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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서로의 어둠이 맞닿았을 때 오히려 응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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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바튼 아카데미>

 

영화 <바튼 아카데미> 포스터. ⓒUPI 코리아

 

알렉산더 페인의 영화를 좋아한다. 그의 연출 스타일은 199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한결같은 편인데, 주로 미국의 중산층 백인 남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미국 사회를 풍자적으로 들여다본다. 얼핏 지루할 만한 스토리 라인인데 훌륭한 각본과 연기력으로 극을 흥미진진하게 끌고 간다. 하여 지루하다고 생각할 관객이 많진 않을 것이다.

페인은 1990년대 중반 장편 영화 연출 데뷔를 이룩한 후 30년 가까이 채 10편이 안 되는 작품을 연출했다. 들여다보니 거의 다 본 것 같은데 그중에서도 10여 년새 연달아 내놓은 <어바웃 슈미트> <사이드웨이> <디센던트>로 꽤 큰 충격을 받은 기억이 난다. '영화로 이런 통찰력을 전할 수 있구나' 하고 말이다.

<바튼 아카데미>는 그의 '복귀작'이라 할 만하다. 2020년대 들어 내놓은 최초의 작품이기도 하다. 범작으로 평가받는 <다운사이징> 이후 6년 만에 돌아왔으니 말이다. 한편 이 영화 또한 어김없이 북미에서 연말 즈음에 개봉했는데 다름 아닌 아카데미 시상식에 맞추기 위해서였다. 매년 2~3월에 실시하는 아카데미 시상식, 전년도에 나온 영화들이 대상이 되다 보니 아무래도 근래 나온 영화들이 조금이라도 더 유리하다. 역시 <바튼 아카데미>는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5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고 이변 없이 여우조연상(데이바인 조이 랜돌프)을 수상했다.

 

크리스마스 휴가 때 학교에 남게 된 사연

 

1970년 12월 크리스마스 한 주 전, 오랜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바튼 아카데미. 2주간의 휴가를 맞아 다들 집으로 향한다. 하지만 각자의 개인 사정으로 학교에 남게 된 학생들이 있다. 하여 선생님 한 명과 주방 직원 한 명이 함께 남게 되었다. 그러던 와중에 며칠 지나지 않아 집안이 부유한 학생 한 명의 부모님이 헬기를 보내줘 모두 탈출할 수 있게 되었다. 한 명만 빼고 말이다.

선생님 폴 허넘은 가족, 친구 하나 없이 집무실에 콕 박혀 논문을 쓰다가 강의실에선 수업을 재미없게 하고 또 성적도 엄청 짜게 주기에 모두가 멀리하고 싫어하기까지 한다. 크리스마스 휴가 때 학교에 남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한편 주방장 메리 램은 바튼 아카데미에 다녔던 아들이 돈이 없어 대학에 진학하지 못해 입대했다가 베트남전쟁에서 전사하고 말았다. 집으로 갈 이유가 없었다.

그런가 하면 다른 친구들이 모두 헬기를 타고 가 버린 와중에 남게 된 앵거스 털리에게도 말 못 할 사연이 있다. 정신병원에 갇힌 아빠를 두고 엄마가 재혼을 해 버렸는데 새아빠가 그를 사관학교에 보내려 한다. 그런 엄마와 새아빠가 크리스마스 휴가 때 신혼여행을 간다고 앵거스가 집에 가지 못하게 된 것이다. 선생님 폴, 주방장 메리, 앵거스 셋은 그렇게 크리스마스 2주 휴가를 학교에서 보내게 되었다. 

 

열등감, 상실감, 외로움으로 단절된 삶의 단면

 

미국에서 크리스마스 휴가는 일 년 중 가장 큰 행사일 테다. 그러니 아이들이 학교에 남아 있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물론 예외가 있으니 특수한 상황으로 학교에 남을 수 있고 이 영화는 크리스마스 휴가에 어쩔 수 없이 학교에 남게 된 어느 학생의 이야기를 담았다. 학생 혼자 있을 순 없으니 선생님이 남아야 하고 그런 둘을 책임져야 할 요리사도 남아야 했다.

충분히 그럴 수 있고 또 대개 그러니 만큼 딱히 특별할 게 없는 이야기다. 그런데 셋의 사연, 즉 왜 하필 그들이 남게 되었을까를 생각하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열등감(폴의 경우), 상실감(메리의 경우), 외로움(앵거스의 경우) 등으로 외부와 단절된 삶의 단면을 크리스마스 휴가 때 외부와 단절된 채 학교에서 지내야 하는 상황으로 치환했다. 연출의 힘이고 연기의 힘이겠다.

그들은 같이 밥을 먹으며, 같이 학교 안을 거닐며, 같이 학교 밖을 쏘다니며 서로를 알아간다. 그러며 누구에게도 쉬이 꺼낼 수 없었던, 가장 깊은 곳의 어둠을 자연스레 꺼내 서로에게 보여준다. 그런 시간이어서인지, 그런 공간이어서인지, 그런 사람들이어서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다른 시간, 다른 공간, 다른 사람들이었다면 그러지 못했을 것 같다.

 

너의 어둠이 나의 어둠에 와닿았다

 

미국의 1970년은 어땠을까. 냉전의 한복판이었고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었으며 불황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전히 쪼개져 있고 또 이루 말할 수 없이 불안했던 시대다. 한편 그 불안을 영화, 음악, 게임 등으로 풀어내려 하니 관련 산업이 엄청나게 흥행했다. 이 영화를 미시적, 개인적 관점뿐만 아니라 거시적, 시대적 관점에서 봐도 이상할 것 없는 지점이다.

단절을 해결하기 위해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단절된 상황이 문제라는 사실부터 인지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을 들여다보고 단절된 대상이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 그렇게 나를 알고 너를 알았다면 이미 단절되었다고 보기 힘들다. 자연스레 해결된 것이다. 별게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나를 알고 너를 아는 것 자체가 결코 쉽지 않다.

폴과 앵거스와 메리는 서로를 피상적으로 알고 있을 땐 호감조차 갖지 않았지만 서로의 어둠을 알고 나니 오히려 응원까지 한다. 그 어둠의 본연이 내 어둠의 본연에 와닿았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영어 제목 'The Holdovers'처럼 바튼 아카데미에 잔류하게 된 이들은 앞으로도 혼자일까? 혼자라고 느낄까? 혹은 누군가를 응원하고 누군가의 응원을 받으며 혼자라는 생각을 조금씩 퇴색시키며 살아갈까? 잔류한 김에 잘 융합했으면 하는 바람을 진심으로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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