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전, 란>
대대로 조선 최고 무신 집안의 아들 이종려, 하지만 그는 어려서부터 검에 분노가 없었다. 그러니 검술에 젬병인 건 당연했다. 한편 양인 집안의 아들이었지만 돈이 없어 엄마가 노비로 팔려가는 바람에 결국 노비의 몸이 된 천영은 종려의 몸종이 된다. 그런 천영을 종려는 몸종이 아니라 동무로 생각했고 둘은 둘만의 뜻깊은 관계를 형성한다.
종려로선 반드시 무과 시험에 합격해야 하는 바 노력을 거듭해도 실패를 거듭하자 천영이 나서서 대리 시험을 치른다. 대신 장원급제를 받으면 평민 신분으로 풀어준다는 거래였다. 하지만 종려의 아버지는 지키지 않았고 천영은 도망 가지만 잡혀온다. 와중에 왜군이 대대적으로 침입한다. 종려는 백성을 버리고 도망가는 임금 선조의 곁을 지키러 떠나고 노비들의 반란으로 대궐은 불탄다. 천영도 도망갈 수밖에 없었다.
종려는 추노꾼의 말을 듣고 천영이 자신의 집을 풍비박산 냈다고 오해하곤 눈이 돌아 임금의 피란 대열을 습격한 백성 무리를 도륙 낸다. 한편 천영은 뭐라도 쓸 줄 아는 이들을 모아 고니시의 선봉장 부대를 훌륭하게 상대한다. 시간이 흘러 전쟁은 끝났지만 여전히 종려는 천영을 쫓고 있고 천영의 의병대는 큰 공을 세웠지만 평민이 되기엔 요원한 상태다. 천영과 종려, 종려와 천영의 앞날은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외부의 전쟁, 내부의 반란
임진왜란은 우리나라 역사, 나아가 동아시아 역사까지 뒤바꾼 큰 사건이다. 7년 동안 이어진 이 전쟁은 조선의 전기에서 후기로 넘어가는 결정적 역할을 했고 중국에선 명나라가 쇠퇴하고 후금이 성장했으며 일본에선 에도 막부가 열리는 길을 열었다. 무엇보다 수많은 조선 백성이 다치고 죽고 끌려가 죽도록 고생했다. 한편 임금은 백성을 지키긴커녕 줄행랑을 쳤고 말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전, 란>이 임진왜란이라는 큰 사건을 배경으로 신분을 뛰어넘는 우정을 쌓은 노비 천영과 최고의 무신 집안 자제 이종려가 모종의 사건으로 철천지 원수지간이 된 이야기를 다룬다. 둘의 사적인 이야기가 극을 이끄는 와중에 임금 대 백성, 의병 대 왜군의 이야기가 대조를 이루며 펼쳐진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참기 힘든 임금 선조의 행태가 눈부실 정도로 추잡하다.
임진왜란 당시 임금과 백성의 이야기만 나오면 치가 떨린다. 족히 수십수백 번은 들었을 텐데 여전히 분노가 차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적군이 쳐들어왔을 때 막으려 하는 건 당연할 것인데, 아무리 '무(武)'가 없는 자라 할지라도 막으려 하는 건 당연할 것인데 도망가기 바빴다. 그것도 백성을 버리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급기야 백성을 도륙하기까지 한다.
그렇지 않아도 공화주의자 정여립이 대동계를 만들어 난을 일으켜 조선을 뒤흔들었으니 뭇 백성의 눈이 새롭게 떠졌고 전쟁이 일어나자 임금이 도망가니 완전히 개안하고 말았다. 노비들은 주인집을 습격했고 뭇 백성은 궁을 불 질렀으며 피란 행렬의 임금을 습격했다. '전'쟁은 왜군이 쳐들어오며 시작되었지만 반'란'은 이미 조선 내부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전란은 어떤 식으로든 시작될 것이었다.
백성도 반응할 수 있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16세기말 조선을 이끈 임금과 무신 집안의 횡포야말로 나라를, 백성을 화마의 구렁텅이로 던져 넣은 장본인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덕형 같은 신하가 옳은 말을 하며 울부짖었지만 결국 그도 임금 곁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그런가 하면 양반 출신 의병장 김자령도 대다수의 천민 출신 의병들과 달리 임금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이 영화는 임진왜란이라는 전쟁보다 임진왜란을 전후로 또는 임진왜란을 두고 일어난 일련의 일들이 중요하다고 봤다. 천영과 이종려의 이야기는 당대 수없이 일어났을 법한 일들의 요약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중요한 건 누가 정녕 전쟁을 치렀냐는 것이다. 천민 출신 의병들이 왜군에 대항하며 전쟁을 치른 한편 임금 입장에선 자신에게 덤벼드는 백성을 두고 반란이라고 치부했을 테다. 큰 공을 세운 이들도 도륙하는 마당에 자신에게 덤비는 백성을 도륙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물론 당시 임금에게 직접적으로 무력을 행사하며 덤비는 건 명명백백 반란의 행위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영화에서 백성들이 임금의 피란 행렬에 보인 행동은 반란이라기보다 불만 표시 정도였다. '못 살겠다, 임금을 바꾸자'가 아니라 '전쟁이 났는데 우리를 버리고 도망가는 게 맞느냐' 하는 항의 표시였다. 그런데 도륙이 나고 말았다. 그리고 정작 임금이 해야 할 일을 천민 출신 의병들이 했다. 무주공산 한양에서 왜군을 상대했다. 그들이 큰 상을 받았는지 혹은 크게 혼이 났는지 굳이 말할 필요가 없겠다.
<전, 란>이 액션, OST, 만듦새, 캐릭터(강동원) 등에서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그게 전부여선 곤란하다. 눈여겨봐야 할 건 임진왜란 이후에도 바뀌지 않는, 아니 오히려 더 혼탁해진 선조의 생각과 행동이다. 사람 한 명이 나라를 혼란에 빠트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백성의 행태도 눈여겨봐야 한다. 의병으로 활동하는 한편 궁에 불을 지르기도 하고 임금에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모두 '반응'의 일환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백성도 반응할 수 있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는 것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쇄살인범과 뭇 남성들의 성인지감수성이 다르지 않은 행태 (2) | 2024.11.01 |
---|---|
젊은 죽음 앞에서도 '가치 있는 삶'을 고민한 청년을 추모하며 (2) | 2024.10.30 |
전설적인 싱어송라이터의 도전, 좌절, 성공, 추락, 부활까지 (4) | 2024.10.09 |
미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사건 또는 음모의 실체는 무엇인가 (7) | 2024.10.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