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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제대로 만들었지만 재미는 보장 못하는 하드보일드 탐정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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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탐정 말로>

 

영화 <탐정 말로> 포스터. ⓒ이놀미디어

 

20세기 초중반 미국을 대표하는 추리 소설가 중 한 명으로 활약한 레이먼드 챈들러, 그는 '하드보일드 스타일'을 정립하며 그 영향력을 문학 전체로 퍼트렸다. 뿐만 아니라 역사에 길이남을 탐정 캐릭터를 만들었는데 '필립 말로'가 바로 그다. 트렌치코트를 입고 입에 담배를 문 채 머리엔 중절모가 얹혀 있다. 술과 총과 여자도 빠질 수 없다.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애거서 크리스티의 '에르퀼 푸아로'와 함께 가장 유명한 탐정 캐릭터라 할 만하다. 레이먼드 챈들러는 필립 말로를 모든 장편에 출연시켰는데 마지막인 <원점회귀> 직전 작품이 바로 <기나긴 이별>이다. 그리고 <기나긴 이별>의 공식 후속작은 60여 년이 지나 맨부커상 수상자 존 밴빌이 벤자민 블랙이라는 필명으로 쓴 <블랙 아이드 블론드>다.

<크라잉 게임>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등으로 아카데미를 포함해 전 세계 유수의 영화제들을 석권했던 닐 조던 감독과 말이 필요 없는 대배우 리암 니슨이 의기투합한 영화 <탐정 말로>는 <블랙 아이드 블론드>를 원작으로 한다. 탐정물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는 와중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특한 캐릭터의 향연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꼬이고 맞물려 이어지는 사건의 실타래

 

1939년 미국 LA,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직후다. 필립 말로의 탐정 사무실로 금발의 미모를 자랑하는 여성 클레어 캐빈디시가 찾아온다. 사라진 자신의 정부 니코 피터슨을 찾아달라는 의뢰다. 말로는 곧 니코가 주로 활동했던 코바타 클럽으로 향하는데, 니코가 클럽 앞에서 차에 치여 죽고 말았다는 소식을 듣는다. 머리가 완전히 으깨져 누군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클레어를 찾아가니 그녀는 니코가 아직 살아 있다고 확신한다. 뭔가 일을 꾸미고자 일부러 죽은 척했다는 것이다. 이후 말로는 클레어의 어머니 도로시, 퍼시픽 스튜디오 소유주, 코바타 클럽 소유주, 니코의 여동생을 만난다. 와중에 마약왕 루 헨드릭스도 니코를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니코와 함께 있는 게 확실한 세레나를 찾는 게 목적이었다. 

클레어와 그녀의 엄마 도로시는 사이가 매우 나쁘고, 니코의 행방을 쫓는 이들의 면면을 보니 마약이 관련된 것 같다. 말로는 단순히 클레어가 자신의 정부를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았을 뿐인데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과연 말로는 수많은 난관을 뚫고 클레어의 최초 의뢰를 해결할 수 있을까? 사라진 니코 피터슨을 찾을 수 있을까? 그를 찾으면 꼬이고 맞물린 사건이 해결될 것 같다.

 

무미건조, 무감정, 무관심의 삼박자

 

추리 영화 하면 떠오르는 상이 있다. 한정된 공간에서 서로 얽히고설킨 이들이 모인 가운데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탐정이 기막힌 추리로 범인이 누구인지 왜 살인을 저질렀는지 알아낸다. 거기엔 추악하면서도 슬픈 모순적인 감정이 동시에 펼쳐져 있다. 탐정이 주인공인 것 같지만 정작 주인공은 인간군상 자체다.

그런데 이 영화 <탐정 말로>는 사건 의뢰를 받는 시작 부분을 제외하곤 거의 예상을 빗나간다. 말로는 홈즈나 푸아로 식의 치밀하고 디테일한 추리가 아니라 되는 대로, 우연히 관련자들을 만나고 다닐 뿐이다. 왜 그랬을까 반추하고 누가 범인이지 정리해서 우리한테 알려주지 않는다. 애초에 사람 찾는 게 목적이었는데 이런저런 사건에 휘말려서일까.

영화의 모체가 되는 작품의 스타일 때문일 것이다. 1930년대 시작된 '하드보일드' 기법이 1950년대 레이먼드 챈들러에 이르러 정점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매우 폭력적인 사건을 다룸에도 불구하고 무미건조하고 무감정하며 무관심하다. 더군다나 이 영화의 배경은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때다.

그때 미국은 어땠는가? 전혀 관심이 없었다.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었다. 미국 전반에 퍼진 감정의 방향성, 농도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를테면 영화 내에서도 서로 반목하면 최대한 조용히 일을 처리한다. 그러며 설령 모녀지간이라도 특별한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 누군가 죽었다는 말에도 전혀 놀라지 않는다. 이곳 LA의 클럽에선 흔해빠진 이야기라고 하면서.

 

제대로 만든 하드보일드 스타일의 탐정 영화

 

영화는 전형적인 추리 영화로서의 재미를 많이 주진 못한다. 크게 바랄수록 크게 낭패를 볼 수 있다. 꼬일 대로 꼬이다가 척하면 척하고 풀리는 추리 스타일이 아니다. 하여 이 영화는 '추리 영화'라기보다 '범죄 영화'에 가깝다. 또는 차라리 '탐정 영화'라고 하는 게 맞겠다. 주인공 필립 말로의 캐릭터가 영화 전체의 분위기와 완벽하게 맞아 들어가니 말이다.

모르긴 몰라도 한 번 보면 끝까지 왠지 모를 기대를 갖고 있을 것이다. 뭔가 큰 거 한 방이 나오겠지, 생각지도 못한 반전이 뒤통수를 치겠지 하는 기대 말이다. 기대를 충족시켜 줬는지는 영화를 직접 보면 알게 될 것이다. 보는 사람마다 느끼는 바가 다를 테니. 하나만 언급하자면 주지했듯 이 영화는 하드보일드 스타일이다. 하드보일드의 모체는 사실주의다. 판타지가 끼어들 여지가 없지 않을까?

리암 니슨이라는 너무나도 잘 알려진 배우 그것도 덩치가 너무 커 존재감이 큰 배우가 무미건조, 무감정, 무관심의 대명사 필립 말로를 연기하는 건 양날의 검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가 택한 건 '무연기'다. 연기를 하지 않은 듯 힘을 뺐다. 그러다 보니 희미하다. 기억에 잘 남지 않는다. 주인공 캐릭터라면 자고로 선명해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이 영화에선 오히려 희미한 게 빛을 발한다.

연출과 스토리의 측면도 비슷하다. 전체적으로 매끄럽지 않다. 투박하고 거칠고 중간중간 튀는 구석이 있다. 자고로 영화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중하게끔 매끄러워야 하지 않은가? 그런데 이 영화에선 오히려 투박하고 거친 게 빛을 발한다. 영화의 모든 면에서 '하드보일드' 스타일을 철저히 고수한 것 같다. 덕분에 영화는 제대로 만들어졌지만 재미는 보장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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