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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75세 고령자의 죽음을 나라가 지원해 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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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플랜 75>

 

영화 <플랜 75> 포스터. ⓒ찬란

 

일본 전역에서 고령자를 향한 증오범죄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와중에 어떤 청년 살인마는 고령자들을 죽이고 자살하기 전에 청년의 입장에서 나라의 미래를 걱정한다는 편지를 남겼다. 얼마 후 정부는 '플랜 75'를 실시한다. 75세 이상의 국민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시 10만 엔을 지급하고 상담 및 장례 절차 서비스까지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혼자 사는 78세 할머니 미치는 호텔 객실 청소를 하며 생활을 일구고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해고를 당한다. 이후 여기저기 일자리를 잡아 보지만 그녀를 받아 주는 곳이 없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한편 '플랜 75' 담당 공무원 히로무는 20년간 연락이 끊겼던 삼촌의 신청서를 받아든다. 제아무리 일이라고 하지만, 오랫동안 못 본 가족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가족인데 어떻게 해야 할까.

요양원에서 일하는 필리핀 이주노동자 마리아는 교회 관계자의 추천으로 '플랜 75' 이용자의 유품을 정리하는 일을 맡는다. 그녀는 유품을 정리하며 수많은 유혹에 시달린다. 조금씩 변하는 자신을 느낀다. 한편 '플랜 75' 콜센터 직원 요코는 미치와 주기적으로 통화하며 만나기까지 한다. 알고 보니 이용자들의 마음이 변하지 않게 잘 보듬는 역할이었다. 두 눈 질끈 감고 해야 할 일을 하는 수밖에 없다. 

 

고령자의 죽음을 나라가 지원한다

 

영화 <플랜 75>는 극 중 고령자의 죽음을 나라가 지원하는 프로그램 이름 '플랜 75'를 그대로 제목화했다. 한편 이 영화는 지난 2019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총괄 기획 및 제작한 옴니버스 영화 <10년>에서 '플랜 75'라는 단편을 장편화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하야카와 치에 감독은 <플랜 75>로 장편 영화 연출 데뷔를 했다.

제75회 칸영화제 황금카메라 부문에 특별언급되었고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 부문 일본 출품작이기도 했다. 이밖에도 미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 유수의 영화제들에 초청되어 상도 많이 탔다. 한마디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는 말인데, 설정이 너무나도 현실적이면서도 생각할수록 무시무시한 면이 있다.

초고령화 문제는 비단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야말로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초고속으로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하고 있다, 아니 진입했다. 고령자들은 많아질 수밖에 없고 청년들은 더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와중에 고령자 정책, 청년 정책, 출산 정책 뭐 하나라도 제대로 실효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플랜 75'가 영화 속만의 허황된 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가?

 

힘없고 돈 없는 고령자가 대상

 

삶의 질이 전반적으로 수직상승하며 오랫동안 건강하게 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대비를 웬만큼 해놓지 않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한정적인 고령자의 노후는 그리 밝지 않다. 반면 물가, 집값, 세금 등 모든 게 오르는 와중에 월급만으로 할 수 있는 게 점점 없어지는 청년층은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데 고령자층도 책임져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출산율도 낮아지니 더 심해진다. 영화는 너무나도 현실적이다. 

현실이기도 한데 <플랜 75> 속 배경이기도 하다. 결국 타깃은 고령자에게로 향한다. 정확히는 힘없고 돈 없는 고령자. 이 지점이 섬뜩하다. 75세 이상 고령자가 '나라의 미래'를 위해 자발적으로 죽음을 선택할 시 나라에서 안락사를 지원해 준다니 말이다. 들여다보면 10만 엔 주고 최후로 하고 싶은 거 하게끔 하곤 장례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도라 별 게 없는데,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이 프로그램의 중심이다.

일본은 본래 삶과 죽음을 따로 떼어놓지 않았다느니, 당신이 이 나라의 미래이자 후세를 위해 올바른 선택(죽음)을 해야 한다느니 말이다. 그러며 사회전반적으로 이전보다 더욱더 고령자를 배척하기 시작한다. 집을 구하거나 직장을 구할 때도. 그런가 하면 돈 많은 고령자는 돈을 내놓고 권력이 있는 고령자는 권력을 나눠 줄 수 있다. 하여 영화에는 그런 고령자들은 아예 나오지도 않는다. '플랜 75' 프로그램의 대상이 아니니까.

 

근원적인 공포를 선사한다

 

'플랜 75'는 노후에도 편안한 삶을 살 수 없게 한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죽음밖에 없을 때까지 끝없이 나아가야 한다. 남들과 경쟁해야 한다. 태어나는 건 내가 선택할 수 없었지만 죽음은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슬로건은 명제 자체는 맞는 말이지만 실상은 죽음을 종용당하고 있는 것이다. 힘없고 돈 없는 고령자로서 계속 살아가는 건 그 자체로 '볼품없고 남부끄럽고 나쁜' 행동 양식이 되어 버렸다.

영화 속의 허구, 지극히 현실적인 허구라고 치부해 버릴 수 있을까. 근미래, 어느 날부터 말이 나오기 시작하고 시간이 조금 더 흘러 법안이 통과되면 세상은 그야말로 무한 서바이벌 체제로 들어설 것이다. 75세 이상이라는 기준은 더 내려가면 내려갔지 올라가지 않을 것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적으로 너를 죽이고 내가 살기 위해 '플랜 75'를 이용할 것이다.

65세 이상이면 고령자라고 하지만, 웬만한 65세는 고령자라고 하기에 터무니없이 젊다. 외모도 그렇고 정신적으로도 그렇다. 시간이 갈수록 그런 기조는 더 강해질 것이다. 그럼에도 출산율은 떨어지고 청년의 책임 부담은 커질 것이다. 몸과 마음이 여전히 젊은 고령자들이 죽음으로 몰릴 날이 머지않았다고 생각하니, 그중에 다름 아닌 '나'도 포함될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온몸이 덜덜 떨린다. 이 영화, 설정 하나만으로 근원적인 공포를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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