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헬 캠프: 청소년 지옥 훈련소>
2020년 리얼리티 TV 스타 패리스 힐튼이 미 의회에서 연설한다. 내용은 자신이 17세 때(1998년) 유타주의 한 행동 치료 센터에서 겪은 트라우마와 학대에 관한 것이었다. 이후 그녀는 문제 청소년 산업 반대 운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1989년까지 거슬러 올라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15살 먹은 아이가 집에서 자고 있다가 느닷없이 들이닥친 괴한들에 의해 납치되어 어디론가 보내진다. 비몽사몽 가운데 눈을 떠보니 유타의 사막 한가운데, 덩치 큰 남자가 오더니 소리 지르면서 깨운다. 그러며 두 달 넘게 교관들의 지도를 받게 될 거란다. 알고 보니 납치당한 게 아니라 부모님이 보낸 것이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영화 <헬 캠프: 청소년 지옥 훈련소>(이하, '헬 캠프')는 35세의 전 공군 병장 스티브 카티사노가 1988년 고안한 프로그램 '야생 치료 캠프(챌린저 캠프)'에 관한 이야기들을 전한다. 이 프로그램은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데, 패리스 힐튼이 수면 위로 올릴 때까지 자세히 들여다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도대체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청소년들의 썩어빠진 정신머리를 고쳐놓겠다
1980년대 미국은 굉장히 보수적인 사회였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80년대를 온전히 이끌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전 70년대까지 자유분방의 극치를 달렸던 사회 분위기의 반대급부이기도 하겠다. 경제적으론 신자유주의 체제를 고수했지만 정치적으론 보수주의에 입각해 통치했다. 그중에는 영부인 낸시 레이건의 마약예방교육과 마약퇴치운동이 있다.
스티브 카티사노가 챌린저 캠프를 고안해낸 배경이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영부인이 앞장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마약예방교육과 마약퇴치운동을 실시했을 만큼 당시 청소년 문제는 시대의 과제이자 수많은 부모의 골칫거리였다. 아이가 15세를 전후해 갑자기 달라지더니 술과 담배, 마약에 찌들고 부모의 말 따위는 듣지 않는다. 부모로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 아니겠는가.
챌린저 캠프는 바로 그런 청소년들을 데려다가 '썩어빠진 정신머리'를 뿌리부터 고쳐놓겠다는 의도에서 시작했다. 1989년 당세 1만 6천 달러가 들었다고 하는데, 부모 입장에선 그만큼 절실했나 싶다. 사업은 아주 잘되었고 스티브 카티사노는 유명해졌으며 전국의 부모들은 문제아 자식들을 더 많이 캠프에 보냈다. 하지만 급속도로 커진 캠프에 문제가 발생하고 있었다. 학대와 훈련 사이의 선을 아슬아슬하게 걷고 있었던 것이다.
사망 사건 이후 또 다른 야생 치료 프로그램
그러던 1990년 6월 말경 큰일이 터진다. 하이킹 도중 16살 여자아이 크리스틴 체이스가 쓰러져 사망하고 만 것이다. 당국은 스티브와 챌린저 재단을 과실 치사 혐의로 기소한다. 이후 아동 학대 혐의로 줄소송이 이어진다. 하지만 스티브는 크리스틴의 죽음에 완전 무죄 판결을 받는다. 운동성 열사병이 원인이 아니라는 합리적인 의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족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은 스티브가 청소년 프로그램 운영이 아닌 다른 일을 하길 바랐다. 하지만 그는 버질아일랜드 세인트토머스섬으로 가서 새로운 야생 치료 프로그램을 만든다. 이른바 '헬스 케어 아메리카', 이번에는 아이들을 배에 태워 카브리해를 횡단했다. 버진아일랜드에서 푸에르토리코, 모나섬을 거쳐 도미니카 공화국, 아이티, 자메이카까지 간 뒤 베네수엘라와 콜롬비아의 카르타헤나로 갔다. 길고 긴 여정.
하지만 알고 보니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은 프로그램이었다. 법 집행 기관의 승인도 없었고 공중위생 검사도 받지 않았다. 결국 당국이 개입해 아이들을 구출할 수 있었다. 스티브는 완전히 망하고 말았다. 한때 떵떵거리며 잘살았던 그의 집안도 졸지에 망하고 말았다. 막내아들이 크게 엇나갔고 첫째딸도 크게 엇나갔다. 스티브의 아내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
개도가 필요한 문제아들, 평생 남을 트라우마
한편 스티브는 여전히 야생 치료 프로그램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고 사모아 사업가 몇을 찾아 컨설팅을 해 주다가 또다시 사업을 시작한다. 이른바 '퍼시픽 코스트 아카데미', 그는 급기야 막내아들을 납치해 캠프로 데려간다. 사막, 바다에 이어 이번엔 정글이었다. 참여 가격은 3만 달러에 이르렀다. 새천년년이 밝았는데도 학부모들은 아이를 이런 곳에 큰돈을 들여 보냈다.
오래지 않아 사업은 망한다. 어느 참가자 아이의 부모가 몰래 비디오를 찍었고 우여곡절 끝에 밖으로 유출되어 사모아 당국이 개입한 것이었다. 아이들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한 환경에서 수개월 동안 학대를 받고 있었다. 스티브는 야생에서 스스로 생존하며 크게 깨달아 집으로 돌아가면 완전히 착한 아이가 되어 있을 거라는 망상이 실현될 거라는 허황된 희망을 학부모들에게 심었던 것이다.
2020년대 현재까지도 스티브가 고안한 야생 치료 프로그램의 아류 버전들이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1980년대든 2020년대든 소위 '문제아'를 자식으로 둔 학부모들은 큰돈을 들여서라도 자식을 '교정'하고 싶어 하는가 보다. 어찌할 방도가 없으니 그러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누구나 한 번쯤 겪을 질풍노도의 시기를 그런 식으로 교정해야 하는가 싶기도 하는 한편, 야생 치료 프로그램을 받지 않았다면 감옥에 갔거나 죽었다고 하는 걸 보면 어떤 식으로든 훈련이 필요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아이들에겐 평생 잊지 못할 끔찍한 트라우마로 남았다고 한다.
청소년 개도 프로그램은 영원히 계속되어도 이상할 게 없어 보인다. 결과적으로 볼 때 분명 긍정적인 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정에서 도를 넘고 선을 넘는 방식에 충분히 의문을 품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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