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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이 영화가 최대한 무심하게 그리는 가해자가 된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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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스텔라>

 

영화 <스텔라> 포스터. ⓒ뮤제엔터테인먼트

 

1940년 독일, 유대인 재즈 가수 스텔라 골드슐락은 미국 브로드웨이에 진출하고자 팀원들과 함께 불철주야 노력 중이다. 스텔라는 재능을 인정받아 브로드웨이 관계자로부터 콜을 받는다. 하지만 유럽은 이미 전쟁터, 나치 독일은 유대인 핍박을 가속화하기 시작했다. 스텔라 가족은 미국으로 망명을 가려 하지만 쉽지 않다. 3년이 지나 그들은 공장 노동자로 살고 있다.

하지만 스텔라는 밤만 되면 유대인 표식을 제거하곤 자신이 독일인 재즈 가수인 것처럼 행동하며 거리를 활보한다. 심지어 독일 군인과 사귀기도 한다. 그녀는 태생이 금발에 파란 눈이었기에 그런 행동이 가능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공장의 유대인에게도 위협이 뻗치고 대부분 수용소로 끌려가는 와중에 스텔라 가족만 겨우 도망친다. 그렇게 숨어서 지낸다.

와중에 우연히 롤프를 만난다. 그는 여권을 위조해 주는 일을 했는데 스텔라는 그와 사귀며 그를 따라 같은 일을 한다. 그런데 머지않아 나치 비밀경찰에게 붙잡힌다. 같이 공연 연습을 하던 동료의 밀고였다. 차라리 죽고 싶을 만큼 맞고 탈출하지만 다시 붙잡힌 후에는 유대인 색출의 임무를 띈 비밀 요원을 자처한다. 과연 그녀의 앞날은?

 

타인을 죽음으로 내모는 처절한 삶에의 의지

 

내년이면 종전 80주년이 되는 '제2차 세계대전'은 그 방대함과 다양함에 힘입어 가히 콘텐츠의 보고(寶庫)라고 할 만하다. 화수분처럼 끊임없이 나온다. 직간접적으로 전 세계 모든 이가 관계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 말이다. 매년 쉬지 않고 몇 편씩 관련 영화가 나오는 것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다양해지고 있는 것도 같다.

<스텔라>는 독일에서 만든 홀로코스트 영화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어느 유대인이 주인공이다. 그런데 그 유대인의 행적이 심상치 않다. 주지했듯 브로드웨이 진출을 원했던 재즈 가수에서 공장 노동자가 되었다가 비밀경찰에 쫓겨 숨어 지내는 신세였다가 위조 여권 브로커였다가 비밀경찰에 잡혀 죽다 살아났다가 결국 자진해서 유대인 색출 비밀 요원으로 거듭난다.

일련의 행적을 보면 죽음에 처절하게 맞서는 '삶'에의 의지가 엿보인다. 숱한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어떡하든 살아왔다. 영제 <Stella. A lLife.>에서 엿볼 수 있듯 '스텔라'에겐 다른 무엇보다 자신의 '목숨'이 중요하다. 한 인간으로서 죽음을 택하느냐 삶을 택하느냐는 누구도 관여할 수 없는 고유한 영역일 것이다. 상황이 한없이 죽음으로만 향하고 있다면 더더욱 그럴 테다.

 

그런데 삶을 택함에 있어 타인의 죽음이 반드시 담보되어야 한다면 얘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그렇다, 스텔라는 자신의 삶을 보존하기 위해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걸 주저하지 않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다. 이기적인 모습 그 자체였다. 나아가 자신이 살기 위해 타인을 죽음으로 내모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환경적인 요인이 더 컸을까 자의적인 요인이 더 컸을까. 그런데 모든 유대인이 그녀처럼 행동하진 않았다.

 

양가적인 생각을 들게 하는 최대한의 무심함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후 스텔라의 재판 기록을 바탕으로 그녀의 삶을 일별 했다. 그녀가 죽음으로 내몬 유대인이 족히 수백 명 이상이라고 하는데 충격적인 숫자다. 그런가 하면 영화는 스텔라를 비난하지도 옹호하지도 않는다. 때론 영화처럼 때론 다큐멘터리처럼 때론 옛날 영상을 보여주듯 최대한의 무심함을 유지했다.

역사적으로 문제적 인물, 인류 최악의 인종 청소 악행에 휘말린 인물, 피해자였다가 가해자가 된 인물을 영화로 다루려 할 때는 그를 두고 논하는 게 아니라 보여주는 데 집중하는 게 정답일 수 있다. 가해자에게 사연을 부여하는 게 가장 쉽고 또 굉장히 쉬운 방법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여 영화 속 스텔라를 보고 있노라면 누구나 양가적인 생각을 들 것이다.

스텔라로 완벽하게 분한 폴라 비어의 연기로 말미암아 영화를 보는 이라면 누구도 죽음의 공포를 도무지 이겨낼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니 그 상황에 처한다면 나라도 그녀처럼 하지 않을 거란 보장이 없다. 아마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누구나 그녀처럼 행동했냐 하면 절대로 그렇지 않다. 끔찍한 상황이라는 특별함이 보편으로 작용하면 개별적이게 되기에 더 이상 스텔라만의 이야기로 이해받을 수 없는 것이다. 그 상황에 처한 사람들마다 모두 제각각의 이야기를 펼쳐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미시적으로 볼 때 '왜 하필 나여야 하나' 하는 생각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는 건 인정한다. 애초에 그 상황에 처하지 않았다면 피해자도 가해자도 되는 일이 없었을 수도 있을 테니까. 반면 거시적으로 볼 때 '누구나 다 각자의 짐을 지고 산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각자에게 부여된 짐을 어떻게 짊어지는가는 각자의 몫이다. 그러니 스텔라의 삶은 그 자체로 존중하되 그녀의 삶을 판단하는 데는 정답이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영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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