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마보로시>
어느 날 갑자기, 원인 모를 이유로 마을의 제철소가 폭발한다. 하늘이 깨지고 제철소에서 연기가 나더니 이내 늑대 모양으로 변해 사방을 헤집는가 싶다가 하늘의 깨진 틈을 막는다. 그렇게 세상은 변했다. 정확히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 사람들은 나이를 먹지 않고, 제철소가 폭발한 그 시점에 멈춰 있다. 언제까지 계속될지 아무도 모른다.
14살 마사무네는 친구들과 고통을 느끼는 놀이를 한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 중 하나다. 그는 같은 학교의 왠지 신비스러운 무츠미를 좋아한다. 하지만 말을 붙이지 못하고 있다가 우연히 마주치곤 함께 금지구역 제5제철소로 향한다. 그곳에서 몸만 컸지 하는 짓은 아기같은 소녀를 만난다. 마사무네는 그녀의 이름을 이츠미라고 짓는다. 그런데 무츠미는 그녀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는 것 같다.
한편 세상이 변한 후 실세는 제철소 직원이자 집안 대대로 신사를 모신 사가미였다. 그가 말하길, 신의 벌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제철소가 신의 기계로 변해 사람들을 미후세에 가뒀고 언젠가 밖으로 나갈 수 있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들 일행이 금지구역인 터널로 향했다가 소노베가 마사무네에게 고백하지만 그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뛰쳐나간 소노베는 이내 몸이 깨져 사라지는데... 이 사건 이후 마을 전체가 또 한 번 달라진다. 마사무네와 무츠미, 그리고 이츠미의 앞날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는 설정
환상적인 작화와 신파 이상의 감동을 선사한 <이별의 아침에 약속의 꽃을 장식하자>로 성공적인 데뷔를 치른 오카다 마리 감독이 5년 만에 두 번째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돌아왔다. 첫 번째 작품은 P.A.WORKS에서 제작했는데 두 번째 작품은 일본 굴지의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MAPPA에서 제작했다. <카케구루이> <바나나 피쉬> <좀비 랜드 사가> <주술회전> <진격의 거인> <체인소 맨> 등 유명 작품만 나열해도 끝이 없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영화 <마보로시>는 오카다 마리 연출하고 MAPPA에서 처음으로 제작한 극장판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에서 기대하지 않을 수 없는 외향을 보인다. 아울러 제철소가 폭발하며 시간이 멈춰 버린 마을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전한다는 점에서 내용마저 기대하지 않기 힘들다.
제목 '마보로시'는 '환상'을 의미하는 일본어다. 작품의 중후반부에 이르러 마을 사람들이 비밀 혹은 진실을 제대로 알게 되면 '환상'의 충격적인 의미가 와닿을 테다. 여기서는 '판타지'의 의미라기보다 '가상'의 의미에 가깝다는 정도만 언급한다. 영화가 결코 쉽지 않으니 애초에 철학적으로 접근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동일본대지진에 빚대어
제철소가 폭발해 시간이 멈춰 버린 마을 미후세는 직간접적으로 은유하는 바가 명확하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꽤 많은 부분을 할애해 어렵게만 느껴지는 게 사실이지만, 들여다보면 오히려 명확하고 선명하다. 우선 제철소 폭발은 2011년 3.11 동일본대지진으로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한 사고와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다.
영화에선 피해의 여파를 하늘이 갈라지고 늑대 연기가 날아다니고 시간이 멈춰 버린 것으로 보여줬다. 그야말로 천지가 개벽하고 시공간이 뒤틀릴 정도였다. 동일본대지진의 경우 직간접적 사망자가 2만여 명, 피난민이 50만여 명, 피해액이 사고 당시 일본 GDP의 약 6%에 해당하는 약 150조 원 등이었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가 일어난 후 오랫동안 해당 지역은 방치되었다. 아무도 살 수 없는 곳이 되어 버렸다. 방사능 때문일 것이다. 영화에서 시간이 멈춰 버린 미후세도 다르지 않다. 외부와의 교류가 완전히 차단된 채 아무런 변화 없이 그저 시간만 보내고 있을 뿐이다. 종종 고통으로 자극을 느끼면서.
'잃어버린 30년'의 멈춘 일본
한편 시간이 멈춘 미후세는 일본 전체의 현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잃어버린 30년' 말이다. 한때 너무나도 잘 나갔지만 충분한 인구의 내수 시장만 바라보다가 세계적인 추세에 발맞추지 못해 뒤처져 버린 일본, 지금은 초고령화와 청춘들의 절망으로 모든 게 멈춰 버린 듯한 모습이다. 우리나라도 비슷한 전철을 밟아가고 있는 것 같다.
마사무네는 일러스트레이터가 꿈인데 14살에 멈춰 버린 지금으로선 꿈을 현실화시키는 게 불가능하다. 그는 또 희로애락을 다 느껴보고 싶단다. 이곳에선 감정다운 감정을 느낄 수 없다. 그런 와중에 뭔가를 아는 듯한 신비로운 소녀 무츠미를 알게 되고 금지구역인 제5제철소 안에서 이츠미도 만난다. 그러며 감정이라는 걸 느끼기 시작한다. 14살 소년소녀라면 으레 그래야 하듯이. 그런데 그 때문에 세상이 통째로 흔들리는 것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저력에 다시 한 번 고개가 끄덕여진다. 일본의 현대 역사를 뒤흔든 결정적 사고와 일본의 현재를 엮여 내고 14살 사춘기 소년소녀의 사랑 이야기를 얹혀 현실같은 환상, 환상같은 현실을 기가 막히게 보여줬다. 쉽지 않은 초중반을 넘기면 후반까지 철학적 깊이의 재미와 감동도 함께 한껏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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