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영화 리뷰] <대결! 애니메이션>
사이토 히토미는 공무원 생활을 뒤로 하고 애니메이션 업계에 뛰어들어 7년 만에 감독으로 데뷔한다. 히트 메이커로 유명한 유키시로가 메인 프로듀서로 함께 일하게 되었는데, 흥행을 위해선 물불 가리지 않는다. 덕분에 히토미의 <사운드백 카나데의 돌>은 2분기 토요일 5시 황금시간대에 배정받는다. 하지만 동시간대 상대가 하필 오우지 치하루다.
오우지는 누구나 다 아는 전설적인 천재 감독이다. 그런데 <운명전선 리델라이트>로 8년 만에 복귀를 코앞에 두고 잠적해 버린다. 메인 프로듀서 아리시나는 돌아버릴 지경이다. 오우지의 작품을 꼭 프로듀싱해 보고 싶었는데 막상 해 보니 이게 맞나 싶다. 그래도 다행히 늦진 않았다. 하와이에서 머리를 식혔대나 뭐래나.
그야말로 일본 전역이 관심 갖고 지켜볼 초유의 대결이 시작된다. 이기는 쪽은 큰 보상이 있을 것이고 지는 쪽은 감수해야 할 게 많을 것이다. 각자 시청자들에게 가닿고자 최선에 최선에 최선을 다한다. 누구도 예측할 수 없이 엎치락뒤치락하는 시청률 추이, 과연 누가 최종 승리자로 우뚝 설까? 숨죽이고 지켜볼 일이다.
압도적인 재패니메이션 산업 시장
영화 <대결! 애니메이션>은 나오키상 수상자 츠지무라 미즈키의 <패권 애니!>를 원작으로 한다.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고 지금도 인기가 여전한 '재패니메이션'의 제작 현장을 나름 속속들이 보여주고 있기에 그 자체로 흥미가 돋는다. 콘텐츠 제작 현장을 주요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가 많지만 로맨스나 스릴러 장르가 아닌 경우가 흔치 않은데 이 작품은 정통파라고 할 수 있겠다.
재패니메이션의 압도적이고 초월적인 파급력은 1990년대 <신세기 에반게리온>, 2000년대 <스지미야 하루히의 우울>, 2010년대 <귀멸의 칼날>로 명맥을 이어왔다. 전 세계적인 사회현상으로 급부상한 인기를 '에바현상' '하루히즘' '키메하라'라는 신조어로 표현했다. 아울러 재패니메이션 시장은 연 20조 원 이상이고 분기마다 50편 이상이 쏟아진다. 일본 엔터테인먼트 시장의 대표라 할 수 있다. 이런 최소한의 배경을 인지하고 작품을 보면 훨씬 재밌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일본의 직업 메타 콘텐츠는 참으로 활발하게 만들어져 왔다. 장인 정신을 고취시키고 교훈다운 교훈을 남기는 이야기부터 지극히 현실적이고 또 처절한 이야기까지, 흔히 접하기 힘든 다양한 직군을 만화와 애니메이션부터 영화와 드라마까지 전방위적으로 다뤄 왔다. 그러다 보니 장르도 다양하고 추구하는 방향도 다양하다. 이 작품도 그 일환이다.
재패니메이션이 만들어지는 과정
<대결! 애니메이션>의 구도는 확실하고 깔끔하다. 히트 메이커 프로듀서와 초보 감독, 전설적인 베테랑 프로듀서와 천재 감독의 구도. 하여 감상하는 데 전혀 무리가 없다. 과연 시청률 대결에서 누가 이길지, 어떻게 이길지 지켜보면 될 일이다. 물론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또 다른 게 보인다. 재패니메이션이 만들어지는 처절하고도 고귀하기까지 한 과정.
세계 애니메이션 시장을 쥐고 흔드는 재패니메이션 업계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굉장히 아날로그적이라 의외다 싶다. 상당 부분 기계의 손을 탄다고 해도 중요한 지점에선 사람의 손을 탄다. 며칠 밤을 새가며 그림을 그리고 스토리를 구상한다. 완성해 놓고 검토하곤 뒤엎어 버리길 반복한다. 그러면 후속작업을 다시 해야 하니 관련 작업자들을 찾아가 읍소한다.
콘텐츠를 창작해 대중에게 가닿는 작업을 하는 이라면 공감할 텐데, 그 누구도 '정답'을 알 수 없다. 어떻게 만들어 어떻게 홍보해야 잘 팔린다는 보장이 없다. 제아무리 히트 메이커 프로듀서도, 전설적인 베테랑 프로듀서도, 누구나 알 만한 천재 감독도 알 수 없다. 최종 책임자인 감독의 마음에 완벽하게 들어올 때까지 계속할 뿐이다. 그조차 안 되면 대중의 마음에 드는 건 어불성설이다.
작품이 만들어지기까지, 이면의 상황
히토미와 오우지의 개인적 이야기가 와닿는다. 재패니메이션 시장에서 여성 초보 감독이 살아남기가 얼마나 힘든지 몸소 체험하고 있는 히토미. 천재 감독이자 히트 감독으로 최고의 명성을 누리고 있지만 자신 안의 너무 강력한 비판자, 나약함과 싸우고 있는 오우지. 각각이 처한 상황에 공감이 간다.
그런가 하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최선을 다해 일에 매달리고 있는 수많은 스텝들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모든 창작물은 효율적인 홍보를 위해 한 명 내지 몇 명의 대표를 내세우는데, 관계자들은 셀 수 없이 많다. 심지어 크레딧에 올라가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그들은 그들이 있는 자리에서 그저 열심히 일했을 것이다.
오랜만에 만나는 정통 직업 메타 영화였다. 사람 사는 게 다 똑같다고 하지만, 어떤 환경에서 무슨 생각을 갖고 어떻게 일하는지 속속들이 알긴 어려울 것이다. 이런 류의 영화라면 언제든 환영이다. 더 다양한 직업의 디테일을 알고 싶다.
'신작 열전 > 신작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제는 균형이야, 정도가 지나치면 균형이 깨져" (0) | 2024.04.24 |
---|---|
택시 운전사가 폭탄 조끼를 입은 채 시내를 활보해야 하는 이유 (0) | 2024.04.17 |
제대로 만들었지만 재미는 보장 못하는 하드보일드 탐정 영화 (1) | 2024.03.22 |
세계를 계속 흐르게 하는 순환과 지속의 희망에 대하여 (2) | 2024.03.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