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영화 리뷰] <레이징 그레이스>
집도 비자도 없이 영국엑서 불법 체류자로 딸 그레이스와 함께 가정부 생활을 하며 떠도는 간호사 출신의 조이는 우연히 엄청난 기회와 맞닥뜨린다. 명문가의 대저택에 입주해 집안일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것이다. 보수는 자그마치 일주일에 1천 달러. 비자를 받고자 급히 큰돈이 필요한 그녀로선 주저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레이스의 존재는 숨길 수밖에 없었다.
그 넓은 곳에는 죽음이 머지않아 의식을 잃은 채 누워 있는 나이젤과 그의 조카 캐서린이 있었다. 나이젤은 캐서린이 직접 챙겼고 조이는 나머지 집안일을 챙기면 될 일이었다. 조이는 머지않아 비자를 받아 불법 체류자에서 벗어나고 그레이스도 떳떳하게 키울 날을 고대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그레이스는 유부남 영국인 의사를 아빠로 뒀는데 모녀가 그의 폭력으로부터 도망쳐 이 지경에 이르렀다.
한편 그레이스는 어김없이 천방지축으로 방 밖에 나와 집안을 둘러보다가 우연히 캐서린의 천인공노할 짓을 목격한다. 이후 멀리 오래 출장을 가게 된 캐서린, 그동안 조이가 나이젤을 보살핀다. 조이는 캐서린이 준 약을 치우고 필리핀 민간요법까지 동원해 나이젤을 살려낸다. 깨어난 나이젤에게서 엄청난 얘기를 듣는데… 하지만 그 뒤엔 차마 말하기도 힘든 추악한 이야기가 도사리고 있었다.
분노를 우아하게 표출한 결과물
영화 <레이징 그레이스>는 제목부터 분노로 가득 차 있다. 다름 아닌 주인공의 딸 '그레이스' 앞에 격렬하게 분노한다는 뜻을 가진 'raging'이 놓여 있으니 말이다. 나아가 여기서 'grace'는 우아함, 품위 또는 은혜의 뜻을 갖고 있으니 감독의 의도를 따라가 보면 후자가 맞지 않나 싶다.
필리핀계 영국인이라는 패리스 자실라 감독은 서면 인터뷰를 통해 밝혔듯 코로나 시기에 영국에서 필리핀 출신 의료진들이 영국인을 돌봐야 했던 모습을 보고 내면에 이방인으로의 분노가 차올랐다고 한다. 이 영화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우아하게 표출한 결과물이라는 것. 하여 그의 개인적 이야기가 영화 곳곳에 묻어나 있다.
영화는 맨션 스릴러를 표방하지만 전형적인 고딕 계열의 호러, 즉 중세 건축물의 폐허스러운 분위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공포가 중심에 있진 않다. 다만 인간의 섬뜩하고도 기괴한 이상 심리를 다룬다는 점에서는 고딕 호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여 이 영화에서 중요한 건 대저택이 아닌 대저택에 살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다.
명확한 메시지를 투박하게 전달하는 영화
영화는 굉장히 직설적이다. 감독이 밝혔듯 분노를 대놓고, 상당히 거칠고 투박하게 드러낸다. 분노의 주체는 영국으로 건너와 영국인 유부남에게 당하고 집도 비자도 없이 가정부로 떠도는데 또 크게 당할지도 모를 필리핀 출신의 간호사 조이다. 분노의 대상은 정황상 당연히 맨션의 주인일 것이고.
집 곳곳에 숨겨진 추악한 비밀들이 전체 스토리에서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에 맨션 스릴러로서 나름 기능하고 있는 편이다. 다만 그 수준이 마냥 흡족하지 않은 이유는 매끄럽다고 하기 힘든 연출과 각본에 있다. 중간중간 이해하기 힘든 장면이 나오고 시퀀스와 시퀀스 사이의 개연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무래도 영화가 집중하는 부분이 명확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바로 메시지 전달. 그러니 영화가 전하려는 메시지에 동의하고 메시지를 전하는 방식의 투박함마저 받아들인다면 영화를 상당히 괜찮게 감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였거나 어느 하나에 동의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그리 와닿지는 않는 영화였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호불호가 갈리지 않을까 싶다.
인종차별주의의 시작점에 가닿다
영화는 인종차별주의를 비판하고 있는 것 같으나 극후반으로 넘어가 추악한 진실이 밝혀지며 차원이 다른 이야기로 건너간다. 유색인종에 선을 긋고 차별하는 건 지탄받아 마땅한 행위다. 마음속에서도 없애야 하겠으나 최소한 겉으로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교육받았고 더불어 살아가려 하고 있다.
그런데 유색인종을 자신의 아래 두어 소유하려는 건 지탄받아 마땅한 정도가 아니다. 노예로 만들어 수족처럼 부리겠다는 게 아닌가. 아직까지 존재하고 있는 그들의 논리는 이렇다. '대저택에서 같이 살면서 누릴 것 다 누리게 해 준다는데, 주인으로 모시는 게 어려운가?' 하고 말이다. 인종차별주의의 시작점에 있는 생각이다.
여기서 유색인종을 제거하면 '돈'이 남는다. 그렇다는 건 돈이 절실한 이들을 돈으로 매수해 소유하려 드는 건 현대판 노예나 다름없는 것이다. 대상과 방법이 다를 뿐 역사는 반복된다. 이 영화는 거기까지 가닿는다. 메시지 하나만큼은 제대로 전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잘 만든 영화라 보긴 힘들지만 명확한 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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