳐나와 밀라노로 향한다.
집을 구하고 셰어메이트의 도움으로 피아노를 칠 수 있게 된 후 오디션에 붙었지만 뛰쳐나온다. 외모가 괜찮은 잔나에게 화려한 옷을 입혀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으려 한 것이다. 하지만 잔나는 싱어송라이터로 '제대로' 된 노래를 만들어 부르고 싶었다. 우여곡절 끝에 일자리를 잡지만 역시 오래지 않아 잘린다.
방황하는 잔나, 그래도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고 오디션을 본다. 담당자의 심금을 울리는 잔나의 자작곡, 드디어 데뷔를 이룩한다. 그때 운명의 짝과 조우한다. 하지만 앨범 판매, 힘든 일정, 받아주지 않는 아버지 등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마약에 손을 댄다. 그녀의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리기 시작하는데…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부활을 넘어서는 궁극적인 성공의 막을 열어젖힐 수 있을까?
누구나의 인생, 그리고 곁에 남는 사람들
영화는 잔나 난니니의 성장, 희망, 좌절, 성공, 회한, 사랑, 추락, 부활 등을 자못 탄탄한 드라마로 그렸다. 입체적이라고 하긴 힘들지만 편집이 속도감 있는 편이라 전기 영화임에도 지루함을 느끼지 못했다. 더욱이 아무래도 옛날 이탈리아 노래라 잘 알진 못하더라도 필이 충만한 잔나의 노래들이 한몫했다. 재밌다고 말하긴 힘들어도 볼 만했다고 말할 수는 있겠다.
잔나의 롤러코스터 인생을 들여다보면 누구나의 인생이 보인다. 그녀는 수없이 많은 단계를 거쳤는데 어느 하나 쉽지 않았다. 특히 정점을 코앞에 두고 시작한 마약이 그녀를 최악의 구렁텅이로 빠뜨렸다. 마약이 나오는 여느 콘텐츠들보다 더 현실감 있게 느껴졌던 게, 멀쩡한 어른 사람을 한순간에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으니 말이다. 이보다 무서울 수 없었다.
살다 보면 그런 순간이 있다. 내가 원하는 그 무엇도 안 될 때 말이다.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내가 나를 제대로 바라볼 수 없으며 어딘가로 도망치고 싶어진다. 그러다가 또 그런 순간도 찾아온다. 뭘 해도 될 것 같을 때 말이다. 내 존재 자체로 충만해서 타인들에게 나를 보여주고 싶어진다. 그런 순간과 이런 순간이 반복되는 게 인생이 아닌가 싶다.
영화는 결국 남는 건 사람이고 내가 힘들 때 곁에 남아주는 사람이야말로 함께 갈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런 면에서 가수에게 팬은, 오랫동안 돌아오지 못했을 때도 지지하며 기다려준 팬의 존재는 특별할 것이다. 가족과 다름이 없지 않을까 싶다. 뭔가를 목적으로 한데 모인 게 아니라 서로의 존재 자체가 목적이니 말이다. 나에게도 그런 존재들이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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